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높아지는 명성
삐이익! 삑!!
안드레 자딘 감독은 주심이 휘슬을 부는 순간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서 전광판에 보이는 스코어는 5대 0 이었고, 가람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모든 골에 관여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지금 이 현실을 꿈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신이 소원을 잘못 이해해서 시간을 다시 경기 시작 전으로 돌려보낸다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었다.
'다시 싸워도 막을 수 없다. 불가능해.'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은 가람이 잉글랜드 국적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번 올림픽에 독일에게 밀려 출전을 하지 못 한 잉글랜드였기에 브라질은 지금과 같은 패배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안드레 자딘 감독은 라커룸으로 향했고, 라커룸에 들어온 선수들을 하나씩 위로해주었다.
아무리 위로를 받는다고 해도 자존심 강한 선수들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게 패배했다는 것이 큰 상처로 남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안드레 자딘 감독은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모두 주목!”
안드레 자딘 감독의 말에 모든 선수들이 고개를 들었고, 안드레 자딘 감독은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지금 너희들이 상대한 건 단순히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앞으로 저 선수는 이 올림픽이 끝난 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메시가 있는 팀과 상대해서 졌다고 생각해라.”
순간 브라질 선수들은 자신들이 들은 게 제대로 된 건지 귀를 의심했지만, 안드레 자딘 감독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이 경기에서 진 게 언론에서는 이변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단언하는데 이번 대회의 우승팀은 대한민국이 될 거고 너희들은 우승팀에게 진 것이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모두 고개를 들어라.”
그제야 자신들의 감독이 상대를 높이 평가한다는 걸 알게 된 선수들은 하나 둘 고개를 들어 감독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라질 선수들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자 안드레 자딘 감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고개를 드는구나. 그래! 고개를 들어라! 오늘 경기의 패배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이 패배를 교훈 삼아서 발전하거라. 특히 잉글랜드에서 뛰는 녀석들!”
안드레 자딘 감독의 말에 맨시티의 에데르송, 가브리엘 제수스, 맨유의 알렉스 텔리스, 리버풀의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화들짝 놀라 안드레 자딘 감독을 봤다.
“너희들은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거다. 내 생각에 너희들의 클럽팀이 지금 우리 올림픽 대표 선수단보다 좋겠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선더랜드도 대한민국의 선수단보다 좋을 거다. 다음에 상대할 때는 오늘 경기를 되새기고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네 선수들은 꼭 한 사람이 된 것처럼 대답했고, 그 모습을 본 안드레 자딘 감독은 선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의 상대가 뛰어났고, 그런 상대를 맞이해서 감독인 나는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 전술을 짜야 했다. 결국 내 역량 부족이었다. 너희들은 잘못이 없으니 모든 지탄은 내가 받을 거다. 그러니 이 경기로 트라우마 같은 나약한 것을 만들지 말고, 앞으로 이 패배를 바탕으로 성장해라. 수석코치! 기자회견장은 나 혼자 다녀올 테니 기자들 잠잠해지면 들어갈 준비 시켜.”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게 안드레 자딘 감독은 라커룸 밖으로 나갔고, 안드레 자딘 감독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수많은 카메라의 셔터음이 선수들에게 들렸다.
승리를 한 감독에게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기자회견이겠지만, 경기에서 패배한 감독에게는 죽는 것보다 가기 싫은 곳이 기자회견일 것이었다.
프로 리그에서 이렇게 대패한 경기라면 감독이 기자회견을 안 하겠다고 구단 관계자에게 말하면 기자회견을 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처럼 국제대회에 주최측이 확실한 경기의 기자회견은 경기가 끝난 뒤 바로 공식 석상에서 이어지고,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드레 자딘 감독은 걸음을 옮겼고 기자회견장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는 짧은 사이 기자들은 어설픈 포르투갈어나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안드레 자딘 감독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올림픽 경호 담당자들은 수많은 기자들을 밀어내며 힘겹게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그때 안드레 자딘 감독은 경기에 승리해 먼저 인터뷰를 마친 김한범 감독과 가람을 만나게 되었다.
김한범 감독은 노련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고, 안드레 자딘 감독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으며 포르투갈어로 입을 열었다.
“여우 같은 당신에게 졌습니다. 아마 이번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건 당신네 팀일 것 같군요.”
그 말을 들은 김한범 감독이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짓자, 자신이 포르투갈어로 말한 것을 깨달은 안드레 자딘 감독이 영어로 다시 말하려고 했다.
그때 옆에 있는 가람이 통역을 하는 듯 김한범에게 말을 전했고, 김한범은 무언가 알아들은 듯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고, 그 말을 들은 가람이 포르투갈어로 통역했다.
