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화 (1/174)

[홍염의 성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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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날이었다.

하늘은 새파랗고, 솜덩이처럼 뽀얀 구름은 평화로이 흘러간다. 쏟아

지는 햇살은 약혼식이 준비되는 뜰을 눈부시게 하고, 풍만한 백장

미들이 그 녹색의 공간을 풍요롭게 장식한다. 은과 사기로 된 식기들

이 테이블 옆에 쌓였고, 그것들 역시 선명한 햇살에 화사하게 빛났다.

피로연 준비를 하는 하녀들은 늙고 까다로우며 충직한 집사가 사소

한 실수도 고문하듯 잡아내자 얼굴을 잔뜩 구기며 그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했다.

이건 누가 세팅한 거냐! 이런,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의 순서가 바뀌

었다! 아니, 여기다 이 포크를 가져다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 오늘은

생선이 나오지 않는다. 숫자가 모자라면 다른 곳에 가서 얻어 오

기라도 했어야지! 오늘 오는 분들은 모두 높으신 분들인데, 지푸라기

만한 실수도 주인님의 명예에 흠집을 내게 된단 말이다. 이런 테이

블 당 의자는 다섯 개를 놓으라고 했다! 여기는 세 개 뿐 이잖느

냐. 맙소사! 이 꽃은 시들었다! 오늘은 약혼식이란 말이다, 약혼식!

하인과 하녀들은 백만 스물다섯 번 정도는 들은 듯한 야단을 초췌하

고 쾡한 얼굴로 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금발 머리 하녀가 꽃바

구니에 리본을 매다가 그 리본이 비뚤어졌다고 당장에 집사에게 혼쭐

이 나고 있을 때 오늘 약혼식의 주인공이 되는 주인이 안뜰에 나타났

다. 그는 집사의 호들갑에 피식 웃고는 쾌활하게 말했다.

“누가 보면 황자라도 약혼하는 줄 알겠군. 그쯤 해 둬.”

“하지만 에드먼드 님, 다른 날도 아닌 주인님의 약혼식 날입니다. 오

늘 귀한 분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 지는, 주인님도 잘 아시지 않습

니까! 그런 분들이 사소한 흠집 잡는 데 얼마나 공을 들이는 지, 저

는 잘 안답니다.”

에드먼드는 나이 스물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갈색 머리를 가진 젊은

이였다. 눈은 검고 총명해 보였으며 눈매도 아주 서글서글했다. 몸은

늘씬하게 잘 빠져서 나이 지긋한 노부인들이 ‘참으로 늠름한 젊

은이네요.’ 하고 좋아할 법 했다. 오늘 처음 온 사람이 보면 부모로

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도련님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이 청년은 7년 전에 마그레노 항에 나타나 식민지 무역으로 단번에

이 항구 도시의 손꼽히는 자산가가 된 사업가였다. 식민지로부터 제

일 돈 안 된다는 양털을 수입을 하는 어느 작은 상회의 직원으로

들어가더니, 반 년 만에 거의 망해가던 그 상회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정말 전설적인 성공의 연속이었다.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큰 무역선 다섯 척을 가지고

점점 거대해져가는 식민지 무역을 하고 있었다. 다른 배들은 폭풍에

휩쓸려 가라앉아도 에드먼드의 배들만은 만선을 마친 듯이 으쓱대

며 항구로 들어왔다. 상회의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하듯 이 청년 역

시 보석 밀무역에 손을 대고 있었지만, 다른 상회가 일년에 한 두

번씩 꼭 시청으로부터 은근한 압력과 뇌물을 바쳐야 할 때에도 단

한건의 증거도 잡히지 않았다. 그 덕에 그는 겨우 3년 만에 뒷길

로 들어오는 물건 대부분을 독점적으로 거래하게 되었다. 어마어마

한 뇌물 값이 포함되지 않으니 가격은 다른 밀무역상들의 물건들

보다 쌌고, 해군에게 걸리지도 않으니 언제나 때가 되면 물건을 가

져다주어 보석상들은 그와의 거래를 더욱 선호했다. 뿐만 아니라,

이리 성공한다 할지라도 인색하지 않아서 자선단체에 언제나 상당한

돈을 기부해 왔으며, 시의 관리들을 챙겨 주는 것을 잊지도 않아

사람들로부터의 평판도 좋았다. 또, 하층민에서 성공한 사람답지

않게 교양도 풍부해서 사람들은 간혹 그가 브란 카스톨의 어느 명

문가의 자제였는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인이 되기 위해 이 마

그레노 항에 온 것이라 말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낭만 적인, 그리고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것이긴 했으나, 사람

