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편
광산의 소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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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유릭을 끌고,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집으로 향했다. 굵은
빗줄기 속으로, ‘길가 여관’ 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여관은 대
체로 마을 밖에 있다. 게다가 이런 외지 광산촌의 여관이라면, 술을
팔 뿐만 아니라 매춘도 한다. 아이들이나 여자가 있는 마을 안에
둘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을로부터 배척당하지는 않는다. 이런 여관
이자 술집의 여주인은, 돈벌러 타지에서 온 외로운 독신광부들에게는
친절한 아주머니나 누나 같은 존재이니.
소녀는 처마 아래로 들어오자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 올라 문을 열었
다.
“어서 오세요, 오빠.”
그리고 소녀는 연신 어깨를 으쓱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유릭은 소녀
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안으로 당기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애교 많은 고양이처럼 그의 허리에 볼을 부비며 찰싹 달라붙었다.
“젖은 망토는 이리 주세요, 주세요. 제가 받아 드릴게요. 말려 드릴게
요.”
가게 안에서 와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넓지 않
은 가게 안에는 대략 대 여섯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유릭과 소녀의 모습을 보
고 웃은 것은 그들이었다. 테이블에는 값싼 와인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썰어 놓은 치즈, 햄과 말린 청어가 뒹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히죽 웃고는 다시 카드놀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유릭은 망토를 벗기려는 소녀를 피하며 그들을 잽싸게 살폈다. 모
두 여섯 명으로, 그 중 한명은 유릭보다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검은 머리나 진한 갈색머리카락이었으며, 한
사람은 좀 통통한 편이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체구들이 잘 단련
되어 단단해 보였다. 목덜미나 팔뚝에도 흉터가 잔뜩 나 있었다. 허
리에는 긴 칼과 권총을 차고 있었고, 그 중 한명의 의자에는 라이
플이 충직한 개처럼 기대어져 놓여 있었다. 용병들-즉, 총잡이들이었다.
그때였다.
“여어, 유리.”
유릭은 소녀의 손목을 놀라서 놓쳐 버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문가의 테이블 옆에 광산 기사처럼 차려입은 회색머리 남자가 앉아,
빵, 스프, 햄 등으로 막 저녁식사를 하려다가 유릭을 발견한 듯 손
을 흔들고 있었다.
유릭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와아, 백작님.”
“좀 더 반가워하는 반응을 보여줄 수는 없나?”
“우와, 백작님.”
“......”
놀랍게도, 알렉산더였다.
“여기는 웬 일이십니까?”
유릭은 그가 권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며 그의 접시에 놓인 빵을 집
어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칼로 능숙하게 반을 갈라 햄과 치즈를
끼워 넣은 뒤에, 옆에 찰싹 달라붙는 리시에게 내밀었다. 리시는
그것을 받아 맛있게 뜯어 먹기 시작했다.
알렉산더가 피식 웃었다.
“그거 내건데.”
유릭은 리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리시, 그건 백작님이 주신 거란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알렉산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접시 옆에 놓인 맥주
잔을 집어 한 모금 마셨다. 유릭은 남은 빵을 갈라, 그 안에 남은
치즈와 햄을 끼워 넣으며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정말 웬일이십니까.”
“내가 투자한 광산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네. 경영주를 만나야 하는데, 이거 비가 너무 와서 그냥 여
기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네.”
유릭은 창문을 통해, 거의 퍼부어 대고 있는 빗줄기를 울적하게 바라
보았다. 밖은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으니, 이대로 나갔다가는
아마도 빗줄기에 휩쓸려 기절할 듯 보였다.
유릭은 급조한 샌드위치를 씹으며, 아무래도 내일 아침 일찍 치안부
대를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릭이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리시는 벌써 자기 몫을 다 먹어 치우고 아쉬운 듯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등 뒤에서 그 남자 패거리 중 한명이 일어나며 외쳤다.
“어이, 니나! 여기, 햄이랑 청어 좀 더 가지고 와!”
부엌 쪽에서 알았다고 답하는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뒤
날씬한 갈색 머리 여자가 청어와 햄을 담은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리시의 말과는 달리, 굉장히 평범한 얼굴이었다. 좀 갸름해서 얼
핏 보면 예쁘장하기는 했으나, 그 뿐이었다. 딱히 눈에 뜨이는 미
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력이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나이는 유릭보
다 꽤 많아 보인다.
니나는 총잡이 패거리가 모인 테이블 위에 접시를 놓다가, 문가에 서
서 샌드위치를 씹고 있는 유릭을 발견하자 대번에 활짝 웃으며 다
가왔다.
“어머나, 손님이 새로 오셨네요.”
“내가 데리고 왔어!”
