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빗나가는 예상[2]
“노망준 선수 움직임이 좋은데요.”
수석코치인 세르지우 코스타의 말을 들은 벤투 감독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최종전에 고등학교 출신으로 뽑은 건 좀 빠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네 빈자리는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네. 좋은 움직임이네요. 솔직히 놀랄 정도예요.”
가람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노망준이 스트라이커 포지션이라고 했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지만, 함께 훈련을 해보니 확실히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포지션 훈련이 끝난 후 청백전 연습경기에서 보여주는 노망준의 움직임은 하나 하나에 이전부터 미식축구를 준비하던 것이 있어서 그런지 전술 이해도나 팀 스포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움직임을 바탕으로 전술적인 움직임이 상당히 뛰어났다.
쿠우웅!!
삐이익!
“노망준! 연습 시합이니 살살해라!!”
노망준과 몸싸움을 하던 김만재가 오히려 노망준의 몸싸움에 밀려 쓰러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권윤성이 뭐라고 했고, 노망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죄송하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연습 시합이라 힘을 빼고 있는 김만재라고 해도 저렇게 몸싸움에서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역시 몸싸움은 이미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기는 다시 김만재가 있는 백팀의 공으로 시작되었고, 노망준이 있는 청팀은 뒤로 물러서며 수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세르지우 코스타가 뭐라고 말했고, 옆에 있는 김철수가 세르지우 코스타의 말을 옆에서 듣고 통역해 크게 소리쳤다.
“노망준 선수 너무 뒤로 가지 말고 전방에서 압박하도록 하세요. 이강운 선수는 계속 노망준 선수에게 기회를 주시고요.”
그 말에 노망준과 이강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백팀의 프리킥은 골키퍼인 조현웅이 찼고, 공은 순식간에 하프 라인 쪽으로 날아갔다.
그때
타타타탓!!
노망준은 아까 세르지우 코스타의 지시를 잊은 듯 공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세르지우 코스타는 전방에서 수비 압박을 하라는 자신의 지시를 잊은 것에 살짝 실망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람은 그 장면을 보며 눈을 빛냈다.
‘정말 노망준이라면..’
노망준은 순식간에 공의 낙하지점을 파악하며 큰 키로 순식간에 뛰어갔고, 누구나 놀랄 정도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점프로 공을 따냈다.
‘언제 봐도 일품이네.’
미식축구를 준비하던 노망준의 주요 포지션은 러닝백과 리시버를 겸임했었다.
러닝백은 아군에게 공을 받아 빠른 발과 몸싸움으로 적들의 수많은 블록들을 돌파해서 터치 라인 까지 도달하는 임무를 하는 것이었고, 노망준의 러닝백 스타일은 적진을 부셔버리는 탱크라고 할 수 있는 파워백이었다.
한두 명의 수비가 자신을 잡아도 강한 하체와 허리 힘 그리고 탄탄한 체격으로 수비에 아랑곳 하지 않고 파워 플레이를 통해 돌파하는 것이 노망준의 스타일이었다.
또 다른 겸임 포지션이었던 리시버는 미식축구의 공격 총사령관인 쿼터백의 패스를 어떻게든 잡아내서 터치 라인까지 돌파하는 게 일이고, 공의 낙하지점을 포착하는 능력과 공을 잡아내고자 하는 집념이 필수인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게 축구에 접목해 말도 안 되는 몸싸움으로 상대를 박살 내고 리시버 시절에 공중볼을 잡아내는 솜씨로 먼저 공의 위치를 선점해서 공을 커팅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람도 강승연 시절에 공중볼에서 위치를 점하는 능력이나 몸싸움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지만, 노망준을 만나 배움을 받은 후 실력이 더욱 발전할 정도로 그 부분에서는 일인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노망준은 공을 따낸 후 바로 이강운에게 공을 연결한 뒤 바로 공격 쪽으로 달려들었고, 이강운은 노망준이 패널티 에어리어 인근까지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노망준이 받기 편한 위치에 패스를 뿌려주었다.
토오옹!
이강운의 패스는 노망준이 받기 좋은 위치로 정확히 연결되었고, 노망준은 공을 받은 순간 등 뒤에 있는 김만재를 등지며 공을 지켜냈다.
그리고 또다시 노망준이 김만재의 몸싸움을 이겨내며 슈팅 위치를 잡아내려고 하자, 권윤성이 달려들어 노망준의 공을 노렸다.
토옹!
결국 권윤성과 김만재의 협력 수비에 권윤성이 정확히 공을 터치해 노망준의 공을 빼어낼 수 있었다.
‘역시 드리블이 약해.’
노망준이 어려서부터 축구를 한 게 아니라 나이를 먹어서 축구를 접했기 때문에 제일 큰 문제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공을 다루는 일이었다.
바로 드리블이 약점이었다.
드리블은 공을 오랫동안 차면서 공에 대한 감각을 발에 익히는 것으로 이게 나이를 먹기 전 어린 나이 때부터 맨발로 시작해서 그 감각을 이용해 민감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해오지 않았다면 커서 훈련해도 어렸을 때부터 드리블을 연습했던 선수와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노망준은 그걸 축구 선수 생활하면서 느꼈고 뒤늦게 피나는 노력 끝에 결국 상당한 드리블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노망준은 축구를 시작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 노망준이었고, 수비 지능이 뛰어난 권윤성은 단번에 그런 노망준의 단점을 파악한 것이었다.
그렇게 경기는 노망준이 뛰어난 피지컬과 수비 커버 능력으로 공을 따내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권윤성이 노망준을 마크하면서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벤투 감독이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축구를 시작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 것 같네. 자네가 혹시 한 수 보여줄 수 있겠나?”
