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편
디스토피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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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유릭과 알렉산더를 데리고 광산으로 향했다. 벌써 어떤 일이 일
어났는지 알려졌는지, 다닥다닥 붙은 광산촌의 통나무집 앞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있었다. 그들 모두 걱정스레 폴과 알렉산더,
그리고 유릭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은 한결같았다.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이번에는 자기들 차례가 아닌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를 나가자, 곧 거친 자갈밭이 나왔다. 초록색 풀이 드문드
문 자라 있었고, 흰 꽃들이 그 사이에 점점이 피어 바람에 흔들렸다.
붉고 굵은 바위들이 배고픈 짐승들처럼 험상궂게 웅크리고 있었다.
깎아낸 듯 가파른 붉은 바위계곡 입구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몇
명 모여 있고 그 사이에 마른 남자 한명이 눕혀져 있었다. 그 옆
에는 의사인 듯 보이는 통통한 남자가 왕진가방을 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유릭이 묻자, 의사는 고개를 들어 뭐라 말하려다가 그 군복을 보자마
자 그대로 놀라 자빠졌다.
“서, 설마.....이, 이 마을도 파괴되는 겁니까? 다 나가야 하는 건가
요?”
그제야 유릭은 이 마을에 널리 퍼진 살벌하고도 공포에 찬 분위기의
진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유릭은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특무부에서 이번 건으로 파견된 건 저 하나입니다. 도시
나 마을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는 건, 적어도 소개령이 떨어지고
최소 세 명 이상의 특무부가 한꺼번에 파견될 때뿐입니다. 그리고 저
는 그런 명령 듣고 온 게 아닙니다. 잘만 협조해 주면, 깨끗하게
일이 끝날 테니 걱정 말고 계십시오.”
‘초토화 3인방’ 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카바냐, 크리스
펠로, 유릭. 이 세 사람이 한꺼번에 파견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
지역 전파’라는 명령이 떨어진 직후였다. 그러나 한두 명 씩 나가면,
그것은 그저 보통 소위 이하의 특무부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
금 어려운 일’에 불과하다.
유릭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크게 안심했다. 잔뜩 불안해하던
사람들이다. 조금만 희망적인 말만 들어도, 그들은 모든 짐을 던
듯한 희망을 느끼게 된다. 의사 역시, 가볍게 한숨을 내 쉬고는 환자
를 살피기 시작했다. 유릭이 다가가자, 그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듯 비켜주었다.
환자는 대략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체구는 말랐고,
키는 작다.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신음을 끙끙 흘리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고, 겨드랑이와 등도 흠뻑 젖어 있었다.
유릭은 남자를 잘 살펴보았다. 왼쪽 어깨근방이 붉게 물들어 있었
다.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있고, 힘줄역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
다. 그리고 목덜미에 두개의 이빨자국이 있었다. 조금 부어 오른
붉고 선명한 그 송곳니자국사이에 작은 이빨자국이 고르게 나 있다.
유릭은 그 상처를 쓸어보며 말했다.
“키케.”
동시에, 상처와 어깨근방이 시뻘겋게 변했다. 남자가 비명을 질러 젖
혔다.
“크아악!!”
유릭은 권총을 뽑았다. 의사와 사람들이 놀라 물러났다.
“정화불가.”
“무슨-”
“소견서에 그렇게 적으시라고요.”
그리고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캉! 푸른 섬광이 번쩍이더니, 남자의
심장을 꿰뚫었다.
비명한번 없었다. 즉사- 남자의 몸은 축 늘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
도 피가 얼마 흐르지 않았다. 바닥에 조금 고여 그의 등을 적신 정
도였다. 여자 하나가 기절했고, 남자들은 그녀를 부축할 생각조차
못하고 멍하니 유릭과 광산기사를 바라보았다.
유릭은 레일이 빨려 들어가는 광산입구 쪽으로 갔다. 그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놀란 거미떼처럼 흩어졌다. 입구를 들여다보니 그곳에서
부터 램프가 차례차례 켜져 있었다. 유릭은 안쪽을 가리키며 사람
들에게 말했다.
“안내해 주실 분 없습니까?”
죽은 조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폴이 고개를 들더니 유릭에게 성큼
성큼 다가왔다.
