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하이 리스크[2]
박지석 감독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어두운 얼굴로 강이찬이 들어오자, 박지석 감독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팀닥터가 굳은 표정으로 차트를 들고 들어오는 거야. 이쉬 레만씨가 팀닥터에서 주치의로 빠지면서 이제 그런 모습을 안 보겠다 했더니 이제 네가 그렇게 나타나는 구나."
"그게 우리 일이니까 그래요."
"그래. 무슨 일이야? 네 얼굴이 굳을 정도로 보면 훈련 도중에 다친 친구라도 생긴 거야?"
"아니요.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운이 좋은 건지 이번에 영입된 친구들은 몸 컨디션이 좋고, 안정한 코치님이 들어오면서 선수들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훈련이 되고 있어요."
"정한 선배가 그런 건 귀신같이 알지. 누가 무리하는지 부상을 숨기는지 말이야. 대표팀에서 생활할 때도 그랬으니.. 그런데 그럼 오늘 온 이유가 설마.."
"설마가 맞아요. 김가람 선수 때문입니다."
강이찬의 말에 박지석의 미간을 찌푸려질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에 챔피언쉽에서 우승할 때도, FA컵에서 우승할 때도 어린 나이지만 팀의 주축이라고 볼 수 있는 가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부상은 단순히 선수 하나가 빠지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지?"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마사지를 했는데 친선 대회 때보다 몸이 안 좋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운동 능력 검사를 해봤는데.. 대부분 능력들이 떨어진 상황이에요."
"그건 시차 적응이나 피로도 때문에 그럴 수도 있잖아."
"그걸 상정하고 나온 차트 기록이에요. 한 번 보세요."
박지석은 강이찬이 건넨 차트를 보고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운동 능력이 떨어질 수 있지? 은퇴를 한 선수도 아니고 계속 운동을 해왔는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저도 처음에는 의아해서 여러가지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김가람 선수는 지난 챔피언쉽 시즌 시작으로 올림픽까지 쉬지 않고 경기를 했어요. 그래서 몸이 망가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수치는 말이 안 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서 지금의 수치가 가람 선수 또래의 프리미어 리그 유망주의 평균 능력 정도 되고, 오히려 이 수치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보여주었던 운동능력은 솔직히 말이 안 될 정도였죠. 그래서 제가 혹시 마약류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은 거고요."
"그런 종류의 것에 손댈 선수가 아니야. 그건 내 이름 석자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알겠어요. 우선 저는 선더랜드의 수석 팀닥터로서 김가람 선수에게 두 달에서 세 달 정도의 휴식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렇습니다. 이 정도 회복기를 가지고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저도 미지수이지만, 제가 이전에 느꼈던 근육의 잠재력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분명 근육들이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고 회복할 겁니다."
"너무 어려운 문제야. 가람이가 우리 팀에서 어떤 존재로 있는지 그리고 서포터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여기 부임하는 조건 중 하나가 선더랜드 축구를 보지 않는다는 거였죠."
강이찬의 확고한 말에 박지석은 그가 겪은 일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고 있지. 괜히 너한테 압박을 하려는 건 아니야. 우선 이 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가람이 본인과 구단주님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만약 경기를 뛰겠다고 한다면 출전 시간은 경기 전에 제가 몸상태를 확인해보고 출전 시간을 배정하겠지만 45분은 넘지 않을 겁니다."
"그래. 알겠어. 고맙다. 그래도 출전 시간을 고려해줘서."
"솔직히 말하면 지금 몸상태로 출전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경기력은 엉망이겠죠. 그러다가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되면 회복은 물 건너가게 되니, 휴식을 권하는 겁니다."
"알았어."
그렇게 강이찬이 나간 후 박지석은 그날 오후에 김하늘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가람은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 1군 훈련장을 향해 뛰어가려고 준비를 했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가람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하늘이형?"
"오늘도 조깅 하는 거야? 감독이 쉬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냥 쉬면 몸이 녹슬어서요.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어요?"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아서 너랑 조깅이나 할까 해서 말이야."
"잘 되었네요. 지금 만재 선배, 윤성 선배 둘 다 시차 적응 중이라 훈련 파트너 없어서 심심했는데.."
"워워~ 훈련 파트너라는 말은 삼가해줘. 네가 얼마나 무식하게 훈련하는 지는 알고 있으니까."
"하하하. 그래요."
둘은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천천히 뛰며 1군 훈련장으로 향했고, 가람은 생각보다 잘 쫓아오는 하늘을 보며 놀랬다.
"형 생각보다 잘 뛰시네요."
"예전에 내가 선수 생활 했었거든. 그 이야기는 안 해줬나?"
"네. 들은 기억은 없는데요."
"뭐. 그건 재미없는 이야기니까. 이번에 영입된 선수들하고는 인사 나눴어?"
"어제 훈련을 할 때 생각보다 오래 있지는 못해서 다 나누지는 못했어요. 해리 네쳐하고 닐 이안은 봤고요. 근데 해리 네쳐는 온다고 이야기 들었지만 닐 이안은 정말 의외 였어요."