리시가 나서며 말했다.
“역시나, 네가 나가면 언제나 손님을 하나씩 물고 온다니까. 주워준
값을 하니 기특하기도 하지. 그건 그렇고, 이 오빠는 자고 가실
건가?”
“날씨 봐서요.”
유릭은 창밖을 가리켰고, 그러며 아무래도 당신이 저보다 열 살은 많
아 보이는 데요, 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러자 니나가 까르르
웃었다.
“틀렸어요. 리시가 손님을 끌고 들어오면, 그날 날씨는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굉장하다구요. 혹시, 마을에 아는 친척이?”
유릭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냥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찾아가라고요.
그 사람들도 일요일 저녁에 비에 흠뻑 젖은 손님을 반기고 싶지는
않겠지. 우리 자넷 언니의 요리솜씨는 정말 끝내준다고요. 그리고
원한다면 내가 근사하게 서비스 해 주지. 어때요, 오늘? 총각이면
내가 잊지 못할 첫날을 만들어 주지.”
그러며 니나는 허리를 숙여 풍만한 가슴 계곡을 보여주고는 한쪽 눈
을 찡긋해 보였다. 저 가슴, 아무래도 카바냐보다 작은데- 유릭은
역시나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빙긋 웃었다.
“총각 아닌데요.”
알렉산더가 술을 마시다 말고 쿨룩, 내뱉었다. 니나는 웃음을 터뜨렸
다.
“원, 빠르기도 하셔라! 어쨌건, 오늘 밤 나가는 건 글렀으니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요. 자, 뭘로 내 드릴까. 아니지, 그 전에 그 비에 흠뻑
젖은 망토부터 벗으라고..........”
그러며 니나가 유릭의 망토단추에 손을 가져갔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유릭의 얼굴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죠?”
처음에는 생각없이 마주보던 유릭도, 금방 니나와 같은 것을 발견했
다. 멍하니 니나의 얼굴을 살피다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아는 얼
굴이었다.
“너.....”
갑자기 니나가 탄성을 질렀다.
“유리, 유리 맞지? 세상에나, 너.........유리구나! 사제님 네 살던, 그
유리!”
유릭은 다 시 한번 니나를 살펴보아야 했다.
니나, 그래, 니나였다. 아버지는 횡령죄로 잡혀왔던 죄수였고, 며칠만
지나면 브란 카스톨로 돌아가서 귀족 소녀들처럼 살거라 자랑하던
아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믿어지지 않는 다는 듯 유릭의 얼굴을
살피고, 다시 아래위로 살폈다.
“이야, 이렇게도 만나는 구나.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깔끔한 걸 보
니 크게 고생한 것 같지는 않고.........”
“군대.”
“그러면 그렇지. 네 나이면 다 군대지, 뭐. 너는 예전부터 꽤 똑똑하
고 아는 것도 많았으니 행정병으로 빠졌겠다. 너라면 금방 하사님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네. 그래, 군바리 짓은 언제 끝나냐?”
“멀었지.”
아마도 영영 안 끝날 가능성도 매우 높고. 다행히 니나는 더 이상 묻
지 않았다. 이야기 할 거리가 없어지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유릭은 니나에게 너는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곳에서 창녀로 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된 것인지 안 물어도 뻔하다.
사람 많은 곳에서 함부로 물을만한 게 아니다.
“어이, 졸병양반. 니나의 친구라면 우리랑 한잔 하는 거 어때. 카드도
한판 하지. 거기, 그 신사양반도 데리고 오라고!”
카드놀이를 하던 용병패거리가 외쳤다.
“사양합니다.”
용병과 어울리는 건 피하고 싶은 유릭이었다. 게다가 올 초에 대도시
라면 대도시라고 할 수 있는 센타벨리 시에서 그곳 조합 소속 용병
들과 가히 전쟁에 가까운 싸움을 벌인 경력도 있기에, 더더욱 피하
고 싶었다.
그 사건의 경과는 대략 이렇다. 카바냐에게 치근덕대던 용병하나가
그녀에게 맞았고, 그 용병은 화가 나서 그녀를 때리려다가 크리스
펠로에게 ‘한대’ 맞고 반 죽었으며, 그 크리스펠로에게 덤벼드는 용
병들을 말리다가 유릭이 맞았고, 그것을 보고 분노한 카바냐의 발차
기가 그 용병의 얼굴로 날아들었고, 그녀를 잡으려는 어느 용병의
얼굴로 유릭이 얼결에 주먹을 날렸다. 그 다음은 가히 전쟁터를 방불
케 하는 패싸움이었다. 그 술집으로 몰려든 용병들의 절반은 크리
스펠로에게 맞아 거의 죽었고, 그 반의 반은 유릭에게 맞아 대강 죽
었고, 반의 반의 반은 카바냐에게 밟혀 반쯤 죽었고, 나머지는 도
망쳐 조합에 알렸다. 조합에서는 그들이 ‘초토화 3인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즉시 부상자들을 거두어 알아서 사라져 주었다. 그리고
그 일이 상부에 알려지자 셋은 프리델라에게 죽도록 맞았다.
