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챔피언스 리그 8강전 바르셀로나전[3]
메시는 가람의 행동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해 움직였다.
메시도 이 능력을 사용하는 선수들을 맞상대해봤기에 가람의 움직임을 쫓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타탓! 탓!
조금씩이지만 가람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메시를 비해 가람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니 아무래도 같은 각성 상태에 들어갔다면 가람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 알고 있는 건가?'
사실 각성 상태의 선수들끼리 부딪히게 되면 서로의 호흡이나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그 감각은 흡사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과 같은 감각을 느끼게 했다.
메시는 이미 많은 각성 상태의 선수들과 경합해봤기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되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데 가람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메시는 가람과 경합을 벌렸지만, 각성 상태에 능숙한 것처럼 가람은 버텼고, 메시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트헛
평소 자신의 의지대로 각성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람의 각성 상태와 겨루기에서 밀려서 결국 메시는 각성 상태에서 빠져 나왔고 그 순간 가람은 기다렸다는 듯 공을 찼다.
뻐어엉!
그리고 메시는 아무리 가람이라고 해도 이 먼 거리에서 경합을 벌이다가 찬 공이 골대를 향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공의 코스를 쫓았다.
휘이익!
메시와 생각과 다르게 공은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전반전 초반에 찼던 것과 다르게 공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게 아니라 공은 바닥에 낮게 깔리며 날아갔고, 그 코스를 본 메시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토옹!
"김가람 선수!! 여기서 메시 선수를 따돌리고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합니다."
"좋은 장면입니다. 김가람 선수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미끼로 삼아서 선수들을 끌어드리고 그 배후 공간으로 침투하는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에게 연결한 패스 아주 좋습니다."
세르히오 아게로에게 공이 연결되자마자, 바르셀로나의 왼쪽 수비수인 세르지뇨 데스트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가람이 패스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라 한 박자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르히오 아게로는 자신이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외국인 용병이라는 명성이 그냥 쌓인 것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듯 패널티 에어리어로 단숨에 파고들어, 반대편 골대를 보며 낮고 정확하게 슈팅을 때렸다.
뻐어엉!
테어슈테겐이 놀라운 예측 능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으로 리그를 평정하고 있었지만 지금 세르히오 아게로의 슈팅에는 반응조차 못 하고 굳은 채 서 있어 고개로 공의 코스만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철썩!
"고오오오올!! 전반 45분에 경기 종료를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에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가 골을 만들어냅니다!!"
"이 골은 정말 의미가 있는 골입니다. 이제 선더랜드가 1골만 더 넣으면 비기게 되고, 연장전까지 볼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이 기세를 이용해 2골을 넣으면 홈팀인 바르셀로나는 2골을 넣어야 연장전을 가게 되거든요. 이제 쫓기는 건 바르셀로나예요!"
골을 넣은 세르히오 아게로는 코너킥 에어리어가 아닌 자신에게 패스를 해준 가람에게 뛰어갔고, 가람은 뛰어오는 세르히오 아게로는 번쩍 들었다.
그렇게 둘은 골을 축하했고, 잠시 후 선더랜드의 다른 선수들도 다가와 함께 기뻐했다.
선더랜드의 세레머니가 끝난 후 경기는 다시 바르셀로나의 공으로 시작했지만, 잠시 후 주심의 휘슬이 들려왔다.
삐이익 삑!
"전반전에는 선더랜드가 전반 3분에 손홍민 선수, 전반 45분에 세르히오 아게로의 골로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반전 어떻게 보셨습니까?"
"사실 오늘 경기는 유효슈팅이 양 팀 통틀어 2개가 나왔는데 그 유효 슈팅이 전부 골로 연결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경기였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아예 공격하지 않았거든요. 뒤에서 공을 돌리며 자신의 원정 경기에서 유리한 이점을 살리려고 했지만, 이게 독이 되었습니다."
"그렇죠. 너무 사리다가 결국 전반 끝나기 전에 김가람 선수의 그림 같은 패스를 받아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이 장면은 어떻게 보시나요?"
"아주 좋은 움직임이었어요. 김가람 선수가 전반 3분에는 의도하지 않게 손홍민 선수의 골을 도왔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에게 패스했거든요. 이 장면에서 김가람 선수가 메시 선수를 돌파할 방법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방법이요?"
"그렇습니다. 1 대 1에서는 메시에게 질지라도 팀은 이기게 하겠다는 거죠. 어린 선수가 아주 현명하게 판단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네요. 하지만 아직 선더랜드가 다음 라운드로 가기 위해서는 2골이 더 필요한 실정입니다."
"선더랜드의 2골 과연 가능한 걸까요?"
"사실 전반전에 선더랜드와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뛴 거리를 비교해보면 선더랜드 선수들이 거의 뛰지 않았습니다. 원래 수비적인 팀을 상대할 때는 좌우로 긴 패스를 통해 선수들이 많이 뛰도록 해야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전반전에는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리기만 했습니다. 오히려 패스를 받고 유지하기 위해서 더 뛰었죠. 심리적으로는 선더랜드 선수들이 힘들었을 수도 있어도 체력적으로는 바르셀로나가 더 좋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런 체력적인 이점을 살려서 선더랜드가 공격을 펼친다면 2골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후반전에 바르셀로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르셀로나는 전반처럼 경기해서는 안 됩니다.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쫓겨서 위축되어 있어서 선수들은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어떻게든 후반전에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야겠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메시 선수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전반전에는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후반전에는 공격적으로 나서면 지난 1차전 때처럼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골로 차이를 벌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전반전보다 흥미진진한 후반전을 기대하면서 광고 끝난 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라커룸
위르겐 클롭 감독은 라커룸를 향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전반전 초반의 골은 럭키골이라고 할 수 있었고, 막판에 먹힌 골도 가람이 의도를 했지만, 경계한다면 막지 못할 정도의 골이 아니었다.
