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맨시티전[6]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후반 43분
케빈 데브라이너의 동점골이 터지고 모두가 좋아하고 있을 때 홀로 표정이 좋지 않은 가브리엘 제수스를 본 세르히오 아게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동점골이라고! 좋아해야지."
"동점골이 뭐예요. 우리는 맨시티라고요. 당연히 이겨야 하고, 홈경기에서 홈팬들이 보고 있는 데 겨우 무승부라니? 저 자신이 너무 무력하고 싫어요. 지난번 올림픽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 말과 함께 가브리엘 제수스는 가람을 보았고, 그 시선에는 시기와 질투가 담겨 있었고, 마지막에는 체념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오늘 경기 그나마 따라잡기는 했지만, 이런 차이를 벌린 건 후반전에 들어와 경기의 양상을 바꾼 가람의 경기 장악력은 누가 봐도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녀석...'
그 모습을 본 세르히오 아게로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브리엘 제수스도 뛰어난 재능이지만 동시대에 있는 가람과는 계속 비교를 당할 것이었다. 마치 자신이 메시와 비교를 당해왔던 거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앞으로 성장은커녕 자멸하게 될 것이었다.
메시라는 축구 아이콘을 세우고 사람들은 동시대 뛰는 선수들은 메시와 비교하고, 다음 세대에는 제 2의 메시라는 말로 선수들을 비교해왔다.
물론 그 비교를 거부하며 말도 안 되는 노력으로 메시와 동일 선상에 서려고 노력해 근접한 선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메시라는 이름 아래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세르히오 아게로는 메시와의 비교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닦고 버텨 이 자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자신이 겪었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어린 선수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너는 너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세르히오 아게로는 AT마드리드 시절에 자신의 성장을 도와주었던 베테랑 선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생각났고, 이제는 자신이 어린 선수에게 그 말을 들려줘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너무 기죽지 말고, 너는 너만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네에?"
평소 어린아이처럼 굴던 세르히오 아게로가 갑자기 저런 말을 하자, 가브리엘 제수스는 어리둥절했고, 세르히오 아게로는 갑자기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말을 이어갔다.
"하.. 나는 포들란처럼 말을 못하겠네. 하하하."
"무슨 말이에요?"
"에이~ 그래! 나도 간지러운 소리는 못하겠다. 한 방 먹여주면 너도 기분 풀리겠지."
"한 방이요?"
"그래.. 제대로 한 방 먹여줘서 팬들도, 가람이도 너를 보게 만들자."
그렇게 세르히오 아게로는 꼭 비밀 이야기를 하는 소녀처럼 가브리엘 제수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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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반 종료 직전에 세르히오 아게로는 자신이 말한 대로 가람을 순간 따돌리고, 가브리엘 제수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었다.
가브레일 제수스가 속도를 올려 맥스 파워를 제치는 순간 가람은 강점인 스피드로 가브리엘 제수스를 따라잡아 수비를 하려고 했다.
그때
쿠우웅!
"여기는 쉽게 갈 수 없다고!"
"칫!"
후반 막판에 어디서 힘이 났는지 아까 체력이 떨어져 자신의 능숙한 스페인어에 집중력을 잃고 공을 흘렸던 세르히오 아게로가 옆에 붙어 몸싸움을 걸었다.
공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진로를 방해하는 것 자체가 파울이 될 수도 있지만, 세르히오 아게로는 괜히 EPL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듯 EPL의 관대한 몸싸움 판정 선에서 가람을 제지했다.
가람은 이대로 가다가는 가브리엘 제수스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세르히오 아게로의 수비를 따돌리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는 안 돼!"
가람의 방향전환에도 세르히오 아게로는 가람을 따라다니며 진로를 방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속도 차이가 났고, 결국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손을 쓴다면 주심에게 파울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가람은 그걸 알아챘다는 듯 일부러 세르히오 아게로의 손에 잡히려는 듯 속도를 살짝 늦추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손을 쓰게 된다면 결국 파울로 가브리엘 제수스에게 준 찬스도 무산이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세르히오 아게로는 속도를 천천히 늦추며 추격을 멈추었다.
가람은 자신을 쫓아오던 세르히오 아게로의 속도가 늦춰지는 게 느껴지자, 다시 속도를 올렸다.
설명은 길었지만, 세르히오 아게로와 가람의 경합은 짧은 시간에 일어났고, 가람은 긴 다리와 보폭 빠른 스피드로 가브리엘 제수스를 따라잡 수 있었고,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가브리엘 제수스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뻐어엉!!
꼭 가람의 추격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가브리엘 제수스는 슈팅을 때렸다.
그 위치는 패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아까 중거리 슈팅을 찼던 케빈 데브라이너보다 살짝 먼 거리였다.
가브리엘 제수스가 찬 공은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갔지만 살짝 위쪽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가브리엘 제수스의 슈팅 궤적을 본 딘 핸더슨은 대부분 중거리 슈팅이 위쪽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이번 슈팅도 점점 나아가다가 결국 왼쪽 골대 상단 위로 넘어갈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휘릭!
가브리엘 제수스가 찬 공이 위로 갈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갑자기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급격하게 꺾이더니 그대로 왼쪽 골망을 가로 질러버렸다.
