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챔피언스 리그 8강전 바르셀로나전[6]
가람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네이마르의 등 뒤로 지나가는 형체였다.
그리고 그 형체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자신의 수비 위치로 은골로 캉테와 닐 이안이 허둥대며 다가왔다.
“젠장!”
흡사 농구에서 사용하는 스크린 플레이를 하듯 네이마르가 앞에서 상대 수비의 시야를 가리고 수비를 마크하는 사이 메시가 그 뒤를 돌아 들어가는 동작을 한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네이마르와 메시의 플레이에 선더랜드 선수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가람이 이 둘의 플레이를 눈치챘지만, 가람이 메시를 막기 위해 가야 할 방향에 방금 전에 네이마르를 마크하기 위해 들어온 김만재가 방해물처럼 막고 있었다.
그때
뻐어엉!!
불길한 소리가 가람의 귓가에 들려왔고,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과 그 공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조던 픽포드가 보였다.
그리고
철썩!!
“고오오오올! 리오넬 메시!!! 후반 39분에 바르셀로나의 이번 경기에서 첫 골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앞서나가는 바르셀로나!!”
“아. 이건 정말 예술 같은 움직임이었습니다. 상대의 허점에 허점을 파고드는 정말 놀라운 플레이와 네이마르 선수와 메시 선수의 놀라운 협력이었어요.”
골을 넣은 메시는 골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센터 서클로 천천히 걸어가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본 네이마르가 골을 넣은 메시보다 더 흥분하며 달려들었고, 잠시 뒤 다른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달려들어 골을 넣은 것을 축하했다.
“허억. 허억..”
가람은 메시가 골을 넣었다는 것보다 메시가 각성 상태에서 보여주었던 침착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아마도 지금의 각성 상태보다 더 높은 경지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경기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절박함이 그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 올려준 거라고 생각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만약 자신이 메시와 같은 나이가 되면 저런 승부욕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
그때 갑자기
“We are Sunderland!! We~ are~ Sunderland!!”
골을 넣은 것도 아니라 골을 먹혔는데 원정팀 서포터즈석에서 선더랜드의 응원 구호가 들려왔다.
그 응원 구호는 꼭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응원 구호를 듣는 순간 가람은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박수를 치고 주변을 보며 크게 외쳤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어!! 한 골! 한 골만 더 넣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모두 힘내자!! 응원해주시는 관중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하자!!”
가람은 방금 메시의 골로 눈에 띄는 사기가 떨어진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치면서 격려했고, 선더랜드의 선수들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선더랜드 선수들은 힘들겠지만, 만약 남은 시간에 한 골을 넣을 수 있다면 원정 다득점으로 다음 라운드 올라가는 건 선더랜드가 될 겁니다. 힘내야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골을 먹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위르겐 클롭 감독 수비를 강화하는 듯 선수교체를 가지고 갑니다. 세르지뇨 데스트, 사무엘 움티티를 빼고, 세르지 로 베르트와 오늘 경기에 체력 문제와 부상으로 선발 출장이 힘들었던 제라르 피케 선수가 들어오네요.”
“다른 선수는 몰라도 제라르 피케 선수가 들어오면서 수비 안정감은 확실히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제라르 피케 선수가 선발 출장이 가능했더라면 선덜랜드가 3골을 넣는 건 더 어려웠을 테니 말이죠.”
그렇게 바르셀로나는 남은 시간에 선더랜드의 공격을 막아낼 생각으로 교체를 가지고 갔고, 그 전술은 유효했다.
“노망준 선수와 제라르 피케 선수의 공중볼 경합! 제라르 피케 선수가 공을 따냅니다.”
“노망준 선수의 공중볼 경합 능력은 뛰어나지만 경험에 앞선 제라르 피케 선수가 한 수를 더 읽는듯한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노망준 선수가 공을 따내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더랜드 입장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노망준 선수의 큰 키를 이용해 단번에 상대 진영으로 공을 넘겨서 거기서 찬스를 만들려고 한 건데요. 이 방법이 막힌다면 답답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아무래도 박지석 감독이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 자리에 노망준 선수를 배치한 것도 큰 신장으로 다소 작은 바르셀로나 중앙 수비진을 상대하려는 생각이었을 텐데요. 194cm의 제라르 피케 선수가 들어오면서 힘들어졌습니다.”
떨어진 세컨볼을 따낸 프랭키 더용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다가 주변 동료에게 공을 건넸고, 바르셀로나는 자신의 진영에서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이제 3분이었고,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면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는 건 바르셀로나가 될 것이었다.
이런 경기 양상에 선더랜드도 이렇게 끝낼 수 없었기에 기존과 달리 모든 선수들이 바르셀로나의 진영으로 올라가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선수들 전원 모두 티키타카 전술을 몸에 익히며 훈련해왔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상대가 압박하는 순간 짧은 패스로 공간을 탈압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일상이었고, 장기였기에 선더랜드 선수들이 공을 뺏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며 선더랜드 선수들의 조바심은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
토오옹!
네이마르 앞에 패스가 연결되었다.
