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산 넘어 산[1]
"이강운 선수가 직접 얻은 프리킥인데요. 이 정도 거리라면 해리 케인 선수도 직접 슈팅을 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과연 누가 차게 될까요?"
이강운과 해리 케인은 누가 지금 프리킥을 찰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때 무리뉴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 라인에 서서 크게 뭐라고 소리를 쳤다.
"강운!!"
무리뉴의 외침에 이강운과 해리 케인은 무리뉴를 봤고, 무리뉴는 이강운에게 프리킥을 차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이강운과 해리 케인은 무리뉴를 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해리 케인은 패널티 에어리어로 들어가고 이강운이 프리킥을 준비했다.
"프리킥은 이강운 선수가 찰 것 같군요."
"요즘 프리킥으로 직접 골도 넣은 이강운 선수인데요. 절호의 찬스를 골로 만들어서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
이강운이 프리킥을 준비하는 동안 가람은 프리킥 벽의 가운데 서서 뒤돌아 딘 핸더슨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비벽의 위치를 조정했다. 잠시 후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다시 뒤돌아 이강운이 공 차기를 기다렸다.
삐이익!
타타타탓!!
이강운은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뛰어가서 프리킥을 때렸고, 프리킥은 회전보다는 강하게 직접 골대를 노리고 찬 듯 수비벽을 향해 바로 날아갔다.
이강운이 찬 공은 살짝 높게 형성되어 날아왔고, 그 공은 가람의 정면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가람은 공을 보며 피하기커녕 오히려 목을 길게 빼서 공에 맞아 수비를 하려고 했다.
휘리릭!
하지만 가람이 목을 길게 뺄 필요도 없이 공은 꼭 노린 것처럼 가람의 얼굴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왔고, 가람이 수비하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머리를 치켜들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자신의 얼굴을 향해 공이 날아오자, 가람은 순간 당황했다.
게다가 얼굴을 그대로 맞으면 생각보다 충격이 크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살짝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퍼어억!
잠시 후 가람은 누군가 와서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 것처럼 뒤통수에서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지만, 가람은 공에 맞는 순간 수비에 성공했다고 확신하고 안심했다.
그리고 충격으로 인해 착지하는 동시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심하며 눈을 감으려고할 때
-와아아아아!!!
갑자기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고, 생각지 않은 환호성에 가람은 불길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수비가 성공했다고 이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오는 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가람은 불길함을 확인하기 위해 쓰러진 채로 눈을 떠서 골대를 봤고, 골대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의 딘 핸더슨과 골문 안에 들어가 있는 공이 보였다.
"뭐야. 이거.."
라고 말을 꺼내기 무섭게 토트넘의 선수들이 이강운을 끌어안고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오오오오올!! 후반 39분에 이강운 선수의 프리킥이 김가람 선수 머리를 맞고 그대로 골문을 빨려 들어갑니다."
"이건 정말 안타깝네요. 오늘 운이 정말 없어 보이는 김가람 선수입니다. 오늘 자책골로 멀티골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에 모든 골을 넣는 선수는 김가람 선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하지는 않지만 두 골을 자신의 골대에 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가람 선수입니다."
가람은 토트넘의 선수들이 골 세레메니를 하는 동안 망연자실한 듯 그대로 잔디밭에 누워 있었고, 김만재가 다가와 위로를 해주었지만 기분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남은 시간 토트넘은 토너먼트 경기 결승전처럼 엄청난 집중력으로 수비하기 시작했고, 선더랜드는 이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토트넘의 선수들은 파울을 유도하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삐이익!
"주심 뛰어옵니다. 위고 요리스 선수가 옐로우 카드 한 장을 받게 되는군요."
"너무 시간을 끌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게 토트넘에서는 필요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도 남지 않았거든요."
위고 요리스는 주심의 경고에도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결국 앞에 있는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에게 공을 건넸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람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토비 알데르베이럴트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위고 요리스에게 백패스를 했고, 위고 요리스는 공을 받는 순간 왼쪽 수비수인 벤 데이비스에게 연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권윤성이 달려들어 벤 데이비스를 압박했다.
권윤성의 압박에 벤 데이비스는 순간 등을 지고 공을 지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가람까지 달려들어 벤 데이비스를 압박하려고 했다.
그때
삐익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가람은 짜증과 함께 아쉬운 마음에 포효하며 경기는 종료되었다.
그 순간 사진 기자들은 가람을 집중해서 찍기 시작했고, 지난 리버풀전과 다르게 오늘은 확실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으니 자신이 원하는 기사와 가람의 포효하는 사진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오늘 프리미어 리그 20라운드 토트넘의 홈구장에서 치러진 경기의 승자는 결국 토트넘이었습니다. 상당히 운이 따른 경기였지만,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운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토트넘이 오늘 경기 승자입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셨나요? 박문석 위원님."
