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3화 (3/174)

제2편

유배지의 아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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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먼 빗소리처럼 흩어졌다.

몇 년 전에 빈민가를 지날 때마다 지겹도록 보아온 지저분한 아이들

이었다. 탐욕스럽고, 체념한 듯 빈정대고, 그 체념 속에는 언제나

분노와 증오와 이른 나이에 너무 빨리 배운 비굴함까지 깃들여 있다.

방금 전에 그에게 말을 건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더러운 아이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아이라도 차가운

겨울 바다 같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아이다운 천진한 잔인함이 가

득 담긴 혀로 말을 걸어준 그 아이는,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다.

뭐라고 말했더라, 아아, 그래.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럴 거라

말한 것뿐이지.

에드먼드는 실로 오랜 만에 불이 꺼진 듯 컴컴하던 의식에 불을 키고

기억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가.

그 날, 수갑이 채워진 후 모든 것이 끝장나 버렸다. 아무도 어찌 된

일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고 심지어 말조차 걸지 않았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사방이 돌로 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손과 발은 족쇄로 묶여 벽에 고정되어 남루한 죄수복 바지와 셔츠

만이 거죽마냥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느 날인가 두건을 쓴 간수들

이 들어오더니 그의 팔과 다리의 힘줄을 남김없이 잘랐다. 잠시 뒤에

그 감방 안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몇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청년의 턱을 잡아 이리 저리 돌려 보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 한마디

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양 옆으로 갈라지며 몸집이 작고

비쩍 마른 사내가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후드로 머리를 가리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좁은 어깨와 비썩 마른 팔 다리로 간신히 그

체구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남자가 에드먼드의 손을 잡고는 송곳처럼 생긴 것을 꺼내 그 뾰족

한 끝으로 손등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몸을 갈가리 찢었다. 비

명을 터뜨리며 울부짖을 뻔 했지만,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그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다

는 것을 깨달았다. 턱이 부서질 듯 아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키 작은 사내는 에드먼드의 손등에 복잡하고 이상한 것을 잔뜩 그려

넣은 후에 그 피투성이 손등 위에 두 손을 얹고 주문을 읊었다. 순

간에 끔찍한 고통이 몸을 꿰뚫었다. 남자는 반대편 손에도 똑같은 일

을 했다. 고통이 익숙해 질 리 없고 좀 덜 해질 리도 없다. 에드먼

드는 까무러칠 뻔 했지만, 아니 정말 그러고 싶었지만 고통은 지독

하게 생생하고 정신 역시 수정처럼 깨끗했다.

천년 같은 시간이 지나며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나자, 그는 숨을 헐떡

이는 에드먼드의 이마에 축수하듯 손을 얹었다 떼고는 물러났다.

아무 힘도 없던 그의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기력

해졌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들은 그 감방에서 우르르 몰려 나갔다.

그나마 사람을 본 것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매일 매일 똑같이 끔찍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팔 다리는 꿈쩍도 할 수 없게 벽에 고정되어 있고, 식사는 매일 매일

나와 입에 떠넘겨졌다.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자들이

와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재갈을 빼고 음식을 떠 넘겨주고, 다

시 재갈을 채우고는 사라졌다.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느냐는 말은커

녕, 팔이나 풀어 달라는 말조차도 할 수 없었다. 바싹 바싹 말라

가고 느릿느릿 미쳐갔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그는

수정처럼 투명하고 차가운 정신 상태였다. 1년이 지났는지, 10년이

지났는지, 100년이 지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옷의

남자들이 와서 그의 족쇄를 풀어준 것이다. 그는 그들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혀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턱

에 척 들러붙어서, 정말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에드먼

드의 얼굴에 올 때 그러했듯 안대를 씌우고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는 잡아끌었다. 그러나 발의 힘줄이 잘려나간 데다가 오랫동안 꿈쩍

도 하지 못해서 발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그 중에 제일 덩치가 큰 남자가 나타나

에드먼드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까만 어둠이 스물 스물 밀려 가고 흐릿한 빛과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커다란 물소리가 들리는 배 안이었다. 그는 철창

안에 갇혀 있었고, 그 새장 같은 작은 감옥 주변에는 족쇄와 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가득했다. 그 중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

다. 더러운 아이들이 검은 얼굴을 들어 눈동자를 반짝이기는 했지만

곧 지쳐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그 안에서 두 달이 지났다.

에드먼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어째서 이런 꼴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배가 가는 대로 날이 흐르는 대로 먹고 잤을 뿐이다. 몇 사람이

죽어 바다에 내던져졌다. 죄수들이 풍기는 냄새는 갈수록 고약해져

갔고, 결국에는 전염병까지 돌았다. 그리고 다시 한달이 지나자 배

는 마침내 어딘가에 멈추었다.

죄수들이 배에서 끌어 내려졌다. 그들을 따라 끌려가며 드디어 에드

먼드도 햇살을 보게 되었다.

낯선 풍광이다.