네이마르가 공을 잡자, 해리 네쳐가 다급하게 그의 공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네이마르는 자신의 장기중 하나인 스탭 오버(헛다리 짚기)를 통해 시간을 끌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화가 난 해리 네쳐는 발을 강하게 뻗었다.
원래는 발을 뻗어 공을 걷어내려고 했지만, 화가 나서 그런지 생각보다 발이 안쪽으로 심하게 들어갔고, 결국 네이마르의 발목을 걷어차게 되었다.
아아앗!!
발목이 차이는 순간 네이마르는 큰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삐이익!!
뒤이어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네이마르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라운드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해리 네쳐도 자신이 한 일이 있기에 미안한 얼굴로 네이마르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말을 걸었지만 네이마르는 정말 아픈지 대꾸도 안 하고 발목만 잡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주심은 해리 네쳐에게 다가와 옐로우 카드를 건넸고, 그 와중에 정규 시간은 다 흘러가게 되었다.
“아.. 이거 안 좋습니다. 해리 네쳐 선수. 저기서 파울을 해서는 안 되죠.”
“이제 후반 정규 시간 45분은 끝났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파울이 거의 나오지 않은 가운데 대기심이 추가 시간을 3분 부여합니다. 이제는 기적을 바라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네이마르는 아픈 척하다가 주심이 의료진을 들어오게 하려고 하자, 아예 누워버리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의료진이 바로 투입되지 않고 천천히 준비하며 시간을 끌기 시작하자, 박지석은 대기심에게 다가가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이마르의 연기와 의료진의 느린 준비로 시간은 흘러갔고, 네이마르가 나간 후 바르셀로나는 프리킥을 차는 데도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시간을 끌면 선더랜드에게는 불리합니다.”
시간을 끄는 것에 대해 선더랜드 선수들이 항의하자, 주심도 프리키커인 앙투안 그리즈만에게 다가가 옐로우 카드를 주었고, 앙투안 그리즈만은 억울하다는 듯 제스쳐를 하며 또다시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답답한 가운데 많은 선수들이 집중력이 흩어지고 있는 사이 한 선수만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토오옹!
앙투안 그리즈만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프랭키 더용에게 공을 주는 순간!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람이 공을 가로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 메시가 가람을 마크했다.
가람은 메시의 마크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여기서 자칫 시간을 끌거나 만약 공이 빼앗기면 주심의 휘슬이 울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방해를 받지 않고 이 공을 골대까지 아니 골을 넣어야 했다.
‘해야 해. 해낼 수 있어!’
그렇게 가람은 모든 신경을 골을 넣는다는 것에 집중하며 각성상태에 들어갔다.
그 순간
티잉~
귀에서 알 수 없는 이명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여태까지 메시와 함께 경쟁하며 느껴졌던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했던 그 압박감은 사라지고, 꼭 물속에서 사는 동물처럼 그 공간에서 자유롭게 숨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아까 메시가 보여주었던 평온한 모습은 이 상태에 들어왔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가람은 그 감각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타타탓!
메시가 자신을 마크하기 위해 왼쪽에서 달려드는 것을 경계하며 가람은 오른쪽으로 드리블 방향으로 틀었고, 그대로 앞으로 나갔다.
이렇게 나간다면 각성 상태인 메시가 자신을 쫓아와야 했는데, 메시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김가람!! 김가람!!”
가람의 놀라운 플레이에 마틴 테일러는 김가람을 연신 호명했고 가람은 그런 말에 호응하듯 점점 바르셀로나의 진영으로 파고들었고, 그런 가람을 막기 위해 메시, 프랭티 더용, 부츠게츠까지 뒤에서 따라왔다.
가람의 돌파에 제라르 피케는 크게 소리치며 수비 라인으로 앞으로 땡겼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파울을 해서 막아내기만 한다면 이번 경기는 이긴 셈이었기에 거친 방법을 쓰더라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가람은 앞에는 바르셀로나의 수비 라인이 있고, 뒤에서는 바르셀로나의 중앙 미드필더가 막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하지만 가람은 자신을 좁혀오는 선수들의 포위망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패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순식간에 돌파했고, 그 앞에 제라르 피케가 보였다.
제라르 피케는 가람을 보며 거칠게 몸싸움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가람에게는 그 동작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가람은 제라르 피케를 속일 생각을 하지 않고, 단순히 드리블 방향을 바꾸며 제라르 피케를 벗겨냈고, 제라르 피케의 뒤를 커버하고 있는 클레망 랑글레 앞에서 빠르게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지그재그의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바르셀로나의 중앙 수비수 듀오를 제쳐낸 가람에게 보이는 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테어슈테겐 뿐이었다.
그리고 가람은 망설이지 않고 테어슈테겐의 위치에서 막기 어려운 골대 하단을 향해 공을 찼다.
뻐어엉!!
그렇게 가람이 공을 차는 순간 느려졌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와 함께 방금 전 느껴졌던 감각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골대로 향하는 공과 공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테어슈테겐을 보며 골을 확신하는 순간 가람의 몸에는 급격한 피로감과 고통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