‘때리고 오면 죽는다. 맞고 오면 진짜 죽는다.’
그것이 프리델라의 지침이었으며,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잠시, 용병들은 자기들끼리 아는 말로 뭐라 시시덕대더니, 다시 카드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빗줄기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주사
위가 도르르 굴러갔다.
니나가 말했다.
“일단 우비나 벗어. 금방 그칠 비도 아니잖아........그래, 주문 받아 줄
게. 뭐 먹을래?”
“아무거나 싼 걸로.”
꼬마 리시가 조르르 와서 유릭의 망토에 매달렸다.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다. 유릭은 창밖을 본 후에, 정말 오늘 안으로 나가기는 글렀
다고 생각하며 망토를 벗었다. 리시가 팔짝 뛸 듯이 기뻐하며 그의
망토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검은 제복을 보는 순간, 니나가 창백
하게 굳었다.
“너..........”
유릭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너는 왜 창녀가 됐지?”
니나가 아랫입술을 꾹 짓눌렀다.
“더 묻지 않을 테니, 너도 묻지마.”
유릭은 용병들이 돌아보지 않는 동안 제복 상의를 벗어 의자위에 얹
어 놓았다. 꼬마 리시가 그것도 가져가려 했지만, 그 작고 마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말렸다.
“리시, 제일 간단한 저녁 한 끼만 내줘.....그리고 방도 잡아줘. 내일 새
벽에 일찍 나갈 테니, 아무 방이나 싼 걸로.”
리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니나가 어색하게 서 있다가, 작게 말했다.
“나, 갈게.”
그리고 그녀는 리시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용병중 하나가 외쳤
다.
“어이, 니나! 우리랑 안 놀아 줄 거야!”
“시간당 10카스티야야! 그거 주면 놀아주지!”
용병이 투덜대며 주사위를 던졌다. 유릭은 담배를 빼 입에 물었다.
알렉산더가 성냥을 그어 불을 붙여 주었다. 감사, 뭘. 짧은 대화가
오고갔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고 물어 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웃긴 말이었다. 알아서 살았겠지, 뭐. 그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브란 카스톨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러나 카밀턴 경이나 트래비스나 어쩌고 살지 뻔했으므로, 역시나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주 궁금한 것이 있기는 했다.
“로웨나는 잘 지냅니까?”
“언제나 씩씩하지, 그 아가씨는. 바리암의 천만 대군이 나타나면, 한
시간 뒤에 그들의 여왕이 될 아가씨야.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지낼
거고, 사실 잘 지내고 있어. 최근에는 좋은 가정교사 자리도
구했고...........”
그리고 알렉산더가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하게 물었다.
“보고 싶나?”
“보여 주실 겁니까?”
알렉산더가 피식 웃었다. 유릭은 아무래도 이 남자가 자신에게 말 붙
이는 것 자체를 매우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온 건 이 탄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인가?
아무래도 특무부대가 필요한 일인 것 같던데.”
“대강 보고서는 훑고 왔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는 안 적혀 있더군요. 일주일 간 사망자만 열다섯, 지금 이주일 째
채굴중단.”
“그래. 치안부대에 아무리 신고를 해도 묵묵무답이거나 무성의해서, 결
국 광산경영주가 저 총잡이들을 불러들였지.”
알렉산더는 그가 등진 용병단을 가리켰다. 그들은 한참 떠들어대며 돈을
던지고, 빼앗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이 햄을 입에 집어넣
고 으적 으적 씹었다.
“센타벨리에서 온 녀석들이야. 조합에서 적극 추천한 팀이지. 이 일을
해결하는데, 식민지 금화로 3만 크롤린. 본국 돈으로는 삼천 이백 카스
티야 정도 되지. 하여튼, 그 정도 되는 돈을 받기로 했어.”
“삼천?”
알렉산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세도 포함해서. 이곳 치안부대장 주머니로 천 카스티야 가량 가겠지.”
“진짜 흑마법사가 끼어 있나 보군요. 누굽니까?”
알렉산더는 등을 벽에 기대더니 유릭의 정면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금발머
리 남자를 가리켰다. 그의 옆에 바짝 마른 주근깨투성이 소년이 서 있었고,
그 소년만은 다른 용병들과는 달리 유릭과 알렉산더를 계속 흘끔 흘끔 보
고 있었다. 유릭은 알렉산더 앞에 놓여 있는 접시에서 치즈 하나를 집어 입
에 넣었다.
