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02화 (102/174)

제102편

광산의 소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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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 카스톨에서 상류층만을 위한 최고급 레스토랑이 늘어진 입센 가

(街), 그 중 ‘아레레 해의 붉은 인어’라는 레스토랑에 앉아, 서부

전선의 사자라 불리는 제국의 영웅, 그리고 최근에 벌어진 암살시도

로 중상을 입고 꽤 오래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위대한 장군 카밀턴

경은 메뉴판을 유심히 노려보고 있었다.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트레비스가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든 시키게. 회복기에는 영양가 풍부한 해산물이 최고라고.”

“젠장, 대체 뭘 고르라는 거야? 먹을 게 없잖아, 먹을 게.”

유제니 황후가 칭송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것이 없다니. 행여나 누가

들을까봐 무서운 말이었다.

퇴원기념으로 식사나 하자고 했더니 이 카밀턴은 대뜸 ‘자네가 사는

거지?’ 하고 비죽댔고, 트레비스는 원래 그럴 예정이었다고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트래비스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입센 가

의 진주라 불리는 이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왔다. 미리 세팅되어 있

는 예약 테이블에 앉고, 메뉴판이 나오자, 카밀턴은 생일상 받는 아

이처럼 잔뜩 기대하며 펼쳤다. 그리고 당장에 심드렁하게 투덜댔다.

“물고기 밖에 없잖아.”

“편식은 좋지 않은 버릇이네, 카밀턴. 그리고 자네도 낼 모레면 마흔

이야. 홀몸인데 알아서 건강 챙기며 주의해야지, 기름진 고기에,

술에, 담배! 너무 좋지 않아.”

“하고 싶은 걸 참는 게 더 좋지 않은 거라네, 트레비스. 자네가 알아

서 시켜. 단, 바다가재 같은 건 절대 시키지 마.”

“내가 미쳤나? 또 그 고생을 하라고?”

지난번에 알아서 시키라고 하기래, 오늘 새로 들어온 바다가재가 맛

있다는 웨이터의 말을 듣고 그걸 시켰다. 그리고 그날, 껍질 깨는

망치에 웨이트리스가 맞아 실려 가고, 이 개자식이 나이프로 껍질을

푹푹 쑤시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 나이프가 날아가

옆에서 식사하던 어느 원로 교수의 접시에 놓인 연어에 꽂혔다. 바

다가재 먹다가 살인날 것 같은 분위기라, 트레비스는 이를 북북 갈며

식사도 마치지 못하고 식당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카밀턴이 한 말이 ‘나는 해산물이 싫어!’ 였다. 트레비스는

이놈과 계속 친구를 하려면 격투기부터 배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오자, 트레비스는 가장 먹기 간편한 것이 무

엇인지 물어 본 후에, 그것이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하고 그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는 오늘 들어온 이런저런 강에서 잡은 연어위에 어쩌고 허브를 감

미한 소스를 얹고 저쩌고를 곁들여 오븐에 살짝 익혔다는, 매우 거

창한 요리를 시켰다. 벌써 딴청을 피우고 있는 카밀턴은 나이프를

흔들며(트레비스는 아주 긴장하며 그 나이프를 바라보았다) 말했다.

“여기저기 아는 얼굴이군.”

“자네는 어딜 가든 눈에 뜨여. 특히나 여자들에게.”

카밀턴의 앞에는, 어디 어디 백작부인이 보낸 모젤 강 산 언 포도로

만든 와인 한잔과 어쩌고 후작부인이 보낸 샴바 지역에서 나는 특산

발포 와인 한잔과 그 외 기타 등등 부인이 보낸 기타 등등 와인들

이 열잔 가까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게다가, 방금 어느 부유한

독신 남작부인 하나가 카밀턴에게 인사하러 왔다가(오늘 따라 인사

하러 오는 여자들이 참 많았다) 그 와인잔들을 봤으니 분명 돌아가

서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한잔 갖다 바치라 웨이터에게

주문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헤리, 아주 근사한 일이 생길 것 같아. 성사된다면 자네

의 회복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지. 자네도 듣게 된다면 기뻐할 거야.”

“말 해 보게.”

트레비스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파난의 시곤 시로부터 초청창이 왔네.”

“다투스 부인이 자네하고 재혼하자고 하던가?”

카밀턴은 날아드는 트레비스의 나이프를 자신의 나이프로 막으며 말

했다.

“.........본론이나 말하게나.”

“시곤의 상테 로비니엘 대극장으로부터 초청장이 왔어! 거기 전속 오

페라단은 카스틸리아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우리 카스틸리아 전속

오페라단은 샹테 로비니엘 왕립대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거라고!

자그마치 로비니엘에서 초청이 온 거라네.”

카밀턴의 표정은, 트레비스가 보기에 평소의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매우 정상적인 편이었다. 애매하게 웃는 그 얼굴을 해석하자면 ‘오오,

축하하네! 그런데........그거, 대단한 일인건가?’ 였다. 트레비스는

한번 거창하게 으르렁댄 후 말했다.

