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여름 이적 시장[2]
핸드폰 액정에 찍힌 이름은 김하늘이었다.
'응? 하늘이 형이?'
원래 가람이 오전 시간에 훈련하는 건 에이전트인 김하늘도 알고 있었고, 평소 훈련에 방해된다고 연락하지 않는 김하늘이었기에 지금 오는 연락이 의아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인물 때문이라면 충분히 전화할 법하다는 생각에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가람아. 거기로 즐라탄 선수 가지 않았어?”
“네. 맞아요. 지금 여기 왔어요. 훈련 같이 한다고 하는데요.”
“그래. 갑자기 너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지금 훈련 중일 거라고 하니깐 바로 찾아가더라. 훈련에 방해되지는 않겠지?”
“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런데 한 가지 더 미안한 일이 있을 것 같다.”
“미안한 일이요?”
“그게. 오늘 인터넷 개인 방송에 출연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개인 방송이요?”
가람이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부우웅~
요란한 외제차 소리와 함께 훈련장에 차가 등장하더니 거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면서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 무리를 이끈 사람은 선더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가람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런 체형에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쓰는 인물은 선더랜드에 없는 인물이라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건 경비실에서 통과를 해주었다는 이야긴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등 뒤에 있는 즐라탄이 입을 열었다.
“시끄러운 녀석이 오는 것 같군.”
“시끄러운 녀석이요?”
가람이 되묻기도 전에 아까 봤던 선더랜드의 옷을 입은 그 선수가 가람에게 뛰어왔고, 가람은 그가 근처에 오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
“가람!! 드디어 만났네. 에이전트를 통해서 이야기는 들었지? 오늘 내 방송에 출연하는 거 말이야.”
생각해보니 아직 통화하는 중이라 가람은 핸드폰을 들었지만, 이미 핸드폰 너머로 대화를 들었는지 김하늘은 통화를 끊은 상태였다.
“듣기는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는?”
“어떻게는?”
세르히오 아게로는 등 뒤돌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선더랜드 유니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걸 본 즐라탄이 대신 입을 열었다.
“오늘 나랑 같이 싸인을 했어.”
“아. 그렇군요.”
“지난번에 약속했지? 에이전트랑 이야기하면 내 개인 방송에 출연해준다고.”
“아. 그건 그렇죠. 이미 이야기가 되셨다면 제가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죠. 그렇지만 지금은 훈련해야 해서..”
“걱정하지마. 오늘 컨텐츠는 이적 이야기, 선더랜드 1군 훈련장 시설 소개 그리고 훈련까지 총 3부작으로 찍을 예정이야. 여기는 내 방송 스탭인..”
세르히오 아게로는 자신의 방송 스탭들을 소개했고, 작가, 오디오, 카메라맨 조명까지 4명으로 구성된 방송 스탭들은 생각보다 알찬 구성이었다.
그렇게 세르히오 아게로의 방송에 출연하게 된 가람은 마이크를 차게 되었고, 선더랜드 1군 훈련장을 즐라탄과 세르히오 아게로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가람이 소개를 하는 동안 노망준은 가람이 알려둔 드리블 훈련을 계속하고, 가람이 돌아올 때까지 훈련하기로 했다.
다른 선수라면 가람과 훈련할 때 가람이 자리를 비우면 휴식을 취하겠지만, 노망준은 훈련에 열성을 쏟는 스타일이라, 가람이 없어도 스스로 훈련을 할 거라고 믿고 안심하며 가람은 즐라탄과 세르히오 아게로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라커룸부터 헬스 훈련 시절 그리고 1군 훈련장의 꽃이며, 지역 사회 아니 이미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맛과 철저한 식단 관리로 유명한 선수 식당까지 순서대로 안내를 진행했다.
그때
삐릭!
핸드폰의 작은 울림과 함께 강이찬이 보낸 문자를 볼 수 있었다.
[김가람 선수! 지금 식당 안내를 마치시고 의료실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이미 김하늘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지 아니면 세르히오 아게로의 방송을 보고 있는지 가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강이찬의 문자에 가람은 살짝 의아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의료실도 설명해야 하기에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선더랜드 의료실이에요. 단순히 부상뿐 아니라 부상 예방 관련 치료, 재활 치료를 하고 있어서, 노장 선수들이나 이전에 큰 부상 기록이 있는 선수들은 이곳을 자주 찾게 돼요.”
“이 몸하고는 크게 상관 없는 곳이네.”
즐라탄 이모라히비치가 만 39살이라는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기에 가람과 세르히오 아게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강이찬이 나타났다.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디컬 테스트 이후 처음이죠?”
강이찬의 등장에 순간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즐라탄과 세르히오 아게로가 뒷걸음질을 쳤고, 그 모습에 가람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강이찬이 들고 있는 차트를 열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즐라탄 선수는 왼쪽 무릎이고,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는 아이고~ 잔부상이 많으니 여러 가지로 처방을 받으셔야겠네요. 들어오시죠.”
그 말에 즐라탄은 무슨 일이라도 당했는지 큰 덩치에 불구하고 가람의 등 뒤에 숨으며 입을 열었다.
“가람. 메디컬 센터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아. 메디컬 센터는 구장에 있지만 훈련 중 부상이나 아까 말한 재활 치료는 1군 훈련장에 있는 의료실에서 진행되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가람의 말에 즐라탄이 아니라 세르히오 아게로가 대신 입을 열었다.
