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골든보이
2020년 12월 14일 골든보이 시상식
잉글랜드 런던에서 열린 골든보이 시상식에 이 날의 주인공인 가람은 턱시도 정장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났다.
가람의 옆에는 오늘은 에이전트로 나온 김하늘이 있고 오늘 시상식에 초대받은 박지석도 같이 자리하게 되었다.
특히 오늘 시상식이 있기 전날 선더랜드가 아스날 원정 경기에서 이긴 상황이라 셋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약간 딱딱한 식순이 끝나고 주인공 소개와 시상을 하기 위해 2004년도 골든보이로 뽑힌 웨인 루니가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웨인 루니의 등장에 사람들은 박수로 그를 맞이했고, 웨인 루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이 상을 수여하는 인물은 지난 챔피언쉽에서 팀을 무패로 이끌고 43골과 27개 도움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도쿄 올림픽에서 약체라고 평가된 대한민국을 이끌고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물론 거기까지 활약이 끝났다면 오늘 이 상은 어쩌면 도르트문트의 스트라이커 엘링 홀란드 선수에게 수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순간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이번 시즌에 가람의 골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골들이 터져 나왔지만, 그 중에 제일 마지막에 보여준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3번째 골인 골대를 등지고 발꿈치로 툭 쳐서 넣은 골이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이기도 한 웨인 루니가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흐음.. 저 마지막 골은 정말 가슴 아프군요. 한 번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왜 저렇게 골을 넣었는지 말이에요. 여하튼 이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즌에.. 오우 이런 대본이 너무 잔인하네요.”
말을 하려다가 대본을 읽는 웨인 루니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시즌 초반에는 체력적인 문제로 풀타임 경기를 뛰지 못하다가 하필이면 11월 8일 맨체스터 유나티드 경기에서부터 풀타임으로 뛰고 그 경기에서 6골을 넣는 엄청난 활약을 합니다. 그리고 그후 이어진 웨스트 알비온, 브라이튼에서는 각각 멀티골을 기록했고, 어제는 아스날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벌써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경쟁에 제일 우위를 차지하며 29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위인 제이미 바디 선수는 23골인 거에 비하면 압도적인 성적입니다. 요즘 선수들이 골을 넣는 걸 보면 전반적으로 봤을 때 프리미어 리그의 수비진과 골키퍼들이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기록이네요. 게다가 유로파에서도 놀라운 기록을 이어가며 5골 3개 도움으로 죽음의 조라고 평가 받았던 F조에서 1위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웨인 루니가 살짝 웃고 힘들다는 제스쳐를 보여주었고, 그걸 보며 관중들은 가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건 정말.. 이래서 제가 시상을 안 한다고 했던 건데.. 여기 있는 종이 쪼가리 읽으면 된다고 했는데.. 보세요.”
웨인 루니가 들어보인 글씨가 빼곡이 적힌 대본 카드에 관중들은 크게 웃었다.
“이건 거의 벌을 받는 겁니다. 제가 왜 2004년도에 상을 받아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지금 저기 앉아서 상받기만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도 나중에 저처럼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겁니다.”
축구 선수 시절에 말주변이 거의 없었던 웨인 루니지만, 오늘 시상식에서는 생각 이상의 입담으로 다소 딱딱한 시상식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오늘 골든보이 수상을 두고 도르트문트의 엘링 홀란드 선수와 경쟁을 벌였지만, 엘링 홀란드 선수는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 3위로 탈락하면서 김가람 선수가 수상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축구의 신이 있다면 이 둘을 다음 조별 라운드에서 붙게 해서 과연 골든보이 수상을 김가람 선수가 받는 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PSG도 잘난 척하다가 결국 저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지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 3위로 탈락했죠. 이번 유로파 리그는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에서 3위를 탈락하게 되면 유로파 리그 32강에서 합류하게 되어 상위 시드에는 유로파 리그 1위 한 팀 하위 시드에는 2위 한 팀을 넣고 챔피언스 리그 3위 한 팀끼리 전적 비교해서 반은 상위 시드에 반은 하위 시드에 넣어 채운다.
유로파 32강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같은 조였던 팀들 그리고 같은 국가의 팀들을 만나지 않게 되고, 16강부터는 이러한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무작위 대진이 짜게 된다.
그런 내용을 웨인 루니는 가볍게 대화로 풀어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무대 체질인 웨인 루니의 청산 유수와 같은 멘트의 향연에 관중들은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때 관계자가 무언가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군요. 오늘 저에게 배정된 10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상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깐 입이 잘 열리네요. 이러다가 나중에 매치 오브 더 위크에 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제 수상자는 앞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그 말에 가람이 수상대로 올랐고, 그와 동시에 조명이 가람을 비추었다.
가람의 삶에서는 이런 시상식 자리는 처음이지만, 강승연의 삶에서는 인격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어도 축구 실력은 누구나 인정했기에 수많은 상을 받았었다.
가람은 웨인 루니에게 다가갔고, 웨인 루니는 그런 가람을 보며 악수를 건넨 후 옆에 있는 도우미에게 상을 받아 가람에게 건넸다.
황금색 축구공 모양의 트로피를 받은 가람이 마이크 앞에 서자, 어느새 마이크를 건네 받은 웨인 루니가 입을 열었다.
