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영입의 시간[5]
175cm에 햇빛에 많이 탄 것 같은 피부와 안경을 낀 인상 좋은 사내가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김가람 선수, 이강운 선수. 저는 오늘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될 MC 삼바입니다.”
“MC 삼바요?”
“으이구 동생아. 예명이지. 설마 이름이겠어?”
이강운이 가람에게 면박하자, 가람이 바로 헤드락으로 응징했다.
“하하하.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이렇게 좋은 취지의 캠페인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바로 녹화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제 없으시죠? 제가 ‘나와주세요’ 하면 제 옆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가람이 대답하자, 이강운이 가람의 헤드락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설마 저기 구멍에 공을 넣으라고 하지 않겠지?”
“그건 내가 말하고 싶은 거다. 원래 과녁 같은 거에 맞추는 거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그렇게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에 MC 삼바가 텐션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드디어 모든 분이 기다렸던 분들과 함께 합니다. 한국 축구의 보물들! 한국 축구의 미래!! 이강운 선수! 김가람 선수입니다!! 나와주세요!!”
MC 삼바의 말에 가람과 이강운은 MC 삼바의 옆에 섰다. 그러자 MC 삼바가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과연 두 분과 함께 할 수 있을까 매번 이야기했는데요. 박지석 감독님이 이강운 선수를 지목했지만, 김가람 선수를 지목하지 않아서 과연 김가람 선수가 나올지 몰랐는데 이렇게 나오셨습니다. 우선 두 분 소감부터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강운 선수부터 말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이강운입니다. 이렇게 좋은 취지에 캠페인에서 박지석 감독님의 지목을 받고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깔끔한 멘트군요. 그럼 김가람 선수 소감 부탁드릴게요.”
순간 가람은 평소 인터뷰가 아니라 이런 자선 캠페인에 나와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때 가람의 몸에 살짝 뜨거운 기운이 맴돌면서 알 수 없는 용기가 나기 시작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김가람입니다. 유로파 결승전이 끝난 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었지만, 팬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건강해진 모습으로 앞으로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병원에 있으면서 팬들의 응원과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지 고민했는데요. 이강운 선수가 이런 좋은 취지의 캠페인에 나온다고 해서 함께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람은 자신의 의지와 거의 상관없이 낯부끄러운 말도 술술 나오는 자신을 보며 살짝 놀랐고, 주변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순간
-우와!!
-김가람 사랑해요!!
원래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방송 스탭들이 가람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환호했고, 그 모습에 MC 삼바도 살짝 감동한 듯 입을 열었다.
“김가람 선수! 왠지 모르게 가람 선수의 말에 진심이 담긴 것 같아서 기분이 살짝 울컥했습니다. 말을 정말 잘하시네요.”
“과찬이십니다.”
“두 분 소감은 들어봤습니다. 우선 원래 했던 챌린지가 있었는데요. 이강운, 김가람 선수가 나온다는 소식에 스탭들이 다른 챌린지를 해보자고 이야기를 해서 바꾸게 되었습니다. 지금 뒤에 보시면 골대에 검은 천으로 다 가렸는데요. 한군데만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보이시나요?”
MC 삼바의 말에 이강운이 입을 열었다.
“저기에 설마 공을 넣어야 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정확히는 패널티 에어리어 서클 앞에서 차셔야 합니다. 쉽게 생각하시면 프리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그렇다고 프리킥으로 차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구멍에 넣기만 하면 되죠. 이강운 선수와 김가람 선수의 놀라운 정확도를 생각해서 마련한 챌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이강운이 되물었다.
“여기서 보기에 살짝 공간이 작아 보이는데 정말 공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 건가요?”
이강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송 스탭중 하나가 뛰어가서 공을 들고 구멍에 공을 가지고 갔다.
정말 공 딱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은 구멍이었고, 스탭이 손으로 밀자 공이 겨우 들어가게 되었다.
“의문이 풀리셨나요?”
그걸 본 이강운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MC 삼바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걸 저희는 프로 선수들을 초빙해서 해봤는데요. 전부 다 실패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공에 의의를 두고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거든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기부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존에는 참가하신 선수 중 과녁에 맞춰 높은 점수를 얻으신 분의 이름으로 기부가 진행되었다면 이번에는 10번 차서 누가 더 많이 성공하느냐에 따라 그분의 이름으로 기부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떤가요?”
“어떤가요라고 말해도 사실 저 위치에 공을 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
매번 자신만만하던 이강운도 지금 저 공간에 정확히 공을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MC 삼바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답했다.
“물론 어렵겠지만, 다른 분들도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의 축구 보물들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과녁을 맞추는 것보다 이렇게 좀 어려운 미션을 성공하시면 성취감도 생길 겁니다. 제 아이디어지만 저 스스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김가람 선수나 이강운 선수 모두 프리미어 리그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으셨으니 이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람과 이강운은 MC 삼바가 자신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못한다고 말은 할 수 없었다.
이강운이 살짝 난처한 모습을 보이자, 가람이 이강운을 보며 작게 말했다.
“왜? 못할 것 같으면, 기권해도 봐줄게.”
“뭐야! 기권은 무슨? 너야말로 쫄리면 빠져라. 괜한 망신 당하지 말고!”
“오오! 두 분의 신경전이 벌써 시작되었네요. 누가 먼저 차실 건가요?”
사실 누가 먼저 차는 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먼저 차는 사람의 코스를 보고 뒷사람이 충분히 참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가람뿐 아니라 이강운도 눈치챘고, 가람에게 넌지시 말했다.
