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편
나비의 동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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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안은 오래된 무덤처럼 고요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적
막한 광산 안으로 유릭과 폴,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저벅 저벅
들렸다.
잠시 뒤 폴은 레일이 깔리지 않은 작은 샛길로 들어섰다. 여태까지
이어진 갱도와는 전혀 다른 구조의 굴이 나타났다. 깎아낸 방식도
달라, 그 굴은 뚫려있다기보다는 지어진 듯 보였다. 길도 훨씬 더
판판했다. 그 규모도 고래의 뱃속처럼 굉장했다.
유릭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벽을 타고 여기 저기 굴이 뚫려 있었으
며, 그 앞에 작은 계단들이 덩굴처럼 뻗어 내려오고 있었다. 벽을
쓸어보자, 손가락을 따라 흙더미가 우수수 떨어지더니 그 속에 그려
진 그림이 드러났다. 유릭은 바닥의 흙을 발로 여기 저기 쓸었다.
예상했던 대로 바닥은 판판한 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이 말했다.
“파난 장군이 이 섬에 오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유적중 하나지. 굴을
뚫다가 발견했어. 어차피 광맥은 반대편으로 이어져서, 이곳은 입
구만 만들어 놓고 내버려 두었지. 그런데 가끔 아이들이 여기 와서
놀기 시작했어. 입구를 막기는 했지만, 꼬맹이들은 금방 다른 입
구를 찾아내서 놀기 시작하더군. 그곳도 막기는 했는데, 아마도 우리
몰래 들어와서 놀고 있는 것 같았어. 일하다 보면 여기서 애들
목소리가 들렸거든. 광산촌에는 딱히 놀 곳도 없어서 그냥 내 버려두었지.”
“여기서 처음 사고가 일어난 겁니까?”
폴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애들이 큰일 났다고 하기래 달려와 보니, 존스네 집 아샤가 굴
안에서 죽어 있더군. 방금 본 그대로. 다시는 애들이 못 오게 했는데,
얼마 뒤에.... 또 한명 죽었어, 그 근처에서, 같은 방식으로.
그래서...... 마령 짓이라고 생각했네. 근처 치안 군에 신고를 한 뒤에,
채굴은 계속 했지. 하지만........... 죽는 사람은 계속 나타났어.
하루에 한명씩. 온 몸의 피를 빨린 채 죽어 있거나, 그냥 굳어 죽어
있거나- 결국 사장님이 갱도를 폐쇄하고 치안 군에 신고해서 사태
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 자식들은 듣는 시늉도 안했지. 돈
을 달라는 거야. 발터 씨가, 광산이 잘 되는데도 돈을 가져다주지 않
은 게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이 기회에 버릇을 고쳐보겠다고 그런 거다.”
“차라리 군부에 돈 쥐어 주는 게 싸게 먹힐 것 같은데요.”
“자존심 싸움이지. 그러니......”
말하려다 말고 폴은 입을 다물었다. 두려움을 없애려고 이것저것 말
하다가, 그제야 유릭이 군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드디어, 둘은 커다란 아치가 있는 입구에 도달했다. 그 안은 목구멍
처럼 깜깜했다. 폴이 말했다.
“우리들 끼리 조사했는데........ 이 근방을 조사하던 광부 두 명이, 이
안에 뭔가 있다고 말 했어. 같이 조사하기로 했는데....... 둘 다 다
음날 죽었지.”
유릭은 그 컴컴한 어둠을 물끄러미 보다가, 주머니 안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설마, 혼자 들어가겠다는 거야!”
“즉결 처분권 정도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의무 역시 주어진 겁니다. 돌아가십시오.”
폴은 엉거주춤 머뭇거리다가, 유릭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같이 들어갈
용기도, 말릴 만한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유릭은 컴컴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며 빛을 비추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그곳은, 빛을 비추어 보니 모든 벽이 돌벽돌로 되어 있었다.
