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인과율[2]
가람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남루한 차림의 소년과 소녀가 보였다.
둘은 낮은 포복 자세로 천천히 기여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가람은 이 낯선 방문자에 대해 불쾌함보다는 귀여움이 느껴졌다.
"바닥은 차다. 일어나렴."
"히이익!"
"엄마야!"
가람의 말에 소년과 소녀는 크게 놀랐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이렇게 놀라는 거니?"
"그게.. 아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간호사 누나들한테 들어서요."
"그럼 내가 누워 있을 때 와서 뭘 하려고 한 거니?"
그 말에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 아래 있는 무언가를 꺼내 가람에게 건넸다.
"이거를 두려고 했어요."
가람의 손에 건네진 건 영어로 응원과 쾌유의 메세지가 적힌 종이였고, 종이는 깨끗한 종이가 아니라 의료 차트의 이면지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목에 걸린 선더랜드 응원 목도리가 보이자, 대충 상황이 파악된 가람이 웃으며 말했다.
"응원 고맙다. 너희들의 마음 덕분에 이렇게 내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아."
가람의 말에 소년의 입은 함박 웃음이 번졌고, 그 모습을 본 소녀도 덩달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렇게 들어오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잉글랜드도 아니고 스페인에서 김가람 선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이렇게 결례를 저지르면서 오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이름이?"
"저는 로엔이에요."
"그래. 로엔 그리고 필립 이 응원 문구는 소중히 간직하도록 할게. 그런데 여기는 바르셀로나인데 선더랜드의 팬이니?"
바르셀로나에 살면 대부분 바르셀로나 팀을 응원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만약 다른 팀을 응원한다고 해도 스페인의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게 보통일 텐데, 선더랜드를 좋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선더랜드를 좋아하니깐 필립이 그런 기도를 했겠지만, 가람은 궁금증이 들어서 입을 열어 다시 물었다.
"어렸을 때는 선더랜드에서 살았어요. 저희 가족은 모두 선더랜드의 팬이고요. 특히 아버지가 선더랜드의 열정팬이세요. 아버지는 언제나 선더랜드가 4부리그에 있을 팀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응원 고맙다."
그 말에 로엔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저희야말로 정말 감사해요. 사실 아버지가 좋지 못한 병으로 여기 병원에 입원해 계시거든요. 병세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나마 선더랜드의 경기를 보시는 게 유일한 낙이셨죠. 많이 아프셨을 때 선더랜드가 승격만 하면 병도 나을 것 같다고 종종 말씀하셨어요."
로엔의 말을 듣는 순간 필립의 건방진 기도가 떠올랐다.
‘제발 선더랜드가 다시 승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신을 믿지 않는 제가 이렇게 기도한다고요. 오늘부터 믿을게요. 그러니..’
그건 단순히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아픈 아버지를 위한 기도라는 걸 알게 된 가람의 입에 미소가 생겼다.
"그럼 지금은 승격뿐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향해 가고 있으니 아버지의 병이 많이 호전되셨니?"
"네. 맞아요. 정말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회복세가 좋아지셨어요. 그리고 꼭 병을 이겨내고, 자신의 눈으로 선더랜드가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건 직접 경기장에 가서 보시겠다고 하셨어요!"
로엔 대신 필립이 크게 대답했고, 그 말에 가람은 흡족해하며, 침대에 걸쳐 앉았다.
"그 말을 들으니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을 수는 없겠네. 혹시 아버지 병실로 안내해줄 수 있니?"
"물론이에요!"
가람은 그렇게 필립과 로엔의 안내를 받아 그들의 아버지 병실을 찾았다.
물론 가람이 일어난 것을 보고 강이찬은 가람을 말리려고 했지만 가람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스페인 병원에서 그렇게 짧은 팬미팅을 한 후 가람은 강이찬에게 부탁해 자신이 입고 있던 유니폼에 싸인을 해서 필립의 아버지인 찰스에게 건넸다.
"지금 가지고 있는 유니폼이 이것밖에 없네요."
"아니요. 오히려 바르셀로나를 꺾은 경기에서 입으신 유니폼을 주시니 영광입니다."
그 모습에 가람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시키는 대로 입을 열었다.
"저랑 한가지 약속하실래요? 찰스씨?"
"약속이요?"
"네에. 제가 선더랜드를 이끌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오를 테니, 찰스씨도 힘내서 병원이 아니라 그 경기를 직접 보시는 걸로 말이죠. 티겟은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가람의 말에 찰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가람의 말처럼 병이 씻은 듯이 나을 수는 없을 것이고, 눈앞에 있는 가람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환자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였다.
가람의 약속은 그런 자신의 약했던 의지를 강하게 하는 데 충분했다.
"결승에 오르려면 4강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를 이기셔야 하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이길 겁니다. 그러니 한스씨도 힘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약속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그동안 망설였던 치료를 해야겠네요."
한스의 말에 아이들의 눈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그 모습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 저도 약속을 지키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렇게 가람은 찰스와 약속을 한 후 병실을 나서려고 했고, 그때 필립이 따라와 가람의 손을 잡았다.
