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인과율[1]
메시는 가람이 남은 시간에 혼자서 해결할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있듯이 가람도 선더랜드의 에이스로 당연히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메시는 가람의 움직임을 주시했고, 가람이 프랭키 더용의 공을 뺏는 순간을 노려 메시는 달려들었다.
가람을 막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기에 약간의 방해와 몸싸움으로 가람을 잠깐 멈추게 한다면 주심은 남은 시간을 생각해 바로 휘슬을 불 것이었다.
몸은 떨리고 힘들지만 단 한 번만 가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메시는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집중시켰고, 가람의 앞을 마크했다.
그 순간
‘이건.... 도대체 무슨..’
메시가 가람을 마주하는 순간 느꼈던 것은 여태까지 각성 상태에서 부딪히면서 느꼈던 물속의 답답함이 아니었다.
그런 답답함은 이미 자신도 넘어섰고, 가람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골을 넣어봤기에 그런 종류의 답답함이라면 자신도 충분히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건 그런 종류의 답답함이 아니었다. 지금 느낀 건 바로 어둠이었다.
꼭 우주 공간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어둠과 함께 지구의 중력이 아닌 그 이상의 엄청난 압박감과 중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놀라운 건 자신은 그 압박감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가람은 그런 압박을 느끼지 못하는지 순식간에 자신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안 돼!’
메시는 지금 저 상태로 들어간 가람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크게 외치며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했다.
그때
지이잉!
무리했던 몸이 더 이상 따라주지 않았다.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허벅지 뒤쪽에서 강렬한 고통이 느껴졌고, 메시는 더 이상 뛰지 못했다.
으윽!
결국 메시는 뛰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가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가람은 어느새 테어슈테겐 앞에서 슈팅을 때리고 있었다.
그 등을 보면서 순간 메시는 호나우딩요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에이스. 아니 메시야. 나중에 에이스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때 나랑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
그 당시에는 호나우딩요에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지만, 오늘은 왠지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철썩!!
가람이 찬 공은 바르셀로나의 골문을 갈랐다.
“고오오오오오올!!!! 후반 48분에 추가시간 그것도 추가시간의 마지막에 김가람 선수가 골을 넣습니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건 선더랜드입니다.”
“하아. 정말 말도 안 되는 골입니다. 제가 수많은 경기를 봤지만, 이번 골은 정말 믿을 수 없는 골입니다. 하프 라인 인근에서 프랭키 더용 선수의 공을 가로채서 단독 돌파로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혼자서 다 제쳤습니다. 심지어 중앙 수비수 두 명까지도 제쳐버리고 골을 만들어 내는 김가람 선수입니다.”
“놀랍습니다. 어! 이건..”
마틴 테일러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가람이 골세레머니를 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간혹 놀라운 골을 넣은 선수들이 침묵 세레머니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가람은 그런 유형의 선수가 아니었기에 마틴 테일러은 놀라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때 가람은 제자리에서 실이 끊어버린 인형처럼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고, 골세레머니를 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는 노망준은 바로 가람에게 뛰어가 심폐소생술을 하며 다급하게 의료진을 불렀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은 생각지 않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고, 그 장면은 생중계로 전세계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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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이잉
무언가 기분 나쁜 연결음에 가람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수많은 검은 공간이었고, 꼭 그건 우주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는..’
가람은 골이 터지는 순간 몸에 느껴지는 피로감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렇게 의식을 차리려는 순간
파아앗!
강렬한 빛이 가람의 앞에 나타났다. 그 강렬한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가람은 입을 열었다.
“이거.. 매번 이렇게 나타나는 거야?!”
“여전히 불손하군.”
“사람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잖아.”
“흥! 재미있군. 재미있어. 특히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거 재미있다고 하더군.”
“재미있다니.. 누군가의 소원 덕분에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 거잖아.”
“그런가? 그런데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 건가?”
순간 “당연히 변하지 않지!”라고 말하려는 가람이 멈칫거렸고, 눈앞에 강렬한 빛은 가람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혹시 이번에 내가 이룬다면 소원은 이뤄지는 건가?”
“너의 불손한 마음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약속은 지킨다. 그건 네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물론. 그 환생이 동물이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래. 다시 한번 묻겠다.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가?”
“그전에 한 가지만 묻겠어. 만약 내가 환생하게 되면 지금 김가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대충 눈치채고 있을 텐데.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똑똑한 너라면 말이야.”
그 말에 가람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역시 죽는구나.”
“그렇다. 죽고 너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될 거다. 이미 복선은 깔아둔 상황이지.”
