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편
방황하는 노예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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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셀이 옷자락을 당기며 뒤로 물러났다. 검은 옷자락이 펄럭였다. 푸
른 섬광이 그 검은 옷자락 속으로 내리박혔다.
“이런!”
유릭은 몸을 날려 피했다. 반사된 푸른 탄환은 바로 옆 난간에 맞았
다. 난간은 단번에 박살나, 저 까마득한 아래로 그 파편이 흩어졌다.
“크리게아!”
유릭의 총구가 바닥을 향했다. 마법진이 펼쳐지고, 하얀 빛 오라기들
이 그 선을 따라 스며 올라왔다. 그 마법진은 바닥을 뒤덮고 주변을
밝히고 바셀에게까지 퍼졌다.
바셀이 외쳤다.
“류벨다!”
벽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피 젖은 듯 음침하고 불길한 빛으로. 으
스스한 바람이 느껴졌다. 바셀이 허리를 숙이고 몸을 웅크렸다. 그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옷자락 역시 날개처럼 펄럭여 올라오고, 그 끝
에 얼음조각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푸른
탄환이 마법진에 내리박히는 순간에, 바람은 미친 듯이 거세어지
기 시작했다.
“큭!”
그 때 붉게 변한 벽에서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이 터졌다. 활활 타는
두개의 눈동자가 나타나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치솟아 올라 세찬
바람과 혹독한 얼음을 불러일으키는 소환진으로 쏟아졌다.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치솟는 흰 얼음의 바람이 류벨다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것은 붉은 날개를 뒤흔들며, 그 몸을 들썩이며, 거대
한 울부짖음을 토해내며, 그러며 그 소환진의 중앙을 머리로 후려쳤다.
콰앙-! 바닥이 깨어졌다. 미친 듯이 휘감기는 바람에 날개가 찢기면
서도, 류벨다는 다시 소환진의 중앙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돌조각이
튀었다. 그 머리에 맺힌 얼음조각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불러 모았
던 힘이 흩어지며, 유릭에게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볼 근처까지 오
싹할 정도로 차갑고 거센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바닥이 쫙쫙 갈라
져 무너졌다.
유릭은 단검을 뽑아 손목을 그었다.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알반, 이로네!”
류벨다가 고개를 들며 주춤했다. 순간, 바닥에서 치솟는 칼날같은 바
람에 날개가 다시 한번 찢겨지며 살점과 파편이 얼음조각과 함께
튀었다. 유릭은 단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 총을 움켜 쥔 손과 다른 손
을 동시에 뻗었다. 핏방울이 떨어진 그곳에서, 붉은 마법진이 선명
하게 드러났다.
“류케!”
황금색 불꽃이 허공에 떠 올랐다. 난간과 무너진 바닥이 그 황금색
빛에 젖었다. 류벨다의 검붉은 색 비늘로도 그 빛이 스며들었다.
유릭은 그 것을 겨냥해 총을 쏘았다. 츠캉-! 탄환은 바닥을 스치며
류벨다의 목덜미에 박혔다. 유릭은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푸른
탄환이, 더욱 강하고 빠르게 목덜미에 박혔다. 그러자 류벨다의 눈
이 빛나더니, 날개가 찢어지든 피부가 베어나가든 상관하지 않고 바
닥을 박차며 유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배가 한꺼번에 와드득
뜯겨 나가며 검붉은 피가 투두둑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길!”
유릭은 몸을 날렸다. 류벨다의 이빨이 허공에서 딱 맞물렸다. 허탕
치자, 그것은 강철 같은 발톱을 휘둘러 유릭을 내리찍었다. 간신히
피했지만, 허리 바로 옆을 그 발톱이 강타하며 바닥이 무너졌다.
먼지가 부옇게 치솟는 것이 느껴졌고, 꽤나 아찔할 것임에 분명한
허공이 입을 벌렸다. 손이 미끄러져 허공을 더듬었을 정도였다.