들은 오히려 그 낭만적인 소문을 믿고 싶어 했다. 심심하거나 고달픈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낭만에 쉽게 흥분하고, 믿고 싶어 하

는 것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재주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에드먼드는 천국처럼 아름다운 피로연장을 둘러보았다.

준비가 완전히 끝나는 것을 집사가 끈덕지게 방해하고는 있었지만,

누가 봐도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이 성공한 신흥 갑부

에드먼드에게는 시장마저도 자신의 딸을 내어줄 정도였지만(물론

미혼인 외동딸이 올해 두 살이라는 낭패가 있지만), 에드먼드는 어

느 늙은 잡화상의 딸과 결혼할 예정이었다. 올해 열아홉인 그 아가

씨와 에드먼드가 알게 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다. 소년 에드먼

드가 막 도시에 도착하였을 때,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빈털터리

소년에게 크지는 않지만 그녀에게는 최선이었던 도움을 주고는 했

다. 당연하게도, 그 때부터 소년과 소녀는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아가씨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청년이 부유해지자, 드디어 결

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에드먼드의 어려운

시절 은인이기도 했다.

정오가 되자 마침내 하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 항구에 왔

을 때부터 그와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지금 그 에드먼드와 거래하고

있는 상인들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 직원들과 그가 선주로 있는

배들의 선원이었다. 식민지로 나가 있는 사람을 제하고는 오늘

모두 하루 일을 쉬고 선주의 초대를 받아 이 약혼식에 오는 것이다.

그들 모두 평소와는 달리 매끈하게 차려입고 선망과 부러움 어린

눈으로 약혼식장을 둘러보고, 그들을 기다리는 에드먼드에게 달려

가 악수를 나누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에드먼드는 빙그레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얼싸 안기도 하며 그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

리고 그 중에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키 큰 소년 하나가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와 악수했다.

“정말 축하 드려요!”

그는 얼굴에 에드먼드를 향한 동경과 숭배를 감추지도 못했다. 에드

먼드로부터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요, 그의 어머니의 목숨까지 빚진

소년이었다. 열다섯 살 때부터 항구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는데,

심하게 아픈 날에도 일하다가 무너진 화물에 깔려 죽을 뻔한 것

을 에드먼드가 직접 구해주었다. 어머니 병구완 때문에 하루도 쉬

지 못하게 된 것을 에드먼드가 가엾게 여겨 그 상회에서 일하게 해

주고 그 어머니가 완쾌될 때까지의 치료비까지 대신 내 주었다.

에드먼드는 소년과의 악수를 마치고 다음 하객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로 달가운 손님이 아니었다. 비쩍 마르고 키가 큰 안색

나쁜 남자 하나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

그리고 음침한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그 모습을 본

발터의 눈이 날카로워졌고, 밝은 얼굴이던 하객들도 서로 수군대

기 시작했다. 남자는 퉁명스레 말했다.

“축하하네, 에드먼드 군.”

에드먼드는 행복한 사람의 여유로 그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

나 그는 손을 한번 쏘아보기만 했을 뿐이다. 무안해진 에드먼드는

손을 당기고는 말했다.

“와 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노버스 씨.”

“흥, 좋아 보이는군.”

사람들이 더 목소리를 낮추어 수군대기 시작했다.

마그레노 항에서 이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브란 카

스톨에서 공부까지 하고 온 마법사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늘 연구

실에 처박혀서 이상한 연구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자인

동생이 이상한 반란에 연루되어 재판 중이라, 그 동생을 구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 위해 자주 자주 나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뜨였다.

