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현장 인터뷰
2021년 5월 14일 라이트 오브 아카데미
1군 식당 카페테리아
"안녕하세요. 김가람 선수.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인터뷰 잘 부탁드립니다."
"우선 프리미어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그럼 진행해 볼까요?"
"그러시죠."
그 말과 함께 개리 리네커는 PD를 봤고, 피디는 손으로 OK 표시를 주었다. PD의 사인과 함께 카메라가 개리 리네커를 잡자, 개리 리네커는 아까 차분한 목소리와 다르게 텐센을 높여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의 현장 인터뷰! 시청자분들의 열화와 같은 인터뷰 요청 그리고 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성사된 바로 그 인물과 인터뷰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이번 20/21 시즌에 48골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우며 득점왕을 이미 예약한 사나이, 선더랜드를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제일 근접한 위치에 올려둔 선수, 바로 김가람 선수입니다."
개리 리네커의 말에 다른 카메라가 가람을 비추자, 가람은 카메라를 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더랜드의 선수 김가람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선 구단과 약속을 해서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중요한 내용만 다루면서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틀 뒤에 38라운드 첼시와의 홈경기를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이기게 되면 선더랜드는 우승을 하게 되고 패배를 하면 맨시티의 경기 결과에 따라 골득실로 준우승에 머물 수도 있는데요. 경기를 앞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첼시가 감독이 바뀌어 적응한 후 전혀 다른 팀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도 그런 첼시의 전술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8라운드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맨시티가 번리와의 경기에서 이기고 선더랜드가 첼시에게 패배한다면 승점은 동률이 되고,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골득실로 우승팀이 결정되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첼시와의 경기에서 이겨서 그런 복잡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첼시의 전술에 맞춰 저희도 준비하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그 자신감이 최종전에서 선더랜드를 승리로 이끌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 사진에 대해서 아시나요? 요즘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화제가 된 사진인데요."
그 말과 함께 개리 리네커는 방송 스탭에게 받은 판넬을 돌렸고, 거기에는 선더랜드의 유니폼 하의만 입고 오늘의 스포츠를 진행하고 있는 장재현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가람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 사진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축구 해설자이신데요. 유로파 8강전 도르트문트와 선더랜드 경기에서 도르트문트가 이길 거라고 내기를 하셨다가 저런 모습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오 이런.. 벌써 알고 계셨군요. 그 분이 제가 15/16 레스터 우승을 두고 내기를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하셨내요. 한국 사람이면 모두 선더랜드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군요."
"하하하. 그렇네요."
"그럼 유로파 리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결승에서 PSG와 붙게 되셨습니다. PSG전의 에르베 르나르 감독과 킬리안 음바페 선수는 구면이죠."
"그렇습니다. 좋은 기억은 아니네요. 도쿄 올림픽 결승에서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이 떠오르네요."
"뭐. 그런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말씀 드린 건 아니지만, 한번 패배했던 상대이기에 좀 껄끄러우실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첼시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우선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한 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FA컵 결승전도 있으니 아직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말씀을 꺼내셨으니 말씀드리는 부분인데.. FA컵 결승까지 오르면서 만약 프리미어 리그까지 우승을 하고 FA컵까지 우승을 하면 3개,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까지 하면 4개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게 되는 겁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겨울 이적시장에 양쪽 윙어 두 명이 나가면서 좀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자원들이 충원되면서 시즌 초반의 기세를 이어 갈 수 있어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있는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시종일관 너무 과하지도 않고, 적당한 자신감과 겸손한 인터뷰 자세를 취하던 가람을 보며 개리 리네커는 좀 자극적인 말을 꺼냈다.
"사실 저는 이번 시즌에 선더랜드가 4개의 대회에서 우승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선더랜드는 이미 최소한 준우승을 확보한 상태라 다음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게 될 텐데요. 과연 선더랜드가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로 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개리 리네커의 말에 가람은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렵겠죠. 15/16레스터 시티만 봐도 우승한 후 주요 스쿼드 자원들이 다른 팀에 이적했고, 팀도 다음 시즌 이미 레스터 시티의 패턴을 파악해서 레스터 시티가 고생했으니 말이죠."
"이런. 저는 좀 더 패기로운 대답을 하실 줄 알았는데 너무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네요."
"아닙니다. 현실을 봐야겠죠. 실제로 이미 많은 팀에서 우리 팀의 선수들을 탐내하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김가람 선수도 포함되나요?"