잘못 하다가는 아득하게 나가떨어질 듯 했다. 그러나 잠시 숨 고를
틈도 없이, 류벨다가 다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때 유릭은 류벨다의 목덜미에 다시 나타난 흰 나비를 발견했다.
그 선명한 나비 문양위에, 얽히고설킨 또 다른 마법진이 있었다.
덧대어 그려져 있었기에,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보인다.
저것이다. 유릭은 단검을 뽑았다. 붉은 용의 무늬가 빛에 드러났다.
몸을 날려 그 부분에 칼을 찔러 넣었다. 류벨다가 내뿜는 열기가
볼에까지 와 닿았다.
엄청난 저항이 느껴지며, 팔목이 저릿했다. 단검에 저항하며 마법진
을 보호하려는 붉은 보호막이, 칼 근방에 동심원의 모양으로 나타
났다. 그러나 힘을 주려 하기도 전에, 류벨다가 몸을 뒤틀었다. 유릭
은 그것이 휘두른 날개에 맞아 나가 떨어졌다. 미끄러지며 돌과 난
간에 쾅 부딪혔다.
“윽!”
유릭은 몸을 일으켜 총구를 들었다. 류벨다가 몸을 뒤틀며 울부짖었
다. 타는 듯한 적의어린 눈빛으로, 벌써 몇 번이나 자신을 상처 입힌
얼음과 바람의 마령들을 부른 유릭을 노려보았다. 유릭은 총을 든
채로 반대편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분명 이 근방이었을 거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나 손끝에 방금 전에 그려놓은 소환진
이 닿았다.
“이로네!”
짧은 외침과 함께, 파창! 무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류벨다를
중심으로 하여, 푸른빛의 동심원이 파문처럼 빠르게 펼쳐졌다. 덫을
펼치듯, 그물을 던지듯, 그 푸른 동심원이 류벨다를 가로막고 압
박했다.
유릭은 숨을 고르고 총구를 더 올렸다. 순간, 류벨다가 침묵하기 시
작했다. 정지한 듯이, 고요하게. 거대한 용의 조각상처럼, 그 검붉은
몸체는 동작을 뚝 그친 채 멈추어 있었다. 유릭은 방금 전 칼을 박
아 넣은 나비의 인장을 찾았다. 역시나, 그 중심에서 붉은 동심원
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뭘.......한 거지?”
류벨다의 날개 너머로, 흰 가면이 나타났다. 유릭이 웃었다.
“이 마령의 원주인은 누구지?”
바셀이 침묵했다. 정지한 류벨다는 여전히 동굴 안에 갇힌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류케.”
순간에, 류벨다의 목덜미에 있던 나비의 주변으로 다시 금빛 마법진
이 환하게 나타났다. 유릭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왜 너를 바보 취급하는 지, 아직도 모르겠나. 그 이유 중 하나
는, 네가 흑마법사 최고의 금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거다. 흑마법사는
마령을 복속시키면 그 위에 자신의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복속된 마령을 다른 마법사가 자신의 것으로 하여 복속 시킬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전 주인과 관련된 모든 기
억과 낙인을 지우는 것. 하지만 원 주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은
어렵고, 때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 특무부에서는
그런 마령들은 아예 없애 버리지. 아무리 쓸만한 힘을 가졌다 할지
라도, 그런 것을 부렸다가는 금방 그 마령에게 먹혀 지배당하기 때
문이다. 그 누구도, 저 류벨다에게 하는 것처럼 낙인 위해 자신의
낙인을 덧씌워 지배하지 않아. 정말 미친 짓이니까.”
바셀은 아무 말도 없었고, 유릭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건 정말 최악으로 멍청한 바보짓이었지.”
“그건 뭐냐.”
“글쎄, 뭘까? 네가 더 잘 알 텐데 내가 굳이 말해줄 필요 있을까.”
바셀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가면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릭이
총구를 들며 말했다.
“바보와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너 같은 얼뜨기들은, 파난에서
지겹게 봤거든.”