“지난번의 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 아직도 화가 나 계신 겁니까?”

“자네가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 안 했네. 하지만..... 자네, 참

뻔뻔하기도 하군. 이리 거창한 피로연이라니! 두렵지도 않나?”

발터의 눈이 분노로 험악해졌다. 집사가 다가오더니, 쫓아낼갑쇼? 하

는 눈으로 주인인 에드먼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당

사자인 에드먼드 만은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지난 번 당신이 추측한 것은 정말 터무니없었고, 그런 추측으로 저

를 협박을 하는 것은 용서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생 분의

일은 동생 분 본인의 일이지 않습니까. 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는

마시고, 또 제가 해결해 드릴 수도 없습니다. 오늘이 좋은 날이라

화내지 않는 것뿐이니, 얌전히 연회를 즐기시고 돌아가십시오.”

“에드먼드! 맙소사, 터무니없다니! 그게 진실이라는 사실을, 나 혼자

만 알고 있을 것 같나? 내 동생이 억울하게 저 파난의 유형지로 떠날

판인데, 내가 농담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자네를 이 행복한 자리에서 가장 비참한 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자네의 비열한 정체를 모두에게 알려 버릴 거라고! 그

때도 이렇게 히죽댈까!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 걸! 후회할 거야!”

결국 참지 못한 발터가 나섰다. 에드먼드가 말릴 틈도 없이, 그의 주

먹이 노버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빠각-!

잔돌 부서지는 듯한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눈을 질끈 감거나 비웃음

을 흘렸다. 노버스는 피를 닦아내며 욕을 퍼부어 댔다.

“이 불한당 자식 같으니라고!”

“불한당은 네 놈이잖아! 당장 꺼지지 못해!”

그리고 발터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에드먼드는 그런 발터의 어깨를

지긋이 잡으며, 주변의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오늘 아자렛에게 흉한 약혼식을 서사하고 싶지는 않으니, 노버스 씨

를 조용한 곳으로 모시도록 해라.”

그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하인들이 당장에 몰려들어 노버스를 끌고

가 버렸다. 노버스가 끌려가며 온갖 욕을 성난 참새처럼 퍼부어 댔

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법사라면, 누구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이 화염구나 한방 날리면

될 것을.”

귀부인 하나가 부채를 부치며 비웃었다.

“욕하느라 바쁘잖습니까. 주문 외울 틈도 없군요.”

하객들이 일제히 웃었다. 그 모습에 노버스가 더욱 험악하게 외쳤지

만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네 놈 분명 후회할 거야! 후회할 거라고!”

에드먼드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하객들을 둘러

보았다. 그때 하녀 하나가 달려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외쳤다.

“아자렛 아가씨께서 도착하십니다. 줄리오가 사과나무 모퉁이에 그

분 마차가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고 해요!”

같은 말을 들은 하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에드먼드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하녀와 함께 저택의 정문을 향

했다. 오후가 되어가며 햇살은 더욱 따사로워졌다.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하얀 조각상들 역시 구름마냥 푸근해 보일 정도였다. 하객의

마차들이 정문에 줄을 서 있었고,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내렸다. 그

들은 저택의 주인인 에드먼드가 정문까지 나와 있자, 서둘러 그에

게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청했다. 그들에게 일일이 화답한 에드먼드

는 곧 나타날 약혼녀의 마차를 한시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 도착

하는 마차들을 살폈다.

그 때 빌린 것이 뻔한 마차 한대가 대문 앞에 멈추더니 그 안에서

키 큰 여자가 내렸다. 그녀를 보자 에드먼드는 당장에 기분이 나빠

졌다. 일부러 화려하게 차린 모습이었다. 온갖 레이스에 깃털달린 모자,

분명 빌렸을 양산까지, 하나같이 화려하고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에드먼드를 발견하자 “어머나 이게 누구야.” 하고