“아니. 메디컬 테스트 끝나고 팔뚝만 한 장침을 허벅지에 꽂았다고! 그것도 웃으면서 말이야. 저 사람 정상이 아니야.”
“그건 부상 예방 치료라 괜찮아요.”
가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료실에서 다른 의료팀이 나오더니 즐라탄과 세르히오 아게로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고, 강이찬은 방송 스탭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의료실은 나름 보안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공간이라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오디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강이찬은 방송 스탭에게 그렇게 말한 후 문을 닫았고, 잠시 후 오디오에는 즐라탄과 세르히오 아게로의 비명이 들려오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가람은 예상이 갔지만, 방송 스탭들은 고문을 당하는 건 아닌지 당황했고, 그런 그들을 향해 가람은 안심하라며 대충 한의학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길어지는 치료에 가람은 방송 스탭들을 데리고 다시 훈련장으로 향했고, 방송 스탭들은 세르히오 아게로가 다시 올 때까지 정비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가람은 드리블 훈련을 하고 있는 노망준을 만날 수 있었다.
“망준아! 이제 마무리 훈련하고 끝내도록 하자.”
“마무리 훈련이요? 아직 훈련 시간이 남은 것 같은데요.”
“그건 맞지만, 오늘 보니깐 저 두 명이 부상 예방 치료 끝내고 나면 활기찬 표정과 몸으로 훈련 같이 하자고 할 테니 우리가 어울려줘야 할 것 같아.”
“알겠어요.”
그렇게 가람과 망준이 스트레칭을 하며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자,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즐라탄 세르히오 아게로가 훈련장에 나타났다.
둘의 표정은 밝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체크해보는 듯 이곳저곳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가람은 이전에 치료를 처음 받고 놀라워하던 올리비에 지루와 마리오 만주키치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속도를 올린 세르히오 아게로가 가람에게 뛰어오더니 입을 열었다.
“너 경기장에서 매번 몸을 사리지 않더니 이런 마법 같은 치료를 받았구나! 완전히 컨디션이 좋은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꾸준히 치료를 받으셔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죠?”
“물론이지. 그런데 내 방송 스탭들은?”
“잠시 정비한다고 하셨어요.”
“그래. 그럼 나는 방송 스탭 데리고 올 테니깐 먼저 훈련하고 있어. 나도 참여할 테니 도망가면 안 된다.”
“알겠어요.”
그렇게 세르히오 아게로가 방송 스탭을 찾으러 떠난 후 즐라탄이 나타나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이제 훈련을 해볼까?”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아까 보니깐 망준이는 드리블 기본 훈련만 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포지션은 어디야?”
즐라탄의 빠른 말에 노망준은 알아듣기 어려운 표정을 하자, 가람이 대신 입을 열었다.
“망준이는 아직 영어에 능숙하지는 않아서요. 제가 대신 답해드릴게요. 망준이는 지금 중앙 수비수 역할이기는 한데요. 축구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본 훈련을 하고 있어요.”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네에. 이제 한 8개월 정도 되었을 거예요.”
즐라탄은 지난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한 선더랜드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 시즌도 사실 AC밀란에서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김하늘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말로 즐라탄이 필요하다고 해서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었는데 축구를 얼마 배우지 않은 선수가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나름 결론을 내린 즐라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주전이 아니라 2군 선수인가?”
“뭐 그건 제가 정하는 건 아니지만, 박지석 감독님은 1군 후보 선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즐라탄은 자신이 생각한 강팀이 아니라는 생각에 살짝 실망했고, 그 모습에 가람은 단번에 즐라탄의 말과 행동을 파악하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망준이에 대해서 실망하신 것 같은데요. 한번 1 대 1 해보실래요?”
“뭐어? 아니 그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아. 그렇죠. 제가 망준이에게 살살하라고 말할게요.”
“어엉!! 내가 이 몸이 다친다고? 나 즐라탄이야. 너 실수하는 거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누가 실수하는지 모르겠네요.”
“차암. 그래. 한번 해보자.”
즐라탄은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고, 가람은 망준이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망준아. 저기 즐라탄 아저씨가 너가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만만하게 보시는 것 같다. 있는 힘을 다해서 수비해드려.”
“네에. 있는 힘을 다해서요? 그럼 다치실 텐데요.”
노망준도 물건은 물건이라 즐라탄의 피지컬을 보고도 오히려 즐라탄을 걱정하는 걸 보며 가람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런가? 그럼 80% 정도 힘을 내도록 해. 다치면 안 되니깐 말이지. 대신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만약 지면 추가 훈련 들어갈 거야.”
“추가 훈련은 좋은데요.”
생각지 않은 노망준의 말에 가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나랑 훈련하는 거 일주일 동안 금지다.”
“앗! 그건!! 안 돼요!”
“그래. 그럼 네 능력을 보여줘라.”
그렇게 사기 충전된 노망준은 즐라탄과 1 대 1 경합을 하기로 했다. 발로 패스를 받아서 돌파하는 거 3번, 공중볼로 패스를 받는 거 3번, 총 6번을 해서 승부를 보는 것이었다.
준비를 마치자 가람이 직접 즐라탄을 보며 패스를 넣었고, 그렇게 승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