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필드의 사령관[3]
2021년 12월 27일 라이트 오브 스타디움
프리미어 리그 16라운드 맨시티전
오늘도 역시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찬 라이트 오브 스타디움은 평소 경기 시작에 대한 즐거움이 대신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나타났다.
“그 기사가 정말인가?”
“구단에서도 정식 발표 나왔으니 정말이겠지.”
“그래도 수석 코치가 아니라 그냥 코치를 임시 감독으로 세운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지 않아?”
그렇게 선더랜드 유니폼을 입은 중년의 남성 팬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순간 한 기자와 카메라가 나타났다.
“혹시 선더랜드의 서포터즈이신가요?”
그 말에 수염 긴 서포트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입고 있는 옷이 푸른색으로 보이나요? 기자 양반. 물론 선더랜드의 서포터즈지!”
“하하하. 그렇죠.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이번에 선더랜드 임시 감독에 대해서 서포터즈의 반응을 듣고 싶어서요.”
“그런 서포터즈의 대표적인 말을 듣고 싶다면 서포터즈 대표인 로버트 씨와 인터뷰를 하는 게 좋을걸요.”
그렇게 살짝 언론에 냉랭하게 반응하자, 기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로버트 씨의 인터뷰는 이미 했고요. 그냥 일반 서포터즈들의 반응도 듣고 싶어서 말이죠. 부탁 좀 드릴게요.”
“기자 양반이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네. 감사합니다.”
기자는 바로 뒤돌아 카메라에 신호를 주었고, 신호를 받은 카메라 맨은 바로 카메라의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기자가 텐션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의 경기는 박지석 감독님의 부재로 김하늘 구단주가 임시 감독으로 공격 코치인 안정한 코치를 기용하면서 기존에 잭 로스 감독 시절부터 함께 해온 수석 코치인 제임스 플라워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인 김하늘 구단주가 또다시 한국인인 안정한 코치에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해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하면 여태까지 오랜 세월 축구경기를 본 입장에서는 수석코치를 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아한 생각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방금 인터뷰 전까지 거칠게 말하던 사내가 카메라의 불이 켜지자, 말을 정돈해 말하는 걸 보며 기자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이어지는 사내의 말을 기대에 찬 말로 들었다.
여태까지 인터뷰는 서포터즈들이 술을 마시고 흥분해서 욕설이 대부분 들어간 거라 자료로 쓰기 힘들었는데 이 정도 말이라면 충분히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지만 김하늘 구단주가 여태까지 보여준 영입의 결과 등을 통해 그의 안목은 신뢰합니다. 그래서 서포터즈인 저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 안정한 코치가 임시 감독직에 오른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는 건가요?”
“긍정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구단주님이 그렇게 판단하신 거라면 그 의견에 지지를 표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리고 아까 마지막 발언이 거슬리는데요. 어떤 멍청이들이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이라는 발언은 이상합니다. 한국인이면 어떻습니까? 축구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여태까지 김하늘 구단주님이 축구 못하는 선수들을 영입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노망준 선수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죠.”
“아. 그렇죠.”
점점 흥분하기 시작한 사내는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선더랜드는 김하늘과 샤오루 공동 구단주님이 진행하신 구단과 지역 사회 상생하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적극적인 투자로 선더랜드 지역의 교통 인프라나 의료시설, 문화시설까지 엄청 발전했습니다. 지역 사회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기존에 공업단지로 먹고살았는데 비싼 임금이 문제가 되면서 공장들이 철수해서 점점 쇠퇴하고 있었거든요. 그 두 분의 놀라운 수완으로 지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한국인이라는 둥, 중국인이라는 둥 이런 식으로 하는 말은, 선더랜드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속사포 래퍼처럼 말을 쏟아내는 사내를 보며 기자는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하면 말을 잘 못하는 사람보다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더 인터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저렇게 말을 하면 중간에 끼어들 수도 없기에 기자는 한동안 사내와 긴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고, 그나마 축구 이야기를 했던 초반 부분만 경기 시작 전에 간신히 편집해서 중계진에 제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약간은 어수선한 가운데 이번 리그 우승팀 행방이 결정될 일전이 시작되었다.
선더랜드의 라커룸
안정한은 김하늘이 준비해준 말끔한 정장에 평소 신경 쓰지 않았던 헤어 스타일에 포마드를 발라 단정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평소에 몸매 관리를 꾸준히 하는 덕분에 이렇게 꾸미니 가람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미청년 아니 미중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안정한의 변한 모습에 선수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연예인이다!!
-감독님 싸인 부탁드려요!
맨시티와의 경기가 우승의 향방을 정할 수 있는 중요한 경기인데도 선수들은 과도한 긴장감보다는 여유가 느껴졌고, 그 모습에 안정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아~ 내가 잘 생긴 거 이제 알았어?! 모두 모여. 임시 감독이라고 해도 한마디는 해야 하지 않겠냐?”