뻔하고 유치한 한 마디를 하고는 턱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뒤를 따

라 비썩 마른 아이를 안은 하녀가 내렸다. 올해로 두 살 되는 그 아

이는 붉은 빛 감도는 머리에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정말

못생겼다. 코는 들창코에, 방울처럼 툭 튀어나온 눈, 이마는 지나

치게 좁았고, 입술도 너무 얇아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를 지경이었

다. 게다가 무엇을 먹여도 전혀 살이 붙지 않아서 아이 같지 않게

볼이 푹 꺼지고 눈도 퀭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못생긴 아이라, 미인인 어머니 품에 안

겨 있으면 원숭이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안갈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이 아이의 아버지가 얼마나 형편없는 몰락 귀족인지 누구나 잘 알고

있고, 그 어머니가 그 남자에게 속아 결혼한 멍청한 연극배우라고

누구나 잘 알기에, 마음 놓고 이 ‘원숭이 꼬마’를 비웃었다. 그

러나 다른 사람들-심지어 그 아버지까지- 싫어하는 이 아이를,

아이의 어머니 밀드레드는 끔찍하게 예뻐해서 언제나 데리고 다니고

돈을 빌려서라도 아이에게는 늘 예쁜 옷을 입혔다. 그러나 어머니

의 정성과는 달리 오히려 그런 모습이 웃음거리가 되어 사람들은 겉

으로는 ‘오늘 옷이 참 예쁘네요!’ 하고 말하고, 뒤에서는 ‘오늘

서커스단의 원피스 입은 원숭이랑 똑 닮지 않았어?’ 라고 숙덕대며

깔깔 웃어댔다.

오늘도, 그녀는 한바탕 울어 댔는지 눈물 콧물 범벅이라 평소보다 더

욱 흉해 보이는 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직접 닦아주고 있었다.

“우리 귀여운 요정, 이렇게 울면 사람들이 너의 예쁜 눈을 제대로 볼

수 없잖니? 뚝- 잘 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런 내 딸.”

옆의 하녀가 으엑,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딸을 예뻐

한다지만 그녀는 자신의 딸이 얼마나 못 생겼는지 도무지 모른다.

가식이라면 차라리 믿을 만 했는데, 에드먼드가 봐도 그녀는 자신

의 딸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가 갑자기 눈을 끔뻑거리더니(그러니 정말 원숭이 같

아 보였다), 축축한 손을 들어 에드먼드를 가리켰다. 에드먼드는 뜨

끔했다. 저 꼬마는 못생긴 얼굴과는 달리 지나치게 영리했다.

“그 아저씨에요, 어머니.”

말 역시 아이답지 않게 뚜렷했다. 그러나 그 영특한 말투는 그 못생

긴 얼굴 덕에 귀엽기는커녕 오히려 도깨비나 사악한 요정마냥 징그

러웠다. 그녀는 손수건을 당기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와 닮은 붉은

금발 머리였다. 그러나 눈은 훨씬 더 푸르고, 속눈썹도 길었으며,

그린 듯이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멍청해도 미인은

미인이다.

“약혼 축하해요, 에드먼드.”

그러나 그녀의 말투는 가시 돋쳐 있었다.

“오늘은 안 오리라 생각했던 하객이 너무 많군요, 밀드레드.”

밀드레드가 입술 끝을 올렸다.

“가슴이 찢어지기는 하지만, 행복을 빌어주려고 왔지요. 당신 신부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요. 아무리 깨어진 사

랑이라지만 적어도 그 정도로 추한 여자는 아니랍니다.”

딸이 그녀의 치마를 잡아당겼다. 곡예단의 원숭이에 치마를 입혀 바꿔

놓아도 아이가 바뀐 줄 모를 정도로 못생겼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사랑스럽다는 듯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멍청하고 천박하든,

아이가 무시무시하게 못생겼든,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외로운

어머니 그레타만큼이나 온화하고 정숙해 보였다.

“오늘은 더 예쁘지 않나요? 얼마 전에, 연극 관람을 오셨던 외교관

나리가 저희 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더니 이리도 영특한 아이는

정말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믿어지지 않을 테지만, 외교관 나리와

그 아드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잠자코 듣더니 두 시간 만에

브리칸 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답니다. 두 살밖에 안 된 아이가요.”