바셀의 흰 가면이 어둡게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눈 안에서도 분노가
스며 나왔다.
유릭이 말했다.
“도전하는 순간 각오했어야지. 그리고 나는 적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남김없이, 산산이, 무자비하게. 그렇기에 적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는 자유로워지지.”
“네가 원하는 게 아니라, 명령을 받고 하는 거잖아.”
목소리의 어감이 달라졌다. 흰 가면의 목소리가 여유를 잔뜩 부리는
듯 하다면, 이 목소리는 조금 다급하고 성을 내고 있었다.
“나는 명령을 받기를 바란다. 더 강한 적을 찾아가라는 명령을 받기
를, 그리고 내 속안에 든 야수를 마음껏 해방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나와 공존하는 야수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이지.”
마침내 바셀의 가면은 완전히 붉은 빛이 되었다. 이제 나타난 것은
붉은 가면. 얼굴 바꾸는 놈은 질색이야, 유릭은 그렇게 생각했다.
“잘난 체는! 기껏 홍염의 마령, 히게아 뿐이잖아! 그 하나가 좀 강하
다고 해서 네가 그리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갈라진 목소리에는 오만이 담겨 있었다. 흰 가면은 징그러울 정도로
나긋나긋하고, 검은 가면은 조용하지만 음험하고, 이 붉은 가면은
흉폭하고 거만하기 그지없다.
순간 쿠릉, 하고 나직한 울림이 들렸다. 류벨다가 다시 움직이고 있
었다. 잠에서 깬 듯이, 그것은 몸을 느릿하게 뒤틀며 유릭을 노려
보고 이를 확 드러냈다.
바셀이 옷자락을 휘감듯 당겼다. 엄청난 불길이 그 옷자락의 궤적을
따라 치솟았다. 유릭을 향해 와라락 쏟아지며, 바닥을 녹이고 천장을
그슬리게 하며 으르렁거렸다.
유릭은 정면으로 쏟아지는 불길을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안
에 불길의 으르렁거림이 터질 듯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녹을
듯한 열기 속에, 붉은 가면의 남자가 서 있었다.
유릭은 총을 들었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나지막한 속삭임. 그 달싹
임이 끝나는 순간에 불길의 폭포 앞으로 마법진이 펼쳐졌다. 불길이
쏟아져 그 위로 부닥쳤다.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섬광이 번쩍이고, 그것이 아름다
운 눈송이의 육각형마냥 몸서리치는 정교함을 품은 마법진에 부딪
히며 모든 것이 희고 투명하게 작렬했다.
얼음 같은 냉기가 불길을 집어삼켰다. 용암처럼 녹아내리던 천장이
얼어붙고, 이글거리는 불꽃은 휘감겨 사라졌다. 으깨어진 바닥위로
흰 결정체가 소금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불꽃이 최후의 신음을
토해내며 사라졌다.
유릭은 다시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붉은 가면을 쓰
고 있었고, 지금 이 모든 불꽃의 지배자는 ‘가면’ 이었다. 각 가면이
쓸 수 있는 마법이 각각 다른 걸까. 그런 듯 하다. 그렇다면, 저
가면에 각 마령이 봉인되어 쓰여지는 건가. 그건 모르겠다.
유릭은 그를 똑바로 겨냥했다. 어쨌건 중요한 건, 세 개의 가면 자체
가 모두 마령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바보 짓 중의
가장 바보 짓,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금기를 이 바셀
이라는 남자가 한 것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마력을 넘어서기 위
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저 남자가 한 짓은 마령을 자신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마령과 자신의 육신을 결합시키는 일이 금기인 것은, 그것이야 말로
흑마법사 자신을 마령의 입 안에 넣어주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
었다. 마령을 다스리는 일은, 일단 그것을 복속 시킨 후에 소환진으
로 봉인하여 이루어진다. 직접적인 접촉은 최대한 피하여 흑마법사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 마령과 자신이 결합하는 것은, 아무
리 용이한 통제력과 강력한 힘을 얻게 되더라도 해서는 안 된다.