“샹테 로비니엘 대극장은 아무리 파난에 있다지만 그 어디보다 훌륭

한 곳이라고! 파난 섬의 꿈이자, 파난 섬의 여신이 바로 그 로비니엘

대극장이란 말이야. 그곳의 오페라단도 정말 훌륭하지. 푸른 진

주섬의 귀족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오페라단이니. 그런데 우리는 바

로 식민지에 사는 귀족들을 위해, 이 본국의 현 오페라를 대표하여

가는 거란 말이네! 우리가 최고라고 인정받는 거라고.”

“오호.”

카밀턴의 눈이 커졌다. 어쨌든 굉장한 거로군, 실감은 안 나지만. 정

도의 표정이었다.

“확실히 정해진 건가?”

“물론. 편지로 정식 연락이 왔으니, 곧 그곳에서 담당직원이 올 거야.

특별공연이 될 테니, 기간은 일주일. 아마도 세 번 정도 공연을 하게

될 거야. 그리 되면 창작공연이 아니라, 기존에 공연했던 걸 하게

되겠지. 얼마 전에 했던 ‘알티오네’가 적당할 것 같아. 음......카밀턴?”

“아, 듣고 있네.”

막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는 어느 늘씬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손 인

사를 나누며 그리 말하면 대체 누가 믿어줄까.

트레비스는 카밀턴의 뒤통수에 나이프를 쑤셔 박으려다가, 그 부인이

그와도 아주 잘 아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같이 손을 흔들어야

했다.

카스조 오페라단의 단장인 레오노라 카스조였다. 카스틸리아 극장의

지휘자이자 음악총감독이었던 카스조의 딸이었기에 트레비스와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

레오노라는 백로처럼 우아하게 걸어와 두 독신남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뵐 줄은 몰랐군요, 트레비스 카트슨 씨. 그리고.......서부전선

의 사자이시자, 이 도시 여자들의 우상이신 카밀턴 경.”

“사자도 아니고, 우상도 아닌, 아내가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서글픈 이

혼남일 뿐이지요. 옛친구를 뵙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카밀턴은 레오노라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트레비스는 벌써 난봉질이

지, 하고 투덜대면서도 레노라에게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말 반갑군. 아버지는 잘 계신가, 레오노라 양.”

“제 오페라단원들을 매일 아침 골고루 볶을 정도로 건강하시지요. 트

레비스 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언제나 옛 친구의 성공을 듣는

듯 좋아하신답니다.”

“빌라쉐 카스조 씨가 그리 말하니 나도 기쁘군. 멜리잔드 양에게도

안부 전하겠소. 그건 그렇고 여기는 웬일이오, 레오노라 양.”

“가볍게 저녁 식사나 하려고요. 왠지 해산물 요리가 생각나지 뭐예

요.”

“혼자서?”

“아버지와 같이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생기셔서요. 그런데 예

약을 취소하기는 너무 아까운 레스토랑이잖아요, 이곳은. 적어도

이주일 전부터 예약해 놓아야 하는데 취소라니. 그래서 그냥 혼자

오기로 했어요.”

“그렇다면 같이 들까? 나도 일행이 이 친구뿐이거든.”

그리고 트레비스는 카밀턴을 가리켰다. 카밀턴의 얼굴이 당장에 창백

해졌다. 오페라단장과 오페라극장주. 이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이

야기가 나올지 뻔했기 때문이다. 레오노라는 예의상 한 번 정도 사

양 한 후에, 트레비스가 간곡히 청하자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레

오노라는 예쁜데다가 유머감각 넘치고 세련된 여자였다. 사양할 상

대가 아니었다. 잠시 서로의 안부에 대한 이야기 나오고, 카밀턴

경의 부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으나 그 원인에 관해서는 약

속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비니엘 극장의 초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로비니엘 극장에서 초청했다는 소문 들었어요. 축하해요, 정말로.”

그 말이 언제 나오나 내심 기대했던 트레비스가 당장에 으쓱해했다.

“하하하, 나 역시 아주 자랑스럽지. 이 모든 것이, 단원들과 연출자들

덕 아니겠나.”

“주연은 역시나 에닌 마델로 양이겠지요?”

“응?”

“로비니엘 극장이 가장 기대하는 건 브란 카스톨의 스타인 에닌 마델

로 양이겠지요..... 정말 천사처럼 고운 목소리를 가진 아가씨에요.

음도 정확하고, 호흡도 정교하죠. 기교도 너무나 아름답고. 게다가

대부호의 딸에다가 예쁘기까지. 볼 때마다 질투가 나요. 어째서 신은

그 소녀 한 사람에게 모든 선물을 떠 주었을까, 하는 생각에요.”

“카스조 오페라단의 비비안 수우양도 정말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

어. 특히 그녀의 비올레타와 옥스타나는 전율이 일 정도지.”

그리고 그녀는 작년까지만 해도 카스틸리아의 주역 소프라노였다가

에닌에게 밀려 카스조 오페라단으로 적을 옮긴 여자가수이기도 했다.