“내가 하지.”
유릭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둘만 남게 되면 제 등에 칼 꽂을 표정이십니다만.”
“내 손에 칼이 있다면, 당장 그렇게 했을 거야! 제길!”
폴은 조샤 옆에 놓인 램프를 들더니, 성냥을 빌려 불을 킨 다음 광산
입구로 성큼 성큼 들어갔다. 릭은 알렉산더에게 인사를 한 다음,
돌아서 폴이 들어간 광산입구로 향했다.
그 때 리시가 유릭에게 달려와 다급히 속삭였다.
“거기 들어가면 죽어요! 동굴에 이상한 아이들이 많아요. 그 애들이
사람을 먹어요! 가면 안돼요. 나랑 안 놀아 줄 거에요.”
유릭은 웃으며 리시의 머리를 두드렸다.
“나는 그 나쁜 아이들 잡으러 가는 거란다. 그리고.....그 아이들에 대
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하, 하지만......”
리시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유릭은 소녀의 손을 풀어내고, 그 이
마에 키스했다.
“나중에 아주 아주 자세히 이야기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나하고 어
떤 이야기를 할지 잘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어라.”
그제야 리시는 손을 움츠리며 주춤 물러났다. 어느 샌가 알렉산더가
나타나, 소녀의 작은 어깨를 두 손으로 감쌌다. 약간 홍조가 돌던
리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유릭은 돌아서, 그들을 등지고 광산 안으로 뛰어들었다.
광산에는 수송용 레일이 잘 깔려 있었고, 조금 어두웠지만 램프들은
환하게 켜져 있어 걸어가는 데 불편은 없었다. 한참을 걸어가서야
유릭은 먼저 들어와 있던 폴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레일 위에 똑바
로 서서 유릭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릭은 그 분노의 원인을 어렵잖
게 짐작했다(짐작 못하면 바보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확신할 수 있어? 정말 죽어야만 했다고?”
“네.”
“거짓말!”
유릭은 그의 목에 총구를 얹었다. 폴이 당장에 새파래지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내키는 대로 죽일 수 있다면, 저는 당신부터 죽였을 겁니다. 죄목은
공무 집행 방해- 쯤이 되겠지요.”
“개자식--!”
유릭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총구는 여전히 폴을 향하고 있었다.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면, 저는 이미 오래 전에 마음 놓고 미쳐버
렸을 겁니다.........자, 일단은 안내나 해 주십시오. 깊이 안 들어가도
됩니다.”
폴은 이를 으득 갈더니, 램프를 들고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 유릭은
빛이 비추는 천정과 벽을 지나가며 살폈다. 아직은 깨끗하고 평범한
갱도였다. 갑자기 폴이 물었다.
“몇 살이야?”
“열여덟.”
“나는 스물다섯. 18살에 군입대해서, 스물한 살에 제대했지. 너는 출
세해서 좋겠군. 자네들은 능력만 좋으면 장교도 될 수 있다며. 제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삽질하고 땅 파는 것 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군 나오고 나니, 맨몸인 나 하나, 군대에서 병신 된 형 놈,
그리고 줄줄이 엮인 굶주린 생쥐 새끼 같은 동생 놈들뿐이었지.”
유릭은 불빛이 비추는 갱도를 바라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남자에게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하고 따질 생각은 없다.
어차피 사람들에게 서로의 불행을 서로가 느끼는 만큼 납득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적은 없다. 만
약, 정말 만약 아무런 능력도 없어서 평범하게 군대에 들어가서
제대했으면- 어쩌면 죽었을 지도 모르고, 무사히 제대했을 지도 모른
다. 학교에 갈 수는 없었을 테니 이 남자처럼 공장이나 광산 농장에
들어가서 일했을 것이다. 글을 알고 있으니 무역 회사 사무실에 취
직했을 지도 모르지. 군대에서 쓸만한 걸 배웠을 지도 모르고. 그리
고 이 남자와 별 다를 바 없는 행색을 하고 살고 있을 테지. 매일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며 돈이 조금 남으면 술을 마시거나 창녀를
사는, 또는 결혼하고 애들을 줄줄 낳아 먹여 살리느라 바쁜- 그런 지겨운 생활.
