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24화 (124/174)

제124편

악마의 요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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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님 내놔요!”

“..........”

머리가 반쯤 산발이 되어 있는 로웨나의 일갈에, 오터는 매우 침착하

게 당황했다. 눈썹 하나만 치켜 올라갔을 뿐이지만, 지금 그의 머

릿속은 아주 황량했다.

“주인님은 왜?”

“지금 당장 따질 게 있단 말이에요. 당장 내 놔요! 어디 있어요?”

“왈패인 너한테 숙녀의 본분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주인님의

약혼녀나 연인이기는커녕 친구도 아닌 처지에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건 곤란한데.”

로웨나는 이를 드러냈다.

“여자 문제로 따질 게 있어서 그런단 말이에요.”

오터가 이번에는 매우 조용하게 황망해했다.

“주인님과 여자 놓고 싸울 일이라도 있는 건가?”

“비슷한 거에요. 일단 데려다 줘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오터는 잠시 로웨나를 바라보았다. 그 검은 눈을, 로웨나는 쏘아보듯

마주보았다. 오터는 이마를 긁적이고 한숨을 내 쉰 다음 돌아섰다.

“온실에 계시다. 따라 와.”

오터의 뒤를 따라, 로웨나는 처음으로 가 보는 홀라그로 성의 온실로

향하게 되었다. 놀랍고 경이롭기로 온 카스톨에 유명한 곳이었으나,

로웨나는 주변 경관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정처럼 깨끗한 유리에 덮인 온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달콤하고

몽롱한 꽃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로웨나는 왠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아, 손수건을 꺼내어 입을 막았다.

부채처럼 커다란 잎을 펼친 열대 나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그 아래

에, 현란한 색의 꽃들이 꽃대 가득 피어 있었다. 진한 꽃향기는 그

꽃들에서 풍겨 올라와 더운 공기와 뒤섞여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주인 님, 그린 양이 왔습니다.”

백작을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온실 중앙에 서 있었으니. 그

는 어지러이 피어있는 희고 붉은 꽃들의 꽃잎을 면밀히 살피고 있

었다. 어깨위에는 주황색 붉은 색 노란색, 아주 선명하고 화려한 깃

을 가진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오터는 더 말하지 않고 로웨나 알

아서 하라는 듯 돌아서 온실을 빠져나갔다. 앵무새가 고개를 돌리

더니 빼액- 하고 울었다. 그제야 백작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장갑

낀 손끝에 꽃잎이 뜯겨져, 흰 살점처럼 툭 떨어졌다. 로웨나는

이상하게도 그 광경이 아주 끔찍하게 느껴졌다.

“물정 모르는 연인을 위한 독초지.”

“네?”

백작은 꽃잎을 주워 올리더니, 손끝으로 꽉 짓눌러 짓뭉갰다. 희고

붉은 즙이 손끝에 번졌다.

“이 꽃의 줄기와 잎은 적당량만 먹으면 가사상태에 빠지도록 해 주

지. 액을 추출할 필요도 없어. 그저 햇볕에 말리기만 해도, 그 열과

빛에 의해 화학작용이 일어나 이 안의 독성성분이 엄청나게 증

가하지. 그것을 일정량만 먹으면, 호흡이 멎고 심장도 멎게 돼. 의식

은 끝까지 남아 있지만, 그나마도 곧 끝나지....... 그리고 몇 시간이나

죽은 듯한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게 된다.....  이 제국에서는

나지 않지만, 파난 남부의 밀림에서는 무성하게 자라.”

“식물학자 벤토만이 자신의 저서에 그 식물에 관한 연구를 남겼지요.

제7쇄판에서는 제국 안보부에서 정확히 돌비체 수상 집권 3년에

삭제하도록 했고요.”

알렉산더는 꽃즙을 나뭇잎에 문질러 닦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지, 그린 양.”

로웨나는 일단 주변을 살펴보았다. 온실 안에서 사는 붉고 노란 새들

이 푸드덕 날아가기는 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어서요.”

“무슨 소문?”

“아자렛 렌든 부인과 당신에 관한 소문.”

“바람이라도 났다던가.”

“비슷해요. 예비단계라고 소문 난 거니까.”

“그래서? 설마, 그 여자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려고 하는

건가.”

“맞아요, 그거에요.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아자렛 아주머니에

게만은 아무 짓도 하지 말아 주세요. 믿어지지는 않지만, 아주머니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 분 만큼은 안돼요.”

