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18화 (118/174)

제118편

허영의 그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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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군. 그렇게 친구에게 떠넘기다니.”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어요.”

“그래도 친한 친구에게 본인이 난감해 하는 짐을 넘기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은데.”

로웨나가 활짝 웃었다. 2층 난간에서 서서, 들어오는 손님들의 얼굴

을 확인하던 알렉산더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백작님도 에닌에 대해 오해하시는 게 많은 것 같네요. 모르는 사람

들은 에닌을 착하고 청순하고 순종적이며, 곱게 커서 세상 물정 모

르는 공주님 같은 아가씨라고만 생각하죠. 하지만... 아무리 마델로

씨의 보호가 있더라도, 에닌이 가진 힘을 무시하면 안돼요. 그 엄

청난 사람들의 시선이 한번에 쏠리는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서

는 아이라고요. 궁금하면 구경 가 보시라고요.”

“여자들 신경전 구경하는 건 재미없지.”

“제가 남자들 허세 떠는 이야기에 흥미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제부터 어쩔 건가.”

“글쎄요.......노닥거리다 가야지요. 이런 사교계 모임은 질색이라고요.”

로웨나는 2층 난간에 기대어 무도회장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흰

꽃이 가득 피어있는 거대한 화분 덕에, 로웨나는 1층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홀라그로 성의 성주가 ‘가면을 쓴

의문의 남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알렉산더의 얼

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무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술을 나누고, 신나게 떠들어대거나

웃으며 재미없고 뻔한 대화를 나누었다. 흥미 있는 이야기는 누구를

어떻게 씹어 볼까, 그 정도일 테지. 무도회장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춤을 춘다. 빙글 빙글 돌고, 깔깔 웃거나 부드럽게 웃으

며, 상대의 옷과 보석과 그 재산을 살핀다. 앞에서는 저리 찬사를

보내듯 웃고, 뒤돌아 휴게실로 들어가면 가차 없이 난도질하고 갈

기갈기 찢어 헤쳐 놓는다. 가장 화려하고 가장 너절한 이들- 고상한

사람들도 참 많지만, 같은 부류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절

로 고상해 지는 줄 착각하는 너절한 사람도 많다.

에닌은 어쩌고 있을까- 로웨나는 새삼 궁금해졌다.

클로디유가 로웨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로웨나는 에닌을 잘 아는

오터에게 말하여 에닌이 무도회장에 도착하면 클로디유와 인사를

나누게 해 달라 청했다. 로웨나 자신은 그 자리에서 빠지기로 했다.

에닌이라면 분명 로웨나에게 같이 다니자고 할 게 뻔했으니 ‘아아,

저는 너무 머리가 아파서 여기 서재에서 놀래요. 에니에겐 그렇

게 전해주세요.’ 라고 말하여, ‘거짓말마!!!’ 라는 눈으로 노려보는

오터를 보냈다.

그 때,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술렁임이 흘러나왔다. 그 놀라움이

오싹하게 느껴진다.

로웨나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이 보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 클로디유

데지레가 어느 남자와 춤을 추고 있었다. 아가씨들이 무도회장 벽에

덩어리져 모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 에닌도

있었다. 언제나 관심의 중심이었던 에닌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아니었

다. 아니- 로웨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클로디유 데지레는 사라

지는 그날까지 브란 카스톨에 열리는 모든 무도회장의 여왕일 것이

다. 차디차고 매혹적인 여왕- 내가 보기는 좀 재수 없지만. 로웨

나는 투덜댔다.

“저 아름다운 분은 대체 누구랍니까?”

“추기경의 부인이신 코지마 님의 조카라는 군요.”

“정말 굉장한 미모로군요. 놀라워요. 그래, 나이는 어떻게 되지요?”

“올해로 열여섯이라는데요.”

“어머나, 혹시 저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신 건가요?”

“제 조카, 안젤리카가 이야기를 나누어봤다는 군요. 정말 요정의 공주

님처럼 완벽한 아가씨라고 하더라고요.”

로웨나는 꽃더미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통통

한 몸집에 화려한 금빛 드레스를 입은 중년 부인과 버슬로 크게 부

풀린 드레스를 입은 날씬한 부인이 있었다. 키가 작고 얼굴이 창백

한 숙녀가 그 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클로디유

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에 선망과 부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저 반만 따라갈 수 있다면- 그러며, 자신의 장

갑과 옷차림을 보고 볼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 쉬었다.

