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도쿄 올림픽 4강 스페인전[1]
“그럼 스페인의 선발 라인업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비드 데 헤아
파블로 – 누메즈 – 세르히오 바르시아 - 로렌스
펠라요 모리야- 사울 니게스 –코케 -아르렌조
쿠키- 로렌조 곤잘레스
“오늘도 에르네스토 발데르데 감독은 4-4-2 전술을 들고 나왔습니다. 사울 니게스 선수와 코케 선수 그리고 다비드 데 헤아 선수를 중심으로 한 촘촘한 2줄 수비가 오늘 경기에서도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장재현의 짧은 소개가 끝나자, 배선재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다음은 대한민국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구성운
황태형 – 권윤성 – 권경언 – 최성
이강운 - 정호민 – 권창우 - 정운영
김가람 - 우세훈
배선재는 대한민국의 선발 라인업을 호명한 후 바로 이어서 말했다.
“역시 오늘 대한민국도 여태까지 베스트 일레븐을 들고 왔습니다. 사실 전술적으로는 큰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술의 변화가 없어도, 대한민국은 계속 승리해왔습니다."
"그렇죠. 사실 전술보다는 상대 올림픽 대표팀이 김가람 선수를 막는 걸 해내지 못했습니다. 과연 오늘 스페인은 김가람 선수를 막을 수 있을지 그 부분을 지켜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삐이익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대한민국의 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우세훈의 공을 받은 가람은 공을 천천히 몰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스페인의 스트라이커 듀오인 쿠키와 로렌조 곤잘레스가 가람을 향해 달려들었고, 가람은 오히려 그들의 앞으로 툭툭 치고 나갔다.
원래 이렇게 선수들이 압박을 가하면 방향을 바꾸거나 패스를 하는 것이 일방적이었는데 가람은 오히려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공간을 좁혀왔고, 쿠키와 로렌조 곤잘레스는 순간 그런 가람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황하는 짧은 순간
툭!! 툭!!
가람은 바로 쿠키의 코 앞에서 공의 방향을 바꾸었고, 종이 한 장 차이로 거의 스치듯 쿠키의 옆을 지나쳐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로렌조 곤잘레스는 어떻게든 가람을 막기 위해 발을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최대한 공을 향해 뻗었다.
휘리릭~
하지만 그런 엉성한 수비에 가람이 걸릴 일은 없었다.
가람은 두 선수를 제친 후 바로 하프 라인을 넘어서려고 했다. 그때 가람의 눈에는 사울 니게스 선수와 바로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코케 선수가 보였다.
“김가람 선수 순식간에 스페인 듀오 선수의 협력 수비를 뚫어냈지만, 그 뒤를 바로 사울 니게스 선수와 코케 선수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수비 간격이 상당히 촘촘합니다.”
두 선수가 돌파 당할 것을 미리 예상했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사울 니게스는 가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가람의 방향을 유도하는 것처럼 수비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 방향 뒤에는 코케가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가람은 사울 니게스가 유도한 대로 코케와의 협력 수비에 쌓이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브라질과는 수비의 질이 다르군.'
안드레 자딘 감독이 가람을 막으려고 펼쳤던 촘촘한 수비 라인의 최종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페인의 완벽에 가까운 선수 간격과 수비 조직력을 보며 가람은 감탄했다.
하지만 그런 감탄이 단순히 감탄이지 뚫어낼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투우욱~~
가람은 전진하는 척 하며 뒷발로 공을 찼고, 가람의 뒷발에 맞은 공은 사울 니게스 가랑이를 통과해 이강운에게 연결되었다.
“김가람 선수 여기서 재치 있는 패스! 김가람 선수를 막기 위해 포진하고 있던 사울 니게스 선수와 코케 선수는 닭 쫓던 개처럼 황당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김가람 선수가 단순히 골을 많이 넣고 골에 대한 욕심이 많은 선수라면 막기 편했겠지만, 김가람 선수는 이타적인 플레이도 가능하거든요. 그 부분을 스페인이 놓친다면 오늘 경기 힘들어질 겁니다.”
이강운이 공을 받아 안쪽으로 침투하자, 좀 더 뒤쪽에 있던 코케가 이강운을 마크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사울 니게스는 그대로 가람을 마크했다.
여기서 2 대 1 패스가 나오는 것을 바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태까지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골에 김가람이 거의 다 관여했기 때문에 이런 마크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가람은 사울 니케스를 달고 안쪽으로 침투해 들어갔고, 그 앞을 막고 있는 최종 수비 라인과 만날 수 있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중앙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의 간격은 상당히 좁아, 공격적으로 나가기에는 공간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다.
‘이거 빡빡하네.’
가람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이강운은 드리블을 치다가 공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뒤쪽에 있는 권창우에게 공을 전달했다.
“아! 대한민국! 초반의 좋은 흐름을 마무리 하는 게 좋은데요. 슈팅이든 유효 슈팅이든 마무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여태까지 수많은 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페인의 수비에 막히게 됩니다.”
하지만 권창우는 이강운에게 공을 받은 즉시 바로 김가람의 오른쪽 공간을 보고 공을 올렸다.
뻐어엉!!
가람을 향해 공이 길게 날아오자, 사울 니게스는 가람이 공을 잡지 못하도록 몸싸움을 걸어왔다.
투우웅!
하지만 꼭 단단한 타이어에 맞은 것처럼 탄력 있는 가람의 근육에 오히려 사울 니게스 선수는 살짝 튕겨져 나갔고, 그 틈에 가람은 좀 더 속도를 내서 공의 낙하 지점을 향해 뛰어갔다.