흡사 특종이 될 수도 있는 가람의 이적 문제라 개리 리네커는 눈을 빛났고, 그 반응에 가람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그런 문제는 에이전트가 대답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선더랜드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할 때까지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아주 쇄기를 박으시네요. 에이전트는 싫어하겠지만, 구단주는 좋아할 만한 대답입니다. 김가람 선수의 에이전트인 김하늘씨는 선더랜드의 구단주이라.. 복잡 미묘하겠어요. 선수가 이적해야 에이전트로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테지만, 반대로 구단주 입장에서는 김가람 선수를 놓치면 안 되니까 말이죠."
"그렇죠. 하지만 제 이적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구단주님께서도 다시 재계약을 해주신다고 하셨고요."
"그럼 김가람 선수 이적은 없겠지만, 해리 네쳐, 닐 이안, 조지 허니먼, 맥스 파워, 브라이언 오비에도,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같은 선수들은 이미 다른 구단에서 오퍼가 오는 건 연일 뉴스로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의 선수들이 모두 이적한다면 상당히 타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지금 언급하신 모든 선수가 이적한다면 다음 시즌에 상당히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선수가 이적하게 된다면 구단에서도 선수 이적에 맞게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래도 지금의 선수들이 남아서 같이 챔피언스 리그에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팀의 에이스가 공개적으로 이적을 만류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오늘 인터뷰를 선더랜드 선수들이 본다면 좋겠네요."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거든요."
"하하하. 한 방 먹었네요. 이 부분은 절대 편집되지 않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또 나오실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감사합니다."
"가람 선수의 바람대로 선수들이 이적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직 스쿼드의 무게감은 다소 가볍다고 할 수 있는데요. 좀 더 영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수 유형이 있을까요?"
"사실 저희 팀은 모두가 알다시피 젊은 선수들입니다. 유망주가 많죠. 솔라 쇼라티레, 마커스 애드워즈, 요한 필립, 해리 네쳐, 권윤성, 등 많은 선수가 있습니다. 저는 만약 영입한다면 경험이 있는 선수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다는 게 좋기는 하지만 그만큼 부상 등 경기에 못 뛰는 상황이 발생하면 마이너스 아닌가요? 실제로 올리비에 지루나 마리오 만주키치 같은 선수들은 후반기 거의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개리 리네커의 정확한 지적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부분은 맞습니다. 하지만 개리 리네커씨도 알다시피 부상 선수가 단순히 경기에서만 뛰지 못하고, 그 이외에 경기장 밖에서 베테랑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하고 훈련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건 단순히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걸 아시지 않나요?"
가람의 정론에 개리 리네커는 웃으며 답했다.
"아까 한 방 먹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두 방 먹었다고 해야겠죠. 가람 선수가 말한 대로, 베테랑은 경기장 밖에서 더 가치가 있는 법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선더랜드에 와서 함께 챔피언스 리그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가람 선수 구단을 위해 영입을 원하는 선수 유형 타입까지 말해주시네요. 놀랍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 되면 김가람 선수가 선더랜드에 약점이라도 잡힌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시키지 못하면 안 되는 그런 약점이라도 있을까요?"
개리 리네커가 장난으로 던진 말에 가람은 순간 움찔했지만,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없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주세요. 무언가 없으면 이렇게까지 구단의 성적을 위해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축생으로 살아가기 싫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가람이었기에, 순간 말을 멈췄다가, 갑자기 몸에서 자신을 진정시킬 때 느껴졌던 차가운 폭포수로 머리를 맞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입니다. 선더랜드가 유럽 최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가람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듯 누군가 자신의 몸에 들어와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게 자신이 들어오기 전 진짜 가람의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개리 리네커는 순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목이 메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우.. 이런.. 죄송합니다. 이.. 크흠..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흐음.. 잠시만요. 죄송해요."
개리 리네커는 몰입을 했는지 순간 말을 못했고,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런 질문은 한 이유가, 가람 선수를 보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이라고 속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사실 리그 후반에는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견제를 당하며 힘든 경기를 했던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생각지 않은 개리 리네커의 반응에 이 인터뷰는 생각 이상의 시청률을 보여주었고,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더랜드를 유럽 정상에 올리겠다는 가람의 인터뷰는 의도치 않게 잉글랜드 사람들의 응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생각보다 선더랜드의 이적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