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50화 (50/174)

제49편

아주 깊은 곳#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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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연극배우 해라. 마침 리자베따 친구가 단장으로 있는 극단이 소

년배우 찾던데.”

“속은 본인이 바보인 거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로웨나가 히죽 웃었다. 리자베따의 가게로 아르바이트 가는 길이라,

로웨나는 바지에 부츠 차림이었다. 멀리서 본다면 어린 소년처럼

보일 것이다.

유릭이 물었다.

“그런데 미하일이 에닌을 좋아한다는 건 정말이야?”

“응. 왜?”

“아니, 내가 에닌을 좋아한다니까 너무 좋아하기래. 라이벌 생기면 보

통은 싫어하지 않나?”

“요즘은 좀 시들해 졌나 보지. 무슨 모임에 줄기차게 나가더니, 이제

열정을 거기다 쏟아 붇기 시작하는 것 같아. 원래 그 녀석은 두 가지

신경 쓸 수 있을 정도로 머리 좋은 녀석이 아니거든.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녀석, 예전에 내가 마르코를 사귈 때는 아무 소리 안했

어. 지금 너한테만 방정인 거야.”

“그건 누군데?”

“미하일 친구야. 우리 집에 몇 번 놀러 오더니, 어느 날 매우 진지하

게 ‘미하일이랑 사귀는 사이 아니면, 나하고 사귈래?’ 하더라고. 그

래서... 한두 달 사귀었어. 헤어졌지만. 아, 먼 예전도 아니네. 지난

달 일이니까.”

“왜 헤어진 건데?”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오더니만, 너를 정말 좋아하기는 하는

데....... 아무리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할 수도

없어서, 정말 미안하지만 헤어지자고 하더라고. 예전부터 그 녀석

을 짝사랑하던 친척 소녀라도 있었나 보지, 뭐. 눈이 하도 처연해

서 괜찮다고 하면서 보냈어. 사실 나도 그렇게 좋아한 건 아니고 말이야.”

로웨나가 꽤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말 대로 심각하

게 사귄 사이는 아닌 듯 했다. 그 마르코 어쩌고 하는 남자는 모르

겠지만 말이다.

“어, 조심해, 유리.”

유릭은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토사물을 간신히 건너뛰었다. 로웨나는

참새처럼 가볍게 좁은 골목길에 널린 온갖 ‘장애물’을 뛰어 넘었다.

곧 몇 번 오고가곤 하던 골목길이 나왔다.

골목길 끝에 번쩍거리는 간판들과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벽들이 나타

났다. 사방에 화려하게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 문밖까지 나와 시끄

럽게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싸구려 향수 냄새가 주변에 자욱하게

펼쳐져 구석구석 쌓인 오물들 냄새와 뒤섞여 더욱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 저녁이다. 막 손님들이 들어서고 쇼가 펼쳐

지거나 남녀가 뒤엉켜 노는 무도장의 음악이 터지기 직전인 것이다.

어느 곳에는 도박판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유릭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제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노동자들

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싸구려 선술집이나 역시나 싸구려 극장

으로 들어간다.

유릭은 어렵잖게 길가에 검은 망토 차림으로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

다.

남자는 파이프를 문 채 골목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님들을 끌어 들

이는 소년 소녀 호객꾼들도 그 남자만은 검은 맹수인 양 슬금슬금

피해간다.

유릭은 로웨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로이, 오늘은 먼저 들어가겠어?”

“응? 왜?”

“만날 사람이 있거든.”

로웨나가 입을 딱 벌렸다.

“네가 여기 브란 카스톨에에에에? 아는 사람 없다고 했잖아.”

“빈대 붙을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이 없는 것뿐이야. 아예 없는 건 아

니야.”

로웨나는 꽤나 놀라는 눈치였지만, 사실 유릭이 졸졸 따라다니는 것

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더 물어보지도 않고 얼른 자리를

떴다.

유릭은 그녀가 ‘리자베따의 빨간 융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에 골목길의 검은 신사에게로 다가갔다.

유릭이 다가오자, 신사가 고개를 들었다.

옅은 금발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건

장한 남자였다. 남자는 파이프를 입에서 떼고는 빙그레 웃었다.

“여어, 수도에 온 것을 환영해. 크로반 소위.”

“하사입니다, 칼 뷰겐트 소령님.”

칼 뷰겐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또 강등 당했냐?”

“네.”

“이번엔 이유가 뭐야?”

“비밀.”

칼 뷰겐트는 한숨을 푸욱 내 쉬었다.

“여린 날개를 가진 독수리여, 바람이 이리도 거세니 언제 날개를 펼

쳐 보일까.”

유릭은 무시했다.

“.....여기서 이야기 하시겠습니까?”