천장은 아치형이었고, 꽃봉오리모양의 등이 눈감은 듯 꺼진 채 벌
집처럼 매달려 있었다. 어딘지, 유배지에 있는 성 지하를 연상케 하
는 모습이었다.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200년 전에 멸망당한 왕국의
잔해. 같은 문명이 만들어낸, 같은 방식의 유적이다.
영광의 신전과 궁들은 버려진 뼈들처럼 황야를 뒹굴고, 그 자손들은
밀림과 협곡에 숨어 지내는, 바로 그 문명의 흔적. 그리고 제국은
아직도 그 문명을 두려워하며, 그 흔적을 지우고 말살하려 한다.
두려우면 외면하려 한다. 그래도 눈에 뜨이면 없애려 한다. 조그만
얼룩도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야 안심한다.
잠시 뒤, 바람조차 멎었다. 침묵 속에 갇혔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
도 없다.
유릭은 불빛을 비추어 더듬듯 동굴 안을 살폈다. 벽을 이룬 벽돌은
거의 손상이 없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조각들도 막 깎아낸 듯 섬
세했다. 이상한 괴물들을 조각해 놓은 거대한 상들이, 빛과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우울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유릭은 안쪽
으로 불을 비추었다. 그 순간에 불이 꺼졌다. 급히 스위치를 눌러
보았으나, 아무리 눌러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감은 듯 까만 어둠에
사방이 덮였다.
돌아가야 한다, 유릭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혼자 오래 있
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나 이런 어둠 속에서 혼자 있는 것은. 그러나
막 돌아서려다가, 유릭은 어깨 근방에 뿌연 빛이 어리는 것을 발
견했다. 어둠이 바래지며 그 빛은 더욱 더 선명해져갔다. 유릭은 몸
을 빼고, 권총을 꺼내 그 빛을 겨누었다. 빛은 이제 어둠을 찢은
듯 선명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늙은 귀부인처럼 느리고
도 우아했다.
그것이 유릭의 어깨 근방을 떠돌다가 느긋하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빛에서는, 손바닥만한 날개가 훨훨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나비의
모습이었다. 속성을 알아내려 했지만 감잡히는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키케 같은, 하급의 마령이라 생각했다. 그것의 속성은 ‘어둠
을 보는 눈동자’. 즉, 흑마법으로 부리는 마령이나 마법을 쓴 흔적을
찾아내는 하급의 마령이다. 그러나 유릭은 그 빛덩어리가 키케와
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마력의 흐름이 훨씬
더 섬세했다.
곧 놀라운 광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비의 다리근처에서 흰 손가
락이 나타났다. 정말 섬세하고도 희고 고운 손가락이었다. 푸릇한
반지가 끼워진 손이었다. 손등에 너울 같은 옷자락도 얹혀 있었다.
유릭은 손을 뻗어, 그 손의 몸이 있을 만한 곳을 더듬었으나 아무
것도 없었다. 나비는 더욱 느릿느릿 날아갔고, 손가락 역시 그 나
비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안개로 빚은 듯한 팔이 점점 더 길게 뻗어
나왔다. 푸릇하고 불그스레한 팔찌들이 그 팔에 걸려 있었다. 마령
이 아니라 차라리 유령에 가깝다.
잠시 뒤, 유릭의 볼 언저리로 희끄무레한 빛이 또 스치고 지나갔다.
돌아보니, 이번에는 허리 근방에서 또 작은 불빛이 어렸다. 그리고
마침내, 십수개의 불빛들이 나타나 유유히 허공을 저으며 날아가
기 시작했다. 그 빛마다 나비가 날고 있었고, 흰 손가락들이 닿아
있었다. 어떤 것은 늙은이의 손이며, 어떤 것은 젊은 남자의 손이며,
어떤 것은 작은 아이의 손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회귀하는 연어
처럼 어둠을 거슬러 안으로, 안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손끝에 훅- 하고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
유릭은 권총을 휘둘러 그 쪽으로 밀어 넣었다.
