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편
되돌아오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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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가 풍겨온다.
매캐한 연기, 역겨운 냄새, 살 찢어지는 소리, 뼈 부러지는 소리, 끼
기기기긱- 녹슨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신음, 비명소리. 죽은 거미
처럼 몸을 오그리고 구석에 처박혀 있고 싶었다. 아무의 눈길도 닿
지 않는 구석 그늘진 곳에, 그렇게 웅크려 숨어 있고만 싶었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물을 쏟아 붓는 소리가 들리더니, 후
려 차는 듯 퍽- 소리가 들린다.
등골이 얼어붙었다가, 갑자기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가 아래
위로 깨어질 듯 딱딱 부딪혔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기를 빌었다.
이대로 작아지고 작아져서, 완전히 사라져 그 누구도 찾지 못하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온갖 신과 성자들의 이름을 긁으며 속으로
외쳤다.
그런데 피 젖은 가죽장갑을 낀 우악스런 손이 유릭의 멱살을 움켜잡
았다. 발버둥치지도 못했다. 뻣뻣하게 굳어, 머릿속만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치고 있을 뿐이다. 순간 몸이 허공에 뜨는 가 싶더니, 머리
에 엄청난 충격이 왔다. 어깨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현란한 별빛들이 머릿속에 휘황찬란하게
번쩍였다.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볼을 댄 차가운 바닥은 유황냄새 피냄새 쇠비린내에 젖어 있었다. 지
글지글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끼긱- 끼긱 쇠로 된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 다시, 그 가죽손이 유릭의 머리카락을 꽉 그러쥐었다.
사냥한 토끼 다루듯 작은 머리를 이리 저리 흔들다가 뒤로 확 젖쳤다.
-어이, 샌님. 이거 네 놈 아들이지?
눈앞에 쇠사슬에 꿰인 아버지가 있었다. 고문에 갈가리 찢겨지고 짓
이겨진 피투성이 아버지가, 시체 같은 눈길로 유릭을 바라보고 있
었다.
-어서 말 해. 아들놈이 험한 꼴 당한다.
아버지의 멍한 눈 안에 약간의 분노가 일었다. 찢어져 고름과 피딱지
가 엉긴 입술이 아주 흐릿하게 움직였다. 고문관이 다시 유릭의 머
리를 흔들었다.
-지겹게 하는 군, 정말! 말 하란 말이다. 다 알고 있고, 모르는 건
만들어 내면 되는 문제지. 네 놈이 시인하면 더 빨리 끝나고, 더
확실하게 끝나니까 이 지랄 하는 것뿐이야. 제길, 빨리 말해! 불란
말이야!
눈물 맺힌 채 유릭이 입술을 움직였다. 말하라고요, 아버지! 제발 말
해요! 말 하면 나갈 수 있어요! 나갈 수 있단 말이야! 그러나 아버
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긁히고 피딱지가 지고 고름이 맺힌 볼
이 보였다. 귀 한쪽이 완전히 씹힌 듯 뜯겨나가 있었다. 유릭은 분
노에 부르르 떨며, 당장에 고함을 질러 버리고 싶었다. 제발 말해요!
!! 아버지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아버지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를 불러 주시요, 다 말하겠소.
고문관은 유릭을 아버지의 발치로 내 던졌다. 잘 생각했어, 너도 편
하고 우리도 편하고. 어차피 끝날 일이면 빨리 끝내는 게 좋잖아!
그리 웅얼거리며 고문관은 재빨리 고문실을 나갔다.
유릭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피와 고름을 닦
아주고 싶었다. 와들와들 떨리는 작은 몸을 일으켜, 아버지의 목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나 겁이 나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 눈길을 보며 아버지가 웃었다.
-아주 중요한 부탁 하겠다, 유리. 약속해다오, 최선을 다해 지키겠다
고.
“얌마. 야-”
눈을 떴을 때, 그를 내려다보는 브랫의 눈동자가 가장 먼저 보였다.
여태까지 그저 진한 검은 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홍채 깊숙한
곳에 군청색 진한 푸른빛이 배어 있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
고 생각했다. 술을 잔뜩 마시고 난 다음날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
리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바셀의 몸을 떠나는 마령을 쫓아간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은 뚝 잘린 듯 캄캄하다.
“오래........지났습니까?”
“한 10분?”
그리고 브랫은 창밖을 가리켰다. 달은 거의 그대로였다. 유릭이 몸을
일으키자, 돌 부스러기가 와스스 떨어졌다. 구석구석 욱신거린다.
깨어질 듯 아픈 머리 때문에, 온 세상이 휭휭 돌고 현기증이 아찔하
게 일어났다.
정신을 대강 차려 보니, 거의 무너져 내린 벽 옆에 앉아 있었다. 유
릭은 이마를 감싸 쥐며 신음을 흘린 뒤에 간신히 돌아섰다.
브랫은 이제 반듯하게 누운 바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짝 마르고
시들대로 시든 얼굴이었다. 볼은 푹 꺼져있고, 높은 코는 콧망울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입술은 노인처럼 쭈글쭈글했으며,
조금 벌린 입 사이로 누런 이빨들이 들쭉날쭉 보였다. 방금 죽
은 시신이 아닌, 천년 전에 말라 죽은 미이라 같은 모습이었다. 다
행히 눈은 꼭 감겨 있었다. 브랫이 감겨준 것이다.
