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여름 이적 시장[3]
쿠우웅!
즐라탄은 가람이 주는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 자신의 움직임을 저지하는 노망준의 강력한 몸싸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처음 노망준을 봤을 때 느껴진 단단한 힘의 포스가 거짓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 수많은 월드 클래스 수비수들과 경합해본 즐라탄도 힘겨울 정도였다.
다행히 공은 즐라탄이 노망준과 몸싸움에서 살짝 밀리면서 앞으로 나와 잡아낼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노망준의 수비를 뚫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이대로 공을 지키다가 후방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다른 선수에게 패스하겠지만, 지금은 1 대 1 대결을 하겠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뚫어야 했다.
'오랜만에 발재간 좀 부려볼까?'
원래 단순히 몸싸움만으로 이기려고 했던 즐라탄은 가볍게 상체 페이크를 통해서 노망준을 흔들어 보려고 했다.
수싸움
스트라이커가 수비수와 공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수싸움은 필수였고, 경험이 많은 선수라면 경험이 많을수록 이런 수싸움에 능했다.
물론 즐라탄은 피지컬을 이용해 수싸움보다는 상대 수비를 찍어 누르는 플레이를 펼쳤지만, 이미 단 한 번의 경합에서 몸싸움을 통해 찍어 누를 수 없다는 걸 판단한 즐라탄은 수싸움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휘리릭
즐라탄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척 앞으로 몸을 기울다가 빠르게 옆으로 공을 찬 후 움직였다.
노망준은 즐라탄이 앞으로 오는 척 하는 페이크 동작에 속아 몸의 균형이 무너졌고, 그 모습을 본 즐라탄은 가볍게 노망준을 제쳤다.
"1 대 0. 노망준! 수싸움에서 흔들리지 마!!"
가람이 바로 즐라탄의 승리를 선언하자, 노망준의 눈은 승부욕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경합
토오옹!!
즐라탄이 공을 잡자마자, 노망준은 흥분이라도 한 듯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왔고, 즐라탄은 노망준의 몸싸움에 순간 몸의 균형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지 않은 노망준의 저돌적인 몸싸움에 즐라탄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흔들렸고, 결국 노망준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을 뻗어 공을 가로챌 수 있었다.
"1대 1입니다."
"아. 방금 몸싸움은 좀 심하지 않았어?"
"여기는 프리미어 리그예요. 즐라탄 씨도 뛰어보셔서 알잖아요. 이 정도 몸싸움은 일어날 수 있다는 거 말이죠."
"그렇지만 이 몸한테 그런 거친 몸싸움을 하다가는 혼쭐이 날 텐데.."
다소 다혈질인 즐라탄에게 거친 몸싸움을 하다가 경기 내내 역으로 고통을 받은 수비수들의 이야기는 가람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기에 가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즐라탄 씨의 명성에 도전하는 어린 수비수들이 있지 않을까요?"
"하아~ 가람이 너! 스피치 학원 같은 거 다녔니? 말 잘한다."
"칭찬 감사합니다. 계속 진행할게요. 발로 가는 건 마지막이에요."
"오케이!"
즐라탄의 신호와 함께 가람은 패스를 뿌렸고, 즐라탄은 이번에는 공의 진행 방향을 그대로 살려 속도를 통해 노망준을 뚫어보려고 했다.
대개 큰 중앙 수비수들은 발 빠른 공격수들에게 뒷공간을 뚫리는 경우가 많고, 즐라탄도 노망준의 피지컬만 보고 그가 파워형 중앙 수비수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타타타탓!!
노망준은 즐라탄의 속도를 추월하며 즐라탄의 앞에 서서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걷어냈다.
"2 대 1 입니다."
"뭐야. 이 녀석! 왜 이렇게 빨라?!"
즐라탄은 당황하며 솔직한 심정을 말했고, 그 모습을 본 가람은 웃으며 노망준 대신 말했다.
"저 녀석 스피드는 저랑 비슷한 정도예요. 괜히 겉모습만 보고 힘만 세다고 생각하시면 역공을 당하는 거죠."
"차암! 그런 건가? 재미있네."
"이 정도면 망준이가 축구 경력이 짧다고 해도 1군에서 충분히 통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이 몸을 두 번이나 막아냈으니 충분히 통하겠지. 하지만 아직 공중볼은 보지 않았으니 계속해봐야지."
이번에는 즐라탄이 승부욕이 불타오르자, 가람이 제지하듯 말을 꺼냈다.
"지금 조금 흥분하신 것 같은데요. 공중볼 경합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아니면 저 녀석이?"
"둘 다요?"
"하하하. 살살할 테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승부는 끝까지 해봐야지."
즐라탄이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걸 안 가람은 노망준을 보며 크게 외쳤다.
"망준아! 연습이니 너무 힘 쓰지 마라! 아까 이야기했던 거 기억해!"
노망준은 아까 80%의 힘을 쓰라고 했던 가람의 말을 기억하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가람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둘이 서 있는 곳에서 살짝 떨어진 곳으로 공중볼을 찼다.
뻐엉!
공의 낙하지점을 포착한 즐라탄과 노망준은 뛰기 시작했고, 즐라탄은 노망준을 속이기 위해서 공의 낙하지점보다 좀 더 앞쪽에서 멈춰섰고, 노망준은 공의 낙하지점보다 즐라탄을 막는 것에 신경 쓰며 즐라탄의 등 뒤에 섰다.
그렇게 노망준이 자리를 잡는 순간 즐라탄은 195cm의 큰 키와 다르게 유연한 동작으로 왼쪽으로 돌면서 노망준의 뒤쪽으로 뛰었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 먼저 발을 뻗을 수 있었다.
