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원치 않은 배려[2]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한 가람은 기성룡의 안내로 2층에 도착했고, 2층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안내 직원을 볼 수 있었다.
"어라?"
가람은 순간 안내 직원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어, 의아한 표졍으로 안내 직원을 유심히 봤다.
하지만 안내 직원은 가람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시선을 주지 않고, 기성룡과 가람을 데리고 미리 기다리고 있는 손님의 방으로 안내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안내 직원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람은 그렇게 안내 받는 대로 방으로 들어가고 이미 방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 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얼굴들은 가람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 가람군."
"네.. 안녕하세요."
생각지 않은 두 사람의 등장에 가람은 기성룡을 봤고, 기성룡은 살며시 웃으며 자리에 앉도록 유도했다.
자신을 가람군이라고 웃으면서 반겨주는 사람은 기성룡의 아내 한해진씨이었다. 그녀는 스미스 패밀리 식당의 단골이기도 하면서, 가끔 캐서린에게 음식을 배우기 위해 집에 오기 때문에 가람과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한해진의 옆에서 웃고 있는 여인은 아이돌 출신의 배우인 전혜수이었다. 한국에서 아이돌 보컬 출신이라 노래도 잘하고, 글래머스한 몸매로 스포츠 의류의 광고 모델도 하고, 각종 예능에서도 나와 털털한 성격을 보여주었던 인물이었다.
근래에 아이돌의 한계를 느끼고 배우로 전향해 생각보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대세 배우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최근에는 황금 시간대 드라마에서 딴 배역은 국민 며느리감이라고 불리며 대새 여배우에서 슬슬 톱배우로 발돋음 하고 있고, 이제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게다가 종종 한국 드라마를 보는 캐서린은 이미 그녀의 팬이었다.
물론 가람은 단순히 미디어를 통해 전혜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번 시즌 들어오기 전 샤오루 뷰티의 광고 촬영할 때 그녀와 호흡을 맞춰 봤기에 그녀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가람이 기성룡의 안내로 자리에 앉자, 한해진이 입을 열었다.
"둘이 광고 촬영도 함께 했다며? 내일 혜수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가볍게 차도 마시고 식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네.."
사실 한해진은 가람의 집에 올 때마다 캐서린에게 가람이가 여자친구가 있는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 지 물어서 가람은 이미 눈치를 챈 상태이었다.
하지만 슬럼프 상태라 기분도 별로 좋지 않은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자리가 만들어질 줄은 몰라서 많이 당황했다. 가람은 기성룡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이건.. 좀.."
"여보세요?"
가람이 기성룡에게 말하는 순간 갑자기 기성룡이 울리지도 않은 핸드폰을 받는 척하며 밖으로 나갔고, 그걸 본 한해진은 둘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괜히 여기 있으면 될 일도 안 되지. 그럼 좋은 시간 보내요."
"아? 네에?"
어설프게 퇴장한 기성룡과 대놓고 나가는 한해진을 보며 가람은 순간 당황했다.
가람이 강승연의 삶에서 많은 회귀를 하면서 연애를 안 해본 것은 아니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물론 계속되는 반복 속에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여자도 만나보고, 반대로 자신에게 헌신적인 여자도 만나보고 수많은 여인들은 만나봤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 다시 회귀하게 되기 때문에 여인을 만나 길게 연애하는 거보다는 그냥 잠깐 만나 즐기는 것이었지 진지한 관계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설마.. 이거 내가 슬럼프라고 생각해서 이런 자리를 만든 건가?'
종종 축구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축구에 몰입하던 정신을 다른 곳에 쏟게 되고 그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옆에서 정신적으로 누군가 잡아주고 대화해준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고 정신적으로 안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슬럼프가 아니라고 해도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정신적인 안정감과 책임감을 가지곤 했었다.
'뭐 하지만.. 그게 다 좋은 건 아니지.'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아내가 임신한 사이에 넘치는 에너지를 주채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고, 그 바람을 핀 상대가 언론에 돈을 받고 정보를 제공하면서 스캔들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방황하면, 마약이나 술 혹은 유흥에 빠지는 것보다는 배우자를 만나 자리를 잡는 게 더 좋았다.
그렇지만 그건 보통 선수들의 한해서 이야기였다.
가람은 다른 사람과 다르고 특수한 케이스인데 왜 이런 자리를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만들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전혜수가 입을 열었다.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요."
가람의 대답에 전혜수는 싱그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놀라셨죠?"
"아.. 솔직히 안 놀랬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바쁘실 텐데..."
"아니요. 바쁘지 않아요. 그리고 오늘 자리는 제가 해진 언니한테 부탁해서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네에?"
당차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싱긋이 웃는 전혜수를 보며 가람은 순간 당황했다.