그 말에 선수들은 신속히 안정한을 앞에 두고 반원의 포지션으로 섰고, 안정한은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는 중요한 경기가 될 거다. 중요성에 대해서 내가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너희들이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 팀도 우리 팀처럼 연승행진을 하는 팀이니 말이다. 그에 맞춰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전술을 준비했고, 그걸 이제 경기장에서 보여주면 된다. 만약 이 자리에 박지석 감독님이 있었다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거다. 너희들은 강하고 이길 수 있다고 말이지. 하지만 나는 다른 말을 하고 싶다. 오늘 경기에 부담감을 버리고 너희들의 플레이 해라.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승리가 따라올 거다.”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믿음을 심어주는 박지석의 라커룸 대화와 다르게 안정한의 라커룸 대화는 선수들의 부담감과 긴장감을 풀어주는 식의 방법이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오늘처럼 부담감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경기에서는 안정한의 라커룸 대화가 더 효과적일 것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선수들의 표정은 이전을 비해 평온해졌다.
“아! 한 선수는 빼야겠네. 김가람! 너는 잘해라! 그게 에이스의 일이며 주장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 경기 필드에서는 가람의 지시가 곧 나의 지시랑 같으니 가람의 말을 따르도록!”
안정한이 다른 선수와 다르게 가람에게 부담감을 주는 말을 하자, 선수들은 미소를 지으며 덩달아 가람에게 한마디씩 했다.
-주장! 해트트릭 부탁해!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선더랜드 용사! 승리를 부탁한다!
그렇게 선수들의 말까지 들은 안정한은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주장 구호!”
가람은 그 말에 크게 선창했다.
“We are”
그러자 선수들은 후창하며 호응했다.
“Sunderland!”
박수와 함께 선수들은 라커룸을 빠져나갔고, 안정한은 문 앞에서 나가는 선수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한마디씩 하며 사기를 끌어 올려주었다.
그리고 가람이 나갈 차례가 되자, 안정한이 하이파이브 한 후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 너 믿는다.”
“저만 믿으세요. 감독으로 첫 승을 안겨 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어! 알았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적당한 부담감과 긴장감은 오히려 저에게는 약이 되니깐요.”
그 말과 함께 가람은 복도로 나갔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 상대 팀을 볼 수 있었다. 오늘 경기에 선발 출장하는 세르히오 아게로는 맨시티 선수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맨시티 선수 중 한 명과 인연이 깊은 손홍민이 해리 케인에게 가서 인사를 건네며 대화했고, 그렇게 친분이 있는 선수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잠시 후 경기 안내 위원의 지시로 선수들은 경기장에 입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중계진 아나운서가 아닌 선더랜드 경기장 아나운서의 호명으로 오늘 경기 출장한 선수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의 위대한 선더랜드의 전사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골키퍼~”
조던 픽포드
맥스 아론스 - 김만재 - 권윤성 - 누누 멘데스
해리 네쳐 - 닐 이안
이강인 - 김가람 - 손홍민
세르히오 아게로
골키퍼부터 순서대로 선수들을 호명했고, 선수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릴 때 손을 들어 화답했다.
그리고 경기장 아나운서는 마지막으로 세르히오 아게로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김가람을 소개했다.
“오늘 경기에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선더랜드의 용사! 선더랜드의 주장!! 김! 가람!!”
그 말과 함께 선더랜드의 관중들은 흥분한 듯 환호성으로 가람의 등장을 환영했고, 가람이 손을 들어 화답하며 다소 긴 선더랜드 선수들의 소개가 끝났다.
반면 원정팀 소개는 경기장 아나운서가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광판에 포메이션과 이름이 나오는 것이고 다소 편파적인 소개가 진행되었다.
에데르송 모라에스
카일 워커 - 후벵 디아스 - 존 스톤스 - 벤자민 멘디
케빈 데브라이너 – 필 포든
베르나르두 실바 - 파울로 디발라 - 가브리엘 제수스
해리 케인
그렇게 선수 소개가 끝나자, 공을 정하는 순서에서 양 팀 주장인 케빈 데브라이너와 가람이 나와 동전의 앞뒤를 정했고, 가람이 정한 앞면이 나오면서 경기는 선더랜드의 공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하는 사이 가람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오늘 경기에 기분 좋은 긴장감과 부담감은 다른 때보다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고,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유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오늘 경기를 두고 기분이 좋고, 무엇을 해도 될 것 같은 컨디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안정한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겠다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삐이익 삑!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세르히오 아게로는 공을 가람에게 패스했다.
토오옹!
공은 가람의 앞에 떨어졌지만 가람은 아직도 하늘을 보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았고, 순간 세르히오 아게로는 가람이 경기가 시작된 것도 모르는 줄 알고 크게 소리쳤다.
“가람! 경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세르히오 아게로의 외침에도 가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가람의 모습을 보며 해리 케인은 기회라는 생각에 가람에게 달려들었다.
해리 케인이 가람의 지척까지 다가오는 순간 세르히오 아게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가람의 공을 다시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가람은 생각지 않게 아군과 상대 팀의 협공을 받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리 케인과 세르히오 아게로가 이제 발만 뻗으면 가람의 공을 가로챌 수 있는 위치까지 왔을 때 가람은 눈을 떴다.
[각성 상태에 돌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