“아니, 조용한 곳.....이 여기서는 불가능하겠군. 아아, 그립군. 은빛 이

슬 초록 잎 끄트머리에 맺힌 황무지의 새벽....”

“조금 덜 시끄러운 곳은 알고 있으니 그곳에서 이야기 하죠.”

칼 뷰겐트가 심드렁하게 한숨을 내 쉬었다.

“너는 왜 그렇게 시를 싫어하냐.”

“뷰겐트 님께서 카바냐 님의 아리아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

니다.”

“그 귀신 통곡하고 같은 취급하지 마!”

“카바냐 님은 뷰겐트 님의 시를 귀신 씨나락이라고 하더군요.”

잠시 뒤, 둘은 쓰레기 반 잡초 반인 공원에 앉아 있게 되었다. 뷰겐

트는 개똥을 몇 번 밟은 구두를 그 잡초에 문질렀다.

“얌마, 하필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하냐.”

“그렇다고 카스톨 그레인 가의 고급 카페에서 뵐 수도 없잖습니까.”

“아하, 이해하다마다.”

“제가 무슨 일로 파견 된지는 아시지요?”

“알다마다. 그리고 사실 프리델라 각하께 언질을 받기도 했다네. 에,

그러니까...... 경호라고?”

“지금은 아니죠.”

“어쨌건 원래 임무는 프리델라 각하의 전남편 ‘놈’을 경호하는 거라,

이거지.”

“헨리 카밀턴 ‘각하’입니다.”

뷰겐트가 은근하게 물었다.

“잘생겼던가?”

“꽤 멀쩡하게 생기셨습니다.”

“키는?”

“그야 소령님보다야 작지요.”

그리고 유릭은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는 거구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덩치가 좋아야 한다, 어쩌고 하는 건 좋지만 2미터를 훌쩍 넘는 키에

어린아이 하나 눕혀 놔도 될만한 어깨 넓이는 확실히 좀 거북하다.

칼 뷰겐트가 다시 파이프를 쭉 빨아 들였다. 유릭 역시 조끼 주머니

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뷰겐트가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유릭은 빙

그레 웃었다.

“걱정 마세요. ‘그건’ 아닙니다. 보통 담배에요.”

“끊었나?”

“네. 노력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거 피워 봐라. 두개골 바수어지도록 패 준다.”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너, 이제 전역까지 두 달 남았다며. 여차하면 여기로 오

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생각 있냐?”

“아뇨, 동생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되도록 옆에 있어 주고 싶

습니다. 게다가 여기로 온 지 2주일 만에 그렇게 일들이 터지는데,

2년 동안 무슨 일이 터질지 두렵군요.”

유릭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빨아 들였다. 아직도 의심하고 있던 칼

뷰겐트가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맡았다.

“아니라니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싸구려에 맛없는 놈으로 피우나. 아도

라의 쓸개, 쿠라켄의 정원 독초 같은 놈이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입맛 버리게 그런 걸 피우다니.”

“그리 고약하지는 않습니다.”

“너, ‘그거’ 끊은 지 얼마 안 된 거지?”

유릭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칼 뷰겐트의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 있

었으니.

“.......네.”

“죽일 놈일세.”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다음부터는 안 피울게요.”

“파난에서는 별 일 없냐?”

“카이슐츠 소위가-”

“장가라도 갔냐?”

“......‘처형’되었습니다.”

잠시 칼 뷰겐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자욱한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마지막에 남긴 말 없나.”

“들을 틈도 없었습니다. 그 분은 강했고, 강하셨기에.... 저희들의 피

해도 상당했습니다. 크리스 펠로 중위님께서는 한 달간 혼수상태셨

습니다.”

“....그리고 넌 그 놈을 다시 피우기 시작했겠군. 아마도 그거 피우다

걸려서 하사로 강등되었을 테고.”

“죄송합니다.”

“젠장.”

“하지만.....소령님 탓은 아닙니다.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알아....... 제길, 그럼 결국 내가 가르친 놈은 너하고....크리스 밖에는

안 남았군. 내가 가르친 놈마다 왜 그 꼴들이 되는 건지....내가 뭐

불순한 사상이라도 주입하나?”

“.....”

“크리스는 걱정 안 해. 나보다 나은 놈이니까. 하지만-- 아니다, 젠

장. 더 이야기 하지 말자. 속 뒤집어 진다. 그건 그렇고, 정말 군대

나갈 거냐.”

“네.”

“나간다 하더라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한달에 한

번씩 불려가서 검증 받아야 한다. 집 근처에서 자그마한 사고 하나만

나도 두어 달씩 안보위원회 지하실에서 물먹으면서 고문 받아야

할지도 몰라. 너도 봤지? 지난번에 너더러 심문하라고 끌고 온 그 샌

님. 계속 그 꼴 되면서 버틸 자신 있냐?”

