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오늘의 스포츠[2]
"왜 두 분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이 없으신 거죠?"
배선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박문석과 장재현을 보며 보채듯이 입을 열자, 박문석과 장재현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먼저 하시죠."
방금 전과 다르게 양보를 하는 모습에 배선재는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아까는 서로 말을 하려고 하시더니 이제는 말을 아끼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두 선수에 대한 비교가 어려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그 말에 박문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비교가 어려운 게 아니라 조심스럽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엘링 홀란드 선수는 194cm에 88kg 튼튼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몸싸움은 물론 거구와 어울리지 않은 빠른 발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으로 뽑고 있는 오프 더 볼 능력은 이 선수가 얼마나 뛰어난 축구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박문석이 말을 꺼내자, 화면에 엘링 홀란드가 수비에 가담했다가 전력 질주해서 순식간에 하프 라인을 돌파해 같은 팀 제이든 산초 옆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박문석이 말한 대로 동료의 패스 타이밍에 맞춰 라인 브레이킹 센터백과 윙백 사이의 틈인 하프 스페이스 공간을 절묘한 타이밍에 파고들어 골을 만드는 모습이 나왔다.
화면을 보며 이번에는 장재현이 말을 받아 이어갔다.
"그런 움직임만 보이고 있는 게 아니라 놀라운 능력 중에 하나는 골결정력과 슈팅력이라고 해야겠죠. 주발은 왼발인데요. 이 발에 걸리면 골키퍼가 막힐 만한 각도인데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골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구석을 향한 땅으로 낮게 깔려 가는 슛을 자주 구사하는데요. 그게 단순히 멈춰 있는 상태에서 차는 게 아니라 달려가면서 골키퍼가 서 있는 반대편 골대를 보고 차는 거라 상당히 막기 어렵습니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에 도르트문트에서 지금까지 32골을 넣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배선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김가람 선수의 능력과 비슷한 느낌으로 이야기하신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제 느낌에는 살짝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박문석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사실 유럽 최고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엘링 홀란드 선수를 김가람 선수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선수인 김가람 선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고, 해외 네티즌의 눈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
박문석이 말을 마무리하자, 배선재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방금 발언은 저희 프로그램과 상관없이 박문석 위원님의 개인적인 의견인 것을 강조드립니다."
"아이 진짜. 이래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말하는 순간 장재현이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장재현 위원님 이야기하실 거라고 있나요?"
"사실 저는 박문석 위원님과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이야기하지 못했거든요."
"네에? 그럼 아까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신 게 장재현 위원님은 한국 네티즌을 신경 써서 이야기 못 하신 건가요?"
"흐음..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저는 사실 박문석 위원님이 저랑 같은 의견이실까봐. 조심스러웠던 거라.."
"뭐.. 이제는 박문석 위원님의 의견이 김가람 선수를 우위로 보고 계신다는 걸 말씀하셨으니, 반대 의견을 내신다면 프로그램에 균형이 맞을 것 같은데요. 한 번 이야기해보시죠."
"사실 엘링 홀란드 선수는 아까 말씀드린 능력도 있고, 객관적인 데이터만 봤을 때 김가람 선수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엘링 홀란드 선수는 김가람 선수보다 10cm나 키 크고 피지컬도 좋습니다. 김가람 선수와 마찬가지로 수비 가담 능력도 뛰어나죠. 두 선수가 맞부딪혀서 경합을 벌인다면 김가람 선수가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박문석이 말이 안 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게 격투기도 아니고 신장 차이가 난다고 불리한 것도 아닌데 그건 좀 억측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김가람 선수는 프리미어 리그의 최고 센터백 아니 월드 클래스라고 불린 반데이크 선수와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거든요. 엘링 홀란드 선수가 반데이크 선수보다 1cm 더 크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문석이 장재현의 의견을 반박하자, 배선재는 그 모습을 말리지 않고, 중간에서 지켜봤고, 장재현은 지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반데이크 선수는 노련한 수비수입니다. 오히려 거친 몸싸움을 하기보다는 영리한 몸싸움을 하는 편이죠. 하지만 엘링 홀란드 선수는 그런 영리한 몸싸움보다는 거친 몸싸움으로 상대를 부술 것처럼 달려듭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김가람 선수는 경기를 뛰면 단순히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필드 전역을 돌아다니며 관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김가람 선수라도 그렇게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엘링 홀란드 선수와 계속 부딪히게 되면 결국 밀린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 된 거 아닌가요? 엘링 홀란드 선수를 막는 건 수비의 역할이지, 공격수인 김가람 선수가 맡을 역할이 아니죠."
