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75화 (75/174)

제75편

달이 노래하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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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안으로 들어가, 예배당과 연결된 홀로 들어가니 저녁 미사가 집

전되고 있었다. 회색의 바닥과 천장으로 기도소리와 향냄새가 어우

러져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제단 근처에는 검은 옷차림의 사제가

성경을 펼쳐들고 소년 소녀들의 손에 들린 잔과 접시위에 성호를 그

으며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수많은 검은 옷의 신도들

이 두 손을 모으고 웅얼웅얼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성 아가테이아 수도회가 나오셨나. 지루한 검은 색이로군.”

브랫은 투덜거리며 종탑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았다.

유릭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수련 수도사를 발견했다. 역시나 검은 로

브 차림에, 후드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리고 있었다. 유릭은 행여나

해서 품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브랫의 손끝역시 칼자루를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젊은 형제들.”

젊은 사제였다. 옅은 담색 눈에, 긴 코와 얇은 입술을 가지고 창백한

피부에 덮여 있다. 브랫은 사뭇 진지하게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

았다. 유릭이 더 놀랐다. 그 표정이란 것이, 신앙심이 넘쳐흐르다 못

해 주변사람까지 교화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경건했다. 두 눈

은 고즈넉하고, 입매도 진지하다.

“안녕하십니까, 형제.”

“네, 저녁 기도회에 나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가텔노 사제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브랫입니다.

방황하던 이 어린 양을 지도해 주신 그분께서는, 제가 또 삿된 마

음이 들면 탑의 참회 기도실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으라 허락해 주

셨지요. 오늘 제 마음이 흐리고 어지럽습니다. 기도실을 허락해 주

시겠습니까?”

남자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브랫이 말을 마치자 놀랍다는 듯이

탄성을 터뜨리더니, 아주 정중하게 물었다.

“가텔노 사제님을 만나 뵈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혹시... 지금 주임 사제님을 뵙고 또 허락을 받아야

기도실로 갈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아아, 그런데 사원이 복원되면서 기도실

이 바뀌었답니다. 이제는 왼쪽 탑과 오른쪽 탑, 모두에 있으니....”

“오른쪽 탑으로 가겠습니다. 예전에 기도를 했으니, 그곳에 있어야 마음의

평정을 얻을 듯 합니다, 성스러운 형제.”

“네, 그리 하십시오. 열쇠는 저 기둥을 왼쪽으로 돌아 나오는 계단으

로 올라가셔서, 처음으로 나오는 성수반 모양의 등불 아래의 서랍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아직 개축이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참으셔야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브랫은 다시 성호를 그었다. 사제는 가슴의 투란바코스의 십자가에

손을 얹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와 헤어지자 브랫은 유릭을 불러

사제가 말한 계단으로 향했다.

“정말인가요?”

“설마. 그 노친네, 빈민가로 자선활동 올 때 먼발치로 한번 본 것뿐이

야. 빈민가 아이들 몇 명을 정말 교화시켜 쓸만한 아이로 만들어

주기도 했지. 이곳 주임사제였는데, 사원이 복원되기 1년 전에 죽었다.

그가 이 사원에 있을 때 사원이건 사제 본인이건 지독히도 가

난했지만 워낙에 자선사업을 많이 해서, 아직도 아주 존경받는 사람이지.”

“연기력 출중하시네요.”

“이래보여도 신학교 출신이야. 연기가 아니라, 한때는 진짜 내 모습이

라고.”

이거야 말로 놀랄만한 일이다. 신학교 출신의 특무부라니. 지옥 출신

의 천사라던가, 천국 출신의 악마라던가, 하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지경이다.

“뷰겐트 중령님이 왜 당신더러 괴짜라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그 사람은 정말 망령된 불신주의자니까. 울창하고 풍요로운 숲에서

도 자기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주리는 것이 인간이니, 신께서 주신

경전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것도 본인 역량이라면 역량이지.

하긴, 곰한테 신의 말씀이 필요 할 리 있냐.”

굵은 기둥을 지나, 좁은 계단이 나오자 둘은 그대로 뛰어들었다. 켜

놓은 등불이 빛바랜 종이 같은 빛깔로 사방을 비추어 들었다. 둘은

탑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돌아, 사제가 말했던 성수반을 발견했다.

그 안에 투명한 물이 고여 있고, 수면은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브랫은 어려움 없이 서랍을 찾아 열쇠를 찾았다. 팔콘 시대에서나

쓰일 법한 아주 고전적인 모양의 열쇠였다. 창고 열쇠인 듯, 투

박한 모양에 그 끝에 돌기 같은 요철이 두개 있었다.

두 번째 곡선을 돌자 유릭은 총을 꺼냈다.

