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맨시티전[3]
“알고 있습니다.”
라커룸에서 나와 그라운드로 들어간 맨시티의 골키퍼 에드르송 모라에스는 후반전 투입하기 직전까지 맨시티의 감독인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전반과 달리 후반전에 많은 슈팅이 나올 거라는 말을 들었고 세세한 지시도 받았는데 살짝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생각할 때 김가람에게 슈팅 찬스를 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아예 김가람에게 슈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베스트였다.
그래서 후멩 다이스와 네이선 아케를 불러 말했다.
“감독님이 지시하신 거 기억하고 있지?”
이미 에데르송 모라에스만큼이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후반전에 가람의 대응책에 대해 들었던 후멩 디아스와 네이선 아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이다.”
“물론!”
“오케이! 너희들만 믿는다. 1대 0 리드를 유지해서 감독님한테 인정받자고!”
그렇게 셋은 의기투합을 한 후 각자의 자리로 들어가 경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주심의 휘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선더랜드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자신의 감독이 무엇을 우려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뻐어엉!!!
하프 라인 인근에서 누군가 슈팅을 때렸고, 그 공은 상당히 높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데르송 모리야스는 그 공을 보며 그냥 호기롭게 찬 공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있는 낮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높은 공을 보며 막아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자신이 골대를 두고 너무 앞으로 나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공의 낙하 지점을 생각하며 천천히 골대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그대로 공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터억!
순간 뒷걸음질을 치다가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다리에 걸린 에드르송 모라에스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하늘 높이 올라간 공은 골라인 아웃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먹이감을 노리는 매처럼 골대를 향해 급하게 꺾여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그 순간 에데르송 모라에스의 머릿속에는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가람의 수많은 골 모음 장면 중 하프 라인 인근에서 차서 말도 안되는 높이에서 꺾여 들어가는 중거리 슈팅 아니 장거리 슈팅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면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골키퍼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자신이 그 하이라이트에 나오는 골키퍼가 된 것이었다.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넘어지는 순간 바로 뒤돌아 일어섰다. 골을 먹히면 안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등 뒤돌아 골대를 향해 뛰었고, 아까 날아오는 공의 방향을 예측해 그곳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렇게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보지도 않고 등 뒤에서 날아오는 공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이었다. 그 모습은 꼭 버섯을 좋아하고 붉은 옷을 입은 수염 난 배관공 게임 캐릭터의 점프 동작과 같았다.
그리고
퍼어엉!!
그동안 신께 기도 드린 게 효과가 있었는지 손에서 느껴지는 충격음에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안심했고, 잠시 후 자신의 손을 맞고 골대 위로 넘어가는 공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장면인가요? 김가람 선수가 하프 라인 인근에서 차는 말도 안 되는 중장거리 슈팅도 놀랍지만,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게임 속 캐릭터와 같은 포즈로 골을 막아내는 에데르송 모라에스 선수도 놀랍습니다.”
“와.. 이런 걸 보고 잘 차고 잘 막았다고 해야겠죠! 솔직히 에데르송 모라에스 선수에게는 불운과 함께 행운이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간 떨어지게 본 과르디올라 감독의 고함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개리 리네커의 말이 나오는 동시에 중계 화면에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양손을 입에 모아 큰 소리로 에데르송 모라에스 골키퍼에게 정신을 집중하라고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는 다시 선더랜드의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선더랜드는 이전과 다르게 수비수 권윤성과 브라이언 오비에도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수들이 코너킥 세트피스에 투입되었다.
“전반전과 다르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선더랜드입니다.”
“방금 전에 김가람 선수의 중장거리 슈팅으로 골을 넣을 수 있었지만 아쉬운 부분이었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골을 만들 수 있겠죠. 맨시티 선수들은 전반전을 생각할게 아니라 이제 후반전에 자신들이 수비할 차례라는 걸 알아야 할 겁니다.”
가람은 코너킥 에어리어에 도착해 오른손을 들고 주먹을 잠깐 쥐었다가 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더랜드의 선수들이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골키퍼 주변을 에워싸는 듯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뻐어엉!
가람은 코너킥을 찼다.
공은 골키퍼와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았고,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움직임을 수비수로 제한 시키겠다는 생각인가? 흥!’
가끔 나오는 코너킥 전술 중에 순간적으로 공격수들이 골키퍼를 에워싸서 골키퍼의 움직임을 제한 시키고 그 안에서 키가 제일 크거나 제공권이 뛰어난 선수에게 공을 올려 골을 노리는 전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선더랜드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그 작전을 예측했고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예측하고 그 위치에 있는 올리비에 지루가 눈에 걸렸다.
‘이거다!!’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확신이 가득 차서 올리비에 지루가 있는 방향으로 점프를 뛰었다. 그리고 공은 자신의 예측대로 올리비에 지루에게 날아왔다.
날아오는 공을 향해 올리비에 지루는 목을 길게 빼고,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손을 최대한 뻗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손을 뻗은 에데르송 모라에스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에데르송 모라에스가 공에 닿을 것 같은 순간
휘리릭!!
공이 말도 안되게 에데르송 모라에스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급격하게 꺾였다. 눈 앞에서 보이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경악했고, 소름이 돋았다.
공의 움직임에 따라 에데르송 모라에스는 눈이 움직였고, 공은 급격히 꺾이며 그대로 먼 쪽 골대를 맞혔다.