이에 가람은 허리를 숙여 필립의 눈높이에 맞추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니?"
"저.. 저.. 정말 고맙습니다. 김가람 선수! 저 나중에 크면 꼭 김가람 선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게요."
생각지 않은 필립의 말에 가람뿐 아니라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황당해했고, 어떻게 그가 가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건지 살짝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람은 그런 필립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대하도록 할게. 아버지 잘 간병해 드려. 우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보자."
"넵!"
그렇게 가람은 자신의 병실로 가기 전에 찰스의 주치의와 이야기를 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항암치료가 쉬운 건 아닙니다. 항암치료를 한다고 해서 100퍼센트 회복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환자가 이 힘든 치료를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동안은 아이들을 보면서 버텼던 찰스씨인데 이제는 더 치료를 이겨내야 할 이유가 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김가람 선수."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 병원비 문제가 있다면 제가 해결할 테니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고 치료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순간 주치의는 가람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며 놀랐지만, 가람의 선행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찰스의 주치의와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병실에 돌아오자마자, 강이찬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팬서비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더 중요한 건 선수 본인의 몸입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수석 팀탁터님. 그래도 스페인에서 저를 아니 선더랜드를 응원하신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말이죠. 나중에 구단주님이 들어도 저를 칭찬하실걸요."
"그건 아니죠! 중요한 건 선수의 몸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강이찬의 잔소리가 이어지려는 순간
띠리링!
[인과율의 씨앗이 되는 어린 팬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보상 : 슈퍼 스타]
[슈퍼 스타 : 모든 이들이 함께 뛰고 싶어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존재만으로 구단의 가치가 올라가고, 당신과 같이 뛰고 싶어서 선수들의 이적이 늘어납니다.]
상태창의 생각지 않은 보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람이 놀라기도 전에 상태창의 메세지가 한 개 더 떴다.
띠리링
[슈퍼 스타 특성을 모두 활성화시켰습니다.]
[추가 보상이 부여됩니다.]
[추가 보상 : 원하는 스탯 한 개를 100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스탯을 선택해 주세요.]
그와 동시에 한동안 켜지 않았던 스탯창이 나왔다.
김가람 / 나이: 만 21세 / 키 : 188 / 몸무게 : 78 / 주발 : 양발
|개인기 95|, |슈팅 100|, |킥정확도 95|, |드리블 95|, |헤딩 100|, |패스 95|, |태클 92|, |민첩 100|, |체력 99| , |속도 100|, |몸싸움 100|, |위치선정 99|
생각지 않은 보상 벼락에 가람은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고, 약간 머뭇거리려고 하자
[10]
[9]
갑자기 상태창이 카운터를 걸기 시작했다. 생각지 않은 카운터다운에 가람은 그동안 아쉽다고 생각한 능력을 골랐다.
[선택한 능력은 드리블입니다. 해당 능력을 100으로 올리겠습니까?]
상태창의 물음에 가람은 긍정했고, 그 말과 함께 상태창은 갱신되었다.
김가람 / 나이: 만 21세 / 키 : 188 / 몸무게 : 78 / 주발 : 양발
|개인기 95|, |슈팅 100|, |킥정확도 95|, |드리블 100|, |헤딩 100|, |패스 95|, |태클 92|, |민첩 100|, |체력 99| , |속도 100|, |몸싸움 100|, |위치선정 99|
"그러니 몸이 중요한 겁니다. 아시겠죠?"
강이찬이 잔소리를 하는 동안 가람은 상태창의 내용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강이찬은 자신의 말에 가람이가 대꾸도 하지 않고 있는 걸 보고 반성했다고 오해하며 바로 간단한 검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은 가람은 강이찬과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선더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뉴캐슬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수많은 기자들이 가람을 향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질문의 내용은 대부분 몸 상태에 대한 질문이었고, 강이찬은 구단의 정식 답변이 있을 거라며 회피하고 구단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어렵사리 구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병원에서 간단한 조사를 마쳤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 강이찬은 이미 선더랜드 병원에 부탁해서 구단에 부족한 시설을 임대해 가람을 정밀 검사하기 시작했다.
가람은 이미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도 알고 있고,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정밀 검사를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강이찬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순순히 검사를 진행했다.
'그래. 차라리 검사 결과가 나오면 괜찮겠지.'
그런 마음으로 가람은 정밀 검사를 끝냈고, 강이찬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구단주 방으로 가보라고 했다.
가람은 당연히 하늘이 걱정하기 때문에 방에 가보라고 한 것으로 생각해 걸음을 옮겨갔다.
똑똑!
"들어오세요."
김하늘의 말에 가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람의 눈에 김하늘 책상 앞에 있는 쇼파 가운데 김하늘이 앉아 있고 왼쪽 쇼파에는 박지석과 안정한이 그리고 반대편 쇼파에는 캐서린, 알렉스, 리사 뮐러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가람은 생각지 않은 구도를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