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편
지하의 보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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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것은 천년이나 지난 듯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에드먼드는 두터운 자루에 담겨져 어딘가로 실려 가고 있었다. 두런
두런 말하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언짢게 낄낄거리는 것이, 에
드먼드가 듣기 즐거운 이야기는 아닐 듯 했다.
유릭이 했던 말들을 잘 생각해 보려 했다. 둔기에 얻어맞은 듯 얼얼
한 머릿속으로 꼬마가 분노 어린 눈을 빛내며 하던 말이, 처음에는
잘 기억나지 않았으나 점차 만져질 듯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가 본 적 있어요. 검은 물이 고여 있고, 해골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
었죠. 추워요, 그곳은. 이곳 보다 몇 배로 더 추워요.....한 시간도
참기 어려울 거에요. 죽은 사람조차 벌떡 일어날 정도로 추운 곳
이니까.
그곳이 죄수들의 무덤일까?
이 지하의 지하, 버림받고 내팽개쳐지고 외면 받는 참담한 죄수들의
납처럼 차가운 무덤들이, 이 불친절한 운반의 여정이 끝나면 도달
하게 되는 곳인가. 에드먼드는 숨을 들이 쉬어 볼까 했지만, 아직 몸
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끝으로 두꺼운 천을 파고들어오는 찬 바
람이 닿아온다.
“그나저나 이 놈은 무슨 죄래?”
“아무도 말 안 해 주던 걸. 묻지도 말라고 했지. 뭐, 이놈은 물어도
안 가르쳐 주었을 것 같지만.”
“그건 그렇고 그 꼬맹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들어가기 전에 잘 말해뒀어. 무시무시한 대마왕이니, 말 걸었다가는
이상한 마법에 걸려서 그 말을 고분고분 듣게 될 거라고.”
“애들이니, 뭐. 그런데 말 해 봤자 뭐 달라질 게 있겠어? 아니, 그 꼬
마 녀석이었다면 외려 이 놈이 귀찮았겠군.”
“유형지의 애새끼들이 다 그렇지 뭐. 마귀들이 품었다가 건네주나
봐”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멈추어, 에드먼드의 몸뚱이를 귀찮은 짐짝처럼
바닥에 던져 놓았다. 거의 내 던지듯 놓은 것이라 바닥에 몸이 크게
부딪혔다.
열쇠를 찾는 듯 철그럭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자물쇠가 풀리고 여태까지 보았던 그 어떤 문보다
육중한 문이 힘겹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마어마한 냉기가 쏟아졌다. 얼음 속에 갇힌 것보다 더욱 엄청난 냉
기가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들은 에드먼드를 질질 끌고 가더니,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냉기는 몸을 걷잡을 수 없이 파고들어왔다.
동굴 안을 휘젓는 미친 듯한 바람 소리가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들려왔다.
쿠허허허허헝--! 그리고 순간이었다. 턱이 딱- 하고 움직였다. 그제
야 에드먼드는 자신이 추위를 느끼는 순간에 몸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수들은 더 있기도 싫다는 듯 덜덜 떨며 에드먼드의 몸을 집어 들더
니 두 어 번 흔들고는 휙 집어 던졌다.
몸이 붕 떠올랐다. 미친 듯한 바람소리는 점점 더 거세어 지면서, 금
방이라도 그를 집어삼켜 부수어 버릴 듯 굶주린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그 모든 것이 에드먼드를 휩쓸어 저 멀리 내던져 버릴 것만 같고, 산
산 조각나 버릴 것만 같았다. 외롭게 떨어지며, 그는 그 휘감기는
손아귀에 잡혀 으스러질 것만 같다.
끝없이 추락하던 몸이 얄팍한 돌들이 깔린 듯한 바닥에 안기든 떨어
졌다. 와작, 와작-마른 과자 깨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리고 그의 몸은 비탈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멈추었다. 점점
더 혹독한 냉기가 몸을 파고 들어온다. 탈출이고 뭐고, 이대로 얼어
붙어 영원히 잠들어 버릴 듯 했다. 에드먼드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
려 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추위만이, 정말 그대
로 얼어붙기라도 한 듯한 추위만이 살을 베어내고 있었다. 에드먼드
는 이를 악물고 몸에 힘을 주었다. 아무 변화도 없다. 아무 변화도....