"지난 친선전에서 너를 그렇게 묶어두는 수비력과 투지라면 충분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 선수 말고도 영입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그래. 임대로는 양쪽 윙어에서 유럽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셀로나의 안수 파티, 유벤투스의 데얀 클루셉스키가 있어."
"그런 선수가 선더랜드에 임대로 오니 놀랍니다."
그 말에 김하늘이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친구들은 너때문에 온 거야."
"저 때문이에요?"
"그래. 바르셀로나하고 유벤투스에서 너를 영입하고 싶다고 했거든. 바르셀로나에서 걸었던 영입 조건은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지. 내가 만약 구단주가 아니라 에이전트였다면 무조건 승낙할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어."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람은 대충 저들이 임대해온 배경에 대해 눈치를 챘지만, 모르는 척하며 김하늘에게 물어봤다.
"그거랑 저 친구들이 임대해온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첫째, 우리 구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네가 다른 팀으로 가려고 할 때 좋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 구단이 만약 강등되고, 저 친구들과 네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면 네가 그들을 통해 각 구단의 좋은 정보를 듣게 되고 흔들릴 거라는 이야기지."
"뭐.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군요. 저는 강등된다고 해도 선더랜드를 떠날 생각도 않고요. 그리고 선더랜드는 절대 강등당할 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니 든든하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1군 훈련장에 도착한 가람과 김하늘은 쿨다운을 위해 천천히 훈련장을 걷기 시작했다.
"나도 이번 시즌에 승격을 하면서 절대 강등은 생각하고 있지 않아. 이번에 리산드로 마르티네스도 데리고 오면서 수비진도 보강했고, 그 선수랑 나중에 한번 몸싸움해봐. 장난 아닐 거다. 키는 작지만 수비 조율 능력과 투지는 장난 아니거든. 장기적으로 글랜 로번스의 자리를 메울 거야."
"그렇군요. 기대가 되네요."
"그리고 마리오 만주키치 선수를 영입했다."
"네에? 마리오 만주키치 선수요?"
"그래 네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올리비에 지루 선수처럼 몸관리를 열심히 하는 선수라 그의 경험과 능력은 우리팀에 큰 도움이 될 거야. 특히 수비가담 능력과 원톱부터 윙어까지 모든 포지션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작용하겠지. 장기적으로 아마 올리비에 지루 선수와 번갈아가면서 출전을 하겠지만, 이 선수를 영입한 건 너를 서포트 하기 위해서다."
김하늘의 말에 가람은 자신이 팀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기대를 받는지 실감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선수들은 가람이 수비에 덜 신경 쓸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특히 헤리 네쳐의 능력은 파울유도 혹은 패스 실력으로 가람을 도울 것이고, 닐 이안은 터프한 수비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것이었다.
가람이 만약 원래 몸상태였다면 좋아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떨어진 상태니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아무런 대꾸 없이 걸음을 재촉하려고 했다.
그때
"그래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네에?"
"팀닥터에게 들었어.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말이야."
가람은 어제 굳어진 표정으로 자신을 마사지하던 강이찬이 운동 능력 검사를 통해 그가 결국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눈치를 챘다는 걸 알았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보고가 될 줄은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고 가람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괜찮아요. 천천히 훈련을 하면서 감각을 이끌어내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두 달에서 세 달, 팀닥터는 너에게 휴식 기간을 부여하라고 권했어."
꼭 상태창의 패널티를 알고 있는 듯한 강이찬의 놀라운 진단에 가람은 순간 발이 멈췄다. 그리고 김하늘은 가람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좀 쉬는 시간을 갖는 거야.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해."
만약 이렇게 자신을 배려하는 에이전트와 팀이라면 보통의 유망주라면 그 정성에 감동해 그 제안을 받아드릴 테지만, 가람은 강승연의 삶에서 부상도 당해보고 부상에 의한 슬럼프도 당해봐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형. 저를 믿으세요?"
뜬금없는 대답에 김하늘은 순간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휴식을 취한다면 새로운 팀동료들과 팀워크를 만들 수도 없고, 경기 감각도 떨어질 거예요."
"그래도 팀닥터와 우리 입장에서는 너를 선발 출전 시켜서 풀타임으로 뛰게 할 수는 없어. 그리고 네가 말했듯이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할 거고 그럼 팬들이나 언론에게 비난을 들을 거다."
"그래서 제 멘탈까지 흔들리는 걸 방지하려고 경기 출장을 제한하시려는 거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적은 시간이라도 출장 시켜주세요. 훈련은 계속 하겠습니다."
가람의 말에 하늘은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네가 의지를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도 바로 승낙은 할 수 없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어. 네 의견을 감독님과 대화를 나눠보도록 할게. 하지만 만약 훈련이나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하면 그때는 무조건 휴식 기간이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하늘은 가람과 함께 운동을 마쳤고, 가람은 혼자서 상태창이 부여한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그렇게 훈련을 마친 후 훈련 장비를 정리하려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니 저 사람이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