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4]
삐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선더랜드의 공으로 후반전 경기가 시작됩니다. 양 팀 모두 선수 교체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판더베이크 선수를 빼고 프레드 선수가 들어오고, 루크 쇼 선수를 빼고 알렉스 텔리스 선수가 들어옵니다. 전반전에 판더베이크 선수와 루크 쇼 선수가 많은 활동량을 보였거든요. 체력적으로 지친 선수들을 교체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후반전에도 전반전과 같은 튼튼한 수비를 보여줄 거라고 기대되는 교체입니다."
"그렇다면 선더랜드의 교체는 어떻게 보십니까?"
마틴 테일러의 말에 중계 카메라는 벤치에 앉아 있는 가람을 비추었고, 그 모습을 본 게리 네빌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선더랜드의 교체는 공격적인 교체입니다. 기성룡 선수 대신 해리 네쳐 선수, 마커스 애드워즈 선수 대신 손홍민 선수를 넣으며 공격력을 보강했는데요. 문제는 김가람 선수를 빼고 노망준 선수를 넣었다는 점입니다. 공격력으로 봤을 때는 노망준 선수보다 김가람 선수가 더 뛰어나거든요. 아무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김가람 선수에 대해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해도, 팀의 에이스인 김가람 선수를 벤치로 불러들인 건 좀 의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3명의 교체 카드 전부를 썼거든요. 이제는 교체 카드를 통한 전술 변화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박지석 감독의 과감한 전술 변화가 과연 후반전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게리 네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을 잡은 해리 네쳐는 바로 전방에 있는 노망준을 향해 공중볼로 패스를 넣었다.
노망준은 패널티 에어리어 라인 가운데 바로 앞에서 점프를 뛰며 라파엘 바란과 공중볼 경합에 나섰다.
쿠우웅!
노망준은 김가람에게 배운 공중볼 경합 기술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를 활용해 라파엘 바란과의 경합에서 이겨낼 수 있었고, 유리한 위치에서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 한 뒤 무릎으로 공을 한번 튕겼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서 터닝 발리 슈팅을 때렸다.
말은 길었지만, 이 동작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전 스토크 시티전에서 보여주었던 발리 슈팅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뻐어엉!
노망준이 찬 슈팅은 라파엘 바람의 머리를 스쳐 그대로 왼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았고, 딘 핸더슨 골키퍼는 화들짝 놀라 몸을 날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이대로 공이 골대로 들어간다면 선더랜드가 후반 초반에 좋은 흐름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터어엉!
"노망준 선수의 그림 같은 슈팅! 이번에는 골이 아니라 왼쪽 골대 상단에 맞고 골라인 아웃이 됩니다."
"이 골이 들어갔다면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몰랐을 텐데요. 아쉬운 장면입니다. 반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긴장해야 합니다. 김가람 선수가 빠졌다고 해도 선더랜드의 공격력은 위협적이거든요."
노망준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가는 순간 가람을 비롯한 벤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쉬움의 한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가람은 꼭 코치처럼 테크니컬 에어리어 라인에 서서 크게 외쳤다.
"망준아! 잘했어! 지금처럼 플레이해!"
슈팅을 때린 후 자신의 위치로 복귀하는 노망준은 가람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본 박지석이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너를 뺀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술이란 이유도 있지만, 2차전을 대비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경기장에서 뛸 때랑 다르게 벤치에서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거든."
"그럼 제가 감독님과 해야 할 일이라는 게 혹시 벤치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건가요?"
"그것도 있지만, 중요한 건 상대 벤치를 보고 분석하는 거다."
"상대 벤치요?"
생각지 않은 박지석의 말에 가람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박지석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 아까 말했듯이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습은 알렉스 퍼거슨경이 이끌었던 황금시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움직임이야. 그런 움직임은 짧은 시간에 보여줄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건 1차전뿐 아니라 2차전에서도 마찬가지지."
"그럼 그런 움직임은 벤치의 지시에서 나온다는 건가요?"
"그래. 정확히 맞췄다."
박지석과 가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때 그라운드에서 해리 네쳐와 몸싸움을 하던 프레드가 밀리면서 공을 빼앗기게 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벤치에서 숄샤르가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오며 왼손에 검지와 중지를 펴고 V자 모양을 만들며 외쳤다.
"노망준! 지시에 맞춰 움직여라!"
그리고 숄샤르의 지시를 벤치 근처에 있는 마커스 래쉬포드가 듣고는 크게 외쳤다.
"노망준! V 진형으로 맞춰!"
마커스 래쉬포드의 말에 선수들은 긴밀하게 움직였고, 노망준에게 아직 공이 가지도 않았는데, 노망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일부러 노망준의 수비 간격을 살짝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해리 네쳐는 특유의 창의적인 공간 패스로 노망준 앞 공간에 패스를 뿌렸다.
토오옹!