.. 그러나 갑자기 이가 덜덜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여나 하는 심
정으로 그는 가만히 있었고, 떨림이 점점 더 거세어지며 그의 귀에
도 딱딱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는 안도하며, 그러나 추위에 몸
서리치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손끝이 움찔 움직였다. 발끝도 꿈틀거렸다. 다 죽어가는 거미를 푹
찔렀을 때 녀석이 살짝 움츠리는 정도의 미미한 변화였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안도했다. 그는 몸을 뒤틀었다. 어깨가 꿈틀 움직였다.
다시 발을 움직였을 때는 허벅지까지 미미하게 들썩였다. 추위
도 잊고 그는 온 몸을 움직여보았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며 바람
이 불때마다 이마 끝이 더욱 더 오싹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마침내 온 몸의 감각이 희미하게나마, 그러나 전체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지독한 구역질을 느꼈다. 먹은 것이 아무 것도 없
음에도 불구하고 위를 쥐어짜듯 뒤틀어 토해내라 윽박지르는 듯한
그런 지독한 구역질이었다. 게다가 머리도 어지러웠다. 움직여야 하
는데, 결코 움직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현기증과 구역질은 지독했다.
“으아아아아--!”
그는 한번 크게 고함을 내 질렀다. 그의 절규가 온 허공을 울리며 높
이 높이 뻗어나가, 마침내 메아리치며 울렸다. 텅 빈 허공이 거대한
관악기의 뱃속처럼 울린다.
에드먼드는 이를 악물고는 몸을 뒤틀었다. 질질 끄는 일 밖에 남지
않은 발이라 생각했건만, 그 순간의 그의 발은 자루의 바닥을 걷어
차고 있었다. 몇 년 간 아무것도 쥐지 못했던 팔이 자루를 움켜잡고
찢으려 하고 있었다.
“으으--!”
신음은 짐승소리 같았다. 다급히 버둥대는 그의 몸 역시, 비슷하게
짐승 같았다. 그는 힘껏, 힘껏 자루를 당기다가 그 자루를 입으로
가져가 이로 찢었다. 질 나쁜 천은 구멍이 뚫렸다. 에드먼드는 그
구멍의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힘껏 당겼다. 순간에, 방금 전까지 비
교도 할 수 없이 엄청난 추위가 몰아닥쳤다. 얼음속의 칼보다 차가
운 매서운 추위가.
에드먼드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발은 휘청대다가 바닥을 제대로 짚
지도 못했고, 그대로 풀썩 넘어지고 말았다. 머리를 크게 부딪칠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 구운 과자 같은 것이 그의 몸에 부서졌다. 그
는 캄캄한 바닥을 더듬었다. 바닥에 둥글고 길거나 휘어진 것이 닿았
다. 이게 무엇일까. 그는 일어나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람소
리가 깊이깊이 들려오고, 그 소리로 보아 이곳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파란 빛이 스며 나오고, 그 불
빛 중 몇 개가 검은 허공을 떠돌며 주변을 살포시 비추고 있었다.
에드먼드는 그제야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이 뼈가 수북하게 쌓인 곳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뼈들은,
산처럼 쌓여 천정까지 닿을 듯 했다. 그러나 그 중에 낡은 자루가
몇 개 눈에 뜨였다. 그것은 죄수의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멀리서 잘박 잘박 발 소리가 들렸다. 작고 여린 것이
슬그머니 오는 듯한 소리다. 행여나 이 안에 사는 마물이라도 나왔나
싶어 그는 손 옆의 뼈를 잡으려 했지만 움켜쥘 수 없으니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순간에 갑자기 빛이 확 들어왔다. 그것은 거대한 빛의 덩어리
가 되어 인골들을 비추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비추고 천장을 비추
었다. 에드먼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고, 그가 방금 전에
던져진 구멍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난 구멍이었다. 에드먼드는 고개를 내려 빛이 터진 곳을 보았
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돌계단이 하나 있었다. 얇고 거친
계단으로, 아찔할 정도로 높고 가팔랐다. 그리고 그 곳에, 유릭이
불붙인 초를 들고 서 있었다.