그 이야기는 에드먼드도 벌써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외교관은 에드먼드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기까지 했다.

-너무나 영특해서 무서울 지경이었고, 그 못생긴 얼굴 때문에 더 무섭

더군! 요정이 아니라 난쟁이 악마가 바꾼 아이 같았지 뭔가! 꿈에

나올까 소름이 끼치더군.

못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을 일이지, 이 아이의 심술궂고 영악한 성격은

못생긴 얼굴보다 더 유명했다. 얌전한 이름은 차라리 우스꽝스러울 지경

이다.

“피로연장은 뒤쪽이오.”

“아아, 드디어 약혼을 하시긴 하시군요. 예쁘고 얌전하며 정숙한

아자렛 양과.”

한껏 빈정대는 말투였다.

에드먼드는 간절히 지나쳐 버리고 싶었지만, 이 여자는 그 경박한

눈길로 계속 에드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는 길에 필립 하사를 만났어요. 그 가엾은 청년은 거의 정신이

나갔더군요......당신만큼이나 오래 그녀를 사랑했을 텐데.”

“아자렛이 택한 사람은 나요.”

“당연하죠. 어디, 그 변변찮은 군인과 당신 같은 청년을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에드,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그리고 그녀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슬며시 꼬았다. 원숭이 같은 그

아이는 원숭이와 비슷할 정도로 잽싸게 하녀에게 달려갔다. 에드

먼드는 제발 아자렛이 저런 아이는 낳지 않기만을 바랬다.

“당신은 믿으실지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말이에요...... 굉장한

비밀이 하나 있어요. 제 부탁을 들어 준다면 가르쳐 드릴 수도

있고, 그리 된다면 당신은 정말 제게 감사하게 될 거에요. 평생.”

“부탁부터 들어보지.”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는 교태어린 목소리, 예전에 그녀와 밤을

보내곤 했을 때 속삭이던 그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도망쳐 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목소리를 더 낮추어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밀드레드, 미안하지만 어찌 애 딸리고 변변찮은 3류 연극배우와,

아자렛을 비교할 수 있을까.”

순간에 밀드레드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당신 같은 닳고 닳은 여자의 사랑을 누가 믿소. 나와 만나면서 다른

남자들을 끌어 들인 것은 당신이고, 그래서 나 역시 당신을 버린 거야.

물론 5년이나 전 일이니, 부득이 문제 삼지는 않겠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다니까. 하지만 제 진심은...”

“당신의 그 원숭이 같은 딸아이에 대한 사랑을 제하고는, 당신이

말하는 그 어떤 진심도 못 믿소. 또한, 애송이 청년에 대한 사랑은

쉽게 변하면서 지금의 나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진심이 되는 그

별난 진심 역시 못 믿겠단 말이오.”

밀드레드의 눈이 방금 전과는 비할 바 없이 매섭게 타올랐다. 정말

앞의 에드먼드를 잡아 찢어 죽일 듯 했다.

“원숭이라니! 어떻게 우리 로이를 그 따위로 말하는 거에요!”

“당신 딸이 원숭이 닮았다는 건, 당신 빼고는 모두 아는 사실이야.”

밀드레드가 이를 갈아붙였다.

“나쁜 사람! 당신이 파멸하든 말든, 그게 누구의 손이 되던 상관치

않겠어요! 아니, 당장 죽어 버려--! 당신 따위를 도와주려고 했던

내가 바보였다니까!”

“당신이 도와줘야할 정도의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내가

정말로 멍청한 실수를 했을 때지.”

순간 밀드레드의 손이 치솟아 에드먼드의 뺨을 후려쳤다. 하녀에게

달라 붙어 있던 아이가 조르르 달려와 밀드레드의 치마를 잡았다.

“엄마!”

에드먼드는 다시 그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분노에 타오르는 툭

튀어나온 눈을 보니, 정말 화난 원숭이 같아 보였다. 밀드레드는

그런 소녀를 안아 들고는 뺨을 비볐다.

“가자, 로이. 정말....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

어! 저런 몹쓸 사람에게 기대했다니!”

소녀가 에드먼드를 빤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아무리

아이지만 그런 행동은 정말 오싹했다.