“해 봐야 알겠지요.”

“......너, 분명 또 그 물건에 손 댈 거다. 네 놈이 독한 놈이란 건 알

지만, 그건 독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 차라리 군에 박혀

있어. 제 편인 이상 안보 위원회고 뭐고 내버려 둘 테니까. 뭐, 레

반투스 대공이 정말 집권하게 되면..... 헨리 카밀턴과 안면 튼 너는

오히려 팔자 필지도 몰라.”

“아버지께서-”

“또 그 이야기.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했던 아버지입니다. 아버

지가 하셨던 말 하나라도 지키고 살고 싶어요.”

칼 뷰겐트가 빈정댔다.

“효자 났네.”

“아닙니다, 저는. 엄청난- 네, 아버지께는 정말 갚지 못할 빚을 졌습

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을 지키고 싶은 겁니다. 답답하게

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더라도, 그래도 저는 군인으로

남지는 않을 겁니다.”

“바보 녀석.”

칼 뷰겐트는 파이프를 빨아 들였다. 그의 눈빛은 꽤 나른했다.

“어쨌건 불러다 놓은 이유나 말해라.”

“알렉산더 란슬로 백작에 대해 아십니까?”

“못 건드린다. 니콜라스와 너무 붙어 있어. 알려 하면 다 다친다.”

“아는 거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니콜라스의 자금줄이다. 밀수, 마약, 도박, 술집, 매춘...등등. 그 모든

일을 관리하여 상당한 수익을 뽑아 니콜라스에게 건네주고 있지......

철십자 기사단이 그 정도 무력을 갖춘 것도 그 돈 덕이 크고. 그러

니 그놈 잘못 건드리면 말 그대로 죽어나가. 아, 만나봤다고 했지?

네가 보기에는 어떤 놈 같더냐.”

“은인도 등쳐먹을 놈 같던데요.”

뷰겐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릭이 물었다.

“그레이브 치안청장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워튼 전임 치안청장이 좀도둑 못 잡은 건으로 사임한 뒤에, 니콜라

스 추기경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들어갔다.”

“그 전에 큰 공을 세운 적이 있습니까?”

“마그레노 항구의 한량이었다. 게오르그 카밀턴의 사건 뒤에, 돌비체

수상은 온 나라를 휘저으며 ‘불순분자’를 색출했지. 그 때 꽤 거물을

찾아 고발한 덕에 니콜라스 추기경의 눈에 뜨였다.”

“어떤 거물입니까.”

“국가기밀이다. 즉, 나도 몰라. 그렇다는 것만 알지.”

“살비에 마델로는 어떻습니까.”

“지저분하고 천박한 장사꾼. 유명 가수 에닌 마델로의 아버지. 그 역

시 그 ‘거물’의 재산을 빼돌려 밑천 마련한 놈이지.”

“그들 모두 제 삼촌 노버스 크로반을 알고 있었습니다.”

잠시 칼 뷰겐트는 말이 없었다. 담배 연기가 세 번 정도 더 뿜어져

오른 뒤에 그가 물었다.

“혹시... 네 삼촌도 마그레노 항에 있었냐.”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 ‘거물’이 체포 될 때 그곳에 계셨을

겁니다. 당시 제 아버지도 그 대숙청의 대상 중 하나였고, 숙부가

어떻게 조처를 하셨는지 바로 혐의가 풀렸습니다. 아마도 그 ‘거물’

건으로 거래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숙청 기간에 잡혀갔군.”

유릭은 고개만 끄덕였다. 칼 뷰겐트가 턱을 젖히며 하늘을 보았다.

지상은 참으로 추악했지만 하늘만은 검고도 반짝인다. 얼룩한점 없는

까맣고 까만 하늘이다. 유릭은 담배꽁초를 집어 던졌다. 빨간 불씨는

땅에 닿기도 전에 꺼져 버렸다.

“너, 그 시시한 좀도둑 잡으러 갈 거냐.”

“잡으러 가는 건 아닙니다. 단지 숨은 거물일 가능성이 큰 알렉산더

란슬로 백작과 그레이브 청장, 그리고 그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윌

리엄 렌든....물론 윌리엄 렌든은 아닐 겁니다. 그는 카밀턴 각하를

공개적으로 매장시켜 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 자신의 손으로 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면서 말이지요. ‘암살’은 누가 했는지도 모르

는 방법입니다. 그가 할 리가 없죠. 어쨌건 그들에 대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청장은?”

“그 거물 체포 이후에 그가 공을 세운 적이 있습니까?”

“그의 별명은 ‘굶주린 사냥개’다. 숙청작업과 불순분자 색출에 있

어 그를 따라갈 사람은 없었지.”