유릭은 에드먼드를 발견하자마자 벽타는 다람쥐처럼 조르르 내려와
달려왔다. 빛이 커졌다 작아졌다, 성난 야수가 몸을 일으키듯 거칠게
움직였다.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네요.”
“....여기가 대체 어디지?”
“이 성의 원래 주인인 마법사 여왕이 파난 장군에게 죽자, 다른 사람
들은 여기까지 쫓겨 와 죽었대요. 파난과 그 부하들은 사람들을 모두
죽인 후에 이곳의 문을 닫고 올라갔고, 이 감옥을 나오는 순간에
마법사 여왕의 마지막 명령을 지키기 위해 기다리던 마령들에게
죽었죠....그 후로 이 섬에는 주인이 없었어요.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리고 유릭은 천장을 비추었다. 검은 구멍 옆에, 이상한 글자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유릭이 그 다음 벽들을 가리키듯 둥글게 비추
었다. 그곳에는 개미굴 같은 구멍들이 잔뜩 나 있었고, 그 바닥마다
하얀 해골들이 비죽이 나와 있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이곳은 원래 무덤이래요. 원래 성에서 살던 사람들이 죽으면 이곳에
묻힌다고 했지요..... 시체 더미 안에서 간혹 금 조각 같은 보물도
나와요. 같이 묻었나 봐요.”
유릭은 느릿느릿 걸어왔다. 빛이 너울대며, 해골들의 긴 그림자가 손
가락을 오므렸다 펴듯이 흔들렸다.
“괜찮아요?”
“아니- 지독하구나.”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지만, 몇 년 만에 창살과 족쇄
에서 벗어난 기분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황홀했다.
유릭이 허리춤에 맨 주머니를 내밀었다. 에드먼드가 멍하니 보자, 유
릭은 그것을 풀어 그 안에서 치즈와 빵 한 덩이를 꺼내어 내밀었다.
구역질이 치밀기는 했지만 그만큼 배가 고프기도 했기에 그는 그것
을 정신없이 집어 삼켰다. 유릭이 병을 따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
역시 에드먼드는 다 마셔 버렸다. 술이었다. 맛도 고약하고 머리를
쿡 찌르듯이 독했으나, 그 덕에 추위는 순식간에 가셨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제 움직일 만 하면 따라 와요.”
유릭의 말에 에드먼드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저씨?”
“나는 걸을 수 없어.”
“기어요. 어차피 통로는 나도 기어서 가야 할 정도로 좁으니까.”
에드먼드는 나른히 한숨을 내 쉬었다.
“그 통로 끝에 도착하면?”
“나도 몰라요, 그 다음은.”
에드먼드는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길 끝으로 가면 무엇이 있지?”
“검은 물이 고인 동굴이 나와요. 새벽이 오면 도착할 수 있을 테
죠....... 바닷소리가 들리고, 바깥바람도 꽤 불어와요. 그곳에서는
제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테지만,
도착하면 가르쳐 드릴게요.”
그리고 유릭은 거대한 공간의 구석진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빛이 이
동하며, 어둠이 그 뒤를 슬며시 따라가기 시작했다. 에드먼드는 잠시
깊이 한숨을 내 쉬고는 그의 뒤를 기어서 따르기 시작했다. 차가
운 바닥에 무릎이 얼어붙을 듯 했지만 그는 꾹 참고 유릭의 뒤를
따랐다.
유릭은 구석에 잔뜩 쌓인 인골을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했다. 곧 엎드
려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굴이 나왔다.
“이곳은 탈출구였던 것 같아요. 잘 보지 않으면 모르는 곳이니까.....
그 때 섬사람들은 사실 여기로 탈출하려고 몰려 나왔던 것 같아요.”
유릭은 그리 말하고는 촛불을 훅 불어 껐다. 다시 깜깜해졌다. 유릭
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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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이상한 건....다른 분들이 한달 두달 만에 올려도 전혀
늦게 올리는 것 같지 않는데, 왜 나는 며칠만 미적 거려도 무진장
오랜만에 올리는 것 같죠? -_-
.....;;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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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