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편
의외의 선물#3
*****************************************************************
로웨나는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건
지, 그녀로서는 감도 잡기 어려웠다. 갑자기 칠면조 한 마리가 푸
드덕 날아와서 그녀를 납치해 마차에 밀어 넣은 다음 떠들어 대고
있었다. 클로디유 데지레가 로웨나를 위해 드레스를 마련했단다.
산꼭대기에 있는 시커먼 성의 백작님이 무도회를 여신단다. 로웨나
는 그곳으로 가야 한단다. 도무지 연결이 안 되고 있었다.
“자, 들어가지요. 그리고 저희 가게는 처음이신 듯한데...... 구경도 좀
하세요. 한번 보고 나면, 다른 가게의 드레스는 넝마로 보이고 말
거에요!”
로웨나는 고개를 픽 떨궈야 했다. 이 마담 코로비인지 코로가인지 하
는 여자는 지금 로웨나를 추기경의 친척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저렇게 눈웃음치면서 구경해 보세요, 구경해
보세요, 그리고 다음에 꼭 안 오면 너 죽었어, 라는 듯한 눈빛을 보이
지. 이봐요, 아주머니. 제가 지금 가진 돈을 은행잔고 바닥이 긁
히도록 탈탈 털면 그 집의 장미 코사쥬 하나 살만한 돈이 나올 걸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걸려 근질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로웨나
는 마담 코르비를 따라 일어났다.
마차에서 내려, 행여나 누가 볼 세라 모자는 깊이 눌러 썼다. 코르비
는 아는지 모르는 지, 이것저것 떠벌떠벌 지껄이며 가게 안으로 들
어갔다.
가게의 진열장에는 최신 유행의 드레스가 멋지게 진열되어 있었다.
유제니 황후가 지난 개국 기념 페스티벌에 입고 나오신 이후로 대
대적으로 유행하는 디자인의 실크 드레스였다. 화사한 장미 코사쥬
장식이 어깨와 가슴을 꾸미고, 가슴부분에서 허리까지 화사한 레이
스가 치렁치렁 덩굴처럼 휘감겨 달려 있었다. 매달린 레이스를 다
이어 붙이면, 아마도 카스톨을 세 번 둘러싸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 가게에는 최고급 오건디가 들어오지요. 여름 드레스에 그것만
큼 멋진 옷감이 또 있을 까요! 수석 디자이너 워스 양이 만들어내는
디자인으로 최고의 재봉사들이 만든답니다. 저희들이 쓰는 고즈,
무슬린, 바레쥬! 모두 최고급 천이지요. 데이드레스를 걸치는 것
만으로도, 꽃보다 아름다워지실 거랍니다.”
로웨나의 머리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의상실에 가득
진열된 옷과, 그 옷을 고르는 귀부인과 숙녀들, 그들과 일일이 상
담을 해 주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을 보는 로웨나는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우리 가게에서 쓰는 레이스는 모두 상발리에 레이스랍니다. 황후마
마께서도 그 레이스를 좋아하시지요. 어떤가요, 아가씨. 우리 가게
드레스를 본 다음 다른 가게의 드레스를 본다면, 모두 하녀 옷으로
보일 거에요. 특히나, 저기 저 2번가에 있는 엘레노아 의상실은 절
-대 가 지마세요. 최고급 천으로 누더기를 만드는 곳이니까. 세상에
나, 레이스를 그렇게 덕지덕지 발라놓은 꼴이라니.”
그러나 로웨나는 지금 이 여자가 사람 말을 하는 지 칠면조 말을 하
는 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눈길을 들어 천장을 보니, 햇살이 깊숙이
비껴드는 천장에는 온갖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귀부인들이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내려보니, 꽃 더미를 둘러쓴 듯 화려한 드
레스 차림의 마네킹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온갖 아가씨들이 선망과
갈망에 타오르는 눈길로 그 마네킹을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가씨는 어디에서 옷을 맞추시나요? 어머나, 그렇지! 혹
시,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하시는 건가요? 그럼 어느 곳에서 오셨
나요. 앙쥬? 가타킬론?”
로웨나는 대강 둘러댔다.
“마그레노에서 왔어요.”
그리고 이 브란 카스톨의 사교계에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건 한 10
년 되었을 걸요. 로웨나는 속으로만 그리 중얼거렸다. 마담이 깔깔
웃으며 손뼉을 쳤다.
“어머나, 그 멋진 항구 말이군요! 파난의 푸른 진주섬으로 신혼여행
을 갈 때 잠시 들렀었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항구였지요! 그곳의
아가씨들도 어찌나 아름답던지! 혹시, 랜든 부인을 아시나요? 신
분이야 아아아주 아아아아주 변변찮지만, 그 눈꽃처럼 빛나는 미모
를 보세요. 랜든 경이 할아버지인 렝카스크 공작에게 의절 당하면
서까지 그 분과 결혼한 이유를 알 것 같다니까요. 어머나, 물론 아
가씨도 아주 미인이에요.”
