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42화 (42/174)

제40편

초대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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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삼촌의 누명을 벗겨 드리겠어.”

“꽤나 국가적 규모의 일인데.”

유릭의 말에 쥴리안의 눈꼬리가 치솟았다.

“너, 왜 말 허리가 잘렸어?”

“지난번에 식민지 차별의 부당성에 대해 아주 열정적으로 논하기래,

선천적 신분에 기댄 안일한 편견이 없는, 매우 건전한 브라키니아 식

평등의식에 고취된 소년이라 생각해서. 기분 나쁘다면 내가 오해

한 거겠지. 다시 존댓말 써주지요.”

얼핏 들으면 칭찬이지만, 잘 생각하면 심각하게 비꼬는 말을, 쥴리안

은 당연히 칭찬으로 알아들었다.

“물론 나는 민주적인 평등사상을 진심으로 추종하지. 내가 귀족의 특

권의식에 젖은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

면에서 너는 행운아야.”

유릭은 카밀턴이 있었다면 무어라 험악하게 말했을지 참으로 기대되

었지만, 지금쯤 그는 사문회 까마귀들에게 열심히 쪼여대고 있을

것이다.

유릭은 트레비스를 보았다. 트레비스는 벌써 자네 알아서 하게, 하고

결정을 본 듯 하인을 불러 다과를 가져오라 시키는 중이다. 쥴리안을

위해서가 아니다. 가엾은 자신과, 더 가엾은 유릭을 위해서였다.

“어쨌건 삼촌이 왜 잡혀 갔는지, 나는 아주 잘 알아.”

“니콜라스 추기경의 음모?”

“어떻게 알았어? 조사라도 한 거야?”

트레비스 씨네 집사도 알고 있다, 하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쥴

리안은 세일러 칼라를 팔랑이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좋아, 상황파악을 그 정도로 하고 있다면 말이 쉬워지겠네. 자, 이제

우리....”

“니콜라스 추기경의 음모를 분쇄하자고?”

“물론이지.”

차라리 로웨나와 함께 합창 연습이라도 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일

듯 하다. 쥴리안은 주먹까지 불끈 쥐며 말했다.

“엄마도 허락해 줬단 말이야. 그래서 나, 한 달간 학교 안 가도 돼.

어차피 거기 수업은 어떻게 받든 다 내 맘이거든. 그리고 그렇게

쓸데 없는 데 시간 쓰는 것 보다는 이런 일을 해야 도리라고 봐.”

유릭은 나중에 헨리에타 가스코 공작부인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물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자식사랑이면 자식에 대한 믿

음이 돈독한 것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망상이 좀 심한 편이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쥴리안은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이 도리다.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어 있는 건가?”

“물론이지. 첫 단계는, 일단은 그 일파가 모이는 곳으로 가서 정보를

모으는 거야.”

“그것도 구체적으로 세워져 있어?”

“물론이지. 짠.”

쥴리안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봉투를 척 꺼냈다.

“아빠가 구했다! 이것만 있으면 갈 수 있지롱.”

“그게 뭔데?”

“일단 한번 봐.”

유릭은 쥴리안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 열어 보았다. 안에는 새카만 카

드가 두 장 들어 있었고, 그 위에 은필로 ‘초대장’이라는, 매우 간

단한 말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었으며 그 아래에 날짜와 장소가 적

혀 있었다. 유릭은 봉투를 보았다. 봉투에는 검은 나비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성령의 귀환......성 아가테이아의 표시군.”

“어라, 너 어떻게 아냐?”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제가 가르쳐 주었지...... 그런데 이게 뭐야?”

“뭐긴 뭐야. 그 유명한 란슬로 백작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파티 초대

장이지! 얻기가 얼마나 힘든 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브리칸 대사만

아니라면 절--대 구경 못하는 물건이란 말이다. 아, 란슬로 백작

모르지? 신흥귀족중 하나로, 니콜라스 파의 핵심중 하나야.”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란슬로 백작의 집이니까 그 저택으로 가면

굉장한 사람들이 모여. 니콜라스 추기경은 워낙에 금욕주의자라 파

티에 안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돌비체 수상의 부하들은 잔뜩

모일 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나야지!”

“그리고?”

“응?”

“만나서 카밀턴 각하를 빼 내 주십시오, 하고 말 할 건가? 억울하다

고 말 할 건가? 죄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말 해 보라고 할 건가?”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어? 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지.”

유릭은 트레비스를 보았지만 그는 벌써 포기하고 딴 짓이다. 유릭은

그에 대한 기대는 꺼 버리고 쥴리안에게 무관심하게 손을 휘휘 흔

들며 말했다.