“설명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브랫은 아무 말도 없었다. 품 안에 손을 밀어 넣더니, 그 안에서 투
란바코스의 십자가를 꺼내어 바셀의 가슴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
성호를 긋고, 가슴에 손을 얹은 다음 허리를 숙이며 기도를 올렸다.
유릭은 그가 답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기도는 그리 길지 않았
다. 작게 달싹이는 소리가 끝나는 데까지는 몇 초면 충분했다.
“형은 기도고 뭐건 오래 걸리는 건 무조건 싫어했으니까. 신께서도
알아서 접수하시겠지.”
기도를 마치고 브랫이 그리 말했다.
“그 날 죽이지 못하게 했던 이유가 이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될 줄은 몰랐
군......”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고도 무관심했다. 귀찮은 것을 억지로
한다는 듯한 투다.
유릭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꽉꽉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
여기 저기 그을리고 녹아 있었다. 난간은 흔적조차 없었다. 하늘을
보니, 별빛이 참 찬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천장이 없었으니).
브랫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만 돌아가자.”
“시신은 수습 안하실 겁니까.”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검시과에서 수습해 가져가 자르고 가르고 쑤
시고 해야지.........어서 가자고.”
“아직 설명 못 들었는데요.”
브랫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나른
히 한숨을 내 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형은 괴도가 아니야. 내가 장담하지. 형이 훔친 건, 그 절반의 절반
도 아니야. 진짜는 따로 있어. 내가 보장하지.”
“그 마령들의 진짜 소유주가 누구입니까.”
“무슨 말이냐.”
유릭은 손으로 나비모양을 그렸다.
“모든 마령들, 류벨다와 세 개의 그림자가 합쳐진 마령들에게는 분명
이런 표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것의 원 주인이 새겨 놓은 낙인
이지요. 그리고 그 위에 덧대어 새로운 낙인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바셀 아블롤라인은 새로운 낙인을 통해 그들을 억압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이 마령들은 이미 완전하게 육신과 영혼을 갖춘 녀석들입
니다. 이건 이미 하나의 생명체지요. 보통 흑마법사라면, 이것이
아무리 강하고 탐나는 녀석들이라 할지라도 절대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습니다. 모두 파괴할지언정, 결코 가까이 두지 않습니다. 원
래 주인이 아닌 한.”
“요점은?”
“오늘 당신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그렇다고 미
룰 수도 없군요. 알려 주십시오. 그 나비의 인장은 대체 무엇입니까.”
“모른다.”
“당신은 압니다. 아니, 알 겁니다.”
“근거는?”
“당신 형의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은......제가 보기에, 아무 것도 모르
는 위치도 아닌 것 같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멍청이도 아닙니다.
제가 본 것을 당신이 보지 못했을 리 없고, 제가 예상하는 것을 당신
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말 해 주십시오. 그 나비의 인장
은 대체 무엇입니까.”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너를 믿을 수 없어.”
유릭은 무너진 바닥 끄트머리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계단이 몇 미터
는 족히 무너져 있어, 건너편까지는 날아가지 않는 한 내려 갈 수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 유릭은 허리를 피고 브랫 키저의 이마
에 총구를 들이댔다. 브랫이 턱을 들고 그 총구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말씀해 주십시오, 키저.”
“쏠 거냐.”
“죽이지는 않겠지만 조금 아프게는 해 드릴 겁니다.”
“혼난다, 너.”
“혼나죠, 뭐. 하지만... 이건 제 임무이며, 파난의 프리델라 각하와 헨
리 카밀턴 경, 그리고 최종적으로 레반투스 대공의 안전과도 관련된
일입니다. 카밀턴 경의 암살의 배후에는 분명 니콜라스 추기경이
있고, 이 나비의 인장이 박힌 마령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
고 방금 전, 분명 그 마령은 누군가에 의해 회수 되었습니다. 아직
카밀턴 경을 노리는 사람은 건재하며, 이 바셀 아브롤라인은 그가
택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셀 아브롤라인은 이미 오래전에 마
령에 의해 잠식당했고, 그 마령을 억압하고 있는 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괴도 사건 자체도 그 자에 의해 일어난
것이겠지요. 그리고 바셀 아브롤라인이 죽었다 할지라도, 그 배후가
마음만 먹는 다면 카밀턴 경은 또다시 위험해 지게 됩니다. 그러니
협조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제 일이고, 프리델라 각하의
일인 동시에, 레반투스 대공의 일입니다.”
브랫은 총구에 손을 대고 왼쪽으로 밀었다.
“협박인가.”
“떼쓰는 거죠.”
브랫은 총구와 유릭을 번갈아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직선으로 똑바
로 움직일 때마다, 그 안에서 섬뜩한 분노가 번쩍였다. 그러나 그
답게, 그 공격적인 모습은 밖으로는 폭발하지 않았다.
“‘오래된 클럽 사건’ 에 대해 알고 있나.”
유릭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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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버닝 버닝!!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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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