터어엉~
또르르르~~
공은 먼 쪽 골대를 맞추고 골 라인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본 맨시티의 선수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지어 같은 팀인 선더랜드의 선수들도 굳어진 걸 보면, 이건 원래 같이 준비했던 세트피스 상황이 아닌 듯 했다.
“고오오오올~~ 골로로로로~ 후반 4분에 말도 안되는 골을 넣는 김가람 선수입니다.”
“와.. 이건..”
개리 리네커는 순간 말을 잊었고, 가람은 골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바로 뒤돌아 선더랜드의 서포터즈를 보며 만세 세레머니를 했다. 잠시 후 선더랜드의 선수들도 가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어 함께 골을 축하했다.
그리고 이어진 리플레이 화면을 보면서 말을 하지 못했던 개리 리네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와 지금.. 이 골은 다시 보니까 같은 팀인 선더랜드 선수들도 속인 것 같습니다. 김가람 선수의 신호에 맞춰서 에데르송 모라에스 선수를 에워싸듯 달려들었고, 실제로 공도 거기로 갔거든요. 그런데 공이 말도 안되게 방향이 바뀌면서 먼 쪽 골대를 때리고 들어갔습니다. 이건 김가람 선수가 노린 거라고 봐야 하거든요. 놀랍습니다. 이게 노린다고 들어가는 위치가 아니거든요.”
“그렇습니다. 김가람 선수의 놀라운 골입니다.”
“이런 골이 들어가면 골을 먹힌 선수들은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맨시티로서는 좋지 않은 후반전 시작입니다.”
그렇게 경기는 다시 맨시티의 공으로 시작되었다. 공을 잡은 세르히오 아게로는 그대로 공격적으로 앞을 나섰고, 그 앞에 가람이 막아섰다.
세르히오 아게로는 속도를 살려 드리블을 치고 나갔지만, 가람도 세르히오 아게로의 속도에 맞춰 수비했다.
“김가람 선수!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를 마크합니다.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는 쉽게 김가람 선수의 마크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단순히 골을 넣는 것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죠. 오른쪽 윙백, 수비형 미드필더,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입니다. 실제로 여기서 키만 좀 더 크면 센터백으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거든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그리고 제 느낌이지만 시즌 초반보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거든요.”
“젠장. 끈질기다고!”
세르히오 아게로는 가람의 끈질긴 수비에 자신도 모르게 스페인어로 말을 내뱉었고, 그 모습에 가람은 웃으며 능숙한 스페인어로 답했다.
“내가 좀 끈질기지.”
“으응?”
세르히오 아게로는 생각지 않은 가람의 뛰어난 스페인어에 화들짝 놀랐고, 그 놀람에 발에 약간 힘이 들어가 공이 살짝 앞으로 튀었다.
보통 공이 이 정도 튀는 건 바로 다음 동작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문제는 눈 앞에 있는 선수가 그 약간의 실수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투우욱!
가람은 자신의 긴 다리로 정확하게 세르히오 아게로가 약간 길게 찬 공을 쳐냈고, 공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맥스 파워가 잡았다.
“아!! 여기서 김가람 선수의 수비가 성공합니다.”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가 방금 전 드리블은 살짝 길었는데요. 김가람 선수가 그 실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람은 세르히오 아게로 수비에 성공하자마자, 바로 공격으로 나섰고, 그 모습을 본 세르히오 아게로도 가람을 막기 위해 뒤쫓았다.
그리고 그 순간 미리 짠 각본처럼 맥스 파워는 가람의 앞공간으로 공간 패스를 뿌렸다.
“앗!! 선더랜드 여기서 바로 역습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빨리 공격으로 전환하는 건 놀랍습니다. 지금 김가람 선수 말고는 공격적으로 나서는 선수가 없거든요.”
맨시티는 전반과 다르게 역습에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 맥스 파워가 다소 길게 뿌린 공간 패스에 향해 페르난지뉴가 달려들었다.
타타타탓!!
토오옹!!
“김가람 선수가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의 마크를 쉽게 따돌리고, 페르난지뉴 선수가 공을 차지하기 전에 먼저 공을 자신의 앞 공간으로 축 차냅니다.”
가람이 공을 차낸 걸 보고 페르난지뉴도 뒤돌아 공을 향해 뛰어가야 했다. 가람도 다시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하프 라인을 벗어난 가람을 보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크게 소리쳤다.
“파울로 끊어!! 막아!!”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의 목소리는 맨시티 선수들에게 닿지 않았고, 가람은 긴 다리와 빠른 속도로 어느새 패널티 에어리어로 다가갔다.
맨시티의 수비진들은 가람의 슈팅 범위가 하프 라인부터 패널티 에어리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방금 전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차서 골이 될 뻔했던 중장거리 슈팅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람이 패널티 에어리어 근처로 다가오자, 수비 라인을 올려 가람을 마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가람은 그런 맨시티 선수들이 에워싸는 수비를 즐기는 듯 피하지 않고, 오히려 파고들었다. 후벵 디아스와 네이선 아케는 가람이 패널티 에어리어에 도달하기 직전에 막아설 수 있었다.
보통의 선수라면 자신보다 머리 한 개정도 키 큰 중앙 수비수들이 자신을 에워싼다면 움찔거리거나 드리블의 방향을 바꾸기 마련인데 가람은 그대로 돌파하려는 듯 달려들었다.
“김가람 선수!! 맨씨티의 중앙 수비 듀오가 지키는 곳으로 달려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