강승연의 삶에서도 이렇게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여자는 몇 명 있었다.
첫 번째 경우는 가람의 명성을 이용해 이슈를 만들고 그걸로 마케팅을 하는 전략이었다. 이건 사랑이라기 보다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한번 더 입증 시키려고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 쓰는 방법이었다.
이때는 굳이 관계가 오래 되지 않아도, 조금 만나다가 헤어진다고 해도 여자 측에서는 스포츠 스타인 남자와의 연애설을 통해 언론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전혜수는 이미 톱 여배우로 자리 잡고 있으니 굳이 이런 방법으로 접근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경우는 성적인 접근이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는데 그래도 회귀의 삶을 통해 살다 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있는 법이었고, 그걸 경험해봤었다.
흔히 스포츠 스타들 특히 축구 선수들의 남성성이 돋보이는 허벅지에 매료되어 육체적인 관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전혜수의 팬인 어머니한테서 그녀가 모태 신앙에 성실한 천주교 신자라는 말을 들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닌가.. 겉으로 그렇지만 속은 다를 수도 있지.'
가람은 전혜수의 접근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고장이라도 난 듯 말을 못하는 가람을 보며, 전혜수는 재미 있는지 웃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솔직히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이런 자리를 왜 만들어 달라고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훗!"
전혜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더니 말했다.
"정말 순진하시네요. 아직 연애를 해본 적 없으시죠?"
강승연의 삶에서는 수없이 해봤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기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혜수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거예요."
"저를요?"
"네에. 그리고 지난번 광고 촬영 끝나고 시간 되면 제가 밥 한 끼 산다고 했잖아요."
물론 그런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인사치레 하는 걸로 알고 있었고, 그게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은 몰랐던 일이었다.
"그렇죠. 그런데 아직 식사 시간은 아니고.. 제가 지금 식단 관리를 하고 있어서.."
"네.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서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하려고요. 그리고 듣기로는 여기가 가람씨 어머니께서 하시는 식당인데요. 아까 만났을 때 식사하고 가라고 가람씨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준비하겠다고 하셨어요."
거기까지 말하는 전혜수를 보며, 가람은 그녀가 단단히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람은 지금 여자를 만날 생각은 없었고, 약간의 여지를 주기 보다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찍혀도 차라리 확실하게 정리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저는 그쪽에 관심 없습니다."
그 말에 전혜수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제가 관심이 있고 좋으면 된 거죠."
관심이 없다는 말에 대부분 여자들은 충격을 받거나 자존심 상해 표정이 굳어지기 마련인데, 전혜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가람씨는 모든 생활이 축구에 맞춰져 있다고 들었어요. 축구에 열정적인 모습이 좋아요. 저도 축구 좋아하고요."
그 순간 가람은 앗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언급했던 두 가지 케이스 외에 적극적으로 축구 선수에게 대쉬하는 또 한 가지 부류의 여성은 바로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이럴 경우 제일 까다로웠는데 축구를 하는 남성을 자신의 남편감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고 보조해주는 스타일이었다.
가람은 톱여배우인 전혜수가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커리우먼이라고 생각해 그런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했는데 지금 이렇게 나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 좋아하시는군요."
"네. 특히 해외 축구를 좋아하죠. 박지석 감독님이 선수 시절의 경기를 녹화 방송으로 다 봤고요. 가람 선수를 알기 전에는 손홍민 선수가 있는 토트넘의 광팬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가람 선수가 뛰고 있는 선더랜드의 팬이지만요."
"그렇군요."
"어제 경기에서 후반전에 나오셨는데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요? 제가 좋은 한의사를 알고 있거든요. 혹시 그거 알고 계세요? 몸 회복에는 서양 의학보다 한의학이 더 좋다는 사실이요. 저도 몰랐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전혜수는 축구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어 가려고 했고, 가람은 이대로 가면 그녀의 페이스에 말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지금 이런 페이스라면 분명 자신을 따라 나올 것 같았다.
그때
똑똑!
"주문하신 음료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문 밖에서 어디선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안내 직원이 들어왔다.
"아까 가람씨 들어온 후 10분 정도 지나면 음료 달라고 했거든요. 평소에 자기 관리 때문에 마테차 드시죠?"
"네에."
"역시 그렇군요. 그럴 줄 알고 마테차를 시켰습니다."
가람은 이미 자신의 취향까지 파악한 그녀를 보며 만만치 않은 상대가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안내 직원은 테이블에 주문한 음료를 놓았다.
가람은 안내 직원을 유심히 쳐다봤고, 순간 그녀가 누군지 눈치챘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자리를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 지 머리 속이 번뜩였다.
"그럼."
안내 직원이 나가려고 할 때 가람은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