그 순간 딘 핸더슨은 멍하니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올 고오오올!! 후반 46분에 가브리엘 제수스 선수의 말도 안 되는 중거리 슈팅이 터져 나오면서 경기는 3대 2 됩니다. 맨시티가 후반전에 2골을 넣는 저력을 보여주면서 지고 있던 경기를 다시 역전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골로 맨시티는 홈에서 무패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랍네요."
가브리엘 제수스의 골이 터지자, 맨시티의 홈팬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가브리엘 제수스의 이름을 열창했다.
그리고 골을 넣은 가브리엘 제수스는 완전히 흥분해 코너킥 에어리어까지 뛰어가 윗통을 벗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가브리엘 제수스라고!!!"
그렇게 흥분한 가브리엘 제수스 뒤로 마찬가지로 흥분한 맨시티의 선수들이 달려들었고, 그렇게 한동안 맨시티의 골 세레머니는 이어졌다.
골 세레머니가 끝난 후 가브리엘 제수스는 스탭이 건네준 유니폼을 다시 입고, 주심에게 옐로우 카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세르히오 아게로가 웃으며 말했다.
"어때? 제대로 한 방 먹여주었지."
"고마워요."
"크크크. 이제야 웃는구나. 보기 좋다."
그렇게 둘은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가람은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선더랜드의 공으로 경기는 시작되었고, 가람은 공을 잡은 후 저돌적으로 맨시티의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맨시티의 공격수 듀오인 가브리엘 제수스와 세르히오 아게로가 가람을 향해 수비하기 시작했고, 가람은 그런 그 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강력한 몸싸움과 스피드로 둘을 억지로 뚫어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김가람 선수 화가 단단히 난 투우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듭니다."
"경기 시간이 끝날 때까지,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 때까지는 경기가 끝난 게 아니거든요. 김가람 선수는 끝까지 투지를 불태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어떤 축구팬이라고 해도 빠져들 수밖에 없겠죠."
가람이 그렇게 가브리엘 제수스와 세르히오 아게로를 뚫어내자, 이번에는 필 포든과 케빈 데브라이너가 가람의 방향을 막았다. 이 둘은 공격수 듀오처럼 가람을 직접 마크하기 보다는 가람의 진로 방향을 예측해 공간을 막았다.
그리고 가람의 뒤로 방금 제친 가브리엘 제수스와 세르히오 아게로가 포위하듯 달려들었다.
"김가람 선수! 공격적으로 나가지만, 너무 혼자 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동료는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시간이 많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지만, 지금처럼 시간이 없고, 공격권이 주어졌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선수가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선더랜드에서는 그 선수가 바로 김가람 선수죠!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안팎입니다."
가람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슈팅을 하기에는 앞에 선수들이 너무 많고, 슈팅 각도도 절묘하게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타타타탓!!
가람은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가속하여 자신의 정면에 있는 필 포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필 포든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가람을 향해 슬라이딩 태클을 걸어서 공격을 막아낼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둘이 마주치는 순간 필 포든은 가람이 다가오는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슬라이딩 태클을 했고, 절묘한 타이밍에 가람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긴장되는 순간 가람의 집중력은 다른 때보다 날카로웠고, 필 포든의 슬라이딩 태클을 공과 함께 점프로 넘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필 포든의 태클 타이밍이 좋았기에 착지한 후 몸의 균형이 살짝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맨시티의 선수들은 가람에게 달려들었고, 가람은 순간 주심이 시계를 보며 휘슬을 입에 무는 게 보였다.
아마도 가람의 공격이 끝났다고 판단해 경기를 종료 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고, 가람은 균형이 살짝 무너진 상태에서도 넘어지듯 슈팅을 찼다.
뻐어엉!!
가람이 찬 공은 넘어지려는 선수가 차는 슈팅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골대를 향해 날아갔고, 게다가 골키퍼가 막기 힘들다는 골대 하단 쪽으로 낮게 깔려 날았다.
파아앙!!
"김가람 선수의 회심의 슈팅!! 에데르송 모라에스 골키퍼가 몸을 날려 잡아냅니다."
"쓰러지면서 골을 넣겠다고 슈팅을 찬 김가람 선수도 대단하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서 막아낸 에데르송 모라에스 골키퍼도 대단합니다."
그렇게 에데르송 모라에스가 골키퍼가 공을 잡은 후 앞으로 가라는 듯 소리치며 살짝 시간을 끌자, 주심은 이내 휘슬을 길게 불었다.
삐이익 삑!!!
"주심이 경기종료 시킵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9라운드 경기는 결국 맨체스터를 연고지를 하는 두 팀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더랜드로서는 아쉬울 거라고 보이네요. 만약 저런 컨디션을 보였던 김가람 선수가 전반부터 나왔다면 경기는 확실히 선더랜드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텐데요. 후반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퍼포먼스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오늘 경기가 졌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후반전에만 나와도 EPL의 약점이 없는 맨시티를 이 정도까지 몰아붙였거든요. 김가람 선수가 컨디션이 완벽히 좋아진다면 다시 정상을 노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기가 끝난 후 가람은 그라운드에서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그런 가람을 보며 세르히오 아게로가 다가왔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사진 찍자."
"하아~ 이거 제대로 당했네요. 알겠어요."
그렇게 가람은 졌지만, 세르히오 아게로와 약속을 지키며 9라운드 맨시와의 경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