124화 도쿄 올림픽 조별예선 브라질전[1]
“전달 받았습니다. 그럼 브라질의 선발 라인업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배선재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브라질의 선발 라인업을 말했다.
에데르송
에메르송 – 가브리엘 – 루이스 필리페 – 알렉스 텔리스
마이콩 - 웬델
호드리구 고에스 – 루카스 파케타 – 비시니우스 주니어
호베르투 피르미누
“그리고 브라질을 상대하는 대한민국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구성운
황태형 – 김현웅 – 권경언 – 최성
이강운 - 정호민 – 김정진 - 정운영
김가람 - 우세훈
“와! 안드렌 자딘 감독 놀랍네요. 선발 라인업에 어제 인터뷰를 같이 진행한 가브리엘 제수스 선수를 빼고 호베르투 피르미누 선수를 투입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부상이라도 당한 걸까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타박상으로 중간에 빠진 권창우 선수 대신 장운영 선수가 왼쪽 미드필더 자리로 나왔습니다.”
“그렇죠. 사실 저렇게 4-4-2 전술로 나오지만, 여태까지 경기로 봤을 때 김가람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중원까지 내려오며 수비를 가담하면서 많은 팀들을 괴롭혔는데요. 오늘은 어떤 경기를 할지 궁금합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 소리에 대한민국의 공으로 경기는 시작되었고, 우세훈의 공을 받은 가람은 스스로 공을 몰고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서는 김가람 선수입니다. 그렇죠. 경기 초반의 이른 득점에 상대 팀들에게 한방 먹이면서 시작했었는데요. 과연 브라질은 어떻게 대응할지 기대가 됩니다.”
타타탓!!
가람은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섰고, 그 모습을 본 안드레 자딘 감독은 웃으면서 가람을 지켜봤다.
‘여태까지 상대해온 팀들과 우리는 다르다. 애송아.’
그리고 안드레 자딘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 라인 끝에 서서 크게 소리쳤다.
“계획대로 해라!!”
그 말과 함께 선수들은 지역 수비에 나섰고, 가람의 공간을 앞두고 상당히 촘촘하게 마크했다.
지역 수비에 집중하며 가람의 움직임을 저지할 뿐이지, 앞으로 나서면서 공을 탈취하려고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
흡사 가람을 호위하는 듯한 브라질 선수들의 체계적인 수비 움직임에 가람은 놀랐다.
‘뭐야.. 이건 진짜 감독님 말처럼..’
자신이 수많은 회귀의 삶을 거치면서 만났던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수비 체계에 가람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게 너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딘가 엉성한 듯한 모습이라 놀란 것이었다.
브라질이라고 하면 삼바군단 특유의 호흡과 드리블, 어려서부터 공과 함께 살아오면서 뛰어난 개인 능력을 바탕으로 한 유기적인 플레이, 그리고 끝임 없이 나오는 축구 천재들을 바탕으로 하는 뛰어난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꼭 어린아이가 어른의 정장을 입은 것처럼 지금 눈에 보이는 브라질 선수들의 지역 수비는 그 모습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물론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뛰어난 지역 수비로 보였겠지만 가람의 눈에게는 허점이 많았다.
‘아니면 정말 전술적 완성도를 높인 걸까? 지금 저기 보이는 허점들도 전부 커버가 될 정도로?’
가람은 브라질 선수들을 아니 브라질 감독을 실험한다는 듯 자신의 앞 공간을 막고 있는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루카스 파케타와 왼쪽 윙어인 비시니우스 주니어의 수비 공간 사이로 공을 일부러 길게 찼다.
토오옹~~
그렇게 공을 보내자, 루카스 파케타와 비시니우스 주니어는 공을 잡기 위해 둘 다 공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고, 가람은 그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하아.. 이건 너무 급조한 느낌인데...’
원래 지역 수비를 한다면 공이 움직인다고 해도 자신의 앞에 있는 선수를 놓쳐서는 안 되는데 공격적인 브라질 선수에게 어설픈 지역 수비를 시키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람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람의 행동은 상대편에게 공을 건네는 실수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김가람 선수! 자신의 앞 공간에 공을 밀어 넣습니다.”
“아. 이건 실수인가요?”
장재현이 가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루카스 파케타가 공을 잡는 순간 비시니우스 주니어가 공격을 하기 위해서 옆으로 벌어졌다.
그렇게 공간이 생기자, 가람은 비시니우스 주니어가 있었던 공간으로 돌아 들어가며, 순식간에 루카스 파케타를 압박했다.
“여기서 어느새 나타난 김가람 선수의 압박!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물론 보통의 선수가 압박을 한다면 브라질리언의 피가 흐르는 루카스 파케타는 개인기로 쉽게 탈압박을 할 수 있겠지만, 가람의 압박은 남달랐다.
가람의 183cm라는 적당한 키에 온 몸은 돌처럼 단단한 근육에서 나오는 엄청난 압박, 게다가 단순히 힘이 아닌 발재간을 이용한 계속되는 가로채기 시도에 루카스 파케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순간 가람이 힘을 줘서 압박을 하자, 루카스 파케타는 스턴에라도 걸린 듯 잠시 멈추었고, 그 사이 가람이 발을 뻗어 공을 가로챘다.
“여기서 김가람 선수가 공을 가로챕니다.”