무도회장에서는 클로디유가 첫 번째 춤을 마쳤다. 또 다른 젊고 잘생

긴 신사가 그녀에게 춤을 청하자 클로디유는 활짝 웃으며 그 신청을

받아들였다. 손을 내미는 동작 하나도, 유리로 세공한 듯 깨끗하

고 아름답다.

“세상에나, 스펜델 백작가의 둘째 자제분이시군요.”

“첫째 아드님이 참으로 방탕하다지요.”

“난잡하죠. 게다가 어찌나 경박한지. 백작께서는 둘째 아드님에게 기

대를 건다고 해요.”

“저 분은 지젯 가의 따님과 혼담이 오고간다고 들었는데.”

“글쎄요. 추기경의 인척이 더 나을지도.”

“게다가 저렇게 어여쁜 아가씨라면, 세상 전부와도 바꾸겠다고 하겠

는걸요.”

로웨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눈꽃을 감은 듯한 드레스를

입은 검은 머리의 클로디유는, 안개속의 한 떨기 붉은 꽃보다 아름

다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참 눈부시도록 예쁘다고는 생각했으나,

치장한 모습으로 무도회장의 화려한 조명아래에 있는 것과는 비할

바 못되었다.

화신이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저 세상에서 온 아름다운 전령이었

다.

“부럽나?”

알렉산더가 물었다.

“거짓말은 안 해요. 부러워요. 질투 나고, 샘나고, 화가 나네요. 엄마

는 왜 나를 조금만 더 예쁘게 낳아주지 않으셨을까, 왜 아버지는 좀

더 출세해서 나를 뒷바라지 해 주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대

체 왜 저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태로 칭송받지 못하는 걸까. 그

러면 너무나 억울해져요. 저런 자리에 서야 하는 건 난데, 내가 더

자격이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한 거지?”

“너무 솔직하군.”

“거짓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해 버리는 게

속이라도 시원하지.”

“........마녀가 있지.”

“네?”

알렉산더는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마녀가 있어. 그녀는 황금 물레를 자으며 어둠으로 금실을

뽑지. 그리고 그 실 끝을 사람들에게 내밀어. 자, 이 끝을 잡으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원한다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고 싶습니까? 부를 원합니까? 명예를

원합니까. 자, 이 끝을 잡고 실을 따라오세요. 저의 인도를 받으세요....... ”

“뒤끝이 별로 안 좋나 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공짜로 주어지는 건 언제나 가혹한 대가를 가져가지요. 마음씨 좋은

악마나 마녀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사소한 댓가로 가장 좋은 선

물을 주려는 듯 굴지만, 나중에는 전부 다 뺏어가지요. 반대로 천사

는 언제나 희생부터 요구하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빼

앗기거나 주고서도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 행복해져요. 선물은

예고 없이 주어지는 거지, 바란다고 받는 게 아니니까.”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진 여자는 그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지.

부를 가진 자는, 그 부를 자신을 위해 쓸 수 없어. 바닥없는 구멍에

자신이 번 황금을 끝도 없이 쏟아 넣어야 하지. 명예를 원한 자는,

명예를 위해 희생시킨 자들의 악령에 덜미 잡혀 있지. 그들은

모두 마녀의 노예가 되었어.........그래, 그린 양은 그 마녀를 만난다

면 단호히 거절할 수 있을까.”

“모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은 없어요......”

로웨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등 뒤의 여자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중간

즈음을 듣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맞아요. 사실, 얼굴만으로는 안 되지요.”

“지금 그 여자를 상대해주고 있을 안젤리카가 너무 불쌍해요. 그 여

자는 얼굴만 예뻤지 어촌출신에 교양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아시

다시피, 우리 조카아이인 안젤리카는 명문 록스톤 여학교 출신이

잖아요.”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는 한번도 못 받은 정말 무식하고 천한 여자지

요. 자기 이름 쓰는 게 용하다니까.”

“브라킨은 하나도 모른다더군요. 아아, 랜든 경도 랜든 경이지요. 그

런 하녀나 다름없는 평민 출신 여자와 결혼해서 집안에서 쫓겨나고.

