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빗나가는 예상[1]
2020년 6월 10일 인천공항
입국장에 수많은 취재진이 누군가의 등장을 기다리는 듯 장사진을 이루며 대기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시계를 보며 런던에서 오는 비행기 시간을 점검했고, 잠시 후 입국장 너머에 보이는 어떤 한 실루엣을 보며 자신들이 기다렸던 인물이 나타났다는 걸 직감했다.
찰칵! 찰칵!!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고 그 카메라가 향하는 곳에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백팩만 메고 등장한 가람이었다.
가람은 수많은 취재진을 두고 긴장하기는커녕 예상했다는 듯 손을 들고 가볍게 인사한 후 미리 대기하고 있는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가람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는 듯 취재진은 경호원들의 벽을 뚫고 어떻게든 사진을 찍고 말을 섞어보려고 했다.
결국 가람은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공항을 힘겹게 빠져나갔고, 그런 가람을 향해 취재진은 수없이 질문을 날렸지만, 가람은 대답 대신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어렵게 준비된 차에 오르자, 가람이 옆에 있는 사내가 불만을 토했다.
"정말.. 인기 스타랑 동행하는 건 힘들군요."
"하하하. 죄송해요. 수석 팀 닥터님."
"그러게. 그냥 잉글랜드에서 쉬지 왜 한국에 오신 겁니까?"
"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만나야 할 사람이요? 가람 선수는 한국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나요?"
"하하하."
강이찬의 팩트폭행에 가람은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피했다.
사실 가람은 이미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했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올 이유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우연히 권윤성과의 통화로 알게 된 인물 때문에 한국에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불만을 품고 있는 강이찬을 보며 내심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박지석과 김하늘이 가람이 걱정된다며 강이찬에게 부탁해서 동행해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시즌 중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비시즌기간인 휴가 기간에 둘의 부탁으로 강이찬이 동행하는 건 솔직히 불편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한국까지 오셔서."
"아닙니다. 어차피 국가대표팀에 가신다고 하셨으니 저도 가서 인사드릴 분도 있고, 온 김에 고향도 들려보면 될 것 같군요."
"고향이요?"
"아. 물론 가람 선수 일정에는 피해는 드리지 않을 생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가람은 약간 신경이 쓰여서 입을 열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충남 공주 쪽입니다."
"공주요? 공주 어디신데요?"
"유구리 쪽인데요."
유구리라는 말에 가람은 약간 신난 듯 말을 이어갔다.
"거기 32번 국도가 지나가지 않나요?"
"아. 네. 지나가는데요. 그런데 가람 선수가 어떻게 그걸 알고 계시죠?"
지금 말한 내용은 당연히 강승연 시절에 알고 있던 정보였다. 32번 국도. 자신이 버려진 국도이니 잊을 수 없는 국도였다.
강승연 시절에 망할 고아원 원장은 아이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버려진 지역으로 부르곤 했는데 자신은 고아원에서 나올 때까지 32번으로 불렸었다.
고아원에서 탈출해 유명 축구 스타가 된 후에도 혹시 자신을 버린 부모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등 번호도 32번으로 정했었다.
하지만 수많은 회귀의 삶을 살면서 32번 등 번호와 그 번호에 대한 유례를 밝혀 부모를 찾고, 심지어 32번 국도를 따라 직접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수소문 했지만 부모의 행방은커녕 심지어 단서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스스로 등 번호를 왜 32번으로 달았는지 점점 잊고, 그냥 수많은 반복과 무의식을 통해 강승연 시절에 계속 익숙한 등 번호인 32번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생각지도 않게 가람으로 되어서도 등 번호를 자연스럽게 32번으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기에 가람은 최대한 얼버무렸다.
"아! 아버지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저희 아버지도 거기 동네 출신이라고 하셨거든요."
"호오. 그래요. 동향분이셨네요. 그런데 아버지분이 고아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네에. 그렇죠. 그래서 저도 한국에 친척은 없는 상황이고요."
"그러시군요."
그때
지이잉~ 지이잉~
강이찬의 핸드폰이 울었고, 강이찬은 핸드폰을 잡고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었고, 가람은 통화를 하라는 듯 손짓했다.
"네에. 여보세요? 아 선배님. 곧 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람 선수요? 물론 같이 있죠."
아마도 국가대표팀에 있는 의료팀 선배와 통화하는 듯 보이는 강하늘을 보며 가람은 창가를 보았다.
인천공항에서 파주로 가는 길, 강승연 시절에서는 수없이 다녔고, 이 길을 다니며 어떻게든 월드컵을 우승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머리가 복잡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강이찬은 통화를 마친 후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가람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차 안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잠시 후
"가람 선수. 가람 선수."
들려오는 강이찬의 목소리에 가람은 눈을 떴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도착했나요?"
"네. 도착했어요. 내리시죠."
그 말과 함께 강이찬과 김가람은 차에서 내렸고, 가람의 차를 추격했는지 가람이 내리는 동시에 수많은 기자가 쏟아져서 가람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이찬은 가람을 미끼로 두고 혼자 빠져나가 국가대표 훈련장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강이찬의 요청에 나타난 경비들의 안내로 가람도 훈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석 팀 탁터님 엄청 민첩하시네요. 저는 순간 혼자 갇히는 줄 알았어요."
