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부상 그리고 휴식?[2]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한스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또래보다는 좀 작은 편이죠. 요한!! 아무리 네가 좋아하는 김가람 선수를 만났다고 해도 원래 하던 훈련은 마무리 해야지."
"네. 아빠."
한스의 말에 요한은 다시 훈련을 시작했고, 한스는 그걸 보며 입을 열었다.
"저의 튼튼한 몸을 닮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속상하네요."
가람은 190cm 정도 되는 거구의 한스에 비해 아들인 요한은 겨우 160cm 정도였기에 아버지인 한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괜히 지적할 필요는 없기에 가람은 화제를 돌렸다.
"축구는 키로 하는 게 아닌 걸요. 그리고 아직 15살이면 앞으로 더 클 수도 있고요."
"하하하. 그런가요? 하긴 가람 선수도 어렸을 적에는 큰 편은 아니었다고 캐서린씨에게 들었습니다. 녀석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더 열심히 훈련하고 있고요."
"제가 보니까 기본기 위주로 훈련하는 것 같은데 어린 나이에 기본기를 충실히 다져 놓으면 좋을 겁니다. 제가 스카우트는 아니지만 새벽부터 이렇게 열심히 나와서 운동한다는 선수라면 그런 근성과 노력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실함과 노력이 생각보다 중요한 재능이거든요."
"그런가요? 가람 선수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니 정말 고맙네요. 사실 저희 아이는 선더랜드 유스팀에 있어요."
"그렇군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유스팀에 있으면 잉글랜드의 부모들은 매우 좋아하고 자랑 스럽게 여기지만 한스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두웠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요즘 선더랜드 유스팀은 잉글랜드 아니 유럽의 좋은 재능을 모으고 있죠."
가람은 김하늘이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유소년 총괄인 한스와 함께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바로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프로그램처럼 선더랜드도 나중에는 유소년 선수를 키워 성장하면서 경쟁 시키고 1군에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부분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아. 그러시군요."
거기까지 말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한스를 보며 가람은 무언가 눈치챌 수 있었다.
15살에 나름 좋은 기본기와 빠른 발을 가지고 있지만, 체구가 작아 보이는 요한이라면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혹시 테스트 같은 것도 있나요?"
가람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묻자, 한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에. 2주 뒤에 있을 자체 연습 시합에서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몇 명은 방출한대요. 경쟁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약자의 입장에서는 가혹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렇군요."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지 모르는 순간이었다.
새벽부터 나와 열심히 운동하는 요한을 보며 곧 다가올 냉혹한 현실은 아쉬울 뿐이었다.
그때
삐리링
[요한이 선더랜드 유스팀 평가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도록 해라.]
[보상 : 포인트 20]
[패널티 : 부상 회복 기간 2주 증가]
'어어어어?'
생각지 않은 상태창의 등장에 가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패널티가 있는 미션에서는 거절할 수 있는 항목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 다른 곳에 버튼이 있는 건 아닐까 눈 앞에 보이는 홀로그램 상태창을 이리보고 저리봤지만, 그런 버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 상황에 가람은 지난번 가짜 연애에 미션이 갱신되는 상황도 이상하고 뜬금없이 미션을 부여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람이 갑자기 허공을 요리조리 살피자, 한스는 살짝 걱정이라도 된다는 듯 물었다.
"가람 선수!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이 있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괜찮으신다면 제가 요한을 조금 가르쳐봐도 될까요?"
"저.. 정말이요? 아니 부상 중이신데 괜찮으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사실 부상이라 휴가를 받은 상황이기도 하고요. 한스씨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게다가 제가 유스 출신 선배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요한이는 좋은 선수가 될 것 같거든요."
마지막에 살짝 거짓말을 보태기는 했지만, 한스는 그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가람을 번쩍 들어 안았고, 183cm나 되는 가람을 이렇게 어린 아이라도 된 것처럼 들렸다.
"한스씨 어지러워요."
"아! 죄송합니다."
한스는 가람을 내려놓았고, 가람은 한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한스씨. 혹시 요한의 경기를 녹화해 두신 거 있나요?"
"물론 있죠. 가져다 드릴까요?"
"네. 제가 좀 보면서 어떻게 지도할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바로 집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그렇게 가람과 한스 부자는 헤어졌고, 가람은 아침을 먹은 후 알렉스와 캐서린에게 요한을 가르치기로 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한스 녀석이 상당히 좋아하겠구나. 안 그래도 그 부자는 너의 열정적인 팬이거든."
"외할아버지는 한스씨를 아세요?"
그 말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캐서린이 대신 답했다.
"한스씨를 우리 식당에 소개해주신 분이 바로 외할아버지야. 두 분이 젊은 시절에 군대에서 같이 일했다고 하셨어."
"아. 그렇군요."
"만약 가람이 네가 지도해도 요한이 떨어지면 원망 같은 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이 외할아버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 말에 가람은 살짝 놀랐고, 캐서린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원망이라니요. 아버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한스 녀석 좀 엉뚱한 곳에 화를 푸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가람은 식사를 마쳤고, 알렉스의 차를 타고 선더랜드 1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휴가라 1군 훈련장에 갈 일이 없었지만, 1군 훈련장 뒤쪽에서 있는 유소년 훈련장에 가기 위해서 1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1군 훈련장에 도착한 가람은 익숙하게 건물을 가로질러 유소년 훈련장으로 향했고, 익숙한 방문 앞에 섰다.
