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유로파 8강 1차전 도르트문트전[2]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엘링 홀란드는 가람의 플레이 스타일을 파악하려고 경기 영상을 본 후 김가람에 대한 평가가 약간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경기를 조율하는 시야나 패스 그리고 수비 능력은 확실히 자신보다 뛰어난 점은 인정할 수 있겠지만, 가람은 다른 포지션을 뛰다가 스트라이커로 전향한 것이라서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 그것도 원톱 스트라이커라면 몸싸움과 슈팅 능력 그리고 스피드가 필요하고, 그건 자신도 가람에게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가람과 부딪히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쿠우웅!!
여태까지 자신과 경기를 했던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거친 몸싸움에 바닥에 쓰러지며 항의를 했고, 어깨를 부딪히기 전에 가람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람은 자신보다 10cm나 키가 작은데도 버티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을 옆에 두고 드리블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엘링 홀란드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고, 이해를 넘어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휘리릭!!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제치고 나가려는 가람의 목덜미를 팔로 감아서 내던져 버렸다.
삐이익!!
주심은 엘링 홀란드의 모습에 휘슬을 불었고, 엘링 홀란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 일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가람은 쓰러진 상황이었다.
만약 가람이 일어나 자신을 밀치고 때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람은 툭툭 유니폼을 털더니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주심은 다시 한번 휘슬을 불며 혹시나 모를 불상사에 대비했다.
그리고 엘링 홀란드는 가람의 말을 정확히 들었다.
“쫄았냐? 이런 거친 파울을 하지 않으며 못 막을 것 같아서?”
그 말에 엘링 홀란드는 분노가 끌어올랐고, 자칫하면 손찌검이 나갈 것 같았다. 그때
삐이익!!
주심이 파울을 하고도 반성의 기미도 없이 다시 손찌검을 하려는 듯 하는 엘링 홀란드를 보며 옐로우 카드를 들었다.
그리고 엘링 홀란드가 엘로우 카드를 본 후 그제야 정신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고,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박문석이 입을 열었다.
“엘링 홀란드 선수! 터무니없는 거친 파울을 합니다. 게다가 주심이 저지하지 않았다면 레드 카드가 나올뻔한 상황까지 나올 뻔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엘링 홀란드 선수는 거친 플레이를 즐기면서 저렇게 간혹 이성을 잃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오늘은 그 모습이 너무 이른 시간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엘링 홀란드 선수가 흥분을 가라 앉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선더랜드 패널티 에너리어 앞에서 좋은 프리킥 찬스를 맞이하게 됩니다.”
가람은 자신이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마무리하기 위해서 자리에 섰고, 그 앞의 수비벽에 엘링 홀란드가 서 있는게 보였다.
‘어떻게 요리해줄까?’
가람은 오늘 경기에 준비하면서 엘링 홀란드를 보며 옛날 강승연 시절에 어렸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좋은 피지컬과 스피드 그리고 주눅이 들지 않는 플레이까지 너무 좋은 재목이었다. 저런 선수가 만약 좋은 팀에서 꾸준히 지원을 받고 성장한다면 시대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큰 신장에 빠른 스피드는 분명 무릎 쪽에 큰 부담을 주게 되어서 나중에는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은 좋은 성적을 뽑아낼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 어리다는 거였다. 덩치만 큰 아이. 그게 가람이 본 엘링 홀란드의 평가였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선수들과 많은 경쟁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고, 특히나 스트라이커에서 자신을 넘는 선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가람은 오늘 경기에 엘링 홀란드에게 더티 플레이가 무엇인지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보여주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가람은 프리킥을 차기 위해 달려드는 순간 살짝 고민했다. 일부러 공을 차서 엘링 홀란드의 머리나 급소를 맞춰서 그를 더 흥분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고, 가람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특기인 무회전 프리킥으로 공을 찼다.
뻐어엉!!
가람이 공을 차는 순간 공이 엘링 홀란드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고, 엘링 홀란드는 공을 막기 위해 고개를 빼들었지만, 약간의 차이로 엘링 홀란든의 머리를 지나쳐서 날아갔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도르트문트의 골키퍼 마르빈 하츠는 공의 궤적을 끝까지 보며 신중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왼쪽 상단 골대를 노리고 날아오는 공을 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휘리릭!!
꼭 공에 지능이 있는 것처럼 마르빈 하츠가 왼쪽 골대 상단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공이 급격히 꺾이더니 골대 중앙 쪽으로 날아갔고, 마르빈 하츠는 이미 몸을 날린 상황이라 멀어져 가는 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철썩!
가람이 골이 터지는 순간 코너킥 에어리어 쪽으로 가면서 일부러 엘링 홀란드 앞을 지나쳐가며 말했다.
“덕분에 한 골 넣었어. 앞으로도 부탁해.”
그 말을 들은 엘링 홀란드는 울컥했고,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동료들이 엘링 홀란드를 말렸다.
그 모습이 경기 카메라에 잡히면서 순간 싸늘한 분위기가 될 뻔했지만, 가람은 능구렁이처럼 그곳에서 빠져나와 선더랜드 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만세 세레머니를 한 후 골을 축하했다.