“감독님께서 브라질을 이긴 건 운이 좋았다고 하시네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졌지만 이번에는 이겨서 기분이 좋다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안드레 자딘 감독이 놀란 표정을 되물었다.
“자네 포르투갈어를 잘하는군.”
“조금 할 줄 압니다.”
“그렇군. 이 말을 기자회견을 통해 전하고 싶었는데 직접 전할 수 있게 되었어.”
“네에? 그게 무슨 말을..”
“자네는 펠레 선배의 재림 같았어. 브라질 사람에게 펠레 선배의 존재가 어떤지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솔직한 감정이네.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높아진 명성 때문에 많이 피곤하겠어.”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안드레 자딘 감독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갔고, 가람은 김한범 감독과 함께 라커룸으로 향했다.
“가람아. 너 포르투갈어도 할 줄 알어?”
“네에. 국가대표 감독님이 포르투갈분이라 좀 공부했어요.”
“아니 내가 보기에는 그냥 공부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철수 정도로 잘하는 거 같은데.”
“아니에요.”
“그런데 저 친구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냐?”
“뭐.. 공 좀 찬다고 했어요.”
“그래. 하긴 네 녀석이 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차지. 오늘은 푹 쉬도록 해라. 이제 이틀 뒤에는 C조 2위인 벨기에 녀석들하고 놀아줘야 하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가람은 걸음을 옮겨갔고, 그 순간 머릿속에 기분 좋은 울림이 들려왔다.
띠리링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30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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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복도에서부터 쫓아온 기자들은 안드레 자딘 감독이 자리에 앉는 동안 사진을 찍었고, 올림픽 관계자가 제지를 하자 그제야 멈췄다.
그리고 수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이번에도 운이 좋았는지 제일 먼저 질문의 기회를 얻은 이청일 기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 대한민국에게 0대 5라는 대이변을 겪고, 포르투갈이 알제리를 4대 0으로 이기면서 같은 1승 1무 1패를 기록했지만, 골다득실로 조별 탈락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혹시 어제 기자회견장에 오셨던 한국 기자분인가요?”
“맞습니다.”
“그렇군요. 이제 와서 말하면 어제 아니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4대 0으로 이겼을 때부터 대한민국을 얕잡아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제 기자회견은 일부로 얕보면서 연막 작전을 펼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가람 선수를 막기 위해 수비훈련과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훈련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5분 만에 김가람 선수가 만든 찬스에 골을 먹혔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여러분이 알고 계신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많은 말을 쏟아내자, 통역사가 살짝 버거워했고, 안드레 자딘 감독은 통역사가 말을 다 통역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까 대한민국의 승리를 대이변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오늘 경기를 통해 확실히 느낀 거지만 대이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 김가람 선수가 보여주었던 자신감이 그대로 결과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올림픽 우승은 대한민국이 할 것 같습니다.”
생각지 않게 놀라운 답변을 술술 풀어내는 안드레 자딘 감독 덕분에 이청일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추가 질문 기회가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자 다른 기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아무리 대한민국에게 패배하셨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을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정정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저보다 뛰어난 감독님이나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을 가진 열정적인 선수들이 있다면 대한민국과 상대할 때 지금만큼의 점수차는 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경기에서 이기는 건 대한민국이 될 것입니다.”
안드레 자딘 감독의 확신이 찬 말에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아까 질문했던 기자는 다시금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오늘 경기 패배의 요인에 대해서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경기 패배의 요인은 감독인 제가 대한민국이라는 팀을 잘못 분석했고, 전술적으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패배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김가람 선수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오늘 경기 김가람 선수에게 패배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아.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안되겠군요. 축구는 팀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펠레 선배님이 계시니 말이죠. 정정해서 말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김한범 감독이 경기 시작에 사용한 김가람 선수를 이용한 전술, 그리고 저희가 공격적으로 나서자, 김가람 선수가 편하게 활동할 수 있게 짠 전술에 패배했습니다.”
결국 조금은 다르지만 김가람에게 패배했다는 말에 다시 한번 기자회견장은 술렁였고, 다른 기자가 일어나 질문했다.
“그럼 김가람 선수에 대한 평가를 짧게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사실 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오면서부터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이 대답이 제일 맞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에 브라질 축구 팬분들은 제가 미쳤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펠레가 나타났다고 말이죠.”
“펠레라고요?”
“네. 펠레의 후계자가 아니라 동양의 펠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안드레 자딘 감독의 인터뷰는 생각지 않은 파동을 남기고 끝이 났으며, 그 파동에 축구계는 크게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