“과거형이군요.”

“최근에 거물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 루지아 주교, 그녀를 지목하여

설치다가...... 된통 당했지. 니콜라스 추기경이 직접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교황이 그 일로 파문시킬 수 있었다. 추기경

이상 되는 성직자를 파문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니콜

라스가 파문 되면, 그것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죄로 파문 되면,

철십자 기사단에 대한 그의 지휘권은 자동 회수되어 루이지아 주교에

게 간다. 루지아 대주교는 니콜라스의 맞수인 동시에, 철십자 기사단

도 인정하는 대성령의 소환자중 한사람이다. 함부로 건드릴 수 도 없

고,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된다. 그레이브 놈은 그녀를 우습게 알고

설쳤던 것이고. 치안청장이 된 건 좌천이지 승진이 아니다. 군 실무

에서 그만큼 멀어지게 되었으니까. 알다시피 지금 체제에서 안보위원

회에서 물러나 잡스러운 치안담당이 된다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야.”

“잘 아시네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거니까.”

칼 뷰겐트의 눈빛이 별로 밝지 않았다.

“그래 유리, 암살자에 대해 짚이는 거라도 있나.”

“암살자와는 직접 얼굴을 맞댔습니다. 아니, 두 번이나 마주쳤지요.”

“왜 잡지 않은 거지.”

“카밀턴 각하는 암살자의 체포만이 아닌, 그 배후까지도 원합니다.

게다가..... 그 암살자는 분명 ‘우리와 같은 종류의 인간’ 이었습

니다.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면, 비록 체포한다 할지라도 저희 손으로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됩니다..... 아시잖습니까.”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쪽박 아니면 대박감이군.”

“하지만..... 직접 이어진 배후 밖에는 캐내지 못할 것입니다. 저

쪽에서 연결된 선 자체를 스스로 잘라내 버리든가, 저를 죽여 버릴 테니.”

“그리고 직접 이어진 배후는......네가 예상컨대.”

“......현재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 또한 그런 종류의 인간들과 직접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실무에 가까운 사람. 실무-즉 껍데기에 가까

울수록 제거하기도 편하며, 늘 그렇듯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은 굉장히

눈에 뜨이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기도 쉽지요. 어차피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본질을, 그리고 시스템과 닿아 있는 본질을 뚫어 보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추격해 줄 건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 뿐입니다. 나머지는..... 카밀턴 각

하가 하실 일입니다. 저는 현재 하급 장교이고, 제 손으로 높은 분들을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또 저는 신분 자체가 불량분자입니다. 아시잖습

니까. 저는 ‘졸병’으로 강등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할 일만 하고 내빼겠다, 이거로군.”

“도와주십시오.”

“대가는?”

“프리델라 각하께서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까?”

“칼 같군, 너란 녀석은.”

“그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칼 뷰겐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뭘 도와주면 되지?”

“우선 정보 열람권. 어차피 저도 군인이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도와줄 사람도 필요한가?”

“당연히.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으로 붙여 주십시오.”

잠시 뷰겐트의 눈길이 유릭을 향했다가 거두어졌다.

“자신 있나?”

“이건 연극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제게 원하는 배역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그런 만큼 형편없는 연극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믿어야겠지?”

“아마도요.”

칼 뷰겐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자. 그건 그렇고, 네가 지켜야 한다는 그 목격자 아가씨는.....

어디에서 일하는 거냐. 방금 보니 무슨 클럽에 들어가던데..... 이렇게

오래 내버려 둬도 되는 거냐?”

“워낙에 번잡한 곳이라, 그 암살자가 들어가다가 길을 잃어 버릴 겁니다.

그런데 안내해 드릴까요? 정말 굉장한 클럽인데.”

“네가 사는 거냐.”

“술 빼고는 다 사드리지요.”

“좋아, 그럼 가지. 그런데 거기 아가씨들 예쁘냐.”

“아주 아름다운 분들이 가득합니다. 특히나 주인이신 리자베따는 정말

친절하고 아름다운 분이지요.”

“오오, 어서 가자.”

그 곳이 ‘여장 남자’ 클럽이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리자베따가 칼 뷰겐트와 거의 비슷한 체격을 자랑하는 ‘아주

아름답고 친절한 레이디’라는 것 역시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과거 스물아홉의 칼 뷰겐트와 열다섯 살의 유릭은 서로를 즐거이

엿 먹이는 아주 오붓한 사제지간이었고, 그것을 칼 뷰겐트가 2년 동안

잊었을 리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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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어이, 에드. 완전히 찍혀버렸군, 자네.

그러게 너무 서두르면 채인다니까~

p.s 대, 오, 타!~!!!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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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14장 오래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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