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부상 그리고 휴식?[4]
2020년 10월 2일 선더랜드 유소년 훈련장
선더랜드의 유소년 선수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하나 둘 모여서 평소 수다를 떨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속에 몸을 풀었다.
그 모습에서 오늘의 연습 시합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의 연습 시합과 다르게 선수들의 가족들도 관중석에 자리했다.
오늘 이 경기를 통해 계속 선더랜드 유소년 팀에 남을 수 있을 지를 결정하는 경기 였기에 구단에서 배려해서 가족들도 관람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을 때 박지석 감독과 김하늘 구단주가 관람석 구석에 나타났다.
가람이 빠진 후 선더랜드는 9월 26일에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마리오 만주키치의 해트트릭으로 경기를 이길 수 있었다.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문제는 10월 1일에 있었던 유로파 리그 F조 러시아 프로팀인 CSKA 모스크바와의 원정 경기였다.
10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도 안되는 추위 속에 노장인 올리비에 지루가 경기 초반에 부상으로 이탈했다. 마리오 만주키치가 투입되어 경기를 치렀지만, 경기는 종료 직전에 골을 먹혀 1 대 0으로 패배했고 마리오 만주치키치까지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덕분에 이틀 뒤에 있을 리그컵 3라운드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마땅한 스트라이커 자원이 없어 박지석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안으로 나온 것이 안수 파티를 스트라이커 자리에 올려서 쓰는 방법이지만 안수 파티는 이번 시즌에 한번도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경기를 뛴 적이 없어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박지석은 혹시 좋은 선수가 없나 생각해서 2군 선수들을 체크해 봤지만 그리 좋은 선수는 없었다.
그때
"감독님. 구단주님. 오셨어요?"
박지석과 김하늘을 향해 가람이 다가왔다.
"너 이녀석! 쉬라고 했는데 왜 유소년 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야? 이건 구단주가 아니라 에이전트로서 하는 말이야."
"아는 사람의 부탁을 좀 받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아는 사람?"
"네. 어머니 식당 2층 가드를 하시는 한스씨 알고 계시죠?"
"아. 유소년 총괄 한스씨랑 이름이 같아서 기억하고 있지. 그런데 그게 왜?"
"그 분 아들이 아주 물건이에요. 그래서 감독님하고 구단주님을 부른 거고요."
"물건이라고? 이름이 뭔데?"
"요한이에요."
김하늘은 바로 자신의 태블릿PC를 꺼내 자료를 검색하더니 입을 열었다.
"요한? 필 요한인가?"
"네. 맞아요."
김하늘은 가람의 확신이 찬 눈빛에 잠시 요한의 자료를 살펴봤다. 그리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박지석에게 태블릿 PC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걸 다 읽어본 박지석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자료만 봤을 때 발이 좀 빠른 것 이외에는 큰 장점은 없어 보이는데..."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그게..."
삐이익!
가람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연습 경기가 시작하는 휘슬이 울렸고, 요한은 가람과 똑같은 등번호 32번을 달고 경기장에 선발 출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가람은 입을 씨익 열면서 말했다.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경기는 시작되었고, 요한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박지석은 살짝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가 16살 유소년 연습 시합이라고 하지만, 나이에 비해 상당히 작군. 저렇게 몸집이 작아서야 수비수들에게 치이기만 하겠어."
박지석의 정확한 지적에 가람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뭐 몸싸움을 하게 되면 그렇게 되겠죠."
16세라서 유소년이라고 하지만, 유럽에 있는 재능들을 영입한 선더랜드의 유소년 수비수들의 신체 능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주력은 물론이고 피지컬도 2군 무대에서 뛰어도 될 정도로 신체 성장이 거의 완성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경기를 지켜보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가람 일행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오늘 경기에 요한 선수의 상대팀에 있는 중앙 수비수 킨 젠킨스 선수는 아직 16살밖에 안되었지만, 신체적인 능력이나 수비 지능은 상당히 뛰어난 선수입니다. 과연 그를 상대로 요한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을 지 기대되네요."
그 말에 가람 일행이 뒤돌아봤고, 그곳에는 푸근한 인상의 유소년 총괄인 한스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하늘이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다.
"유소년 총괄님. 여기는 무슨일로 오셨어요?"
"아니 유소년 연습 시합에 감독님이랑, 구단주님, 그리고 팀의 에이스까지 본다고 관계자들이 난리가 났는데 제가 안 올 수가 있나요? 미리 이야기라도 해주시기 그랬어요. 구단주님."
"아. 죄송합니다. 유소년 총괄님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네요. 사실 저희도 가람이 한테 불려온 입장이라.."
"하하하. 그런가요? 사실 제 입장으로 말씀드리면 요한 선수는 나이 또래에 비해 기본기는 튼튼한 편에 왼발을 능숙하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그 선수의 제일 큰 장점은 속도라고 할 수 있지만, 키가 160cm 또래에 비해 많이 작은 편입니다. 몸싸움도 약한 편이고요. 솔직히 말하면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방출이 될 수도 있는 자원입니다."