그렇게 그녀와 흉측한 딸이 사라지자 에드먼드는 뺨을 훔치고는

다시 정문 쪽을 보았다. 드디어 흰 리본으로 장식된 무개마차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연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검은 머리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에드먼드는 달려가 직접 마차 문을 열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자렛은 수줍게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검은 곱슬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말 그대로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운 소녀였다.

에드먼드는 그녀의 손등에 키스하고는 팔을 내밀었다. 아자렛은

그와 팔짱을 끼며 아름다운 저택과 그들을 기다리는 피로연장

을 행복에 들뜬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그것도 이렇게나

빨리 오리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데.....”

“믿어야지.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한 것인데.”

그리고 그는 아자렛 옆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미소를 지었다.

늙은 마렐 씨는 눈물까지 글썽했다. 아자렛에게 그녀가 결혼한 뒤

에도 이 노인과 저택에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이 노인은 사실

에드먼드에게는 마그레노 항에서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기도

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에드먼드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약혼식장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기대는 아자렛의 은은한 장미향에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에 겨운 그의 눈에, 정원의 사과

나무 저편에 서 있는 제복의 기사가 보였다.

에드먼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느닷없이 나타난 기사를 눈여겨

보였다. 기사의 제복은 검붉은 색이었고, 비스듬하게 보이는 그의

등에는 검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그가 갑자기 검을 뽑아 들

었다. 눈부신 햇살에 그 검 날이 번득이는 순간에, 그의 등 뒤에서

똑같은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나타났다. 마렐 씨가 말 그대로

어디선가 뚝딱 나타난 듯한 그 기사들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뭔가.”

에드먼드는 설마 했다.

제일 먼저 나타났던, 진한 금발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중년의 기사

가 말을 몰아 에드먼드 쪽으로 왔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기사가 말했다.

“에드먼드 란셀 이라는 분을 찾아왔소. 이 저택의 주인이라고 들었

는데.......아, 약혼 축하합니다, 아가씨.”

기사가 아자렛의 가슴에 꽂힌 꽃을 보고는 그리 인사를 건넨다.

거창한 제복과는 달리 꽤 예의 바른 군인이었다. 그리고 기사는

한껏 예의를 차린 어투로 말했다.

“어쨌건 에드먼드 란셀 씨는 안에 계시오?”

“접니다만.”

기사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듯

나른하게 한숨을 내 쉬고는 주변에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를

따라왔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겁먹은 아자렛이 뒤로 물러났고, 그런 그녀를 감싸 안으며 에드먼

드가 외쳤다.

“당신들 뭐요.”

“교황청 산하, 니콜라스 추기경 직속의 철십자 기사단이오. 우리

가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당신도 잘 아리라 믿소.”

아자렛과 마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들도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눈 마주

치는 것조차 악몽인 일이다. 에드먼드는 칼자루에 손을 얹는 그

기사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대강 알지만....... 대체 왜 나를 찾아오신 겁니까.”

“신과 교황예하를 대신하여 이 땅의 사특한 것들과 싸우시는

추기경 예하와, 이 항구의 주인이신 데리카 대공각하의 명으로

당신을 체포하오, 에드먼드 란셀.”

에드먼드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는 파랗게 질린 아자렛이 서 있었다. 그녀가 겁먹은

새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 어떻게 된 거에요! 교황청이라니! 에드먼드, 당신....무슨

일에요, 이게 무슨 일이죠? 다, 당신 아무 죄도 없잖아요. 게다가

철십자 기사단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

“당신 믿음 대로요, 아자렛. 나는 곧 돌아올 거요. 두 시간이면

되요, 딱 두 시간. 돌아올 테니, 모두에게 기다리라고 말 해줘.”

말에서 내린 기사가 그의 팔에 두터운 은빛 수갑을 채웠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정말로.”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머리를 묵직한 충격이 후려쳤다. 피가 튀었

다. 머리는 아찔해지고, 하늘이 번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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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자, 시작합니다. ^^

첫 시작이니.... 재미있게 봐 주시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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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1장 유배지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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