건방지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우들은 자존심이 심장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족속이다.

“하지만 벌써 서른다섯이죠. 매 해 눈에 뜨이게 목소리가 힘을 잃고

있으니.......길게 잡아도 5년 안에 은퇴할 거라고요. 아쉬워요.”

레오노라는 그리 말하며 트레비스와 카밀턴은 번갈아 보았다. 트레비

스는 그녀가 왜 그리 눈치를 보는 지, 그 이유를 대강 짐작했다.

“헤리는 이 분야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돌멩이와 비슷하게 취

급해도 되네. 하나도 모르거든. 그러니 무엇이든 말해도 돼.”

카밀턴이 ‘너, 나 욕 한거 맞지?’ 라고 말하듯 쏘아보았지만 트레비스

는 무시했다. 레오노라가 말했다.

“지난 번.......... 그러니까, 아버지와 함께 ‘흰장미’와 카밀턴 경께서

주최한 음악회에 갔었어요. 에닌 마델로 양의 노래를 들으러 간 거

였지만.........음, 그러니까. 대역으로 나왔던 그 여가수. 머리가 좀 붉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하나 있었지요. 이름은 로웨나 그린.”

트레비스는 아무 말도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레오노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가씨, 올해 나이가 몇이죠?”

“에닌 마델로 양과 동갑....이지. 졸업 동기야.”

레오노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나 제가 확인한 것이 맞군요. 아카데미의 진지어 빅틴 여사를

찾아갔더니, 그 아이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게다가

졸업성적도 전교 3등이었다면서요. 맙소사, 그 정도 되는 아이를

그렇게 썩히고 계시다니. 아무리 에닌 마델로 양이 있다 해도, 너

무 하셨다고 봐요.”

“아, 그게.............아직 어, 어리잖나.”

그리고 트레비스는 카밀턴 앞에 놓인 와인 잔 중 하나를 집어 단번에

비웠다. 카밀턴의 눈이 커졌다.

“물론 어리죠. 하지만 동갑인 에닌 마델로 양은 그렇게 활약하고 있

잖아요. 아, 물론 저는 에닌 마델로 양이 로웨나 그린 양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건 인정해요.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죠. 무엇보다

로웨나 그린 양은 무대에 선 경험이 거의 없고, 게다가 아직 덜

다듬어진 부분이 많아요. 목소리나 분위기, 음색의 개성이 너무 강하

달까. 하지만............ 지금 카스틸리아 오페라단의 구조상, 로웨나

양이 성장하기는 힘들 거라고 봐요. 어떤 재능도 그것을 뒷받침하

는 환경과 보살핌 없이는 성장하기 힘들어요. 에닌 마델로 양에게

는 조건이든 재능이든 모두 최상이지만, 지금 로웨나 그린 양은 있는

재능도 썩을 판이잖아요.”

“구조상 힘들 거라는 건 무슨 말인가.”

트레비스는 두 번째 잔을 집어 다시 단번에 비웠다. 이번에는 카밀턴

이 ‘미쳤어!’ 하고 입술로 외쳤다.

“에닌 마델로 양 외의 여가수는 절대 클 수 없다는 거에요. 이미 그

렇게 훌륭하고도 유명한, 게다가 젊기까지 한 최고의 소프라노가

있는데, 다른 여가수들이 얼마나 어떻게 크겠어요. 도저히 빛을 볼

수 없어요. 그러니........”

“그러니?”

트레비스는 세 번째 잔을 비우고 네 번째 잔을 집으려 했다. 그가 곧

‘만취상태’가 될 거라는 걸 아는 카밀턴이 놀라서 그 잔을 빼앗았다.

레오노라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카스틸리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는 에닌 마델로 양, 한명

이면 충분하잖아요. 그러니 로웨나 그린 양은 저희 카스조에 주세요.

이건 아버지도 같은 의견이에요. 그리고 만약 트레비스 씨가 거

절하면,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실 거라 하더군요. 정말 그 소녀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하, 하지만 레오노라 양- 나, 나는......그린 양에게 투자할 생각이

있다고.”

벌써 취기가 도는지 트레비스의 발음은 이리저리 새고 있었다. 트레

비스의 주량은 몇 잔 안 된다. 자신은 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못 마시기 때문에 안 마시는 것뿐이다.

그러자 레오노라가 말했다.

“아무리 그러셔도 2년 가까이 되도록 그렇게 놔두는 걸 해명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노라 야....아...”

“어이, 트레비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해 줄 거라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넘기는 게 더 좋은 거 아냐. 욕심 버려. 어차피

여자는 하나만 잡아야 하는 법이라고. 여가수든, 마누라든 간에.”

그리고 카밀턴은 한 번 더 암살시도를 받아야 했다. 지난번과 다른 건,

암살무기가 포크라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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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여전히 잘 노는 중년남자 둘;;

그나저나........크아, 홈피에 자꾸 스팸글 올라와서 미치겠습니다!!

지워도 지워도 샘솟는 스팸들!!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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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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