“벌써 장전하는 거냐, 졸병.”

유릭은 뒤돌아섰다. 브랫이 멈칫했다. 유릭이 방아쇠를 당겼다. 핏-

작은 소리였다. 작은 탄환이 브랫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탄환에

무언가가 캑 맞아 나가떨어졌다.

“이런.”

“이제야 장전하는 겁니다. 열쇠나 주십시오.”

브랫은 투덜거리고는 유릭에게 열쇠를 던졌다.

유릭은 열쇠를 받아 들고 브랫보다 더 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드디어

철문에 다다르자 그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녹슬고 투박한

자물쇠가 삐그덕 거리며 열렸다. 유릭은 브랫이 안으로 들어오자

자물쇠를 바닥에 던졌다. 그러나 문이 갑자기 쾅 닫혔다. 브랫이 문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그 문의 창살 밖 풍광이 갑작스레 변하기

시작했다. 누런 램프빛이 비껴들던 돌바닥과 벽이 검게 변하고,

잿빛 계단역시 먹힌 듯 사라졌다.

유릭이 총을 쏘았다. 그러나 푸른 섬광이 그 어둠에 튕겨나가 천장에

부딪혔다. 챙, 캉! 돌조각이 튀어 유릭의 어깨와 이마를 때렸다.

브랫이 말했다.

“갇혔군.”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입이 닫혔는데 목구멍 속으로 뛰어들자고?”

“뱃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심장은 가까워지지요. 달리십시

오. 멈추고 생각하지 말고, 달리면서 생각하십시오.”

“잘난 체는, 졸병.”

유릭이 웃으며 말했다.

“근무 경력, 그리고 당신이 복직했을 때 받을 계급을 모두 고려해 보

아도 당신은 제 후, 배입니다. 깨진 이빨 조각 주울 생각 없으면,

닥치고 오십시요.”

예의바르고 살벌한 말에 브랫은 입을 다물었고, 둘은 다시 탑의 꼭대

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은 탑의 벽을 쓸어 올리며, 하늘

끝까지 닿을 듯이 뻗어 있었다. 유릭은 계속 난간을 짚으며 천장을

보고, 바닥을 살피며 달렸다. 조명이 사라지고, 드디어 빨아먹는

듯한 어둠이 시작되었다. 유릭은 바닥을 바라보았다. 바닥 가까운

곳으로는 아직 빛이 비추고 있어, 그곳에만 빛이 고인 듯 했다.

답답할 정도로 더워지기 시작하자 유릭은 웃옷을 벗어 던졌다. 브랫

이 뒤에서 외쳤다.

“바지는 벗지 마라, 너.”

순간, 유릭의 목덜미로 무언가 싸늘한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잉-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유릭은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브랫이

두 팔을 올렸다.

“야, 화 내지 말라고.”

“키저, 혹시 당신의 마령 중에 빛의 속성을 가진 것이 있습니까?”

“빛은 아니지만, 비슷한 것은 있지. 좀 요란하게 주변을 밝히는 물건

으로. 그런데 왜?”

유릭은 손을 들어 계단이 달팽이처럼 말려 올라가는 꼭대기를 가리켰

다.

“저 위를 향해 쏘십시오.”

브랫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프라이티!”

찌잉-! 귀가 찢어질 듯한 거센 방전음이 들렸다. 유릭은 총을 꽉 움

켜쥐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순간 턱을 확 스치며 뜨거운 빛 덩어리가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울음을 토해내며 위

로 치솟았다. 빛이 순식간에 첨탑 끝까지 뱀처럼 휘감은 계단과 난

간을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끝에 다다랐을 때, 그 난간에 검은

그림자들이 떠 있었다. 유릭은 빠르게 그들의 위치를 외웠다.

“브랫, 거두세요!”

순간 빛이 사라졌다. 방전음도 꺼지고, 어둠과 침묵이 후끈한 공기를

뒤덮었다.

유릭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탑을 울리고, 푸른 탄환의 섬광이

어둠 속에서 잠깐 반짝였다. 그러나 천장에 부닥치는 소리만 캉,

하고 들렸을 뿐이다. 브랫이 귀를 막았다가 떼며 외쳤다.

“젠장, 그 총성은 좀 어떻게 안 돼?”

“안 됩니다. 안에서 폭발할 때 나는 소리라, 저로서는 어쩔 수 없-”

유릭은 눈을 크게 떴다. 천장에서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희끄무

레한 달이 뜬 듯이, 그곳이 둥글게 밝혀지고 있다. 유릭은 그 천장

오른쪽에 붙어 있는 사다리와 입구를 발견했다. 종루로 향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사다리 아래에, 옷 무더기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천장의 희끄무레한 빛이 점점 더 진해지며 그것을 비추었다. 금

빛 머리카락이 언뜻 보였다. 축 늘어진 팔다리도 보인다.