"그럼 되물어 보겠습니다. 도르트문트 선수를 상대할 때 선더랜드 선수들이 일대일 수비로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쉽게 대답하지 못하시죠? 사실 선더랜드가 지금까지 프리미어 리그 1위를 달리고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건 김가람 선수의 활동량과 수비 커버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들죠."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배선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주제로 다시 돌아와서 아까는 김가람 선수의 장점만 말했는데요. 그럼 넓은 활동량이 단점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장재현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김가람 선수의 넓은 활동량은 단점이 아닙니다. 장점이죠. 하지만 김가람 선수가 속한 선더랜드라는 팀을 생각하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선더랜드의 부족한 능력 때문에 김가람 선수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걸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맞나요?"
"콕 집어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영입된 솔라 쇼라티레, 마커스 애드워즈 선수들이 공격적인 능력에서는 상당히 좋은 재능인 건 맞지만, 그 둘의 수비 가담 능력은 상당히 부족하고, 그걸 커버하기 위해 김가람 선수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는 김가람 선수가 커버 가능했지만, 엘링 홀란드 선수의 움직임을 보며 이제는 힘들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PD가 손을 돌리며 빠르게 진행시키라는 신호가 떨어졌고, 그 모습을 본 배선재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김가람 선수를 이야기하는 자린데 엘링 홀란드 선수와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내일 있을 도르트문트와의 유로파 리그 8강전 1차전에 어느 팀이 이길 거라고 보십니까? 박문석 위원님부터 이야기해주시죠."
"저는 선더랜드가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재현 위원님이 말한 불안 요소가 있다고 해도, 선더랜드 선수들의 날카로운 공격을 도르트문트도 막아내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되었든 내일 있을 경기에서는 난타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장재현 위원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이야기해주시죠."
"저는 도르트문트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가져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르트문트의 홈경기이기도 하고, 후반에 들어서 김가람 선수의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 엘링 홀란드 선수가 골을 넣을 거로 예측하며 저도 마찬가지로 양 팀의 공격력을 봤을 때 적은 골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골이 나오는 난타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두 분이 서로 다른 예측을 보여주면서 기대되는 경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이런 흥미로운 예측은 경기장에서 저희 중계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 분 모두 해설로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번 중계에서는 서로 승부를 예측하는 팀이 다르니깐 약간의 편파 중계로 허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박문석이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건 꼭 인터넷 개인 방송 같군요."
"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중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재미있게 두 분이 내기하시는 건 어떨까요?"
"내기요?
"하지만 저희 둘만 하게 되면 둘만 불리하고, 구경하는 배선재 아나운서만 이익으로 보이는데요."
장재현의 다소 정확한 지적에 배선재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중립을 지켜야 중계를 진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두 분은 시청률을 위해서 약간 재미를 제공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두 분의 열정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은 실망입니다."
배선재의 말에 PD는 스케치북에 삭발이라고 쓰고는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박문석이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삭발이라니요. 그건 오래 가서 안 됩니다. 아니 PD님이 너무 열을 올리시는데요."
"PD님도 원하시는 겁니다. 아니면 박문석 위원님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확신이 없으신 겁니까?"
배선재가 몰이를 시작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장재현이 입을 열었다.
"삭발은 그렇고요. 예전에 잉글랜드 유명 해설자이자 축구 전문가인 개리 리네커씨가 레스터 시티 우승을 두고 레스터 시티 하의 유니폼만 입고 상의 탈의하는 내기를 했는데요. 진 사람은 승리한 팀의 하의 유니폼만 입고 오늘의 스포츠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아니.. 재현이형 거기서 그렇게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박문석 위원님 여기는 공적인 자리입니다.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좋습니다. 상의 탈의라 과감하시네요. 운동을 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두 분 중 어느 분이 걸려도 말이죠."
그 말에 장재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제 생각에 변경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죠. 1차전만 두고 이야기하는 건가요? 아니면 2차전 합산 승리팀을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 형! 합산으로 해야죠. 이거 1차전, 2차전으로 따로 하면 둘 다 벌칙을 받을 수 있어요."
박문석의 말에 배선재가 입을 열었다.
"오~ 그 말은 내기에 동참하시는 걸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대로 1차전, 2차전 합산 승리팀에 따라 상의 탈의자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흥미로운 내기까지 곁들어진 내일 1차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저희는 도르트문트와 선더랜드의 유로파 리그 8강전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