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리버풀전[3]
한 골.
선더랜드가 먹힌 골은 한 골이지만, 이 골이 선더랜드 선수들에게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지난 시즌의 챔피언과 실제로 붙어 말로 듣고 눈으로 봤던 그들의 날카로움을 맛본 순간이며, 시즌을 치르면서 이렇게 빠른 시간에 실점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가람처럼 모하메드 살라의 역습을 막기 위해 수비에 복귀하고 있던 선더랜드의 선수들은 골이 들어가는 순간 고개를 떨구고 거친 호흡을 몰아 쉬었다.
선더랜드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려고 할 때 골을 넣고 흥분한 리버풀 서포터즈들의 환호성만큼이나 크게 선더랜드의 응원가가 들려왔다.
"We are Sunderland~ We are Sunderland~"
경기에서 이길 때나 들려오는 응원가가 갑자기 들려오자, 선수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서포터즈들이 지금 불러주는 응원가가 어떤 의미로 불러주었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선수들은 하나 둘 고개를 들어 응원가를 불러주는 팬들이 앉아 있는 관중석을 쳐다봤고, 기성룡이 주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전반 초반이다. 모두 힘내도록 해! 리버풀도 그냥 축구팀 중의 하나일 뿐이야. 기죽을 필요 없어!!"
기성룡의 외침은 주변 동료들에게 전해졌고, 선수들은 서로 주변 동료를 격려하며 사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박지석은 선수들이 골을 먹히고 고개를 숙이자, 테크니컬 에어리어 라인에 서서 크게 소리 치서 그들을 깨우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들려오는 선더랜드 서포터즈의 응원가와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그때 안정한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말을 걸었다.
"우리 서포터즈들은 대단하네요. 감독님. "
"그렇네요."
긴장한 듯한 표정을 한 박지석을 보며 안정한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껌 드릴까요?"
"긴장한 게 티가 나나요?"
안정한은 대답 대신 품에서 껌을 꺼내 박지석에게 건넸고, 박지석은 껌을 씹으며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는 선더랜드의 공으로 다시 시작되었고, 가람은 이번에 공격적으로 나가지 않고 공을 뒤로 돌려 천천히 공격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중앙 미드필더에 있는 기성룡에게 공이 연결되자, 리버풀의 공격수 디보크 오리기를 비롯한 모하메드 살라와 사디오 마네 그리고 티아코 알칸타라 등 공격수가 공격적으로 앞으로 나오며 선더랜드 진영으로 들어갔다.
한 골을 넣은 리버풀이지만, 그 골을 지키기보다는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맞춘 상태에서 경기를 진행하려는 듯 보였다.
그래도 리버풀의 중앙 미드필더는 하프 라인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가람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잠시 리버풀의 움직임을 지켜본 기성룡은 좀 더 리버풀의 수비를 끌어들이기 위해 뒤쪽에 있는 권윤성에게 공을 돌렸다.
"선더랜드는 공을 후방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리버풀의 선수들을 끌어드린 후 공격을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리버풀은 무리하지 않고 공격 자원 선수들만 위로 올리고, 중앙 미드필더를 포함한 수비 라인은 자기 진영에서 수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선더랜드가 리버풀을 공략하는 건 다소 힘들어 보입니다."
공을 잡은 권윤성은 주변을 둘러보고 공을 앞으로 툭툭 치고 나갔지만, 사디오 마네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다가올 뿐 적극적으로 압박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잠시 후 디보크 오리기가 압박하듯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고, 그 사이 하프 라인 너머의 한 선수가 손을 드는 게 보였다.
뻐어엉!!
권윤성이 찬 공은 패널티 에어리어에서 하프 라인이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날아갔고, 공을 향해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이 공을 얻기 위해 달려들었다.
토오옹~
"권윤성 선수의 롱 패스! 그걸 받아내는 건 선더랜드 중앙 미드필더의 수호신 닐 이안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에 선더랜드가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오는 패스 패턴 중 하나죠. 권윤성 선수의 정확한 롱패스와 장신의 중앙 미드필더인 닐 이안 선수의 헤더 패스, 그리고 이걸 이어받는 선수는.."
제이미 캐러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닐 이안의 헤딩 패스가 떨어지는 곳에 해리 네쳐가 공을 받아, 전진하며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해리 네쳐가 공을 잡는 순간 파비뉴가 해리 네쳐에게 달려들어 압박하기 시작했고, 해리 네쳐는 얼마 가지 못하고 옆에 있는 안수 파티에게 공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공을 잡은 안수 파티는 속도를 올려 리버풀의 오른쪽 라인을 파고 들어갔고, 알렉산더아놀더는 안수 파티의 속도에 맞춰 수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제이미 캐러거가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에 선더랜드의 양쪽 윙어들은 리버풀의 사이드 공간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선더랜드의 득점 패턴인 양쪽 윙어에서 흔들고 중앙의 김가람 선수가 골을 넣는 모습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선더랜드 양쪽 윙어 둘 다 기술이나 지능적인 플레이보다는 육체적인 빠른 움직임으로 기회를 만드는 게 특징인데요. 지금까지 상대했던 팀들과 다르게 리버풀의 양쪽 윙백은 육체적으로도 뛰어나죠. 선더랜드는 다른 공격 루트로 리버풀을 상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계진의 말이 예언이라도 된 듯 안수 파티는 알렉산더아놀드를 상대로 특별히 공략할 수 없었고, 결국 알렉산더아놀드의 수비 방향에 막혀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골라인 근처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리버풀의 수비진들의 협력 수비에 공을 빼앗길 거라고 생각한 안수 파티는 뒤에 있는 해리 네쳐에게 공을 건낼 수밖에 없었다.