“동생이 먼저 차던가? 형님이 양보할 수 있어.”
“아니죠.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다고 매번 이야기했던 형님이 먼저 차셔야죠.”
“하하하. 두 분이 이렇게까지 양보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공평하게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시죠.”
-가위, 바위, 보!
MC 삼바의 구호에 맞춰 가람과 이강운은 가위, 바위, 보를 했고, 결국 주먹을 낸 가람이 이강운의 가위에 이기며 늦게 차게 되었다.
이강운은 패널티 에어리어 서클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자세를 취했고, 손을 올리자, MC 삼바가 말했다.
“자! 그럼 1회차입니다. 삐익!”
휘슬의 소리와 함께 이강운은 자리에서 가볍게 뛰다가 공을 찼다.
뻐어엉!!
처음 찬 것 치고는 정확하게 왼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아갔고, 어쩌면 단 한 번의 킥으로 성공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터어엉!!
“아! 이강운 선수의 프리킥! 왼쪽 골대 상단에 아슬아슬하게 맞았습니다. 만약 이게 천으로 덮은 게 아니었다면 골대 안쪽을 맞고 골문 안쪽으로 들어갈 공이었지만, 아쉽게도 실패!”
이강운은 감을 한 번에 잡았는지 다시 공을 달라고 이야기했고, 바로 준비를 마친 후 MC 삼바의 신호 없이 두 번째 킥을 찼다.
뻐어엉!
휘릭!
이강운이 찬 공은 복사라도 한 것처럼 아까 찬 코스와 거의 흡사한 코스로 날아갔다.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이강운은 이번에 약간의 회전을 넣었고, 공은 구멍 바로 앞에서 살짝 휘어졌다.
퍼엉!!
이번에는 구멍 바로 아래쪽을 맞추었고, 공은 천에 맞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쉽습니다. 구멍 바로 아래쪽 같은데요. 김가람 선수가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정확하게 저 구멍에 맞추지 않으면 성공시킬 수 없는 거라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강운이가 공을 제법 차는 녀석이라 단 두 번만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아요. 앞으로 두 세 차례가 지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강운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세 번째 공을 찼다.
뻐어엉!
하지만 이번에는 공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왼쪽 골대 상단이 아니라 방향이 크게 벗어나며 골대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본 가람이 입을 열었다.
“저렇게 집중력이 떨어지면 하나도 성공 못 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리고 가람의 말을 들었는지 이강운이 가람과 MC 삼바가 있는 곳을 향해 크게 외쳤다.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해!”
“아 이강운 선수 살짝 흥분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렇게요. 흥분은 좋지 않은데요. 저로서는 이길 가능성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가람의 말이 현실이 되는 듯 이강운은 연달아 공을 찼지만, 대부분 아쉽게 구멍 근처까지는 갔지만 구멍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이 남은 상태였다.
“이강운 선수 마지막 공입니다. 집중하셔야 합니다.”
MC 삼바의 말에 이강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솔직히 한 개는 성공시킬 줄 알았던 이강운이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가람도 살짝 긴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강운은 몸에 힘을 빼며 최대한 길게 심호흡을 하더니 공을 찼다.
뻐어엉!!
이강운이 찬 공은 정확하게 구멍을 향해 날아갔다.
털컥!!
구멍에 정확히 들어가며 천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강운은 흡사 골을 넣은 것처럼 좋아했고, 그 순간 MC 삼바가 크게 외쳤다.
“이강운 선수! 마지막 시도에서 성공했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었는데요. 이걸 성공시키는 이강운 선수 대단합니다.”
이강운은 성공시킨 후 바로 가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교대하듯 가람은 패널티 에어리어 서클 앞에 서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강운이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마지막에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제 생각에는 가람이가 아무리 킥정확도가 높다고 해도 저처럼 한 개나 운이 좋으면 두 개 정도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살짝 박하게 평가하신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제 개인적인 느낌일까요?”
“아닙니다. 이건 제가 챌린지를 해본 경험으로 솔직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김가람 선수 준비를 끝내신 것 같습니다. 자 그럼 1회차입니다. 삐익!”
MC 삼바의 휘슬과 함께 가람은 손을 들고 바로 공을 찼다.
토오옹!
가람이 찬 공은 이강운이 찬 것과 다르게 바로 골대를 향해 날아가도록 직선으로 강하게 찬 게 아니라 공의 아랫부분을 강하게 걷어 올려서 큰 포물선을 그리도록 찼다.
만약 정말 프리킥이었다면 앞에 있는 수비에 맞혀 골이 될 수 없는 그런 궤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미션은 프리킥으로 골을 넣으라는 게 아니라 구멍에 공을 넣으라는 것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공은 살짝 높게 날아가더니 골대 왼쪽 상단을 앞두고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털컥
검은 천에 살짝 걸리더니 바로 구멍을 넘어갔고, 단번에 성공시킨 가람은 웃으며 이강운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이강운은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미션이 구멍에 공을 넣는 거였는데 굳이 프리킥을 차듯이 강하게 찰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강운은 가람이가 연달아 성공시킬까 하는 심정으로 가람을 쳐다봤지만, 뒤이어 두 번째 시도에서 같은 방법으로 가람은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총 10번 차기에서 막판에 집중력을 잃어 두 번 놓치게 되면서 8번 성공하며 가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지 않은 가람의 놀라운 실력에 MC 삼바는 어떻게든 이강운을 위로하면서 프로그램 마무리하게 되었고, 가람은 이강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켜라! 알았지?”
그렇게 이강운은 선더랜드의 제안이 온다면 임대 영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가람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