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두 팀[3]
2022년 3월 4일 라이트 오브 스타디움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뭐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숄샤르는 전광판에 멈춰버린 시간을 멍하니 쳐다보고 선더랜드의 서포터즈들과 선더랜드 벤츠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전광판에 적힌 스코어 보드의 숫자는 5 대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숫자 5를 차지했다면 지금 선더랜드의 서포터즈들에게 이런 환호성은 없을 것이었다.
숄샤르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숄샤르에게 다가가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반전까지만 해도 1대 1로 원정 다득점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던 경기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1골을 더 넣으며 승기를 이어 갔었다.
상대 팀에서 자신의 지시 싸인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계속 마음에 걸려 그것을 대비해 다른 지시 싸인을 만든 것이 유효했던 경기였다.
그렇게 불안한 모든 것을 다 치워버리자, 이대로만 이어간다면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하는 건 자신의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후반전 한 선수의 각성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감독님. 이제 라커룸으로 가셔야 합니다.”
수석 코치인 마이클 펠란이 지금 숄샤르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숄샤르는 멍하고 앉아 있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상태로 선수들을 본다고 해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수석 코치님. 저 대신 마무리를 부탁해도 될까요?”
숄샤르의 말에 마이클 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맨체스터로 돌아가면 될까요?”
“그렇게 해주세요. 저는 따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는 어떻게 할까요? 안 한다고 할까요? 아니면..”
“그건 제가 좀 마음을 추스르고 가서 하겠습니다. 인터뷰까지 하지 않으면 구단에서도 문제를 제기할 테니 말이죠.”
“그렇게 하시죠. 인터뷰 시간에 맞춰 문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처럼 벤치에 너무 오래 앉아있다가 기자 회견장에 늦으며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종종 숄샤르가 멘탈이 터질 때면 라커룸 대화를 수석 코치인 마이클 펠란에게 넘기는 경우가 있었기에 마이클 펠란은 숄샤르의 말에 따라 나갔고, 그렇게 숄샤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스탭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숄샤르는 경기를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려 봤다.
‘전술의 문제는 없었다. 심지어 제이든 산초가 떠난 자리를 제시 린가드가 들어가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놀라운 활약을 해주었어.’
전반전에 1골을 넣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승세를 이어간 것도 제시 린가드였다. 전반 막판에 먹힌 골은 선더랜드의 세트피스에서 김만재의 헤딩 슛이 골대를 맞고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 행운성의 골이었다.
그렇기에 전반전에는 전술적 완성도는 확실히 맨체스터 유나티이드가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숄샤르는 고개를 들어 몸을 뒤로 기대며 거의 벤치에 눕다시피 쓰러졌다.
이미 끝난 경기였지만, 후반전에 무너진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그랬다. 말도 안 되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게 바로 스포츠고, 축구이다.
1999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93분에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골을 넣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에 그런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 그 역전을 당하는 주인공이 자신이 이끄는 팀이라는 것이었다.
꿈이라면 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한테 감독직은 맞지 않는 옷이 아닐까?’
이제는 참혹한 경기 결과에 따라 숄샤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인 감독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숄샤르는 실망감과 허탈함에 쉽게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기에 쉽게 그에게 말을 걸기 힘들었다.
그때
지이잉
숄샤르의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가볍게 진동했다.
숄샤르는 주머니에서 힘겹게 핸드폰을 들어 봤다. 메시지의 주인공은 마이클 펠란이었고, 라커룸 대화는 끝마치고 복귀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조금 있으면 기자회견이 시작된다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하아..”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죽기라도 했나? 왜 한숨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있는 숄샤르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고쳤다.
“감독님.”
“몇 번 말했지만, 이제 자네가 감독이야.”
“오늘 경기를 보러 오셨나요?”
“그래. 박지석 감독에게 초대를 받아서 VIP룸에서 경기를 지켜봤어.”
알렉스 퍼거슨은 말하며 숄샤르가 앉아 있는 벤치 좌석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이 자리에서 그라운드를 보는 게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 나한테 죄송할 게 어디 었어. 자네는 잘했어.”
“잘했다고요?”
패한 경기를 두고 잘했다는 말을 듣자, 숄샤르는 그게 비난하는 것을 에둘러 말씀하시는 것 같아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은 그 말이 진심인 듯 다시 숄샤르의 얼굴을 응시하며 다시금 말했다.
“자네는 잘했어. 전반전만 봐도 자네가 준비한 전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이든 산초 선수가 빠진 자리에 제시 린가드 선수를 넣어서 잘 준비했어. 나라도 그렇게까지는 못할 거야. 후반전에도 잘했지. 아주 잘했어. 자네의 전술은 흠잡을 데가 없었어.”
“그렇지만, 저는..”
“그래. 경기는 졌지. 그건 사실이야. 그런 날도 있는 거야. 경기는 잘 준비하고 잘 풀렸지만,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웃어주지 않는 날이 있는 거고, 승리의 여신에게 축복이라도 받은 듯 날아다니는 선수가 하필이면 상대 팀에 있는 날도 있는 거지. 오랫동안 감독 생활을 하면서 나도 그런 경험을 해왔어. 그러면서 점점 담담해지고 단단하지는 거야. 오늘은 그런 날로 생각하라고.”