“잘 알아내고, 돌아와서 이야기 해 줘.”

“내가 왜 돌아와서 이야기 해! 너, 삼촌 보호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잖아. 너도 당연히 같이 가야지.”

“나는 할일이 있는데.”

“당장 해야 하는 거야?”

“당장, 그리고 종일. 게다가 카밀턴 경의 명, 령이다.”

쥴리안의 얼굴이 당장에 구겨졌다. 유릭은 피곤해져서 자리에서 일어

났다.

“너 어디가?”

“임무 수행하러.”

“같이 가! 이제부터 어떻게 삼촌을 구할지 생각해 봐야 할 거 아냐!

그리고 아무리 명령이더라도 융통성 있게 수행해야 하는 거 아냐?”

유릭은 트레비스를 보았다. 트레비스는 여전히 딴청을 피우고 있었

다. 유릭은 쥴리안을 돌아보았고, 그대로 그 목덜미를 후려쳤다.

퍽-깩.

트레비스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유릭은 쓰러진 쥴리안을 가리켰다.

“공자께서 너무 흥분하셔서 기절했지 뭡니까. 몸이 좀 부실하시군요.”

“이런 낭패가.”

트레비스는 당장에 화색을 띠우더니(춤이라도 출 듯 했다), 종을 울

리며(매우 우렁차게) 하인을 불렀다. 그리고 하인이 달려오자 쥴리

안을 찌를 듯이 가리키며 말했다.

“대사관저로 가서, 가스코 공작에게 배달해 주게나. 당장. 그리고 공

작부인께 도련님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졸도를 했으니 건강에 유념해

주시길 바란다는 말도 전해 줘. 반드시, 직접, 헨리에타 공작부인에

게 말해야 하네. 내가 말했다는 것도 덧붙이는 거 잊지 말고. ‘아주’

안 좋다고 강조하는 것 역시 잊지 말고.”

그리고 유릭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수고했네.”

“당연히 할 일이지요.”

연습실 문을 누군가가 다시 두드린 것은, 로웨나가 막 아르사메 여사

가 전 단원들을 향해 너무나 형편없다고 윽박질러댄 ‘제일 끔찍한

부분’을 부르려 준비 중일 때였다.

아르사메가 너무나 빈틈없이 윽박질러 댔기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로웨나는, 제발 그 노크가 트레비스 씨이기를 바랐다. 차라리 유릭이

나타나서 너, 볼일 생겼다. 하고 말해도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타난 것은 검은 얼굴의 낯익은 남자였다. 로웨나는 그를 알

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하인이자, 전날에 유릭을 데리고 갈 때 마

차를 몰아준 남자이기도 했다.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인(그래서 그녀가 연출을 맡을 때 유색인종인

단원들이 역을 맡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르사메는 아주 경

멸어린 눈초리로 그 남자를 쏘아 보았다.

“누구 심부름이지?”

용무고 뭐고 없다. 아르사메 여사는 언제나 얼굴에 약간의 색조만 들

어가도(심지어 동남부 브라키니아 인들마저도) 모조리 하인이라 생

각한다.

에닌도 그를 알아보고는, 행여나 알렉산더가 무슨 전갈이라도 보냈을

까 해서 눈을 반짝였다. 로웨나는 그런 에닌을 볼 때마다 조금 측

은했다. 알렉산더가 에닌에게 친절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신경 쓰

는 친절이라기보다는 ‘관성’에 가까운 친절에 불과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쓰다듬듯이, 그렇게 무관심하게 미소지어주는 것이다. 그

러나 에닌은 강아지마냥 그런 그를 동경한다. 별을 보듯이. 가면

아래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그 가슴의 온기를 상상하면서. 그러나

로웨나가 보기에는 에닌이 그로부터 원하는 사랑과 따스함을 받을

확률은 아예 없다 해도 무방했다.

남자는 일단 출입증을 보여 아르사메 여사를 닥치게 하고는, 잔뜩 긴

장한 단원들을 둘러보았다. 로웨나는 그가 자신에게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서 악보로 눈길을 내렸다. 에닌이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오터 씨.”

에닌의 얼굴을 아는 오터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아르사메 여사의 눈길이 당장에 부드러워졌다.

“어머나, 에닌 양이 아는 분의 심부름인가 보군요. 천천히 이야기 하

도록 해요. 그리고 로웨나 그린 양. 하던 거나 마저 해야지요?”

“자알 압니다.”

로웨나는 악보를 들었다. 그런데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골이 싸

할 정도로 오싹해져, 로웨나는 흘끔 돌아보고 거인 같은 남자가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 히끅 딸꾹질을 해 버렸다. 당장

에 아르사메 여사가 빈정댔다.