쫓기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앞서나가는 건 자신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자, 위르게 클롭은 라커룸에 들어서며 박수를 쳐서 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 주목! 전반전에 2골을 먹혔지만, 아직 원정 다득점에서는 우리가 앞서고 있다. 한 골 더 먹혀도 비기는 거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주눅 들지 마라! 아직 후반전이 있어! 알겠나?"
"알겠습니다."
"후반전에는 지금보다 더 공 점유율에 힘쓰고 기회가 나온다면 공격적으로 진행해라. 지금 저렇게 추격할 때 일격을 당하면 쉽게 사기는 떨어질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골을 먹히지 않는 거야. 알겠지?"
"알겠습니다."
위르겐 클롭은 말을 마친 후 고개를 돌려 선수들을 봤다.
약간이나마 숨을 고르는 선수들이 있기는 했지만, 평소 경기를 비해 많은 경기를 뛴 것은 아니었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때 생각보다 지쳐있는 메시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경기에 사실 메시의 컨디션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1차전에 가람을 마크할 수 있었던 건 메시였기 때문에 공격적인 움직임보다는 수비를 위해 메시를 출전시킨 것이었다.
가람이 1차전처럼 메시에게 달려든다면 충분히 수비에 성공할 수 있고, 그렇다면 1차전의 우위를 살려 충분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 골 모두 메시와 가람의 경합과정에서 시작하였기에 위르겐 클롭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메시에게 다가왔다.
"에이스 컨디션은 어때?"
"버틸만합니다."
말은 버틸만하다고 하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이 보였기 때문에 위르겐 클롭 감독은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네 표정은 괜찮지 않아. 오늘 경기는 평소보다 많이 뛴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어한다니 네가 괜히 너를 출장시킨 것 같다."
"아닙니다."
"아니야. 이러다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 교체를.."
위르겐 클롭 감독이 교체라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메시가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감독님. 조금 더 뛰게 해주세요. 힘들면 제가 벤치에 싸인을 보내겠습니다."
그때 위르겐 클롭 감독의 눈에는 보였다.
표정은 죽을 것 같았지만, 메시의 눈은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
그런 투지를 불태우는 선수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팀의 에이스이며 월드 클래스의 정점에 있는 메시였기에 위르겐 클롭은 메시의 어깨를 한번 툭 칠뿐이었다.
"알겠다. 대신 힘들면 꼭 이야기해라.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감독님. 제 고집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위르겐 클롭 감독은 다른 선수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갔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된 메시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선더랜드의 라커룸
전반전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골을 넣은 세르히오 아게로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며 라커룸에서 분위기를 띄웠다.
그때 박지석이 들어와 크게 소리쳤다.
"모두 조용!"
그 말과 함께 박지석은 굳은 얼굴로 2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위화감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경기가 끝났나? 세르히오 아게로?"
"아. 아닙니다. 감독님."
"그런데 왜 이렇게 즐거운 거지? 이제 2골 따라온 거다. 앞으로 한 골을 더 넣어야 동점이고, 거기서 한 골을 더 넣어야 우리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분위기는 뭐냐?!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이렇게 방심하고 긴장감을 풀 때가 아니란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 말을 듣고서야 선수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게 되었고, 잠시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선수들의 흥분감을 가라앉히자, 박지석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전반전에 상대가 끈질기게 버텼지만 결국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건 너희들이 이기겠다고 집중한 덕분이다. 그런 긴장감과 집중력을 유지해라. 후반전에 분명 바르셀로나는 공격적으로 나설 거다. 그때 확실히 수비에 집중하고, 그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노린다. 지금까지 한대로 플레이를 유지하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후반전에도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하고 긴장감을 풀지 마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박지석은 선수들의 표정에서 흥분감이 사라지고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며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말이 제대로 전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가람의 앞으로 갔다.
"잘해주고 있다. 역습에서 확실히 보여주었어. 혹시 전반전의 두 골 다 의도한 건가?"
"네. 맞습니다."
박지석은 솔직히 첫 번째 골은 럭키골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람이 의도했다고 하자, 살짝 놀라웠다.
그리고 후반전은 어떻게 꾸려나갈지 궁금해 물어보려고 했다.
그때 가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 오늘 경기는 무리 좀 해도 될까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는 박지석은 살짝 고민했고, 그 모습을 본 가람이 말을 이어갔다.
"오늘 경기를 꼭 이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리를 좀 해야 해요."
이기고 싶은 마음은 박지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리를 한다는 게 가람의 아직 어린 육체에 부담이 간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가람의 눈을 박지석을 볼 수 있었다.
승부욕과 이기고자 하는 투지, 그리고 굳건한 의지가 보였다.
이건 자신이 승낙하지 않아도 결국 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박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찬이에게 한소리 듣겠네. 너를 말리는 것도 쉽지 않겠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만약 너무 무리하는 게 보인다면 교체를 지시하도록 하겠다. 너는 이번 경기뿐 아니라 미래가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박지석의 허락을 받은 가람은 다른 선수들을 모이게 한 후 자신이 생각한 전술을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