알렉스 퍼거슨의 진심이 묻어나는 위로에 숄샤르의 눈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알렉스 퍼거슨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에 눈물을 꾹 참았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 퍼거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패장이라도 해야 할 일은 있는 법이지. 선수들은 마이클이 알아서 잘 추슬렀을 테니 기자회견을 마치고 연락해. 내가 잘 아는 한식당이고 있는데 스미스 패밀리 식당이라고 말이지. 거기서 식사라도 하자고.”
“배려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돈은 자네가 내도록 해.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릴게. 위치는 핸드폰으로 보내주마.”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렉스 퍼거슨이 자리를 떠나고 숄샤르는 마음을 추스른 후 기자회견 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기자회견이 끝날 시간이지만, 기자회견이 길어졌는지 방금 인터뷰를 마친 듯한 박지석과 복도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살짝 어색할 수도 있는 분위기에 박지석이 입을 먼저 열었다.
“오늘 경긴 제가 패배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긴 팀의 감독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아니요. 이 말은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술적으로 저는 졌습니다. 머지 않아 기자회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자리가 되면 제가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경기는 제가 감독직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경기였고, 그 대상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여서 기분이 좋으면서 힘들었습니다.”
“차암. 자네도 선수 시절부터 겸손하더니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들 건가?”
“아니요. 이건 진심입니다.”
박지석이 진심이라고 말하며 굳은 의지를 보이자, 숄샤르는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는 박지석의 팔을 가볍게 손으로 쳤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긴 건 자네 팀이야. 축하해. 이제 우리를 이겼으니 꼭 꼭대기까지 올라가라고! 그리고 미리 이야기하지만 김가람 선수를 놓치지 말라고. 만약 놓치게 되면 나처럼 호되게 당하게 될 거야.”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숄샤르는 박지석과 인사를 건넨 후 기자회견 장 입구에 서자, 기자회견 진행 요원이 바로 입장해도 된다는 듯 손짓을 했다.
그렇게 숄샤르가 기자회견 장에 도착하자, 기자들은 카메라 셔터로 인사를 대신했고, 그렇게 숄샤르가 자리에 앉자마자 수많은 기자가 손을 들었다.
숄샤르는 순간 기자들의 수많은 손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들었고 저들이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그때
‘오늘은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라고.’
알렉스 퍼거슨이 방금 해주었던 조언을 떠올리며 심호흡하자, 금세 마음에 안정을 찾으며 한 기자를 지목했다.
“오늘 경기 전반전과 후반전 초반까지는 선더랜드를 압도하는 경기를 보여주었는데요. 김가람 선수의 놀라운 활약에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는 팀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실제로 경기도 잘 풀렸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우리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레발이 생각지 않은 선수를 각성시키게 된 것 같습니다. 김가람 선수의 놀라운 플레이는 모두가 지켜보셨으니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경기에 김가람 선수의 플레이는 위대한 선수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지난 프리미어 리그 1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했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프리미어 리그 16라운드에선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5대 0으로 패배한 후 인터뷰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설적인 축구 선수인 펠레나 마라도나 선수들이 팀보다 위대한 선수라고 불리며 경기를 지배했다는 걸 믿지 않았지만 그건 자만이었다는 말을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도 1차전에서 김가람 선수를 충분히 전술적으로 막을 수 있어서 2차전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오늘 경기에 미드필더로 나온 김가람 선수의 패스 길목을 미리 예측해서 막는 것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숄샤르는 잠시 말을 멈춘 후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기자들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얼마나 선더랜드를 압박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숄샤르의 저 허탈한 듯한 대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김가람이 후반전에 4골을 넣고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쳤다.
축구에서 유소년을 상대로 프로 선수가 보여주는 경기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미 모두가 지켜봤기에 기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숄샤르는 다른 기자를 지목했다.
“오늘 경기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패배를 하셨습니다. 이번 시즌을 두고 구단 측에서는 많은 투자를 했는데요. 리그컵, FA컵 지금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떨어지면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지 못하셨습니다. 구단에서는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냉철한 판단이 경질이라고 한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투자를 받은 것은 사실이니 말이죠. 하지만 아직 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며, 제가 이 자리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꾸준히 임무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숄샤르의 담담한 말에 기자는 손을 내렸고, 다른 기자가 손을 올렸다.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오늘 경기는 김가람 선수의 활약에 패배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김가람 선수를 상대할 다른 팀 감독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으실까요?”
“하하하. 차암. 저도 패장의 입장이라 조언을 많이 못 해주겠지만, 한마디 하자면 김가람 선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입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렇게 숄샤르의 기자회견은 끝나게 되었고, 이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가 5 대 0으로 패배했던 경기와 함께 회자되며 선더랜드에게 맨체스터 헌터라는 별명을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