노망준은 즐라탄의 움직임을 쫓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즐라탄의 노련한 움직임에 질 수밖에 없었다.
"2대 2입니다."
"좋았어! 허억 허억!"
즐라탄은 아이처럼 좋아했고, 짧은 순간이지만 전력을 다한 스프린트를 했기 때문에 둘 다 거친 호흡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하고 즐라탄이 공을 달라는 듯 손짓을 하자, 가람은 이번에는 둘이 서 있는 곳을 향해 공중볼을 찼다.
뻐엉!!
이번에는 둘이 서 있는 곳으로 공이 날아왔기에 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리싸움을 펼치기 시작했고, 노망준의 거친 몸싸움에 즐라탄은 몸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노망준의 몸싸움 실력은 내일 당장 경기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짧은 축구 경력에도 파울의 경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 듯한 영리한 몸싸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즐라탄은 뒤쪽으로 양손을 뻗은 후 노망준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움직임을 제한한 뒤 손으로 노망준의 유니폼을 잡았다.
아직 어린 선수라면 충분히 흥분할 수 있는 더티 플레이에 즐라탄은 노망준이 당황하거나 화를 낼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탓!!
노망준은 즐라탄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쳐내더니 즐라탄의 몸싸움에 신경 쓰지 않고 날아오는 공을 향해 점프를 뛰었다. 즐라탄은 노망준이 점프를 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가 생각지 않는 노망준의 대처에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며 결국 공중볼에서 밀리게 되었다.
"3대 2입니다."
"나이스!!"
노망준은 아까 공중볼에서 밀렸다가 이번에는 이겼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즐거워했고, 즐라탄은 가람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이 녀석이 축구를 한 지 1년도 안 된 거 맞아?"
"정확히는 8개월 정도 된 거죠."
"그런데 저런 대처를 할 수 있다고?"
"아! 축구를 하기 전에 미식축구를 해서 좀 이해도가 빨라요."
"아이씨! 그럼 그냥 생 신입은 아니잖아! 그걸 이야기해줘야지!"
"아? 제가 말을 하지 않았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미식축구랑 축구는 다르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파울성 플레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게 역시 미식축구에서 거친 몸싸움을 해봐서 그런가?"
"아마도. 미식축구는 더 심한 파울도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축구에서 하는 파울은 애교일 거예요. 어떻게? 여기까지 하실래요?"
"이 몸이? 중간에 포기한다고? 그럴 수는 없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마지막 공 차도록 해."
왠지 모르게 불타오르는 즐라탄을 보며 가람은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괜히 둘이 너무 경합하기 쉬운 곳으로 공을 차면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멀리 찹니다."
뻐엉!
가람은 둘이 있는 곳이 아닌 골대 쪽으로 공을 찼고, 공의 궤적을 본 순간 즐라탄과 노망준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망준의 빠른 스피드는 빛났고, 점점 둘의 차이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망준이 공을 잡고 끝날 것 같은 상황으로 이어졌지만, 즐라탄도 이를 악물고 노망준과 거리를 더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토옹!
공이 바닥에 떨어지며 크게 튀어 오르려는 순간 노망준은 즐라탄을 이기겠다는 생각에 공을 잡으려고 성급하게 먼저 점프를 했다. 즐라탄은 공의 튀는 것을 보더니 오히려 점프 대신 좀 더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공은 노망준의 바로 옆을 지나쳐 나갔고, 앞으로 튀어 나간 즐라탄이 공을 쉽게 잡게 되었다.
"3대 3 무승부입니다. 망준아! 공이 튀어 오를 때는 끝까지 보고 움직여야지!"
"죄송합니다."
즐라탄은 그런 노망준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이 몸과 무승부라니 너 스스로 만족해도 된다."
노망준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즐라탄이 가람을 보며 외쳤다.
"이 녀석! 축구보다 영어를 더 가르쳐야겠어!"
"하하하. 그렇죠. 아직은 배울 게 많아요."
즐라탄은 웃으며 노망준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단어로 칭찬을 했고, 노망준도 자신이 알만한 단어로 즐라탄이 말을 걸자,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둘은 바디랭귀지 반 짧은 단어 반으로 대화를 이어갔고, 가람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저 즐라탄에게 맡기면 망준이의 수비 실력은 확실히 늘 수도 있겠는걸.'
그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저 괴물은?"
"세르히오 아게로씨?"
"에이 풀네임으로 부르지 말고~ 너무 딱딱해 보이잖아. 그냥 아게로라고 불러~"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 훈련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훈련? 방금 다했어."
"방금이요?"
즐라탄과 노망준이 공 경합 내기를 시작할 때 옆에서 나타나 방송 스탭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세르히오 아게로를 봤는데 그건 진짜 몸풀기였기에 가람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몸풀기 아니에요?"
"아~ 아까 수석 팀 닥터가 내 몸에 잔부상이 많다고 스트레칭이랑 몸풀기만 하라고 했어. 휴가 기간에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이미 강이찬이 회복에 대한 집착은 알고 있었기에 가람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세르히오 아게로 입을 열었다.
"훈련은 끝났어?"
"내. 대충 끝났어요."
"그래? 그럼 우리 집으로 가서 게임 같이할래?"
"게임이요? 저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요."
"그러니 가서 해야지. 내가 게임에서 너를 바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아! 그리고 이건 에이전트에게도 말한 이야기니 참여해야 해."
"하하하. 알겠어요. 대신 쉽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가람은 훈련을 마치고 세르히오 아게로와 즐라탄, 노망준과 함께 세르히오 아게로의 집에 가서 게임을 하게 되었고, 의외로 즐라탄의 게임 실력에 세르히오 아게로가 패배하며 생각지 않은 장면을 만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