“고오오오올~ 전반 5분에 김가람 선수가 자신이 얻은 프리킥 그대로 골로 연결합니다. 선더랜드 전반 초반부터 앞서 나갔습니다.”
“그렇죠. 김가람 선수의 주특기인 패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터지는 무회전 프리킥은 알고도 막기 힘듭니다.”
박문석의 말에 장재현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방금 골을 넣고 김가람 선수와 엘링 홀란드 선수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요.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는 모르지만 엘링 홀란드 선수가 울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도발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박문석은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글쎄요. 물론 모든 경기가 페어 플레이를 하면 좋겠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키 플레이어를 흔들 필요가 있거든요.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사실 김가람 선수는 어린 나이와 다르게 의외로 트레쉬 토크나 더티 플레이에 능하거든요. 여태까지는 그런 모습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 별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오늘 경기에 엘링 홀란드 선수의 거친 플레이에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더티 플레이는 팬들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 같은데요. 엘링 홀란드 선수가 김가람 선수의 더티 플레이에 어떻게 대처할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전반 5분에 골을 먹힌 도르트문트는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이미 골을 넣은 선더랜드는 굳이 골에 집착하지 않으며 수비 간격을 촘촘히 하며 천천히 공격하면서 도르트문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빠른 속도의 역습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못하게 했다.
뻐어엉!!
“요한 필립 선수의 슈팅! 마르빈 하츠 선수의 정면으로 날아갑니다. 아쉽네요. 전반 20분에 접어들고 있으면서 도르트문트가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선더랜드 수비에 치중하면서 오히려 역습 상황은 선더랜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박문석이 신이 난 듯 말을 받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홈경기에서 수비적으로 나설 수 없고, 오늘 경기에 공격적인 전술을 준비한 도르트문트였는데요. 전반 초반에 골이 먹히면서 오히려 힘들어졌습니다. 지금 보시면 김가람 선수가 중앙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오면서 수비에 가담해 협력수비를 하기 시작하니 뚫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면 김가람 선수가 협력수비로 막아내고 그걸 바로 롱패스로 전방에 있는 요한 필립 선수에게 보내 기회를 만듭니다.”
“요한 필립 선수는 이전에 비해 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보였는데요. 단순히 몸이 좋아진 것뿐만 아니라 스피드도 빨라진 것 같습니다. 도르트문트 중앙 수비수인 마츠 훔멜스 선수가 지금도 놓쳤거든요. 이거 자칫 잘못하다가는 추가 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뻐어엉!!
마르빈 하츠가 찬 공은 중앙 미드필더 라인과 중앙 수비수 라인 사이인 포켓 공간으로 절묘하게 날아갔고, 그 공을 향해 엘링 홀란드와 김가람이 달려가고 있었다.
엘링 홀란드는 지금까지는 같이 공중볼 경합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자신이 있었다.
키가 10cm나 크고, 오늘 경기를 두고 공중볼 경합에 대해서 수없이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뛰어가던 가람은 엘링 홀란드보다 먼저 멈추고 공중볼을 잡기 위해서 준비했고, 그 모습에 엘링 홀란드는 뒤돌아 공을 봤다.
자신이 보기에는 아직 공이 떨어지는 정확한 지점은 가람이 자리 잡은 지점보다 살짝 뒤쪽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람과 경합하지 않고 오히려 가람의 뒤쪽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공이 천천히 날아오기 시작했고, 가람이 먼저 점프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엘링 홀란드는 자신이 이번에는 공중볼 경합에서는 이겼다는 생각으로 점프를 했다.
‘어. 뭐지?’
순간 엘링 홀란드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김가람의 점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이 높이 뛰었는데도, 가람은 날개라도 달린 듯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렇게 의아함을 느끼는 순간 공은 가람의 머리도 아닌 가슴에 맞아 떨어졌다.
“김가람 선수! 공중볼 경합에서 먼저 나서서 공을 가로챕니다.”
“와. 이건 놀라운데요. 김가람 선수가 저렇게 높이 뛸 수 있나요? 뒤쪽에서 뛰었던 엘링 홀란드 선수보다 더 높이 뛰고 공중에 머물면서 심지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공을 받아냅니다. 공중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김가람 선수!”
가람이 공을 가슴으로 받은 뒤 이어서 패스를 하기 위해 달려가려고 했고, 그때 엘링 홀란드는 그대로 가람을 보내줄 수 없다는 듯 뒤에서 가람의 유니폼을 잡으며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람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유니폼이 필요하면 경기 끝나고 줄 테니 너무 잡지 마라.”
그 말에 엘링 홀란드는 또다시 분노가 끓어오른 게 느껴졌고, 이번에는 잡았던 유니폼을 놓는 동시에 달려들어서 양손으로 강하게 가람을 밀려고 했다.
그때
"그만둬!!"
순간 엘링 홀란드 등 뒤에서 들려온 마르코 로이스의 외침에 엘링 홀란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가람을 밀치지 않았다. 가람은 그대로 공을 드리블해서 도르트문트 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엘링 홀란드 정신 차려! 수비해!"
"알아!"
팀의 주장인 마르코 로이스의 말에 엘링 홀란드는 귀찮다는 듯 대답하고는 가람을 잡기 위해서 뒤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람의 몇 마디에 자신이 뒤흔들리는 것에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는 쉽게 벗어나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