유소년 총괄의 방
똑똑!
"들어와요."
노크 소리에 유소년 총괄인 한스는 대답했고, 가람은 문을 열고 목발을 짚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게 직원이나 코치가 아니라 가람이라는 걸 발견한 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람을 부축해주기 위해서 달려갔다.
"부축해줄까?"
"아니에요. 잘 사용할 수 있어요."
"여기.. 여기 앉아라."
한스는 다급히 의자를 끌고 와서 가람을 앉도록 배려했고, 가람은 한스의 배려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부상 이야기는 들었는데 어때? 괜찮은 거야?"
"뭐 덕분에 3주 동안 휴가를 받았죠."
"휴가를 받은 녀석이 왜 이곳에 온 거냐? 아니면 휴가를 받은 김에 코치 연습이라도 하려고 하는 거야?"
한스는 베테랑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구단에 나와 코치 연습이나 이론을 배우는 경우가 있어 장난으로 말을 건넸다.
그리고 가람도 그 뜻을 이해했지만, 한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 비슷한 거 할려고요."
"에에엥?! 그게 무슨 말이야? 코치라니?? 너는 아직 20년은 더 선수 생활할 수 있다고! 장난이라도 그런 말하지 말라. 아니면 정말 부상이 심한 거니?"
놀람과 함께 진심으로 자기를 걱정하는 한스를 보며 가람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진짜 코치는 아니고요. 비슷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비슷한 거라니? 도대체 그게 뭐냐? 아! 잠깐!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왔는데 차도 안 꺼내오고 무슨 정신이지?"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이야기만 잠깐 하고 갈 건데요."
"그래도 손님이 오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구단 최고의 에이스한테 차 한잔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너 마테차 마시지?"
"네. 맞아요."
그렇게 한스는 능숙한 손길로 마테차와 홍차를 준비했고, 가람의 옆에 움직일 수 있는 탁자를 놓아주어서 가람이 쉽게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자. 그럼 이야기를 해볼까? 코치 비슷한 거라는 게 무슨 말이니?"
"혹시 요한이라는 아이 아세요?"
"아. 요한이 알고 있지. 아버지 이름이 나랑 같아서 기억하고 있다."
"그럼 이번에 유소년 팀에서 자체 연습 시합이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신 거죠?"
거기까지 들은 한스의 표정은 살짝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요한의 아버지가 너희 어머니 식당에서 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설마 이번 자체 연습 시합전에 요한이를 코치해주려는 거냐?"
"네. 맞아요."
"흐음.. 너도 알다시피 나는 어린 친구들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최대한 좋은 평가를 주지만, 요한이라는 친구는 좀 힘들어."
"힘들다고요?"
"그래. 그 녀석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인데 너도 봤다면 알겠지만, 신체적인 능력이 그리 좋지 않아. 그나마 달리기나 발재간은 빠른 편이지만 말이야. 그래서 포지션 변경을 권해봤지만 그건 죽어도 싫다고 해서 말이야."
"왜 포지션 변경을 하지 않겠다는 거죠?"
"너 때문이지. 자신의 롤 모델인 가람 선수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뛰기 때문에 자신도 거기서 뛰고 싶다는 거야. 물론 그 녀석이 포지션을 바꾼다고 해도 요즘 들어온 재능들에 비해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유소년 총괄인 한스의 다소 냉혹한 평가에 가람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목적을 말했다.
"그렇군요. 혹시 요한의 훈련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녀석. 제대로 코치할 생각인 것 같구나.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 우리 구단 에이스가 코치하는 첫 번째 선수가 될 텐데 당연히 협조해야지. 대신 다른 곳에 유출하지 않아야 한다. 네 메일로 보내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내가 약간 조언을 해준다면 요한은 지금보다 10cm 이상 크고 몸에 근육이 더 붙지 않는다면 스트라이커 포지션은 포기하는 게 좋아. 아무리 네가 코치를 한다고 해도 요한의 몸을 그렇게 키울 수는 없을 테니, 설득해서 다른 포지션으로 변경하는 걸 고려해봐라. 그게 어쩌면 이번 연습 시합 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다. 그리고 포지션 변경을 하게 되면 미리 알려주고. 그래야 시합 때 엔트리를 짤 수 있으니 말이야."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1군 생활은 어때?"
요한은 가람이 1군에 올라간 후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를 물었다. 가람도 한스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를 마친 가람은 점심시간에 한스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캐서린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자신의 방에 있는 요한의 아버지인 한스가 가지고 온 외장형 하드를 볼 수 있었다.
"자. 그럼 한번 봐볼까?"
그렇게 가람은 요한의 아버지인 한스가 가지고 온 경기 영상 자료와 선더랜드의 유소년 총괄인 한스가 보내준 훈련 자료를 보았고, 표정은 점점 어두워 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