“쥴리안!”

유릭은 달리기 시작했다. 브랫도 뒤를 따랐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속

도로, 발이 아프도록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장 근처에 다다랐을

때, 빛은 거의 달덩이처럼 사방을 구석구석 비추고 난간과 계단

그림자는 길고 검은 손가락처럼 벽을 쓸었다.

유릭은 쓰러지듯 무릎을 꿇고 천장을 향해 뚫린 사다리 아래에 쓰러

진 쥴리안을 살폈다.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저 곯아떨어진 듯이

몸을 말고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살짝 건드리자 쥴리안은 힘없이

흔들렸다. 유릭은 그 어깨를 잡아 세게 흔들었다.

“정신 차려! 어서!”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목덜미를 짚고, 그 체온과 맥박을 확인

해 보니 이상은 없었다. 유릭은 천장을 보았다. 그 빛이 더욱 거세

지며, 이제 쥴리안의 머리카락을 하얗게 지우고 있었다. 유릭은 쥴

리안의 멱살을 잡았다.

“비켜요, 브랫!”

천장을 보던 브랫이 비켜서자, 유릭은 쥴리안의 멱살을 힘껏 잡아 당

겨 난간 밖으로 집어 던졌다. 브랫이 외쳤다.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지금 너 뭐하는 거야!”

“암만!”

순간 허공의 어둠 속에서 빛의 진이 나타났다.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 빛을 뿜어 올리며 허공을 비추었다. 그런데 그 빛이 번쩍이자,

유릭과 브랫 주변에 서 있는 컴컴한 그림자가 얼핏 드러났다. 천장

의 빛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브랫이나 유릭이 만들어

낸 빛에는 눈을 떴다 감듯이 드러나는 것이다.

유릭은 난간을 짚으며 탑의 중앙을 내려다보았다. 허공에 쥴리안의

검은 그림자가 떠 있었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쥴리안을 휘감아

안고 있었고, 그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타닥거리며

흔들렸다. 바람이 좁은 탑에 갖힌 채 휘몰아쳐, 유릭의 옷깃과 머

리카락까지 날리게 했다.

“내려가!”

쥴리안의 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냥 떨어져

도 그보다는 더 빠르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바닥으로 내리

박혀갔다. 바람이 휘젓는 소리가 벽을 할퀴는 소리처럼 듣기 싫게

들려왔다. 콰학, 지직!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바닥중의 바닥, 아직

빛이 고여 있는 그곳으로 내려가더니 갑자기 느려지고 소리도 줄어들

었다. 잠시 뒤, 툭- 하는 무언가를 조심스레 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릭은 천장을 보았다. 이제 그 빛 위로 검은 문자와 진의 형상이 떠

오르고 있었다. 유릭은 그것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브랫이 다리를

굽히고 검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놈의 속성은 세 개의 가면, 엿 먹을 속임수, 그리고 잔인한 불꽃이

다.”

“확신하십니까.”

“당연하지. 내 몸처럼 잘 아는 놈이니까.”

유릭은 고개를 내렸다. 마주하는 난간위에, 그림자 하나가 앉아 있었

다. 꼭대기 층에 뚫린 창문에서 스며드는 달빛에, 그것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그가 뒤집어 쓴 흰 가면이 빛난다.

유릭은 총을 들어 그를 겨냥했다. 그림자가 등진 창밖으로 달이 보였

다. 흰 빛으로 노래하는, 그림자에 반쯤 먹힌 달이.

그리고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채찍 휘갈기듯 총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에, 등 뒤의 브랫이 검을 휘둘렀다.

“그륜다!”

울부짖는 듯한 폭음이, 달의 비명처럼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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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고양이 등에 테이프 붙이기 실험이 있었죠. 등에

테이프를 붙이면 엉금 엉금 기어가는 거.

아울- (자룡이를 바라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 -_-

동생- 언니!! 나도 봤는데 고양이한테 얼마나 스트레스인 지 알아?

우리가 볼 때는 재밌지만, 고양이는 정말 힘들어 한다고.

아울- 그래도 한번만~ ^^

동생- 안된다니까! 정말 힘들어 한다고!!

아울- ..............

동생- 자룡이도 두번 당하고 싶지 않을 거야.....!!

동생은 그날로 실험을 했더군요. 쳇.

(스폰지에 방송이 나간 후로,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꽤 고생했겠

더군요;;)

오타 수정;;; 얼른 얼른 고쳐야 나중에 안 잊어먹지;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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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20장 방황하는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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