공은 오른쪽 터치 라인 끝으로 갔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이 그대로 나갈 것으로 보였다.
“아.. 권창우 선수의 패스가 길어요.”
장재현도 그렇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도 공이 터치 라인 밖으로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 올림픽 경기에 그 어떤 선수도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모습을 가람이 보여주었다.
토오옹!!
가람은 터치 라인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오른발을 길게 뻗어 공을 자신의 몸 쪽으로 붙이더니 몸으로 온 공을 왼쪽 허벅지로 가볍게 트래핑해서 자신의 앞 공간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 오른발로 강하게 슈팅을 가져갔다.
설명은 길었지만, 가람은 이 동작은 한순간에 물 흐르듯 막힘없이 해냈다.
뻐어어엉!!!
“김가람 선수!! 여기서 공을 살리는 동시에 슈팅을 합니다.”
가람이 찬 공은 살짝 높게 형성이 되었지만, 그래도 먼 쪽 왼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공의 궤적을 본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는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경기가 있기 전부터 에르네스토 발데르데 감독에게 가람이 슈팅을 차게 되면 아무리 먼 거리에서라도 유효슈팅이 된다는 가정 하에 조심하라고 지시를 했고, 그 지시를 기억하고 있는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였다.
하지만 공의 궤적은 왼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아온다고 하기에는 점점 높이 솟구쳤고, 그대로 골라인 아웃일 될 것처럼 보였다.
그때
번쩍!!
그렇게 잠시 공의 궤적을 쫓던 다비드 데헤아 골키퍼의 눈에 태양광이 번쩍거렸고,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휘리릭~~
공은 순간 살아 있는 매처럼 급격하게 각도를 꺾이더니 왼쪽 골대 상단 모서리를 향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는 화들짝 놀라 손을 길게 뻗었다.
티익!
터어엉!!
“김가람 선수의 슈팅!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하지만 저 위치에서 유효 슈팅을 성공시키는 김가람 선수의 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만약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골로 연결될 수 있었는데요.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의 손에 맞은 공은 아직도 힘이 넘치는 지 크게 튀어올라 골라인 아웃이 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의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공을 막은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는 주변을 보며 크게 외쳤다.
“멍청이들아!! 감독님 말씀 못 들었어?! 어떻게든 슈팅을 못하게 막아!!”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의 외침에 어린 선수들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는 시선을 옮겨 가람을 쳐다봤다.
‘저 위치에서 공을 찼는데 이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정말 말도 안되는 녀석이군.’
그렇게 다비드 데 헤아는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주면 코너킥을 준비했고, 대한민국도 코너킥 공격을 준비했다.
가람을 향해 두 세 명의 마크맨은 기본이었고, 헤딩에 일가견이 있는 우세훈에게도 여러 명의 마크맨이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가람은 선수들이 경합하는 공간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 패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빠져 나왔다.
가람이 공격이 아니라 패널티 에어리어로 나가자, 스페인의 수비진은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의 역습을 대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코케가 거리를 좁히며 가람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가람은 스페인의 세트피스 방어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쪽에 슈팅이 나올 만한 자리에는 수비수들이 마크하고 떨어진 곳에는 중앙 미드필더가 나와서 견제를 한다라... 괜찮은데..’
상당히 촘촘한 수비를 준비한 스페인을 보며 가람은 이 수비를 어떻게 하면 무너뜨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뻐어엉!!
이강운이 공을 차는 순간 가람은 패널티 에어리어에서 속도를 높여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그 움직임에 맞춰 코케도 따라 들어왔다.
축구에서 특히 코너킥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공격하는 선수은 자신이 어느 곳으로 갈지 목적지를 정해두고 뛰는 거지만 수비하는 사람은 공격하는 선수의 위치를 보고 따라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가람은 일부러 선수들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가자, 코케는 순간 가람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람이 움직이는 사이에 공은 높지도 낮지도 않게 우세훈이 있는 곳으로 향해 날아갔다.
“우세훈 선수!! 수많은 스페인 장신의 수비수 사이에서 정확하게 공을 터치하지 못합니다.”
우세훈과 스페인의 중앙 수비수 누메즈는 공중에서 경합을 벌이며 우세훈이 먼저 머리에 닿은 공이 누메즈의 어깨에 맞으며 인근으로 떨어졌고, 사람이 많은 혼전 상황에서 공이 어디로 갔는지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때
뻐어엉!!!
촤르르르르~~~
“김가람 선수!! 전반 14분에 첫 골을 만들어냅니다!!”
“아니 언제 김가람 선수가 저 위치에 온 거죠? 놀라운 위치 선정으로 공이 떨어질 곳을 정확하게 예측해서 세컨볼이 떨어지는 순간 넘어지듯 슬라이딩 하면서 슈팅을 해 오른쪽 골대 구석으로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골을 먹혀 버렸습니다.”
“오늘 스페인이 촘촘한 수비를 통해서 김가람 선수의 플레이를 막으려고 한 것 같은데요. 오히려 촘촘한 수비들 때문에 세트피스 혼전이 벌어졌고, 그 틈을 김가람 선수가 귀신같이 알아채서 골을 만듭니다.”
그렇게 골을 넣은 가람은 만세 세레머니를 이어갔고,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는 그대로 굳어져서 아무런 행동 없이 멍하니 가람을 쳐다봤다.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