“로웨나 그린 양, 숙녀가 그리 경박하면 안 되지요. 하긴, 그러니 노

래도 그 모양이지.”

로웨나는 그녀를 쏘아 보았다. 그런데 오터의 손이 로웨나의 어깨로

올라갔다.

“뭐, 뭐죠?”

“주인님이 당신께 전하라 했소.”

“네....네? 음? 누가? 백작이? 나한테요? 에닌이 아니고?”

로웨나는 에닌을 가리켜 보였다. 오터가 고개를 저었다. 에닌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공연 연습이 있을 때 간혹 꽃이나 선물을 보내곤

하던 알렉산더였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자신에게 무언가 전하려고

온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오터가 로웨나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로웨나가 보니, 그 위에 나비

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성당 근처는커녕 투란바코스가 눈앞에만

보여도 당장에 돌아서 버리는 로웨나였으니, 미사 강제 출석 요구

장 같은 봉투에 눈살부터 찌푸렸다.

“전해 주라고 하셨소.”

로웨나는 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검은 종이 두장이 들어 있었다.

꺼내 보니 그 위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필체로 ‘초대장’이라는 황량한

말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초대하는 사람과 초대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로웨나 그린 양에게.

“어라? 이 사람이 웬 일로 나를 초대하지?”

로웨나는 뒷장을 보았다.

-유릭 크로반 군에게.

홀라그로 성주, 백작 알렉산더 란슬로.

로웨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귀신이 초대장을 보내도 이것보다는 덜

무섭겠다. 백작이 그 녀석 이름을 어떻게 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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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여자‘만’ 봐 주는 유릭 군. 남자에게는 인정사정 볼 ‘가치조

차’ 없다.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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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41장

초대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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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

유릭은 로웨나에게서 봉투를 받아 들었다. 한 손에 계란 프라이를 하

면서 보려니 정말 힘들었지만 로웨나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읽을

글이 별로 없다는 것에만 감사하며, 유릭은 로웨나가 내민 접시에

프라이를 얹어 주고는 초대장을 보고 뒤집어도 보았다. 그러나 별

다른 것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지난번에 마차 빌려줬다는 그 사람 인 거지?”

“응. 기억 나?”

유릭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러니까...... 벤치까지 갔던(아니 들려 간) 것만 기억나는 군.

나머지는 전혀.”

“유리, 너 그 사람 앞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한거니?”

“......아무 짓도 안했어.”

유릭은 접시에 야채와 함께 볶은 새우를 얹어 주었다. 로웨나는 뜨거

운 프라이팬이 이마를 스칠 뻔한 것을 간신히 피했다. 유릭이 아쉬

움에 한숨을 내 쉬는 동안 로웨나는 초대장을 이리 저리 뒤집어 보

고 흔들어 보고 후후 불어대며 중얼 거렸다.

“그런데 왜 보낸 걸까? 그 사람, 다른 사람한테 무관심하고 도도하기

로 이름 높은데. 나한테도 보내고, 처음 보는 너한테도 보내고.”

로웨나가 받은 초대장과 오늘 쥴리안이 들고 온 초대장(그리고 그것

은 유릭과 트레비스가 챙겼다)은 분명 같다. 유릭은 스튜 맛을 보며

생각했다. 알렉산더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니콜라스 쪽 사람이란

건 확실하고, 그리 된다면 매우 당연하게 카밀턴과는 적대관계가 된

다. 그리 된다면 그가 카밀턴과는 참으로 다정한 사이인 듯 보이

는 윌리엄 렌든인지 뭔지 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듣고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야봐야겠군.”

“응? 왜?”

“가 봐야 아는 건 가 봐야 아는 거니까. 국수 더 먹을래?”

“당연하지. 아, 나도 갈 거야.”

유릭은 로웨나의 접시에 국수를 얹어 주었다.

“너는 왜?”

“일단은 초대를 받아서고, 그 다음은 당연히 굉장한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그렇지. 특히나 란슬로 백작의 성에는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

와.”

그리고 로웨나의 눈이 번쩍였다. 왜 그런지 모를 유릭이 아니었다.

“필사적이구나.”

“물론이지. 나는 성공할 거고, 성공해야만 한다고.”

“꼭?”

로웨나는 국수를 포크로 말며 물었다.

“당연하지. 지금의 나로써는 돈 벌 방법이 그것 뿐인 걸. 그럼 유리,

너는 꿈같은 거 없어? 정말 정말 정말 되고 싶은 거 말이야.”

“별로. 하지만..........”