붉은 가면의 바셀이 팔을 휘둘렀고, 그 손바닥이 유릭을 향했다. 그
손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주변에 열기가 어리며 일그러
졌다.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려 했다. 불꽃을 죽인 얼음의 결정체들
이 녹기 시작했다. 곧 엄청난 열기에 천정과 바닥이 녹아 움푹 파
이기 시작했다. 바셀이 웃음을 터뜨렸다. 류벨다의 날개가 펼쳐졌고,
야수 같은 불꽃이 치솟아 유릭을 향해 돌진해 왔다.
열기가 얼굴을 덮었지만 유릭은 여전히 똑바로 서 있었다. 불덩어리
가 유릭의 마법진에 부닥쳤고, 흰 마법진은 얇은 얼음으로 된 듯
녹아 사라졌다.
붉은 가면에 그려진 얼굴이 웃은 듯 했다. 열기가 모두마법진 안으로
쏟아지며, 불꽃을 삼킨 용이 으르렁거리는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마법진이 버티지 못하는 듯 덜그럭거리고, 그 때마다 바닥이 긁혀
나갔다. 난간이 구부러지고 뽑히며 휩쓸려, 심연처럼 깊고도 깊은
탑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법진은 완전히 박살났고, 불길은 폭포
처럼 쏟아졌다. 그 중앙에, 류벨다의 검은 입과 눈이 보였다. 그러나
그 불길의 이빨이 이마에 닿는 순간 유릭이 외쳤다.
“히게아--!”
붉은 불길이, 터진 심장에서 솟구치는 피처럼 뿜어져 올랐다. 대폭발
과 진동, 휘몰아치는 열기, 쓰러질 것 같은 진동. 모든 것이 으깨어
지고 녹아버리고 박살난다. 거대한 손에 맞은 듯 류벨다가 나가떨
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날개가 부서지고, 목이 으스러지고, 몸뚱이
는 산산조각 났다.
사방에 가득한 것은 핏빛 불꽃, 그것이 벽을 적시고 바닥으로 넘쳐흐
르고 천장으로 치솟았다. 천장이 터지며 하늘을 토해냈다. 검은 하
늘위로 연기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벽이 무너지며 벽돌이 아래로
허무하게 쏟아졌다. 쿠르르르릉- 먼지와 연기가 다시 뿜어져 올랐다.
그 열기에 몸을 맡긴 채, 노을 젖은 듯 붉은 빛으로 물든 얼굴과 머
리카락이 흐트러뜨리고, 그렇게 유릭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어깨를 움츠린 남자가 서 있었다. 붉은 가면이 일
그러져 있었다. 녹아 버린 쇳덩이마냥 흉측하게, 눈도 코도 보이지
않는다. 망토는 이제 불길에 먹힌 듯 엉망이었다. 그리고 그 가면
의 이마에 흰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유릭은 다시 그를 겨냥했다. 정확히 그 나비를 겨냥하여. 그 나비는
방금 전에 날려 버린 류벨다와는 완전히 틀렸다. 류벨다가 타인의
힘으로나마 억압되고 있었다면, 그 마령들은 그것도 아니었다. 마
령들은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 그리고 유릭의 예상이 맞는다면,
저 낙인을 박아 넣은 ‘진짜 주인’은 지금 저들에게 그 어떤 영향력
도 행사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저들은 지금 주인
잃은 노예들, 목적 없이 방황하고 주인의 귀환을 두려워하며, 턱없는
방종과 난폭함과 오만함으로 그 공포를 잊고자 하는 힘 센 아이들에
불과하다.
“넌 뭐냐.”