철그렁, 하며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길고 차가운 털이 닿은
듯 했는데, 총구를 밀어 넣을 때는 이미 두터운 제복을 입은 몸으로
변해 있었다. 다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나비
가 이끄는 빛과는 전혀 다른 희고 선명한 빛이 나타났다. 빛 위에
는 길고 나긋한 남자의 손이 얹혀 있었다. 그 손이 빛에서 멀어지더
니, 자신의 허리를 겨냥하는 유릭의 총구를 툭툭 쳤다.
“나야.”
유릭은 그를 빤히 바라보아야 했다.
크리스펠로였다. 빛 속으로 반쯤 얼굴을 드러내고, 금빛 눈으로 어둠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릭이 여전히 총구를 치우지 않자,
흘끔 눈길을 내리며 말했다.
“기분이 나빠서 왔어.”
예감이 안 좋다, 느낌이 이상했다, 라는 말을 크리스펠로는 참으로
멋지게 표현했다.
“체스턴에는 안 가신 겁니까?”
“여기가 더 나쁠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절반은 늑대와 인간의 모습이 연계되어 있는 펜리키언
인 크리스펠로는 예감을 중요시 한다. 현실주의자이며 물질만능주
의자인 카바냐와는 달리, 크리스펠로는 직감과 예감을 누구보다 믿으
며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설마, 가다가 목적지를 잊어버리셔서 저를 찾아 오신건 아니죠?”
“.........지금은 몰라. 갈 때는 알았는데.”
“......”
워낙에 머리 속 상태가 안 좋아 두 줄 이상 되는 말은 단번에 잊어버
리는 크리스펠로이기는 하나, 유릭이 떠나기 전에 열 번 정도 되풀이
시킨 단 한 마디 ‘체스턴’는 출발할 때 즈음에는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잊어버리기는 했을 테지만.
크리스펠로가 어둠 안으로 빛을 밀어 넣었다. 빛이 핥는 벽 위에 검
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크리스펠로가 활을
꺼내어 그 쪽을 겨냥했다. 유릭도 등 뒤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
을 느끼고, 돌아서 총구를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오페르케”
크리스펠로가 말했다.
순간에, 어둠을 찢듯이 엄청난 빛이 퍼졌다. 그것은 벽과 굴을, 유릭
과 크리스펠로를 중심으로 하여 빠르게 훑었다. 어둠과 빛이 순식
간에 교차하며 검은 그림자들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날개 같
은 것도 보이고, 손아귀 같은 것도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였다.
“어쩌지?”
크리스펠로가 활을 눕히며 물었다. 그의 활의 표면 위로, 특무부의
대장장이 누이트가 새겨 넣은 문자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아, 글쎄요. 참 곤란한 상대인 건 사실이지만........”
유릭 역시 총구를 들었다. 그 총구에서도, 누이트의 문자들이 나타났
다.
“일단, 여기 나타난 것들은 처리하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저
안에 진짜가 있을 듯한데....”
“몇 개지?”
그 수가 얼마나 될까, 를 크리스펠로 식으로 표현하면 이리된다.
“모릅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없어질 때까지는 치워야죠.”
크리스펠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활을 쥔 손을 뻗었다. 한쪽 눈을 감
으며, 활시위가 있을 듯한 곳에 손을 얹었다. 긁듯이 활 위로 문자
들이 나타났다. 크리스펠로가 활신에 손을 얹었다 떼자, 그 중앙에
서 뻗어나간 붉은 화살이 어둠을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섬광이 어둠을 찢었다. 캑, 윽- 비명이 동
시에 들렸다. 그리고 유릭과 크리스펠로를 중심으로, 바닥과 허공에
동시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크리스펠로가 다시 활시위를 놓았고, 유릭도 방아쇠를 당겼다.
불꽃이 어둠을 찢었다. 벽을 휩쓸고 바닥을 휩쓸어, 그 위에 붙어 있
는 그림자들을 모조리 쓸었다. 비명이 터졌다. 솟구치는 듯한 비명이,
귀청을 찢을 듯이 쉴 새 없이 터진다. 불길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자,
유릭과 크리스펠로는 굴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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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그렇다면 크리스펠로는 유리는 어떻게 찾아온
것인가;;
아직은 비, 밀 입니다. -_-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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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