"오늘 경기는 여러 가지로 선더랜드에게 진한 아쉬움이 남을 만한 경기였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골대만 9번 맞추었고, 심지어 올리비에 지루 선수까지 포함하면 두 자리 수에 가깝게 골대를 맞춘 날이거든요. 오늘 키 플레이어를 토트넘에서는 선수가 아니라 골대로 뽑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골대에게 오늘 위고 요리스 선수의 경기 출전 수당을 줘도 할 말이 없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더랜드는 운도 없었지만 부상자도 나온 경기였어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오늘 경기에 왼쪽 윙어로 선발 출장한 오비 에자리아 선수와 교체 투입된 올리비에 지루 선수 둘 다 생각보다 큰 부상으로 보이는데요. 특히 선더랜드는 겨울 이적시장에 원소속팀으로 돌아간 안수 파티, 데얀 클루셉스키선수의 빈자리가 더욱 아쉬울 것으로 보이고요. 다음 경기에는 이번에 영입한 솔라 쇼라티레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선더랜드는 겨울 이적시장에 빠르게 선수를 보강하지 않으면 선두 경쟁에서 힘들어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오늘 경기 토트넘이 이기면서 선더랜드가 공동 1위가 되었습니다. 나란히 2패를 거두고 있는 4팀 대열에 합류하게 된 거죠. 맨시티, 맨유, 리버풀 이렇게 다시 기존에 1위에서 공동 1위 순위로 내려오게 되었고, 토트넘은 5위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동 1위에 있는 팀 중에 한 팀이 1패를 기록하면 토트넘도 탑4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박문석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배선재는 방송 스탭에게 무언가 전달을 받더니 말을 이어 갔다.
"지금 들어온 소식으로는 현지에서 오늘 경기의 MOM으로 이강운 선수가 뽑혔다고 합니다. 오늘 경기에 터진 골은 자책골이기는 했지만, 그 자책골을 이끌어낸 건 결국 이강운 선수거든요. 괜찮은 판단이라고 보입니다."
"그럼 오늘 프리미어 리그 20라운드 경우는 토트넘의 승리로 중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중계의 배선재,"
배선재가 말을 한 템포 쉬자, 박문석은 바로 말을 이어했다.
"박문석입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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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랜드 라커룸
"오늘 경기엔 너희들은 모든 걸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일은 있었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너희들은 최선을 다 했다. 수고 많았다. 오늘 경기는 아쉽게 패배했지만 너희들은 패배자들이 아니다. 김가람!"
"네. 감독님."
"고개 숙이지 마라. 오늘 경기에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뿐이야. 자책하지 마."
"알겠습니다."
박지석의 말에 가람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가람의 옆에 있는 선수들도 그런 가람을 보며 어깨를 토닥여주었고, 해리 네쳐는 가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브라더. 힘내. 이런 날도 있는 거야."
해리 네쳐의 위로에 가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박지석은 말을 이어갔다.
"오늘 경기는 골대가 너무 많은 일을 했을 뿐이다. 이건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힘내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도록 하자. 그럼 모두 씻고 복귀 준비하도록."
박지석의 말이 끝난 후 선수들은 자기 라커 앞에서 개인 정비하고 몸을 씻으며 복귀 준비를 했다.
가람도 복귀 준비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복도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가람을 보면서 수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가람은 애써 그들을 무시하려고 했는데 그때 한 기자의 말이 유독 귀에 정확하게 들려왔다.
"오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순간 가람은 지금까지 위로를 받으며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져 나왔고, 순간 뜨거운 기운이 몸을 지배하는 게 느껴졌다.
그 말에 가람이 가려던 길을 멈춰버렸다. 그 기자는 다시금 이어갔다.
"선더랜드의 우승 경쟁을 자신의 손으로 더 쫄깃하게 만드셨습니다. 혹시 도박사들이나 불법 사이트와 거래하신 건 아닌가요?"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가람은 이미 이런 이들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자극하는 말로, 폭력적인 모습을 이끌어내서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그래도 몸에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은 저 기자의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먹여줘야지 가라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강승연의 삶에서는 풀타임으로 시즌을 전부 치른 경험은 없었다.
경기장에서 비매너 파울로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자신의 사생활을 찍고 간섭하는 기레기 녀석들을 주먹으로 응징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역시나 몸에서 차가운 폭포수가 온몸을 씻어주는 것처럼 몸에 청량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가람은 몸의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기자가 입을 열었다.
"제 말을 너무 무시하시는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반절은 매너를 중시하는 잉글랜드의 피가 흐르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하는 순간 가람의 등 뒤에서 무언가 빠르게 다가와 아까 이야기한 기자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퍼어억!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슨 일인지 모르는 가람은 서둘러 그 기자에게 재차 주먹질을 하려고 하는 선수를 잡았다.
"놔아아!! 저 새끼 듣자 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어!!"
"해리 네쳐! 뭐 하는 거야! 참아!"
"브라더! 놔! 저 자식이 한 말 들었어? 저 자식 해야 할 말이 있고, 아닌 말이 있지!"
해리 네쳐는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발버둥 쳤지만, 가람의 강한 힘과 구속에 허공에서 매달리게 되었고, 선수들 뒤에 제일 마지막에 나온 안정한 코치가 이 장면을 보더니 해리 네쳐와 가람을 빨리 구단 버스에 오르게 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