무엇이 더 나은 지는 그 역시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냥- 그냥 주어
진 대로, 주어진 삶을 헤쳐 나가며 사는 것뿐이다. 특별한 걸 타고
나면 특별한 만큼 얻고도 잃고, 평범하면 그런 만큼 없으면서도 가
진 것이 각자의 인생이다. 폴이 램프를 들어올렸다.
“어서 들어가자고. 굶주린 제국을 먹여 살리는 흑석의 식량창고로 말
이야.”
불빛이 갱도 안을 훤하게 밝혔다.
“다들 이렇게 되어 죽던가.”
알렉산더가 그리 묻자, 멍하니 있던 의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가 아무 말도 없으니, 알렉산더는 웃으며 물었다.
“물론 이렇게 죽은 사람은 이 남자 한명뿐이겠지. 내가 궁금한 건 말
이야........”
그러며, 그는 시신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울퉁불퉁한 상처가 그
장갑 낀 손끝에 닿았고, 의사는 자신의 손이 그 상처에 닿은 듯한
기분이 드는 지 몸을 움츠렸다. 많은 상처를 꿰매고 붙였던 그였으나,
그 순간에는 처음으로 사고를 당해 짓뭉개진 환자를 치료를 했
을 때만큼이나 두려워 하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 이 상처.”
의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여러 가지 입니다. 그냥 그대로 심장이 멎은 듯 즉사한 사람도 있고,
그렇게 상처가 난 사람도 있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 시름시름
앓다가 여기 저기 이상한 상처를 남기고 죽은 사람도 있고.”
“으음, 그래-”
알렉산더는 그 상처를 두 어 번 더 툭툭 건드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이 광산과 그 광산을 둘러싼 협곡을 훑었다. 거대한 산이 그
광산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끄트머리 봉우리는 흐린 날씨 탓에
구름에 덮여 있었다. 산은 푸르렀다. 청회색, 시체의 살갗 같은
을씨년스러움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얼어붙은 듯 굳어있는 리시
를 보았다.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소녀는 새파랗게 질리더니 뒤돌아
작은 새가 날아가듯 도망쳤다.
소녀가 사라지자, 알렉산더가 물었다.
“그런데......... 저 아이, 내가 예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대
체 누구지?”
시신위에 천을 덮어씌우던 광부가 의사대신 말했다.
“리시 말입니까? 반년 전에, 마을 입구에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를
쟈니가 데리고 왔지요. 아마도... 애엄마가 키우기 힘들어서 버리고
간 듯해요. 엄마가 어디 갔냐고 물어도 통 답도 없고, 엄마가 누
구냐고 물어도 말도 안하고. 다그치니까, 자넷의 치마에 매달려 종
일 울더군요. 그래서 자넷이 키우는 중이지요. 좀 머리가 이상한 아
이이긴 하지만, 일도 제법 잘하고 생긴 것도 귀엽죠. 제 밥값은 하
는 애입니다.”
잠자코 있던 알렉산더는 광산을 한번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광산 옆
으로 난 샛길로 향했다. 의사가 물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알아 볼 게 있어서. 램프 하나만 빌리지.”
광부 한명이 램프를 가져다주며 물었다.
“안내는 필요 없습니까?”
“나보다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알렉산더는 그에게서 램프를 받아 들고, 샛길로 내려갔다. 그의 뒷모
습은 이내 사라졌고, 광부들은 금방 그에 대해 잊었다. 그런데, 그
들이 돌아서는 순간에 광산입구 쪽으로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휙하
니 날듯이 들어갔다. 광부들과 의사는 놀라서 동시에 후닥닥 물러났
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청년 광부가 바닥을 보았다. 비로 물
러진 진흙 땅 위에 거대한 개 발자국 같은 것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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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자, 맞춰 보십시오. 다음 편은 올해안으로 올라올
것인가!!!
어제 친구 세례식에 다녀온 동생이 굉장히 흥분해서 외치더군요!
'언니, 우리 성당다니자!!!'
'왜?'
'언니, 성당에는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없는?'
'얼짱 신부님이 계셔!!!!'
..........................
.............;;;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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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28장 나비의 동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