"뭐.. 김하늘 구단주님이 미리 언질을 해주셔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도록 하죠."
그렇게 강이찬과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에 있는 국가대표 감독인 벤투 감독과 스탭들 그리고 김철수를 볼 수 있었다.
가람은 걸음을 옮겨 벤투 감독에게 다가갔고, 훈련을 지시하던 벤투 감독은 가람을 보고 웃으며 포르투갈어로 말했다.
"몸은 괜찮나?"
벤투의 말에 가람도 포르투갈어로 말했고, 철수는 강이찬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는 괜찮은데요. 주변에서 다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몸조심하도록 하고, 오늘은 연습을 참관하고 싶다고?"
"네. 맞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연습도 같이하고 싶습니다."
사실 국가대표 선수로 뽑힌 선수도 아닌데 훈련장에 나타나는 건 예외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가람은 김하늘과 박지석이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국가대표 훈련장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협회 측에서도 가람이 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벤투 감독도 자신의 부름에 부상 당한 몸이지만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하는 가람을 보며 기특하다는 생각에 허락했다.
"훈련 참여라... 나는 환영이지만, 네 옆에 붙어계신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 철수 씨."
강이찬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벤투 감독의 호출에 다가온 철수는 벤투 감독의 말을 강이찬에게 전했고, 강이찬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하아.. 설마 가람 선수 이러려고 여기 온 건가요?"
"하하하.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훈련하면 좋잖아요."
"가람 선수도 알겠지만, 구단에서도 몇 번이나 검사했지만 몸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래도 의식을 잃었다는 건 사실이니 최대한 무리하지 않게 뛰세요. 100%가 아니라 80%로 뛰라는 이야기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허락을 받은 가람은 이미 준비라도 했다는 듯 자신의 가방에서 장비를 꺼내 입으려고 하자, 벤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 자네 장비도 라커룸에서 치우지 않은 상태니 거기서 쓰도록 해."
"아. 감사합니다."
이미 벤투 감독은 가람이 국가대표를 방문한다고 했을 때부터 연습 상대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준비해둔 상황이었고, 가람은 그런 벤투 감독의 배려로 옷을 갈아입은 후 연습장에 나왔다.
그리고 가람이 연습장에 도착하자, 가람의 모습을 보고 선수들이 나타나 한마디씩 건네며 건강을 물었다.
이제는 국가대표 붙박이가 된 김만재, 권윤성, 이강운이 다가와 안부를 물었고, 기성룡과 손홍민도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번에 국가대표로 차출된 선수들은 대부분이 가람을 알고 있는 선수들이기에 가람도 가볍게 인사를 건넸고, 그 와중에 가람은 전봇대처럼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인물을 볼 수 있었다.
강승연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나이든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앳된 얼굴이었고, 가람은 초면이지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노망준이라고 합니다."
"그래. 반갑다. 너 몸이 좋다."
195cm, 100kg 다부진 몸에 격투기 선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놀라운 피지컬을 가진 노망준이었다.
흑인 혼혈로 단순히 근육질이 아니라 사기적인 탈력과 순간 스피드를 가졌다.
'단순히 피지컬 뿐 아니라 수비적인 판단력이나 영리한 몸싸움은 거의 사기급이었지.'
아마도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노망준의 잠재력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건 바로 가람일 것이었다.
강승연 시절에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건 강승연이 공격에서 이끌고 47살의 나이라고 믿기 힘든 움직임과 수비를 보여주었던 노망준이 수비를 이끌어서였을 것이었다.
물론 권윤성이 은퇴하기 전 권윤성 노망준 듀오로 센터백이었을 때 더 우승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때는 강승연의 철없던 행동으로 퇴장을 당해 경기를 마감했었다.
가람으로 회귀한 후에 권윤성에 이어 두 번째로 얻어야 하는 인재로 점찍어둔 인물이었다. 그리고 노망준이 바로 김하늘에게 요청해 영입할 선수였다.
'흐음.. 근데 지금 축구를 할 때가 아닐텐데..'
노망준은 어려서부터 축구를 한 게 아니라 2022년에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의 대패를 보고 원래 미식축구를 준비하던 중에 축구로 전향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축구를 하고 있고, 심지어 연령별 국가대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가대표에 뽑힌 것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권윤성이 다가와 노망준과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 이거 바로 팬 미팅이 벌어졌네?"
"팬 미팅이요?"
"그래. 임마. 노망준 너 말 안 했냐?"
"그.. 그게 떨려서..."
"으이구, 덩치는 크지만 하는 게 꼭 닐 이안이랑 똑같네. 가람아. 네 팬이래. 네 플레이보고 반해서 축구를 시작했다고 하더라,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되었는데 고교대회 득점왕이야."
"으응? 뭐라고요?"
순간 가람은 무언가 잘못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물었고, 그 말에 권윤성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긴 나도 믿기지 않는다. 6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국가대표 차출이라니 완전 대박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득점왕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맞아. 득점왕이야."
그 말에 노망준이 허리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17살,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노망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김가람 선배님."
노망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람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