안수 파티의 패스를 받은 해리 네쳐는 주변을 둘러봤다.
반대편 사이드 라인에 있는 데얀 클루셉스키는 앤디 로버트슨에 막혀 있는 상황이었고, 가람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판데이크가 옆에 붙어서 마크하는 게 보였다.
방금 전에도 가람이 판데이크에게 고전하는 걸 알고 있기에 쉽게 찬스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에 빠진 순간이었다.
"브라더!"
가람이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아까도 판데이크에게 막혔지만, 그래도 도전하겠다는 가람의 의지가 느껴지는 외침에 해리 네쳐는 가람에게 패스를 했고, 가람은 판데이크를 등진 채로 공을 잡았다.
쿠우웅!!
가람이 공을 잡자, 판데이크는 바로 압박하며 수비하기 시작했다.
가람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압박감과 묵직한 몸싸움에 순간 흔들렸다.
그나마 가람도 키가 커서 다행이지, 만약 키가 크지 않았다면 193cm의 판데이크 몸싸움에 그대로 눌려 버릴 것이었다.
가람이 공을 지키고 있자, 해리 네쳐는 조 고메즈 뒤쪽 공간으로 파고들었고, 조 고메즈는 가람이 해리 네쳐에게 패스할 것을 고려해 해리 네쳐를 쫓아갔다.
가람은 버티기만 하다가 순간 두 명의 수비수에게 애워싸일 수 있는 위기를 해리 네쳐의 센스 있는 움직임으로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가람은 등 뒤에 있는 판데이크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왼쪽? 오른쪽?'
가람은 등 뒤에 있는 판데이크를 어떻게 공략할까 생각했다.
다른 수비수들은 보통 등 뒤에서 압박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쪽에 힘을 실었기에 가람은 그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나가며 쉽게 공략할 수 있었지만, 판데이크는 힘의 배분은 몸의 중심에 두고 있었기에 가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도 대응할 수 있었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단순히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상대하는 타입이 아니라,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 몸을 움직이는 타입인 것이었다.
괜히 리버풀이 판테이크가 있을 때와 아닐 때 수비력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박지석도 오늘 경기를 두고 가람에게 조심하라고 한 것이었는데 이 정도까지 까다로운 수비수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 수비력이라면 자신이 강승연의 삶에서 느꼈던 까다로운 수비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었다.
쿠우웅!!
판데이크는 가람을 압박하듯 다시금 몸싸움을 걸어왔고, 몸싸움 95라는 능력치로도 버티는 게 한계인 상태였다.
이렇게 계속 등지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가람은 왼쪽으로 몸을 돌리는 척하며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아 판데이크의 수비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판데이크는 가람의 페이크 동작에 속지 않고, 가람의 움직임에 맞춰 따라왔다.
'괴물 같은 놈. 빠르기까지 하잖아.'
그나마 속도 100이라는 능력으로 가람이 근소한 차이를 벌리며 판데이크를 앞서나갔지만, 판데이크는 바로 뒤에서 193cm에서 나오는 긴 보폭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판데이크는 손을 뻗어, 가람의 유니품을 잡았고, 파울이 될 정도로 강하게 잡지는 않았지만 슈팅을 방해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이제 가람은 앞에 있는 골대에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상태였다.
가람은 그대로 발을 들어 슈팅 자세를 가지고 가려고 했고, 그 순간 판데이크가 가람의 유니폼을 놓았다.
투욱~
등 뒤에서 강하게 유니폼을 잡고 있다가 놓게 되면 당연히 몸의 균형은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가람도 순간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나마 민첩 100 능력 덕분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슈팅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쭈욱~
등 뒤에서 판데이크의 발이 불쑥 나타났고, 공을 건드리려고 하자, 가람은 다급하게 슈팅 자세에서 멈추고, 공의 방향을 바꾸었다.
말은 쉬웠지만, 등 뒤의 수비의 발 때문에 이미 슈팅 자세에 들어간 상태에서 그걸 갑자기 멈추고 방향을 바꾼다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었지만, 가람은 그걸 해냈다.
하지만 문제는 가람은 판데이크만 신경을 쓰고 있던 상황이라, 어느새 다가온 리버풀의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는 신경 쓰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가람은 다시금 슈팅 자세를 취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달려오는 알리송 베케르의 몸을 살짝 넘겨 공을 차는 건 더욱 늦은 상황이었다.
촤르르르르~~
"알리송 베케르 선수!! 김가람 선수를 덮치듯 달려들어 공을 잡아냅니다. 김가람 선수는 알리송 베케르 선수의 몸을 던진 수비를 점프를 해서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판데이크 선수의 끈질긴 수비에 김가람 선수가 막혔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판데이크 선수가 마지막에 발을 뻗어서 김가람 선수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김가람 선수는 알리송 베케르 선수를 피해서 슈팅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중계진은 판데이크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고, 가람은 아쉬움에 하늘을 보며 크게 포효했다.
"아우우!!!"
그리고 가람이 포효하는 모습을 보며 축구장에 있는 사진 기자들은 다음날 축구 1면에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한 신문 기사는 ‘선더랜드의 김가람, 리버풀의 판데이크를 넘지 못한다’라는 기사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