“군인이니까 군인으로 출세하는 건?”

“그건 안돼.”

로웨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안돼? 자그마치 카밀턴 장군이나 되는 사람을 경호하고, 트레비

스 같은 대부호한테도 출입증 같은 거 마음대로 따낼 수 있을 정도로

수완도 있는데. 내가 너라면 그 정도 조건만 되면 당장에 군인으

로 달려가겠다. 너라면 정말 출세할 거야.”

“생각 없어.”

“아아, 시시한 인생. 고작 열여덟에 야망도 없고 꿈도 없고.....하긴,

징집병으로 몇 년 고생하다 보면 그렇기도 하겠다. 하지만 말이야,

몇 년 고생한 게 아깝지도 않아? 목숨 걸고라도 하고 싶은 게 정

말 없어?”

“무슨 일이건 목숨 걸고 해야 했어.”

유릭은 접시를 치우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로웨나는 바퀴벌레 하나 없이(!) 깨끗해진 거실로 가서,

유릭이 연대별 작곡가 별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악보 더미에서

악보를 하나 골라 펼쳐 들었다. 그 황홀한 솜씨에 로웨나는 감탄했다.

“군인이 안 될 거라면, 집사 같은 걸 하면 되겠다. 내가 장담하건데,

아마도 한 20년 뒤에 온 브란 카스톨의 귀족가에서 너를 집사로

데려가려고 안달할 거야.”

로웨나는 그리 후하게 칭찬을 하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유릭

은 잠시 접시 씻는 것을 멈추었다. 지난번에 느꼈듯이, 고운 목소

리라기보다는 강하고 우아한 목소리다.

유릭은 문득 그녀를 처음 무대에서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가면이 치

워지는 순간에 드러난, 그 커다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생각난다. 불

타는 듯 열기 어린 눈동자. 그리고 그녀에게는 곱게 앉아 지루한

노래를 부르는 아가씨 역할보다는, 적장의 목에 직접 칼을 휘두르는

아가테이아 같은 여자 역이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오페라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로웨나가 날씬한 몸과는 달리 여왕처

럼 강한 모습이 어울린다는 생각만은 분명하게 든다.

그러다가 유릭은 인기척을 느꼈다. 돌아보니 그 옆에 담배를 물고 있

는 미하일이 다가와 있었다. 여전히 지저분한 행색으로, 오늘은 술

냄새 대신 진한 담배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그윽하게 로웨나

를 바라보고 있다가 평화로운 눈길로 유릭을 돌아보았고, 눈이 마주

치자 눈을 가늘게 뜨려다가 갑자기 크게 떴다.

“야, 너, 너.....”

로웨나가 잡히는 책을 아무거나 들어 미하일에게 집어 던졌다. 미하

일이 냉큼 그것을 받아 들고는 유릭의 옷자락을 휙 잡아 당겼다.

유릭은 로웨나가 책을 집어 던진 것이, ‘뭐라 말할지 알기는 하는데,

나 지금 바쁘니 닥치고 있어라.’ 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챘다. 미하

일이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빌어먹을,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오늘부터 고용 된 건데.’

‘고용이라니익!!’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싶었지만 로웨나가 이번에는 제국 백과사전이

라도 집어 던질 기세라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뭘로 고용 한 거야! 경호원?’

유릭은 앞치마 자락을 흔들어 보였다.

‘아니, 메이드.’

미하일이 입을 딱 벌렸다. 로웨나의 노래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달빛을 찌를 듯이, 높이도 솟구치는 고음이다. 미하일은 그 고음과

함께 한껏 고조되는 눈빛으로 유릭을 노려보았다. 눈길을 보아 하

니 그게 말이나 되냐, 내가 허락 할 줄 아냐, 당장 안 꺼지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라는 말을 한꺼번에 물 퍼붓듯 쏟아부어댈 기세였다.

유릭은 빙그레 웃으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저녁 먹었어?”

미하일은 당장에 참으로 감동적인 얼굴이 되었다. 유릭은 몰랐지만,

그 말을 들어 본 것이 미하일로서는 정말 10년 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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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이래저래 굉장히 피곤한 하루군요. 무엇을 선택해야

옳은 건지, 보다 더 행복해 지는 길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지요.

그리고 때로는 자존심 탓에 솔직해 지는 걸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

니다. 솔직해 질 수 없기에 다른 것을 선택해 버리는 경우는 그만큼

이나 많군요.

잠시 쉽니다.

......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고;;;

다음에 다다다다, 연참입니다. -_-; 왜냐면....... 써 놓고 보니 챕터

가 길더군요.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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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12장 쌍둥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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