해리 네쳐의 패스에 노망준은 빠른 속도로 반응하며 해리 네쳐의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라파엘 바란이 노망준을 마크했고, 그런 노망준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생각보다 빠른 노망준의 속도에 순간 놓칠 뻔했으나 라파엘 바란은 공이 노망준에게 오는 타이밍에 맞춰 슬라이딩 태클을 했고, 공은 라파엘 바란의 발에 맞고 딘 핸더슨 골키퍼 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가람이 순간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지금 일부러 틈을 만든 건가요?"
"그래. 맞다. 전반전 뛸 때는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
"네에."
"미드필더들에게 틈을 보여주면 그 공간으로 패스를 넣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저런 플레이가 계속되면 패스를 주는 선수들이 눈치를 채지 않을까요?"
"이론상으로는 그래 보이지만 그게 실제로 눈치채기는 힘들어. 베테랑인 성룡이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깐 말이야. 아주 교묘한 함정이야. 실제로 플레이를 하게 되면 함정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플레이를 뚫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있으니 잘 걸리게 되는 거지."
"감독님께서는 이걸 저한테 보여주시고 싶었군요."
"그래. 사실 후반전에 어느 정도 뛰게 하다가 교체할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침착하게 경기를 보기보다는 왜 후반전 자신이 교체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불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도 있거든. 그렇게 되면 경기를 잘 보지 않게 되지. 나도 경험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맞는 말씀이세요."
가람은 박지석의 말에 동의하며 경기에 집중했다.
숄샤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보며 이걸 말로 들었다고 해도 실제로 벤치에서 보지 않았다면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하지만 박지석의 말대로 이렇게 밖에서 보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벤치에서는 끊임없이 지시를 내렸고, 그런 지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에게 전달되었다.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고, 선더랜드가 교체된 선수들을 중심으로 공격을 계속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비에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박지석이 입을 열었다.
"망준이에게는 네가 전반전에 가지고 갔던 전술적 움직임을 그대로 지시한 상태니, 망준이를 너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보면 도움이 될 거다."
박지석의 말대로 오늘 경기에 선더랜드는 노망준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고, 노망준도 그런 기회를 잡아 어떻게든 골로 연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람은 그런 노망준을 보며 자신이라면 좀 더 다른 선수들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망준의 위치에서 자신이 공을 잡았을 때 모습을 시뮬레이션하며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하지만 노망준의 위치에서 패스할 수 있는 선더랜드 선수들의 위치를 봐도 이미 그 위치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배치된 상태였다.
'쉽지 않네.'
왜 자신이 전반전에 먹혔는지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에 가람은 순간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박지석은 만약 가람이 돌파구를 찾아낸다면 2차전에 희망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2차전에 전술적 변화를 가지고 가겠지만, 변화된 전술 지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따르며 경기장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김가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경기는 후반 40분에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람은 선더랜드의 움직임에 맞춰 숄샤르가 벤치에서 보내는 지시를 보며 분석을 마칠 수 있었다.
'대략 지시는 5개 정도군.'
박지석의 말대로 짧은 시간에 준비한 전술답게 수많은 지시는 없었고, 5개의 지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술은 돌아갔다.
하지만 5가지의 지시라고 해도 그 지시가 꼭 기계에게 명령을 내리듯 지시가 바뀌는 순간 바로 선수들에게 전달되며 수행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가람이 분석한 지시는 한 선수를 호명하고 그 선수를 중심으로 그 선수의 앞 공간 마크, 연결 선수 마크, 선수에 대한 더블 마크, 선수의 중거리 슈팅 대비, 파울성 플레이에 대한 종류의 지시였다.
그렇게 가람이 자신의 생각이 분석이 맞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을 때 해리 네처가 자신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더티 플레이를 통해 벤치 근처에서 파울을 얻어내서 프리킥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숄사르는 빠르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 모습을 본 가람은 박지석에게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제가 지시를 하나 내려도 될까요?"
"뭐라도 알아낸 거야?"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알 것 같아서요."
박지석도 이미 어느 정도 해결책을 마련한 상황이지만, 이미 경기가 끝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팀 감독에게 자신이 상대의 전략을 알아챘다는 걸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가람이 나선다고 하자 굳이 말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겠다. 한번 해봐."
그렇게 박지석의 허락을 받은 가람은 벤치 근처에서 프리킥을 준비하는 사이 해리 네쳐를 크게 불렀고, 해리 네쳐는 가람에게 다가왔다.
"뭐야? 벤치로 들어가더니 코치로 전향이라도 한 거야? 브라더?"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내가 알려준 대로 해봐."
그렇게 가람은 해리 네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건넸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해리 네쳐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말은 쉽다, 그건 브라더나 가능한 거지. 내가 할 수 있을지는 몰라."
"내가 하는 거 쉬워 보인다고 너도 많이 연습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감독님도 허락하신 거니깐 해보라고."
"알겠어. 대신 실패해도 뭐라고 하지마."
"그래. 내가 내린 지시를 전달하고."
그렇게 해리 네쳐는 프리킥을 준비하기 전 선수들을 모아 가람의 지시를 전달했고, 지시를 들은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