얼굴 같은 건 한달만 보아도 질린다는 걸 왜 모를까. 숙녀의 본분

은 역시 교양과 출신이라고요.”

“당연한 말씀을. 이대로 나가다가는, 랭카스크 공작가의 재산은 먼 사

촌인 카밀턴 경에게 갈지도 모른다고요. 랭카스크 공작부인도 어찌나

걱정하고 계시는지- 알잖아요. 랭카스크 공작께서 카밀턴 경을

얼마나 아끼는 지. 무식하고 천한 시골 여자가 주제넘게 명문 귀족

가의 자제분과 결혼한 게 잘못이라고요. 하여간, 신분 낮고 얼굴

반반한 여자들 하는 생각은 다 똑같다니까요. 그러면 자기가 정말

귀족이라도 될 줄 아나.”

로웨나는 슬슬 뒷골이 당겨오기 시작했다.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뻔하다. 어촌, 랭카스크 공작가- 카밀턴 경. 귀족 여편네들 입

에서 이런 단어가 나오면 당연히 아자렛 랜든 부인 이야기다. 게다

가 저 여편네들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귀족 아가씨 하나가 오늘

초대된 아자렛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안젤리카

인지 뭔지 하는 아가씨가 아자렛에게 어떤 짓을 할지는, 안 봐도 뻔

하다. 교양 좋아하시네- 머리 나쁘고 천박한 주제에-

그 때 백작이 말했다.

“그린 양, 아자렛 랜든 부인은 1층의 작은 휴게실에 있어.”

“........네?”

로웨나는 잠시 백작을 바라보아야 했다. 자신이 꽤나 멍청한 눈빛으

로 그를 보고 있을 듯 했다. 백작이 눈길을 돌려 로웨나를 바라보

았다.

그 진한 회색 눈이 묘하게 가라앉아 있는 듯 보였다.

“그녀를 구하고 싶다면 지금 가. 그리고......... 오터에게 1층 갤러리의

문을 열어두라고 할 테니, 그곳에서 부인과 함께 그림감상이나 하

면서 쉬어. 어차피 그린 양도 이 파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로웨나는 더 묻지 못했다. 멍하니 있는 동안 백작이 난간에서 손을

떼고 그 자리를 떴다. 로웨나는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가씨 두 어 명이 그녀 옆을 지나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정신

이 들었다. 로웨나는 급히 드레스를 추슬러 계단을 내려갔다. 로웨

나를 알아본 아가씨들 몇 명이 옆의 친구들에게 뭐라고 빠르게

속살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뻔히 알기에, 어서 아자렛을 찾아

백작이 가르쳐 준 갤러리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백작이 말한

대로 1층으로 내려가, 동쪽으로 뻗은 복도를 바삐 걸어갔다. 그리

고 응접실을 찾아냈는데, 그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깔깔 웃는 소리와 함께 브라킨 어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로

웨나는 응접실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아자렛이 벽난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렵게 웃는 얼굴이

었다. 등받이에 어깨를 기댄 채, 두 손을 팔걸이에 얹고 있었다. 금

방이라도 일어나 도망치려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옷은 연한 녹

색 드레스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응접실의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수

수한 편이었다. 그녀의 오른쪽에는 로웨나와 비슷한 디자인에 색깔

마저도 비슷하고, 어울리지 않는 다는 면에서는 더욱 처참할 지경

인 꽃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아자렛보다 어

려보이기는 했으나 그다지 차이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레이스

달린 부채를 쥐고 흔들며 브라킨 어로 무어라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

었다. 주변의 여자들도 알아듣기는 하는지 웃음을 터뜨리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라 말을 모르는 아자렛은 얌전하게 앉아 있을 뿐이

었다. 그녀 옆의 꽃분홍색 드레스 꾸러미가, 갑자기 표정을 이상하

게 바꾸더니 너무나 미안하다는 듯 외쳤다.

“어머나, 죄송해요 랜든 부인! 저희들 끼리서만 브라킨 어로 이야기

하다니. 버릇이 되어서요.”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날씬한 귀부인이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여학교 시절에는 늘 이렇게 브라킨 어로만 이야기 하다 보니 버릇이

되어 버렸지 뭐에요. 저희 학교의 킴블 교수님께서, 귀족가의 숙녀

라면 무릇 브라킨 어를 모국어처럼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하여간, 킴블 교수님은 언제나 극성이시라니깐요.”