“억울하나?”
“뭐, 군대에 걸린 게 죄죠.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부럽군요.”
흑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군대로 가는 건 아니고, 다른 지역이나
본국에서 오는 흑마법사를 막을 수도 없다. 그리고 파난 특무부의 사망률은
매우 높고, 쓸만한 전투원-즉 기사, 라 불릴만한 이들은 몇 없다. 빈약하고
용돈궁핍한 정부가 모든 흑마법사를 단속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흑마법사가
반정부파인 것도 아니다. 모든 항마지역으로 특무부를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 무법천지인 파난 식민지에서 마령이나 마물들 말고도
위험한 건 널리고 널렸다. 강도라든가, 도적떼라든가. 이 중에 흑마법사라도
끼어 있다면, 주민들로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결국 다급해진 사람들이 택하
는 것이 용병-즉, 총잡이라 불리는 일종의 사병을 사는 것이다. 정부도 용
병들 중 흑마법사들에게서 암묵적으로 보호세를 받으며 봐 주고 있다.
용병의 몸값이 높으면 높을수록, 보호세도 높아진다. 보호세가 높아지면,
파난 사령부에서 벌어들이는 돈도 많아진다. 그 때문에 파난 사령부는 용병
조합에 포함되어 보호세를 내는 흑마법사는 모두 묵인하고 있다. 물론 그냥
용병들도 보호세를 낸다. 때에 따라서는 그들이 무법자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리시가 접시 두개와 컵 하나를 들고 달려 나왔다. 접시 하나에는
빵과 버터가, 그 접시를 든 손의 손가락에는 포도주가, 다른 접시에는 고
기스튜와 스푼이 담겨져 있었다. 소녀는 그것을 유릭 앞에 자랑스럽게 놓은
뒤에, 앞치마 주머니를 뒤져 열쇠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안내해 드릴게요. 2층의 첫 번째 방이래요.”
“일단 식사하고.”
알렉산더가 물었다.
“식사하자마자 바로 자러 갈 건가.”
“물론입니다. 놀아 달라고 조르신다면, 저로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답니다.
저, 지금 아주 피곤하거든요.”
“나도 자지 뭐.”
유릭은 빵을 뜯어 버터를 찍었다. 그리고 막 입에 넣으려는데, 밖에서 마차
달려오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천둥의 말이 끄는 마차 같군요. 굉장한데요.”
유릭은 그렇게 말하곤 빵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리시가 눈을 크게
떴다. 용병들도 모두 카드놀이와 잡담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계단을 쿵쾅
쿵쾅 달려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잡아 뽑히듯이 열렸다. 그리고
우비를 입은 두 명의 사람들이 급히 들어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가, 유릭을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쳐들었다.
“이,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에요!”
유릭은 천천히 빵 조각을 씹었다. 얼굴을 보니, 오늘 유릭을 던져 놓고 도망
친 역마차 마부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우비의 후드를 뒤로 젖히며
외쳤다.
“자네! 유릭 크로반 군 아닌가.”
유릭은 빵을 씹다 말고 그 남자를 본 뒤에, 옆의 알렉산더를 보고, 다시
그 남자를 보았다. 알렉산더는 아는 사람이지? 라고 말하듯 웃고 있었다.
남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설마, 자네가 특무부에서 파견된 건가? 자네, 특무부였어?”
순간 옆에서 와당탕 쿵탕, 용병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이 광산의 주인이셨습니까, 발터 스게노차 씨?”
유릭은 다시, 누군가의 장난에 걸려든 듯한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아주 예전, 브란 카스톨로 헨리 카밀턴 경을 호위하러 갔을 때 알렉산더의 성,
홀라그로에서 만났던 그 남자-발터 스게노차.
그곳에서 유릭은 윌리엄 랜든 경, 살비에 마델로, 지금은 죽고 없는 로웨나의
아버지 그레이브 경도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들 모두, 유릭의 숙부인 노버스 크로반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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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좀 굉장한 말을 적었으나, 자체심의로 삭제. -ㅅ-/
자, 이제부터는 저도 건전해 질 겁니다. 여성향이 뭐에요? 음? 뭐죠?
...........그나저나 오늘 본 유키 가오리의 루드비히 혁명과 요시나가 후미의
더이상 말하지 마, 는 무척 재밌군요..... (배시싯)
다음편은 5일 후~
p.s 오타는 독자를 위한 서비스... 자, 와를 찾읍시다~ <-현실회피중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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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27장 디스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