가람을 상대로 펼치려고 했던 수비 작전은 이미 두 선수의 그물이 휭하게 뚫리면서 무용지물이 되었고, 안드레 자딘 감독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순간 등쪽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사실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얕보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대한민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김가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가람을 막기 위해 잘 안 되는 수비 훈련까지 하면서 준비를 했고, 이런 모습을 언론에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실 선수들도 자신들이 이렇게 무리하게 노력해서 막아야 하는 건지 의문을 던졌지만, 안드레 자딘 감독은 확고했다.
그래서 기자회견과 다르게 이번 대회에 와일드 카드로 뽑은 에데르송과 엘렉스 텔리스 그리고 호베르투 피르미누까지 선발 출장을 시키며 준비를 한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하는 것이 안드레 자딘 감독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준비가 가람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가람 선수!! 공격적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마이콩 선수의 태클을 피하고 이미 무아지경으로 빠져 패널티 에어리어 인근까지 접근했습니다.”
“그렇죠. 전반전의 저승사자 김가람선수가 왜 같은 조의 포르투갈과 알제리가 전반전에 멘탈이 털렸는지를 브라질에게 직접 가르쳐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수비라인은 가람의 빠른 발을 생각하면 라인을 올릴 수 없어 패널티 에어리어 뒤쪽에서 대기하며 가람이 좀 더 가까이 온다면 가람을 에워싸서 막을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의도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듯 어느새 가세한 이강운과 정운영이 왼쪽과 오른쪽 수비 라인의 뒤쪽 공간을 파고 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안드레 자딘 감독은 크게 소리쳤다.
“나머지는 신경 쓰지마!! 김가람만 잡아!!!”
가람은 패널티 에어리어 라인 근처까지 도착하자, 가람의 중거리 슈팅 능력에 대해서 이미 안드레 자딘 감독한테서 지겹게 들은 수비 라인은 어쩔 수 없이 가람을 막기 위해 앞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 순간 가람은 오른쪽에서 파고들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이강운에게 공을 패스했다.
공은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었고 이강운이 자신 있는 왼쪽 발 바로 앞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이강운이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에 좋은 자리를 잡은 상태에도, 브라질의 수비라인은 이강운을 막기 위해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 대한민국의 모든 골은 김가람에게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선수들은 그냥 들러리라고 생각해도 된다. 알겠나? 다른 선수들에게 공이 간다고 해도 마지막에 대한민국에서 슈팅을 마무리하는 건 김가람이다.’
안드레 자딘 감독이 경기 시작 직전에 했던 말에 브라질의 수비 라인은 이강운을 향해 밀착 마크를 하지 않고 오히려 가람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되자 이강운은 생각보다 여유 있는 공간을 차지 할 수 있었고, 그대로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골 에어리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원래 여기서는 2대1 패스를 통해 가람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주는 게 정답이었지만, 이 정도로 공간이 나온다면 이강운도 골을 노려볼 만 했다.
그렇게 마음 먹은 이강운은 자신 있는 왼쪽 발로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엉!!
파아아앙!!
“이강운 선수의 슈팅!! 에데르송 골키퍼의 놀라운 반사 신경에 막힙니다.”
하지만 이강운이 가까운 거리에서 찬 슈팅은 에데르송이 완벽하게 잡지는 못했고, 공은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 공을 향해 한 선수가 아무도 모르게 그림자처럼 접근했다.
“세컨볼을 향해 김가람 선수가 달려듭니다.”
그 모습에 안드레 자딘 감독은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 이것도 다 계획 안에 있다.’
아까 가람의 생각지 않은 행동에 계획이 무산될 뻔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가람에게 골을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가람에 비해 슈팅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다른 한국의 선수를 생각한다면 자신이 대한민국의 감독이라고 해도 만약 슈팅 찬스가 나오면 강한 슈팅을 때리게 지시를 해서 가람이 세컨볼을 따낼 수 있게 할 것이었다.
그에 대비해 안드레 자딘 감독은 세컨볼에서도 가람에게 수비 마크를 붙여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브라질 선수들은 그런 안드레 자딘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가람의 그림자처럼 가람의 주변을 감쌌다.
“세컨볼에 반응하는 김가람 선수 주변에 브라질 선수들 너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안드레 자딘 감독은 그동안 훈련을 한 것이 성과로 나타나자,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 위치와 각도에서는 펠레 선배가 온다고 해도 골을 넣을 수는 없다고!’
확신에 찬 안드레 자딘 감독의 생각대로 가람은 날아오는 세컨볼을 향해 헤딩을 했지만 헤딩 방향은 골문쪽이 아니라 먼 쪽 골대 방향이었다.
브라질의 수비수가 공을 걷어내는 것과 흡사한 공의 방향을 보고 안드레 자딘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리고 그 미소에 화답하듯 공은 골라인 아웃을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생각지 않은 한 선수의 돌진에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왜 네가 나오는 거냐...’
이번 대회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로 나와 한 골도 넣지 못하며, 가람의 특급 도우미로 불리는 선수. 공중볼 경합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발이 빠른 것은 아니라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선수가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었다.
뻐어엉!!
촤르르르르르~~~
“고오오오올! 전반 5분! 우세훈 선수가 골을 집어넣습니다.”
“이야! 이건 솔직히 브라질이 막았다고 생각했는데요. 김가람 선수 뒤에 눈이라도 달린 걸까요? 어떻게 우세훈 선수가 쇄도하는 공간을 향해 정확하게 패스를 넣었을까요?!”
안드레 자딘 감독의 계획대로 김가람에게 골을 먹히지는 않았지만, 스코어는 1대 0, 브라질은 전반 5분 만에 골을 먹히며 경기는 흘러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