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필드의 사령관[5]
삐이익! 삑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환호하는 선더랜드의 선수들과 다르게 맨시티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라운드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맨시티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는 전광판에 찍힌 5대 0이라는 스코어 보드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번 시즌 아니 자신이 맨시티에 부임한 2016년 이후 이렇게 무기력하게 경기를 진행하고 처참하게 패배한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게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었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이 이걸 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건 현실이고, 이제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들이 라커룸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벤치에서 제일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무거운 걸음으로 라커룸의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오늘 경기 완패를 당한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펩 과르디올라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고 납득하기 힘든 경기 결과이기에 선수들은 더욱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었다.
펩 과르디올라도 선수로 뛰어본 경험이 있었고, 이런 무기력하게 패배한 경험 또한 겪어봤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오늘 수고했다. 오늘 경기 결과는 모두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이고 너희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상황이다. 오늘 경기 결과를 너무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5대 0으로 지나 1대 0으로 지나 똑같이 한 경기 패배한 거다. 모두 고개를 숙이지 말아라. 우리는 지금까지 리그에서 이번 경기 한 경기만 패배했다. 오늘의 패배를 수습하고 다시 원래 경기력을 되찾는다면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패배를 확실히 수습하도록 하자. 모두 복귀 준비를 하도록."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들을 질책하기보다는 독려한 후 라커룸에서 빠져 나와 미리 마련된 기자회견 자리로 향했다.
오늘 경기 전에 리그 무패 행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두 팀 간의 대결이기에 많은 사람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프리미어 리그 협회 측에서는 오늘 경기가 끝난 후 정식 기자회견 자리를 갖기로 사전에 요청한 상태였고 구단에서는 이를 승낙한 상황이었다.
물론 오늘 경기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패장이 아닌 승장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씁쓸한 마음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기자회견장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많은 기자가 손을 올리고 질문을 하려고 했고, 펩 과르디올라는 그 중 기자 한 명을 가리켰다.
"오늘 경기 5대 0으로 패배를 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기를 패배한 감독에게 패배한 경기 소감을 말하는 것만큼 잔인한 질문이 없겠지만, 대부분 이런 인터뷰에서 제일 먼저 묻는 것이 그 질문이기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는 맨시티가 한 선수에게 패배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한 선수가 김가람 선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기자의 답변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는 메시 선수를 지도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 선수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의 전성기 시절 레알 마드리드와 붙어본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 저는 지금까지 김가람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분석하고 김가람 선수를 봉쇄할 전술을 짜왔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끝낸 후 펩 과르디올라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김가람 선수는 오늘 경기에 모든 분이 보신 것처럼 기존의 플레이를 뛰어넘은 경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하필이면 오늘 경기에서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전설적인 축구 선수인 펠레나 마라도나 등 선수처럼 팀보다 위대한 선수라고 불리며 경기를 지배했다는 걸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선수가 지금 나타난다고 해도 현대의 뛰어난 축구 분석 기술과 전술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를 막아내고 엘클라시코에서 이긴 경기만 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만이었다는 걸 오늘 경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김가람 선수를 막지 못해 이런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김가람 선수를 펠레나 마라도나 등 선수와 나란히 평가하시는 건가요?"
"앞으로 어떤 경기력을 계속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경기에 한해서는 그랬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김가람 선수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없고, 전술도 없습니다. 그를 막기 위해 사람을 투입하면 그는 영리하게 다른 선더랜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다른 선더랜드의 선수들은 마무리를 김가람 선수에 양보하면 놀라운 경기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경기에 다섯 골을 넣은 김가람 선수는 대단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는 평소 상대 팀 선수보다는 상대 감독과 전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번에는 상대 선수에 대해서 극찬하자, 기자들은 그 모습에 셔터를 누르며 이미 기사 제목과 내용을 뽑아낸 듯 보였다.
셔터가 요란히 울린 후 펩 과르디올라는 다음 기자를 지목했다.
"오늘 경기는 미리 보는 리그 결승전이라는 말이 들 정도로 이 경기 결과가 향후 리그 우승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견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오늘 경기가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팀이 이겼다면 그 예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겠죠. 결국 한 경기 패배한 것이고, 남은 일정에서 어떻게 팀을 관리하는냐가 우승의 향방을 정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은 우승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물론입니다. 앞으로 경기는 많이 남았고, 한 번 더 남은 선더랜드와의 대결에서 저희가 이긴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죠. 그러니 오늘 패배를 곱씹어 다음에 대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할 것입니다."