“이번에 브라키니아로 나가신다고 하던데.”

“알마니 공국으로 귀한 손님으로 초대되었다고도 들었지요. 여학교

시절 생각나는 군요- 얼마나 엄격하고도 훌륭한 분인지. 이 카스

톨의 귀부인들은 모두 그분의 제자들이지요.”

아자렛은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로웨나는 세 사람의 따귀를

번갈아 때려주고 싶어졌다. 그들은 아자렛을 놀리고 비웃고 있었다.

너는 학교 구경도 못해봤지? 브라킨으로 인사나 하겠니. 아는 단

어라고는 어디서 주워들은 ‘아누알로’ 라는, 촌스런 억양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인사말 한마디 정도겠지.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너

같은 여자와는 격이 다르게 살아 왔거든. 어떻게 꼬리 잘 쳐서 귀

족 남편 만난 것 가지고 우리와 동급이 되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지.

그 때, 아자렛의 왼쪽에 앉아 있는 샛노란 드레스의 귀부인이 말했

다.

“그런데 랜든 부인, 아드님 레오폴트 군은 몸이 많이 나아지셨나요?”

“계속 의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아직이에요. 좀처럼 나아지지

않네요.”

“하긴-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지요. 원, 가엾기도 해라. 그에 비

해 우리 베르나르는 튼튼해서 기뻐요. 곧 사관학교에 입학할 거랍니다.”

아자렛이 어렵게 웃으며 말했다.

“좋으시겠어요........ 아드님이 건강하셔서.”

“어머나, 뭘요. 저희 시댁도 그렇고 저희집안도 그렇고.... 군인집안

이다 보니, 건강하나는 다들 타고 나는 거지요. 다아 타고난 핏줄 덕

아니겠어요.”

아자렛의 오른쪽에 앉은 꽃분홍이 짐짓 주의를 주듯 말했다.

“랜든 오라버님의 가문도 팔콘 대제시대부터 용맹한 군인들을 배출해

왔던 유서 깊은 집안이잖아요. 랭카스크 가에서 몸이 약한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핏줄로 따지자면, 랭카스크 가문처럼 건강한 집안도 없어요.”

아자렛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어떻게든 감추려고 했지만, 떨리는

입술을 이로 꾹 누르는 것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로웨나도 그 말뜻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결국은 ‘너처럼 천한 것이

낳은 애니까 그 꼴이지.’ 라는 말이다. 로웨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살짝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이야기를 뚝 멈추고

로웨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들 모두 로웨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로웨나는 화려한 드레스가 잘 보이도록 어깨를 핀 다음 브라킨으로 빠르

게 말했다. 일순, 세 명의 귀부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로이? 무슨....”

아자렛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 눈들이

참 오묘한 것을 보니, 그 중 단 한 사람도 로웨나가 말한 브라킨 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로웨나는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아자렛에게 가서 브라킨 어로 말했다. 아자렛이 어리둥절했다. 세

여자들도 서로의 눈치를 빠르게 살폈다. 기껏해야 수업시간에 좀

지껄여본 브라킨 어 실력밖에 없는 여자들이다. 세 단어 이상으로 된

말을 해 본적도 없는 여자들이기도 했다. 방금 떠들어 댄 것도, 순전히

기본적인 단어 몇 개 끄집어 내서 지껄인 것 뿐이다.

로웨나는 빠르게 뭐라 브라킨으로 말한 다음 아자렛의 손을 잡으며

몇마디 더 말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위? 당테 위?” 하고 되물

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때요, 허락해

주시겠나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관용어 구였다. 꽃분홍이 어깨를

피며, 짐짓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스크로앙, 아스테 위.”

흔쾌히 허락해 드립니다, 라는 말이었다. 로웨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

음 아자렛의 팔을 잡아  끌었다.

“로이!? 지, 지금.......”

“이분들께서, 랜든 부인을 모시고 나가는 걸 허락해 주셨답니다. 가요.”

세 여자들의 얼굴이 일시에 창백해졌다. 그 누구도 로웨나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능아들- 로웨나는 속으로만 경멸을 표하며, 아자렛의 손을 더 세게

끌었다. 아자렛이 일어나 로웨나를 따라 응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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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루첼 님, 키아 하급 같이 뛰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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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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