“그 말은 역시 재능 넘치는 축구 선수가 4부리그에 있던 팀을 유럽 최정상에 올린 후 죽는다는 것인가? 이렇게 너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내 몸은 쓰러져 있을 거고, 지난번 특성 트리 각성하는 동안에도 쓰러진 것을 생각해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겠군.”
그 말에 긍정하듯 강렬한 빛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물었다.
“다시 묻겠다.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다는 그 마음 변치 않는 건가?”
그 말에 가람은 강렬한 빛에 뭐라고 이야기했고, 그 말을 들은 강렬한 빛은 가람의 말이 생각지 않은 말인 듯 살짝 동요해 잠깐 깜박였지만, 이내 다시 원래 형태를 갖추었다.
그리고
“재미 있군. 그건 우선 나와의 약속을 지킨 후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생각보다 유도리가 있는 편인걸?”
“불손한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관대하다.”
“관대하신 분이 소원 이뤄주겠다고 인간을 몇백 년 동안 회귀를 시키고, 이렇게 고생시키는 건가?”
“그 모든 건 다 너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충고하지. 네가 말한 것을 이루고 싶다면 가급적 그 힘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 힘이라면..”
가람은 바르셀로나전에 사용한 각성 상태를 말하는 것을 눈치채고, 다급히 다시 한번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다시 한번 귀에서 이명음이 들려왔다.
피이잉~~
그 소리와 함께 가람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귀에 들려오는 건 강이찬의 흥분한 목소리였다.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렇게 되면 저희는 잉글랜드로 가서 진료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지금 환자는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리하게 이동하다가는 더 악화가..”
그때 가람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경기는 어떻게 되었죠?”
그 말에 강이찬과 의사는 가람에게 다가왔고, 강이찬이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김가란 선수! 정신 들어요? 내가 누군지는 알겠어요?”
“강이찬 수석 팀 닥터님이시잖아요.”
“자신의 이름은 기억나요? 마지막에 기억나는 건 뭔지 알겠어요?”
“설마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렸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저는 선더랜드의 용사 김가람이고, 마지막에는 바르셀로나의 골대에 공을 넣는 게 기억이 나는데요. 혹시 골이 안 되었나요?”
가람의 말을 들은 강이찬은 다행이라는 듯 의사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람은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자,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고, 그 모습에 강이찬이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김가람 선수.”
그 말에 가람은 일어나려다가 다시 누우며 재차 물어봤다.
“경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차암.. 못 말리겠군요. 경기는 4 대 1로 선더랜드의 승리입니다. 김가람 선수가 마지막에 찬 공이 골로 이어졌어요. 이제 되었나요?”
강이찬의 답변에 가람은 안심한 듯 그대로 침대에 누웠고,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공을 찬 후 쓰러졌나요?”
“네에. 쓰러졌습니다. 덕분에 난리가 났고요.”
가람은 순간 지난번 일주일간 정신을 잃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저기.. 제가 쓰러진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죠?”
강이찬은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보더니 화들짝 놀라는 동시에 가람에게 대답하고 전화기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세 시간 지났어요. 지금 감독님한테 연락 왔거든요. 제가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신을 차리셨으니 가벼운 검진을 받고, 내일 퇴원하도록 하죠. 네. 감독님. 정신은 차렸습니다.”
강이찬은 병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강이찬이 나가자 가람의 머릿속은 지난번에 쓰러졌을 때도 걱정했던 가족들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지? 분명 캐서린은 난리를 칠 텐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갑작스럽게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까지 쓰러진 걸 알게 되면 캐서린은 당장 축구를 그만두라고 할 것이었다.
게다가 방금 의사와 강이찬이 이야기를 나눈 걸로 봤을 때,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었다.
‘망할 신.. 적당히 병명이라도 만들어두지. 이렇게 되면 어떻게..’
라고 생각한 순간 아까 신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렇다. 죽고 너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될 거다. 이미 복선은 깔아둔 상황이지.’
복선을 깔아둔 거라면 병명을 아는 것보다는 현대 의학으로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죽는 게 더 드라마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쪽에서는 나름 꼼꼼하게 설계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말도 안 되는 재능을 부여하는 동시에 젊은 나이에 요절이라는 기획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려는 순간
끼이익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런데 문이 열렸는데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가람이 누워 있는 침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1인실 병실의 구조상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환자의 시야에 들어오게 설계가 되어 있었는데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자, 가람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아직도 아픈 건가? 이건 무슨..’
그때 병실 바닥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맞아? 누나.”
들려오는 목소리 단 한번의 목소리였지만, 가람은 그 목소리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제발 선더랜드가 다시 승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신을 믿지 않는 제가 이렇게 기도한다고요. 오늘부터 믿을게요. 그러니..’
그 목소리는 바로 자신이 축생으로 환생하지 않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소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