“수상 소감 말하기 전에 제 질문 하나 답해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그 날 꼭 그렇게 많은 골을 넣었어야 했나요?”
그 날이 바로 11월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를 한 날이라는 걸 눈치챈 가람이 웃으며 답했다.
“웨인 루니씨도 아스날의 29무패 행진을 기록하는 골을 넣으셨잖아요. 스트라이커로서 주어진 기회에 골을 넣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우리 골든보이 수상자께서는 그 날에 맡겨진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수많은 골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때려 부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건 저도 이해합니다. 스트라이커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럼 저 골은 어떻게 설명해주실 거죠?”
아까 웨인 루니가 말한 가람이 골대를 등지고 넣은 3번째 골 장면이 나왔다.
“혹시 이런 골은 선더랜드의 감독인 박지석이 그렇게 넣으라고 했나요?”
그 말과 함께 조명이 박지석 감독을 비추었고, 박지석은 수줍게 웃으며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이 지시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지금 보니 지석은 그런 지시를 내린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역시 마이 프렌드입니다. 설명을 좀 부탁드리고 싶네요.”
꼭 오늘은 날이라도 잡은 듯 단단히 준비한 웨인 루니를 보며 가람은 오늘 유럽에서 뛰는 21세 미만 젊은 선수에게 주는 상인 골든보이 수상자가 아니라 전세계의 뛰어난 축구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 수상자처럼 여유롭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날 경기에 제가 이미 멀티 골을 넣기는 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였고, 그런 홈경기에서 기세를 확실히 잡지 않는다면 경기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도발을 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더 공격적으로 나오게 하려는 의도로 그런 골을 넣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유창하게 말하는 가람을 보며 웨인 루니는 대견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하하. 보통 이런 자리에서 밀어붙이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김가람 선수가 저렇게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는 거 보면 오늘 골든보이 수상자가 될 만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이번 골든 보이 수상자로 뽑힌 이유 중 하나가 저 골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저의 짓굳은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수상 소감 말씀하시죠.”
가람은 웨인 루니의 말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오늘 이 자리까지 있게 도와주신 어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감사드립니다. 또 제가 선더랜드에서 공을 차고 1군 자리에 추천해주신 유소년 총괄 한스님, 그리고 여기 계신 박지석 감독님과 선더랜드의 모든 선수들께 감사를 드리며 무엇보다 제가 축구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에이전트이자 선더랜드의 구단주이신 하늘이형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저를 응원해주신 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과 함께 가람은 시상대에서 내려왔고, 그렇게 시상식이 마무리된 후 가벼운 포토 타임이 있은 후에 식사 자리가 이어졌다.
박지석은 웨인 루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김하늘도 축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빠 보였다.
오히려 오늘 시상식의 주인공인 가람이 약간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자신의 수상을 축하해주는 상태창을 볼 뿐이었다.
[골든 보이를 수상했습니다.]
[60포인트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그건 가람의 생각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람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빛나는 외모였는데 턱시도를 입고 오늘 자리가 자리인 만큼 헤어숍에서 세팅까지 한 가람의 외모는 한층 더 빛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가람 못지 않게 상당한 외모의 중년 남성이 다가와 가람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김가람 선수. 수상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구신지요..?”
“아. 제가 오늘 격식 있는 자리라 꾸몄더니 몰라 보시는군요. 한때 스포츠 문에 있었던 폴 스미스 기자입니다.”
순간 가람은 덥수룩한 머리의 폴 스미스가 지금 눈앞에 있는 미중년이라는 것에 살짝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폴 스미스가 좋은 기사를 낸 적은 없었기에 살짝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폴 스미스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스포츠 문이 아니라 BCD 스포츠국에 있습니다. 리사 뮐러씨와 같이 일하고 있죠.”
“아. 그러시군요.”
“뭐 경계하시는 건 이해가 가지만, 이제는 자극적인 기사는 쓰지 않습니다. 뭐 이렇게 말해도 잘 믿으시는 분들은 없더라구요.”
“그동안 해오시던 일들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죄가 많았네요. 그건 그렇고 아까 웨인 루니씨가 말은 하셨지만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3위로 사이좋게 탈락한 엘링 홀란드의 도르트문트와 킬리안 음바페의 PSG가 떨어지면서 유로파 리그에 합류하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딱히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현재에 집중하고 팀을 위해 뛸 뿐이니까 말이죠.”
“그런가요? 뭐 솔직히 이전의 저라면 좀 더 자극적인 답을 쓰기 위해서 더 질문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말이죠. 아 그거 혹시 아시나요?”
“어떤 거요?”
“이번에 PSG가 챔피언스 리그 조별 탈락을 하면서 새로운 감독이 부임되었습니다. 가람 선수도 잘 알고 있는 감독이죠.”
“설마?”
“하하하. 맞습니다. 도쿄 올림픽에서 가람 선수에게 패배를 선보였던 에르베 르나르 감독입니다. 그 팀을 상대로는 어떤 마음가짐을 하실 것 같나요?”
“그 팀을 이기고 싶네요.”
그렇게 가람은 가볍게 폴 스미스와 대화를 이어갔고, 유로파 리그를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