그것은 바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가면의 마령, 그것이 직접 유릭
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까지의 ‘인격’을 갖
춘 마령이라면, 저 몸의 주인은 이미 오래전에 그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유릭에게 말을 걸고 자신을 소개한 그 바셀은 무엇
일까. 그는 주인이 아니다. 그는 그저 거대한 저택의 문과 같은, 대표자
같은 그런 존재. 그가 쓰는 수많은 마령들이 그의 몸 안에 머물며, 그가
아직 자신들을 지배할 수 있다 착각하게 하여 자신들을 보호해 온 것이
다. 마령이 모든 지배력을 장악해 버린 몸뚱이는 그 때부터는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즉, 민간인인 경우에는 ‘토벌’되며 특무부라는 이
름으로 흑마법을 쓰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된 군인이라면 ‘처형’된다.
이제 흐물흐물 녹아내린 가면이 외쳤다.
“넌 뭐냐고--!”
그러나 유릭은 답하지 않았다. 열기어린 바람이 다시 허공을 거닌다.
불길은 허망하게 너울대며, 허기진 몸짓을 한다.
“토벌한다.”
유릭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움직일 틈도 없이, 유릭의 총구가 그 가
면에 닿았다. 나비는 차가운 뼛조각처럼 하얗다. 유릭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방아쇠가 당겨졌다. 츠캉, 섬광이 튀어 오르고 미세한 균열
과 함께, 그 나비가 칼로 베인 듯이 반 조각났다. 그 금이 붉은 가면위
로 희게 뻗어나가, 가면은 완전히 갈라졌다. 그 안에서 피 같은 빛이
솟구쳤다. 지옥의 틈에서 솟구치는 듯한 으르렁거림, 둑이 터진 듯한
세찬 힘의 물결. 츠캉! 빛이 번쩍이더니, 붉은 가면이 마침내 터졌다.
그리고 그 붉은 가면 아래에, 이제 흰 가면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이제 붉은 나비가 빛나고 있었으며, 가면은 새로 탄생한 듯 선명한 흰
빛이었다. 그리고 흰 손아귀가 치솟아 올랐다.
“!”
뒤로 피하는 순간에 차고 흰 손이 턱을 스쳤다. 가면이 하나하나 완전
히 새로운 거였나? 하나가 파괴되어도, 다른 두개는 건재하다는 건가?
흰 가면이 웃었다.
“우리 모두를 다 해치울 수 있을까?”
유릭은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가면의 흰 표면이 번쩍인다.
어디로 날아가는 지도 모르게, 대체 누가 그를 받쳐주고 보호해 줄지
모르는 가운데 유릭은 그것을 겨냥했다.
불확실과 불확실, 위험과 위험. 그리고 자그마한 행운과 약간의 당위.
그 칼처럼 좁고도 좁은 길을 한발 한발 디디며 살아 왔고, 지금도 그
러하다. 순간, 검은 그림자가 파고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벼락처럼 흰 검이 번쩍이고, 그 위로 뒤엉킨 머리카락같은 빛의 실오
라기가 휘몰아친다.
“그륜다!”
흰 마법진이 펼쳐졌다. 검이 그 위를 가르듯이 내리치고, 천개의 폭
풍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한 엄청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칼의
비처럼 쏟아졌다. 흰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흰 가면역시 산산조
각 났다. 흰 옷자락은 눈처럼 사그라진다.
그리고 남자는, 검은 옷의 남자는 검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몸이 반
동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았다. 그의 오른 손은 검을, 그의 왼손은 무
너진 벽 밖으로 나가떨어질 뻔한 유릭의 옷자락을 움켜잡고 있었다.
“크읏!”
남자는 기합을 토해내며 유릭을 안으로 집어 던졌다.
“아슬아슬했다, 후.”
남자-브랫 키저는 턱의 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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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이리 저리 굴리다가........... 결국 붙였습니다. 용량이 너무 작
아서. 이걸로 비축분 2개가 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부지런히 쓰라는 신
의 계시일진저!
자, 버닝 홍염!
(젠장, 그리고 다른 작가분들도 글좀 올리란 말입니다!!)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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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