시범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말에 가람은 강이찬을 봤고, 강이찬은 가람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너무 과격한 움직임은 안 된다고 해도 과격하게 움직일 거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짧고 굵게 시범을 보여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람은 가볍게 몸을 풀었고, 강이찬은 벤투 감독에게 이야기해서 5분 정도만 뛰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벤투 감독은 스탭에게 시켜 가람의 플레이를 영상으로 찍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자 김철수가 크게 소리쳤다.
“노망준 선수 교체예요. 들어오세요.”
교체 이야기에 노망준은 실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고등학교 전국대회에서 팀을 단번에 우승시키고 연령별 대표팀이 아니라 바로 국가대표의 부름을 받으면서 노망준은 솔직히 자신의 능력이면 충분히 국가대표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지만 권윤성에 막혀 골을 제대로 다뤄보지 못하고 교체되어 나가니 스스로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힘 없이 사이드 라인으로 나가자, 가람이 안으로 투입되었고, 노망준이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벤치 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하자, 김철수가 노망준을 불렀다.
“노망준 선수! 감독님이 앉아서 땀을 식히지 말고, 서서 김가람 선수의 플레이를 보라고 하셨어요. 5분 뒤에 다시 투입될 겁니다.”
“네? 다시 투입이요?”
“네. 김가람 선수가 몸 컨디션이 안 좋은 건 알고 계시죠. 지금 김가람 선수가 들어간 건 노망준 선수에게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들어간 거예요.”
생각지 않은 말에 노망준은 자신의 롤모델이자 스타인 가람의 플레이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강운! 패스! 한 골 넣자.”
가람은 들어오자마자, 이강운에게 패스를 요청하며 골을 당연히 넣을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그 모습에 백팀 선수들은 순간 욱했다.
그리고 이강운은 가람이 들어오는 걸 보며 심통을 부리듯 말했다.
“‘형님 패스 주세요’라고 해야지 패스가 가는 거지. 어디서 주문이야!”
“응! 닥치고 패스나 줘!”
이강운은 심통 났다는 걸 가람에게 어필이라도 하듯 가람의 앞 공간에 패스를 주었지만, 김만재나 권윤성이 쉽게 걷어낼 수 있는 공간에 패스를 뿌렸다.
아까 노망준에게 받기 좋게 섬세하게 패스를 준 것과는 다르고 상당히 불친절한 패스였다.
타타탓!
하지만 가람은 자신의 빠른 발을 이용해 김만재와 권윤성보다 먼저 공간을 선점해 공을 단 한 번의 터치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만재 선배! 가람이한테 한 방 먹여주자고요!”
권윤성의 말에 김만재는 대답 대신 빠르게 가람의 앞공간을 막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가람이 공을 잡는 순간 김만재와 권윤성은 연습경기가 아닌 실전처럼 가람을 마크하기 시작했다.
아까 노망준을 상대로 훈련하는 모습과는 천지차이의 모습에 노망준은 순간 놀랐고, 주변에 있는 코치 스탭들 특히 강이찬은 그 모습을 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살살해요!! 김가람 선수 아직 부상.. 아니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요.”
하지만 이미 승부욕이 불타고 있는 김만재와 권윤성은 과격한 수를 쓰더라도 가람을 마크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람은 그런 김만재와 권윤성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가 김만재가 다가오자, 노망준이 그랬던 것처럼 등을 지며 김만재와 몸싸움을 했다.
쿠우웅!
노망준을 마크할 때와 다르게 전력을 다하는 것 같은 김만재의 몸싸움에 노망준은 화들짝 놀랐다.
아까 몸싸움을 할 때와 다른 박력과 패기를 봐서는 자신을 상대할 때는 연습한다는 생각에 약하게 몸싸움을 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 정도로 몸싸움을 하면 자신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람은 김만재와의 몸싸움에서 흔들리지 않고 몸싸움을 버텼고, 신기한 건 몸을 부딪힌 건 김만재였는데 충격에 튕겨 나온 것도 김만재라는 점이었다.
단순히 몸싸움하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상대방에게 돌려주는 꼭 무협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노망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휘리릭~
게다가 가람은 김만재를 몸싸움에서 이겨낸 후 이어진 권윤성의 재빠른 가로채기를 공을 반대편 발로 보내면서 권윤성이 헛발질을 하게 유도했다.
그렇게 가람은 수비를 당하는 순간에 되려 찬스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모습에 노망준은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더 눈을 떼지 못할 장면은 다음에 이어졌다.
토오옹~
가람은 김만재와 권윤성이 재차 동작을 이어 나가기 전에 그 틈을 파고들며 공을 김만재의 다리 사이로 보낸 후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민첩한 동작에 김만재는 그대로 자신의 가랑이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타이밍에 최종수비가 벗겨지자, 조현웅이 다급하게 나오며 가람이 슈팅하지 못하도록 각도를 좁혔다.
그 순간
뻐엉!
가람은 조현웅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반대편 골대를 보며 정확하게 슈팅을 때렸다.
그리고
철썩!
가람은 들어오면서 자신이 이야기한 것처럼 손쉽게 골을 넣고는 벤치를 보며 포르투갈어로 말했다.
“어떤가요? 감독님?”
“노망준에게는 좀 어려운 것 같은데 따라하기 쉬운 동작으로 다시 한번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벤투 감독과 대화를 나눈 후 가람은 이강운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강운아. 다시 한번 골 넣어야겠다. 망준이한테 시범 보여줄 수 있도록 좋은 패스를 주고!”
“형님이라고 부를 때까지는 좋은 패스 없어!”
그렇게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5분 동안 가람은 연습경기에서 노망준에게 시범을 보여준다고는 명목하에 3골을 더 넣었고, 가람이 골을 넣으면 넣을수록 김만재, 권윤성, 조현웅의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