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0화 (10/174)

제9편

어둠 속의 거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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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밤에 시계바늘이 찰칵 찰칵 돌아가고 있는 동안에, 시간은 만

져질 듯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그 시계소리는 시간의 심장이 되어

철컥 철컥 돌아간다. 그렇게 심장이 뛰면 시간은 숨을 쉬기 시작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며, 손에 잡힐 듯이 흘러간다. 그러나 에드먼드

는 지금 시간이란 것은 차가운 무생물 같다고 생각했다. 고인 듯, 멎은

듯, 그렇게 정지해 영원토록 잠들어 있을 듯한 그런 무생물.

어둠 속에서, 이제는 익숙해 진 차가운 돌 벽과 바닥에 등과 머리를

기댄 채 에드먼드는 손안에 놓인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자루를 잘라 서툴게 만든 주머니 안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하고 간 유릭이 준 약들이 들어 있었다.

꼬마의 말을 믿어 될까?

행여나 아무 효과도 없거나, 그냥 독이거나 하면 낭패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에드먼드는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말이나 하면 되

었고, 그 다음에는 기어서라도 나가게 해 줄 열쇠 꾸러미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 유릭은 전혀 의외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꼬맹이

가 그리 황당한 방법으로 탈옥이 성공할 거라 믿는 것은 당연한 일

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우습기는 했지만, 다른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지금 이 앞에서 썩어가는 저 남자의 시체가 치워지면, 유릭은 다시는

이 지하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 되면 간신히 닿던 햇살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탈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 역시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에드먼드는 주머니를 열고 그 안에 있는 알약을 정확히 다섯 개 센

후에 입에 털어 넣고 삼켰다. 맛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갈 조

각을 삼킨 듯한 느낌 뿐. 에드먼드는 몸을 눕히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빈 위장 속으로 약이 녹아들어가며 뱃속이 화끈거렸지만, 그 뿐.

아무 변화도 없었다.

에드먼드는 피식 웃었다. 역시나, 그 꼬마 녀석이 지껄인 그 황당한

말을 정말 믿다니. 몇 년 지하 감옥에서 썩더니 머리부터 썩었나

보다. 희망 없는 노파가 점을 치듯 그 역시 꼬마의 말도 안 되는

장난에 냉큼 이 약을 삼킨 것이다.

멍청하구나, 에드먼드. 아니-

그러나 그렇게 웃던 에드먼드는 입 언저리의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입이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에드먼드는 입술을 문질러 보려고 했지만, 손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돌아누우려 했지만, 허리도 꿈쩍 하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

리고 외치려 했지만 붙은 듯 굳어있다. 방금 전까지 아래위로 규칙

적으로 움직이던 그의 가슴 역시 점점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마침

내 멈추었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희뿌옇게 변해갔다. 눈

꺼풀마저도 위로 고정되어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혀라도 움직이려

했지만 입 안에 차가운 돌덩이가 가득 있는 듯 꼼짝하지 않는다.

배식을 위해 간수들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유형지에서 가장 한가로

우며 재미없는 일들을 하는 그들은, 하루 종일 하는 일 중에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배식을 위해 나온 것이다. 그들은 죽이 출렁이

는 솥을 끌며 각 문을 국자로 탕탕 두들겨 죄수들을 깨웠다. 모두

의 그릇이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배식구가 찌그덕 대며 열

리고, 그들이 내민 이빨 빠진 나무 사발 안에 죽들이 차륵 차륵 부

어졌다. 에드먼드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

었다. 온 몸이 돌처럼 뻣뻣해진 가운데, 소리는 닿을 듯이 선명하다.

캉캉캉캉--!

에드먼드의 감방 문 앞으로 사발이 나오지 않자 간수가 철문을 요란

하게 두들겨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간수는 더욱 세게 쳤다.

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수십 번은 들린 듯 하더니, 결국 포기한

간수가 열쇠를 찾아 꺼내는 듯 철렁 철렁 소리가 들렸다. 곧 철문

이 육중한 무게로 돌바닥을 끌며 열렸다. 찬바람이 휭하니 들어와

볼을 적셨다. 그러나 에드먼드는 눈썹 하나도 움찔할 수 없었다.

“이봐! 이봐, 5호! 그만 자빠져 자고 일어나!”

그러며 그는 에드먼드를 걷어찼다. 에드먼드는 그의 발에 채여 나무

조각상처럼 굴러갔다.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팔 다리 하나 꿈쩍

하지 않은 채 뻣뻣하게 굳어 굴러간 것이다.

간수가 헉하니 숨을 들이켰다. 그는 급히 주저앉아 에드먼드의 가슴

에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몇 번이나 숨소리를 확인

하고 뺨을 철썩 철썩 쳤다. 남의 볼을 때리듯 아무런 감각도 없었으

나 소리만은 생생했다.

“이런, 빌어먹을! 빌헬름, 빌헬름! 어서 와! 어서!”

건너편 죄수들에게 배식을 하던 동료 간수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

다. 담당 간수보다 훨씬 더 마른 몸집인 듯 발소리가 가벼웠다. 그

리고 그 역시, 동료가 했던 대로 가슴에 귀를 바짝 들이대고 숨소리

를 확인하더니 신음을 삼켰다.

“뒈져버렸잖아, 빌어먹을! 5호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령관에게 보

고해야 한단 말이야, 젠장! 정말 귀찮게 하는 군!”

“별 수 없잖아. 그냥 갖다 버렸다가는 그 총독 놈이 당장에 지랄일

테고.”

그들은 한숨을 푹푹 내 쉬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방금 전 까지만 해

도 절대 약효가 없을 거라 장담하던 에드먼드는, 이제 사령관이 내려

올 때까지 제발 이 약효가 끝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기 시

작했다. 아니, 그리 된다면 양이 모자라는 것이니 지금 품 안에 있는

약 중 두 어알 더 먹으면 될 것이다. 아니다, 조금이라도 양이

과하면 그대로 죽어 버릴 거라 했으니 안 될 지도 모른다. 하긴,

그리 된다면 이 감옥을 탈출하는 것은 탈출하는 것일 테니 거기서

거기지. 죽으면 오히려 일이 간단해서 좋을 일일지도. 아니, 아니다.

그리 되면 일이 정말 복잡해지는데. 그 뒤를 보장할 수도 없고.

그러니 이대로 있다가 탈출하는 것이 제일 좋아!

속으로 온갖 망상과 상상과, 정말 몸이 회복되면 그딴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자괴감을 느낄만한 멍청한 생각을 거듭하다가, 에드먼드는

의식이 차츰 까무룩 하게 잠 속에 묻혀 가는 것을 깨달았다. 되도

록 정신을 차리고 있으려 해도 잠이 쏟아지듯 그를 내리 덮기 시작했

다. 이러다가 행여나 눈을 번쩍 떴을 때 총독과 눈이라도 마주치

면 난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는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무섭도록 차고 무거운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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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자룡이가 한살이 되었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고작 한살인 놈이 5kg! 이것도 축하....할 일이 아니잖아!!!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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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4장 지하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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