사방에는 건조한 먼지가 자욱했고, 그저 바람소리와 갈매기 소리, 파

도 소리만이 적막한 가운데 들려올 뿐이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어디인 지 대강 알아챘다. 이곳은 파난 섬, 게르드 황제

에 의해 제국의 식민지가 되며 황제의 조카 되는 다투스 공에게 주

어진 그 거대한 섬이다. 이 죄수들은 모두 그곳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죄수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끝나자, 간수와 병사들은 다시 죄수들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제 멋대로 지껄여 대던 더럽고 머리 부스스한

아이가 도망친 것도 그 때 즈음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의

뒤를 따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죄수들은 그들이 잠시 머물 감옥

으로 향했고, 가족들은 길바닥에 웅크리고는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드먼드 만은 달랐다. 그를 실은 마차는 그 안으로 들

어가지 않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해가 기울자 그림자들은 길어지고 먼지는 진한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리고 마차는 마침내 어느 철문 앞에 멈추었다. 간수가 그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 에드먼드는 마차에서 끌어 내

려졌고, 걸어갈 수 없는 그를 두 간수가 그 양 어깨를 부축해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먼 길이었다.

좁고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계단은 땅의 심장까지 뚫린 듯 길게 굽

이굽이 흘러갔다. 컴컴했다. 간수가 든 램프만이 그 깊은 동굴을

비추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에드먼드는 바닥에 다다랐다.

평평하고 넓은 곳이었다. 간수 하나가 허리춤에 찬 열쇠를 꺼내더니,

어둠을 더듬으며 벽 하나를 찾아 그 안에 꽂아 넣었다. 그제야 에

드먼드는 그가 도착한 동굴의 벽이 모두 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간수가 육중한 철문을 열고는 그 안에 에드먼드를 집어 던졌

다. 동굴 벽을 파서 만든 곳인지라,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얇은

모피 한 장 없었다. 벌레처럼 주변을 기어 다니며 더듬었지만 찬

돌밖에는 닿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손끝에 철창이 닿았

다. 고개를 드니, 그 철창 하나로 갈라진 방 너머에 흐릿한 덩어

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회색 담요를 두르고 잠들어 있

는 죄수였다. 텅 빈 에드먼드의 감방과는 달리 그에게는 담요에, 방

금 비운 듯한 그릇에, 머리맡에는 사과까지 하나 놓여 있었다.

“이봐요.”

드디어 나온 목소리는 방금 전에 그 악동 녀석과 이야기 할 때 보다

훨씬 뚜렷했다. 그러나 보기 싫게 갈라지고 쉬어 늙은 짐승의 비명

소리 같이 들렸다. 에드먼드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힘줄이 잘려 있어,

그의 손은 아무것도 쥐지 못하고 그 담요 덩어리를 간신히 찔렀

을 뿐이다. 상대방이 움찔 하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힘껏 밀자, 그

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에드먼드를 발견하자

이내 무관심하게 꺼져버렸다.

“이봐.....”

에드먼드는 팔을 뻗었지만, 죄수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고 다시 잠들

어 버렸다.

다시 감옥의 문이 열렸다. 간수가 들어온 것이다. 비썩 마르고 무관

심한 눈동자의 사내로, 코는 날카롭고 턱도 뾰족했다. 광대뼈까지 툭

튀어나와, 어둠 속에서 보니 늑대 인간처럼 보일 정도였다.

“말 걸어도 소용없어. 여기 오기 직전에 혀가 잘려서 아무 말도 못하

게 되었으니까.”

에드먼드의 얼굴이 어찌 보였을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간수는 무

표정하게 에드먼드를 보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 쉬었다.

“네가 어떤 죄로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너에게 절대

말을 걸지도, 알려 주지도 말라고 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식사는 하루 두 번, 담요는 일년에 하나만 나온다. 저 사람과는 비

교하지 마. 저 사람은 그래도 이 지하 감옥에서 유일하게 가족들이

여기까지 같이 와 준 사람이니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쓸 한줌

행운은 있었던 거지. 예전에 어느 귀족 나리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골골대다가 일주일 만에 죽어 버렸어. 식구들이 찾아오지도

않더군. 아들에 딸도 있었다는 데 말이야.”

절대 말을 걸지 말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에드먼드는 생각해 보았

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머리는 녹이 슨 듯이 삐걱대고

있었고, 조금만 무엇을 생각하려 해도 힘겨워 하고 있었다.

간수는 물 주전자 하나와 죽이 담긴 그릇을 놓고는 감방을 나갔다.

발이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육중한 자물쇠 잠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그대로 철컥, 철컥, 철컥-- 수많은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이어 들린다.

그가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점점 더

잠들 듯 아득해져 갔고,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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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행여나 오해하실까 해서 드립니다. 저는 몬테 크리스토 백

작을 다~~ 봤습니다. 물론 완역본으로요. ^^;;

첫머리가 비슷~ 하겠지요! 몬테 크리스토를 연상되는 것도 당연한

겁니다. 왜냐면........... 아직은 비, 밀. ^^

일단은 계속입니다. ^^

[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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