거짓말인 거 다 안다, 이 칠면조 아줌마야. 로웨나는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번뜩이는 눈빛만 봐도 거짓말 하는 줄 단번에 알 수 있다.
아유, 저 얇고 마른 입술 좀 보게나, 눈은 왜 저리 부리부리하담.
고집 세게 생겼네. 저렇게 얌전하지 않게 생겨서 어떻게 시집갈 거
람. 종알종알.
“자, 이제 완성된 드레스를 보실까요?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만든 거라, 아무래도 어울릴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
희가 만든 드레스는, 누가 입어도 아름답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로웨나를 끌고 완성된 드레스가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봉을 위해 온 아가씨들이 몇 명 보여서, 고개를 반대편
으로 급히 돌려야 했다. 자기네들 이모나 어머니로부터 로웨나에 대
한 이야기를 들은 아가씨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부탁받은 것도 있으니, 저희들이 특벼--얼히, 단장까지 다 해드릴
게요! 부담가지지 마세요. 아가씨가 워낙에 미인이시라, 오히려 저
희가 영광이겠네요. 그리고 뭐, 꾸며서 내보내는 거야 저희들 전문
이지요.”
역시나 로웨나는 웃었다. 참 말도 잘하셔라. 속으로는 대체 어디서부
터 어디까지 손 봐야 될지 모르겠어! 하고 비명 지르고 있는 주제에.
“어머나, 그런데 아가씨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대체 어디서 맞추신 건
가요? 마그레노의 의상실인 듯 한데.....”
로웨나는 그녀의 표정을 잘 살펴보았다. 눈을 잔뜩 모아 노려보고 있
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라, 생각보다 괜찮은 옷이네?’ 하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마 기절하실 걸요, 칠면조
아주머니. 로웨나는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유쾌하게 말했다.
“제 아주머니께서 소개해주신 의상실에서 아주 저렴하게 맞춘답니다.
그분께서, 제게 이 가격으로 옷을 만들어 주는 걸 들킨다면 고객들이
화를 낼 지도 모르니 절대 밝히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비밀
이랍니다.”
마담 코르비의 눈이 번쩍였다. 질투와 호기심에, 송곳처럼 날카롭기
도 했다.
“여자인가요 남자인가요?”
“그건 가르쳐 드릴 수 있네요. 남자에요.”
“아, 그럼 혹시 젯시 워킨스 씨가 아닌가요?”
“아니죠. 코르비 여사정도 되시는 분의 안목이라면, 이 디자인의 특성
만 봐도 누구의 솜씨인 지 단번에 아실 텐데. 하지만 여사님, 눈치
채셔도......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해요. 안 그러면, 저는 다시는 그분
께 다시는 옷을 맞출 수 없게 되요. 아셨죠?”
그리고 로웨나는 허리를 살짝 틀어, 활동량 많은 아가씨들을 위해 만
들어진 종 모양 스커트와 블라우스의 어깨선을 보여주었다. 마담
코르비의 눈은 매우 복잡난해 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옷인지 알아보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보아하니,
감도 못 잡고 있었으나 체면상 아는 척 하는 것이었다. 당연하다.
코르비가 아무리 이 브란 카스톨의 모든 옷가게의 디자인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로웨나가 옷을 맞추는 의상실을 맞출 수는 없을 것
이다. 왜냐하면, 리자베따와 클럽의 여장남자들이 옷을 맞추는 뒷
골목 의상실에서 맞추는 옷이기 때문이다. 뒷골목에서 꽤나 명성을
가진 그 가게는, 바로 게이부부가 꾸려나가는 곳이었다. 둘 다 아
주 맵시 있고 교양 있는 남자들로, 누구와도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로웨나를 아주 좋아해서, 천을 끊어 가지고 가면 일상 외
출복에서 야회복까지 아주 다양한 옷을 싼 값에 지어주었다.
“음, 음. 아주 안목 있으신 분 같은데, 그렇다면 저희 가게의 옷도 만
족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저희 드레스를 한번 보신다면 단골을
바꾸실 지도 모르겠네요. 얘들아, 어서 가지고 와! 그리고 화장
준비도 하고! 황녀님처럼 꾸며 드려야지!”
마담 코르비는 직원들을 닦달해서 내보냈다. 금방 화사한 가게 제복
을 입은 여직원이 화장도구를 가지고 왔다. 로웨나 앞에 있는 커튼
뒤로도 회색 그림자가 나타났다.
잠시 뒤 커튼이 열렸다. 그리고 마담 코르비가 찬사와 감탄과 앞으로
도 여기서 할 게요, 등등의 깜찍한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로웨나가
생각한 것은 ‘나중에 드레스 값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였다.
****************************************************************
작가잡설: 근성은 여왕님이나, 현실은 프롤레타리아.
겨울키 완간 만세모드 입니다.
일단은 계속입니다. ^^
***************************************************************
[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