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도쿄 올림픽 결승 프랑스전[5]
"김가람 선수의 주변에 또다시 4명의 선수가 몰립니다."
"그렇죠. 지금 후반 32분을 지나는 시점인데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난감한 상황입니다. 역시 김가람 선수의 역습 속도를 따라 김가람 선수의 역습에 협력할 수 있는 선수가 없어요."
후반전에 프랑스는 후반 초반에 골을 넣었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쳤고, 가람은 그런 프랑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했다. 그리고 가끔 스스로 수비를 통해 나오는 역습 찬스로 골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가람의 역습 속도를 대한민국의 다른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했고, 결국 가람은 혼자서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파아앙
"김가람 선수! 4명의 수비를 뚫고 슈팅을 때리지만 공은 위고 요리스 선수의 정면으로 날아갑니다."
"김가람 선수 지금 보니 많이 지쳤습니다. 후반전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이 뛰었거든요. 평소와 같은 날카로운 슈팅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김가람 선수가 4명의 선수에게 에워싸고 몸싸움을 하니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동점 상황에서 그나마 골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김가람 선수만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심지어 프랑스 선수들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는 것도 김가람 선수입니다."
위고 요리스는 공을 잡자마자, 하프 라인 쪽에 있는 킬리안 음바페를 보고 롱킥을 때렸고, 가람은 그걸 보는 순간 킬리안 음바페를 마크하기 위해 뛰어가야 했다.
그렇게 경기는 다시 프랑스가 공격적으로 나서고 대한민국이 막아서는 형국으로 진행되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페이스 유지해라!!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해!!"
김한범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 끝에서 가람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결국 오늘 경기는 연장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 무리하게 공격적으로 나서다가 골을 먹히는 것보다는 수비를 지켜서 연장전 그리고 행운이 따를 수 있는 승부차기로 가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 뿐 아니라 프랑스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후반 42분에 들어서자, 프랑스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별다른 파울 상황도 없었기에 3분 뒤에는 경기가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제 생각에는 김가람 선수가 공격적으로 나서서 체력을 빼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비적으로 나서서 연장전도 소화해서 승부차기로 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승부차기라면 변수가 많아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 김가람 선수를 도와줄 선수가 없으니 이 방법이 최선이 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연장전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가람은 연장전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이대로 연장전으로 간다면 결국 승부차기에서 질 수밖에 없어.'
자신이 생각할 때 프랑스에 비해 대한민국 선수들은 경험이 부족한 편이었다.
U23이라고 하지만 프랑스팀에는 프로팀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선수들도 많고 심지어 유럽대항전 같은 큰 경기를 경험한 선수들도 많았다.
심지어 킬리안 음바페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험도 있으니 경험과 멘탈이 중요한 승부차기에서 유리한 건 당연히 프랑스였다.
그래서 가람은 마지막 한방을 위해서 체력을 비축했다.
그대 앙투안 그리즈만의 슈팅을 잡은 구성운이 패스를 하기 위해서 주변을 살폈고, 가람은 손을 번쩍 들고 하프 라인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뻐어엉!
구성운은 바로 가람의 앞 공간을 향해 공을 찼고, 가람은 공의 낙하지점을 포착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람이 연장전을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연장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던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에르베 르나르 감독이었다.
가람이 후반 종료 직전에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 에르베 르라르 감독은 이미 수비 라인을 뒤쪽으로 빼서 역습에 대비하도록 선수들에게 말해둔 상태였다.
타타타탓!!
가람은 후반전에 아껴두었던 체력을 모두 긁어모아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렸고,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파엘 바란과 다요 우파메카노의 인근까지 순식간에 뛰어갔다.
"김가람 선수!! 재빠른 움직임으로 역습을 가지고 갑니다."
가람은 낙하지점에 자리를 잡았고, 라파엘 바란과 다요 우파메카노도 같이 자리를 잡았다.
'높다.'
구성운이 찬 공은 생각보다 높게 형성되었고, 가람은 라파엘 바란과 다요 우파메카노와 몸싸움을 하며 점프를 뛸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낙하지점을 포착해 한 자리에서 공중볼을 차지하려고 경쟁할 때 키, 몸싸움, 위치선정 등 능력이 모두 중요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점프력이었다.
그리고 가람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공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가람은 다요 우파메카노가 자신보다 먼저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공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옆에 있는 라파엘 바란은 떨어지기는커녕 점점 공에 향해 자신보다 더 높게 뛰어올랐다.
결국
토오옹!!
"라파엘 바란 선수가 공을 따냅니다. 그리고 이 공을..."
배선재가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느새 내려온 킬리안 음바페는 공을 잡고 드리블해 한국의 진형으로 달려들었다.
"킬리안 음바페 선수가 후방 지역까지 내려와 공을 잡아냅니다."
킬리안 음바페는 지난번에 에르베 르나르 감독이 프랑스 선수들을 모아두고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 자신을 따로 불러 이야기 했던 것이 떠올랐다.
'후반 종료 직전에 너는 가람의 곁을 따라다녀라. 그럼 분명 찬스가 생길 거다. 그리고 그걸 골로 연결하는 거다.'