유소년 총괄 한스의 말에 박지석과 김하늘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금 팀의 에이스인 가람을 1군으로 추천한 인물이고 그의 안목은 김하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한 가운데 경기는 시작되었고, 요한은 열심히 전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번 경기에 선수들이 자신이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같은 팀 선수들은 요한에게 패스를 주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결국 요한은 원래 포지션이 아니라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공을 받은 요한은 자신이 직접 공을 끌고 나갔다.
타타타탓!
요한이 공을 잡고 속도를 높이자, 순식간에 상대팀 수비는 와해가 되었고, 빠른 발은 역시나 그 나이 또래에서도 돋보이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쿠우웅!!
요한이 패널티 에어리어로 접근하기도 전에 아까 유소년 총괄인 한스가 지목했던 킨 젠킨스가 좋은 자리를 선점해 어깨를 넣고 정당한 몸싸움으로 공을 따낼 수 있었다.
"제길.."
요한은 아쉽다는 듯 잔디를 내리쳤고, 그때
"요한!! 연습한 대로 해!!"
가람의 외침이 들려왔고, 요한은 가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이 크게 소리치자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람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연습경기에 구단주, 감독, 유소년 총괄 게다가 팀의 에이스인 가람까지 이 경기를 지켜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주목에 가람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선수들의 가족들은 그 모습에 환호성을 보냈다.
그렇게 약간의 환호성에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은 상당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이 팀의 감독과 구단주 그리고 유소년 총괄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유소년 총괄의 추천으로 가람이 1군 무대에 올라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는 건 여기 있는 모든 선수가 아는 일이기에 더욱 동기 부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그런 가람의 응원을 받는 요한에게 부러움과 함께 질투심이 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가람의 응원이 요한에게 악재로 작용했고, 그나마 오던 패스도 전혀 오지 않으며 전반전 25분은 순식간에 끝나버리게 되었다.
그 사이에 코너킥 찬스에서 킨 젠킨스가 골을 넣어 요한의 팀이 0대 1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프 타임 시간에 요한의 팀 감독님은 선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의 연습 시합 결과에 따라 방출이 되는 선수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거다. 모두 힘을 내고, 졌다고 해서 모두가 방출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키려는 감독의 모습을 본 요한이 손을 들고 말했다.
"감독님! 이번 경기는 제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오늘 경기 전까지 요한이 받아온 평가를 알고 있는 선수들과 감독은 순간 움찔했고, 그가 이어서 어떤 말을 할 지 주목했다.
"오늘 제가 경기에서 뛰면서 킨 젠킨스에게 막히고 그게 역습으로 이어진다면 팀에 피해가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회를 주세요. 감독님. 아니 기회를 줘! 애들아. 꼭 기회에 보답할게!"
요한의 말에 선수들은 살짝 반성했다. 아까 가람의 응원을 받은 모습을 보며 시기 어린 질투심과 더불어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개인 플레이를 많이 한 게 사실이었다.
그 말에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후반전에는 요한에게 찬스가 나면 패스를 넣도록 하자.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지. 그래야 나중에 요한도 너희들도 후회하지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난 후 요한은 미드필더 선수들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었고, 그 말을 들은 미드필더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래 하프 타임 때 요한의 팀에 가서 다른 선수들에게 요한한테 기회를 더 주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가람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그냥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요한에게 가서 입을 열었다.
"요한! 설마 저 킨 젠킨스라는 녀석에게 쫄아버린 거 아니지?"
"물론이에요. 스승님."
"다른 건 필요 없어. 훈련대로 해."
"알겠습니다."
삐이익!
다시 휘슬 소리에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유소년 총괄인 한스는 킨 젠킨스의 장점을 설명하며 1군 콜업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석과 김하늘에게 했다.
이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지석이 입을 열었다.
"지금 수비 라인에는 권윤성, 김만재,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브라이언 오비에도, 백업에는 파카오 토모리, 제이커 쇼더, 누누멘데스까지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 정도 실력이면 동기 부여를 위해 1군 훈련에 참여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렇죠. 역시 박지석 감독님 안목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후반전도 계속 지켜볼 생각이신가요? 바쁘실 텐데요."
"여기까지 왔는데 25분 더 지켜보는 건 문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저도 요한 선수가 잘하면 좋겠지만, 전반전에 하는 거 봐서는 귀하신 분들 시간만 뺏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때 가람이 다가와 둘의 대화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후반전은 달라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호언장담하는 가람을 보며 한스는 그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코치하는 선수가 가능성이 있는데 그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 그건 자신이 이 유소년 총괄 자리에 앉아서 자주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가람이 처음으로 코치를 해서 느끼는 감정이기에 한스는 더 안쓰러워 가람을 보며 한 마디를 하려고 했다.
그때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요한이 다른 선수들과 얼싸안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한 지 3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요한은 골을 넣었고, 그 장면을 보지 못한 한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람을 봤다.
그리고 가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