질문한 기자가 자리에 앉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른 기자를 지목했다.
"오늘 경기에 박지석 감독이 맹장염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선더랜드를 맞이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묻고 싶습니다."
"우선 박지석 감독의 쾌유를 기원한다고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사실 저는 오늘 경기에 박지석 감독이 빠졌기에 솔직히 승산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석 감독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의 공백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경기는 탄탄히 준비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감독의 전술 방향성과 리더쉽이 부재중에도 코칭 스탭들을 통해 선수들에게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오히려 감독의 부재라는 위기 상황이 선더랜드의 선수들을 더 뭉치게 한 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연승하면서 자만심에 빠질 수 있는 선수들에게 더 좋은 자극이 된 거로 봐도 되겠네요."
"그 말씀은 박지석 감독의 부재가 독이 아니라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특히 오늘 경기에 팀의 주장인 김가람 선수의 활약을 보면 제 말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의 인터뷰는 한동안 진행되었고, 펩 과르디올라는 침착하게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며 인터뷰 시간은 마무리되었고, 펩 과르디올라는 마지막 질문을 받기로 했다.
"이번 질문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의 말에 수많은 기자가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손을 들었고, 펩 과르디올라는 한 백인 기자를 지목했다.
"BCD 스포츠의 폴 스미스 기자입니다. 이번 프리 시즌에 다른 팀들보다 적극적으로 김가람 선수의 영입을 추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는 김가람 선수에게 패배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만약 구단에서 김가람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구단에 섭섭함은 없을까요?"
"뭐 이미 지난 일입니다. 저 말고도 많은 기자분들도 알고 있다시피 김가람 선수는 선더랜드를 유럽 정상에 올릴 때까지 이적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번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에서 선더랜드가 우승하길 기도하고 있는 삼람 중 한 명입니다. 그래야 저희 팀에 김가람 선수가 이적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그 말씀은 지금 스쿼드에 만족하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김가람 선수는 지금 어떤 포지션에 국한되어 뛰는 게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김가람 선수를 영입하면 스쿼드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스쿼드도 좋지만, 김가람 선수를 영입하면 더 좋아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그건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의 인터뷰는 마치게 되었고, 그날 축구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들은 한결같이 펩 과르디올라가 김가람에 대한 좋은 평가와 영입 의사를 집중적으로 썼다.
그만큼 그 날 경기에 김가람의 경기력은 이슈가 될 만했다.
가람은 경기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그런 기사는 계속되어서 나왔고, 권윤성은 그런 기사를 꼭 매니져라도 된 듯 퍼서 알려주었지만, 가람은 기사를 한두 개 읽어보고는 바로 관심을 껐다.
'언론이 언제나 그렇지. 오늘 경기는 잘했지만, 다음 경기를 잘못하면 바로 슬럼프니 뭐니 떠들 테니.'
언론의 생리를 이미 알고 있는 가람은 그런 기사들에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 누워 노곤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잠시 뒤 기분 좋은 상태창의 울림이 들려왔다.
띠리링
[감독이 부재중에 팀의 리더로서 맨시티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보상 : 필드의 사령관]
[협의가 되지 않은 전술이나 즉흥적인 전술을 지시해도 동료들은 지시를 따르게 됩니다.]
[보상 : 아이들의 우상]
[유망주나 축구 신동들이 당신을 따르고 롤모델로 삼으면서 소속 구단의 이적확률이 올라갑니다.]
오늘 경기의 보상이 조금 늦게 들어온 게 의아하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가람은 계속 휴식을 취했다.
가람은 오늘 경기에 상당히 무리했는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가람은 평소처럼 상태창의 알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평소와 다르게 몸이 상당히 무겁다는 걸 느낀 가람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이러지?'
가람의 몸으로 환생한 뒤 강제 패널티를 받았을 때 빼고는 이렇게 몸이 무거운 적이 없었기에 이상할 수밖에 없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람은 상태창을 열어봤다. 그리고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