감독의 말이기 때문에 후반 종료 직전에 가람이 움직일 때마다 뒤를 따라가기는 했지만, 솔직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에르베 르나르 감독의 말이 예언처럼 딱 들어맞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자신이 이걸 골로 만들는 것이었다.
그때
타타타탓!!
자신을 추격하는 발자국의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이번 경기 내내 들어왔던 저 소리에 킬리안 음바페는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발자국에서 멀어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더 빠르게 달려 골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고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심하게 들려왔던 가람의 발자국 소리도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아주 가끔 이런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몸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누구가 와도 자신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킬리안 음바페는 순식간에 패널티 에어리어 인근에 도착했고, 다소 먼 거리에서 바로 슈팅 자세를 잡았다.
뻐어엉!!
가람은 이 모든 걸 두 걸음 뒤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킬리안 음바페가 공을 잡는 순간 가람은 킬리안 음바페의 역습을 막기 위해 다시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미 한번 전력을 다해 달렸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지금 킬리안 음바페를 막지 않는다면 골을 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킬리안 음바페를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킬리안 음바페의 속도는 빨라졌고, 자신과의 거리를 벌린 후 오늘 경기 그 어느 때보다 먼 거리에서 슈팅을 때렸다.
보통 선수라면 속도를 이기지 못해 공에 정확히 맞추지 못하겠지만, 킬리안 음바페의 슈팅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속도를 정확하게 조절하여 정확하게 찬 공이었다. 공은 다소 먼 거리였지만, 대포를 쏜 것처럼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고, 너무나 빠른 슈팅에 구성운 골키퍼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촤르르르~~
"골입니다. 후반 45분에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 선수가 또 다시 골을 넣었습니다."
"아.. 이건 아쉽네요. 김가람 선수가 후반 막판에 골을 노리려고 했는데요. 역으로 당했습니다. 구성운 골키퍼의 골킥이 좀 더 낮게 형성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김가람 선수의 헤딩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거든요. 아쉽습니다."
킬리안 음바페는 골을 넣은 순간 환호하며 좋아했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팔짱 세레머니도 잊은 채 좋아했다. 그 후 코너킥 에어리어가 아니라 벤치로 뛰어가 에르베 르나르 감독에게 안겼고, 모든 프랑스 선수들이 환호하며 뒤엉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가람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구성운의 골킥이 좀 더 낮았다면, 헤딩 능력을 더 키웠더라면, 수많은 가정들이 가람의 머리 속을 뒤집었지만, 결과는 이미 프랑스의 골이라는 것이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대한민국의 공으로 시작되었지만, 우세훈이 가람에게 공을 건네고, 가람이 드리블을 하기 위해서 공을 차는 순간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삐이익 삑!
"도쿄 올림픽 결승전 결과는 3대 2,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셨나요?"
"아쉽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이 이번 대회에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많이 기대를 했지만, 대한민국을 상대로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한 프랑스에게 결국 패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도 충분히 좋은 결과이고, 아직 대한민국 선수들은 젊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중계진은 대한민국이 잘 싸웠다는 점과 아쉬운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라운드에 있는 가람은 경기에 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킬리안 음바페가 다가와 유니폼을 벗고 교환하자는 듯 내밀었는데, 가람은 속이 뒤집혔지만, 결과에 승복하며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서 킬리안 음바페에게 건넸다. 가람의 유니폼을 받은 킬리안 음바페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좋은 경기였어."
"그래."
"다음 경기를 기대하고 있을게."
그렇게 킬리안 음바페가 뒤돌아 가려고 하자, 가람이 으르렁거리듯 입을 열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이길 거다."
"그것도 기대할게."
킬리안 음바페가 떠나갔고, 가람은 쓰러져 있는 동료들에게 다가가서 위로해주고 일으켜 세워줬다.
그렇게 가람은 베테랑 선수처럼 다른 이들을 독려했고, 이강운은 경기가 끝나자 펑펑 울고 있었다.
"흐윽 흐으윽.."
"울지 마라. 이미 졌어."
"으으윽.. 다음.. 다음에는 너만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나도 도울 거라고!! 흐으윽.. 흐흐흑.."
이강운은 평소 가람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형님이라고 자칭하면서 떼를 썼지만, 오늘 경기를 통해 확실히 레벨 차이를 절감했다.
특히 자신이 가람이 돕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 이강운의 모습에 가람은 기특하다는 듯 그의 머리를 강하게 쓰다듬었다.
그렇게 가람과 선수들은 자신들을 응원해준 붉은 악마 진영을 향해 걸어가 인사를 하고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걸었다. 그리고 가람은 개인 시상으로 득점왕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
그 후 금메달 시상이 이어지고, 가람은 씁쓸한 마음으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김한범 감독은 뭐라고 격려를 했지만, 가람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가람은 그냥 자기의 라커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모든 선수들이 씻은 후 마지막으로 남아 샤워실에서 혼자 씻는 순간, 분함과 함께 이기고 싶었다는 마음이 들며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