“어째서?”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로웨나는 그가 정말 싫어졌다.

“그 분은 약혼식 날에...... 약혼자가 체포되었어요. 몇 년 간 소식도

없었죠. 무슨 죄로 잡혀갔는 지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주머니는 거의

매일 울면서 어떻게든 알아내려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어요. 그

동안 약혼자의 재산이고 상회고 뭐고, 다른 사람들이 다 긁어 갔어

요. 아자렛 아주머니의 아버지인 마렐 씨가 운영하던 가게도

빼앗겼고...... 결국 마렐 씨는 몸져 누워버렸어요. 단 1년 만에 일

어난 일이었죠. 치료비로 남은 재산도 다 써 버려서, 나중에는 장례

식 비용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 때 구해준 분이 지금 남편인

윌리엄 렌든 경이에요.”

“......”

“지금 아자렛 아주머니에게는 남편이신 윌리엄 렌든 경과 레오폴트가

전부에요. 만약- 당신이 진심이든 장난이든- 어쨌건 아주머니의

행실에 흠집을 낸다면, 그리고 그 일로 렌든 경과 불화가 일어나거

나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아자렛 아주머니에게 남은 길은 수녀원

에 들어가는 것뿐이에요. 랭카스크 공작 가에서 뭐라 할 지, 너무

나 뻔해요. 일이 끝나도 상처는 많이 남을 테죠. 그러니....... 아자

렛 아주머니에게 접근하는 건 그만 둬 주세요.”

“그린 양, 그린 양은 내 마음이 무어라 말하고 있는 지, 알고는 있

나?”

로웨나는 알렉산더가 가리키는 그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몰라요. 하지만 당신의 눈이 말하는 건 알고 있지요. 진심인지 아닌

지는 몰라요. 제가 아는 건, 당신의 눈이 아자렛 아주머니를 향했

다는 것과 그 분을 원하는 눈을 보였다는 것 분이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해요. 주제넘게 나선다고 하지는 마세요. 저는 그 분

을 좋아하고, 아들인 레오폴트는 제 친구니까.”

“아주 열의 넘치는 군, 남의 일인데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린 양,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할 바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필

요하다 생각되는 방식으로 얻어 왔고 지금도 그럴 예정이야. 물론

그린 양의 의견은 참고하지. 하지만... 뭘 선택할 지는 내 마음이야.”

“그럼, 저는 아자렛 아주머니에게 가서 백작님 험담을 잔--뜩 할 거

에요. 음흉한 바람둥이가 아주머니를 노리고 있다고 일러 버릴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아마도 어디로 숨어 버리실 거에요. 백작님이 잊

을 때까지.”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나를 어떻게 대할 지는, 렌든 부인이 알아서 할

바 아닌가.”

“난봉꾼.”

“미안하지만, 나는 다른 유부녀나 처녀들에게 함부로 치근덕댄 적은

없어. 관심 둔 적도 없고. 그 말은 나하고 안 어울리는데.”

“악당 같으니라고!”

로웨나는 알렉산더를 험악하게 노려보고는 고개를 팩 돌렸다. 그 순

간, 알렉산더의 앵무새가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붉은 깃털이 날

아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서 온실의 현관문을 보는 순간, 로웨나

는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당황하고 놀랐다.

알렉산더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불청객이군.”

로웨나는 가방 끈을 꽉 움켜잡았다.

온실의 길 위에, 두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클로디유 데

지레, 그리고 그녀의 한발자국 뒤에서 경악한 얼굴로 창백한 입술을

꾹 누르고 있는 에닌이었다. 대체 왜, 언제 온 건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그녀가 더듬더듬 말했다.

“로, 로이. 지금 내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니?”

“에니, 난......”

“지금... 너무 이상한 말을 들었어! 세상에, 뭐라고? 지금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니?”

클로디유가 활짝핀 꽃처럼 웃으며 말했다.

“아자렛 랜든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가만, 그린 양이 뭐라고 했더라.”

그리고 클로디유의 눈길이 알렉산더를 향했다. 웃고 있었다. 차갑게,

매혹적으로. 로웨나는 그녀의 곱게 빗은 검은 머리카락을 잡아 뜯어

뽑고 싶었다.

“의외네요. 저도 백작님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데....... 유부녀와 사귀

고 있었다니.”

에닌이 돌아섰다. 로웨나는 클로디유의 머리카락을 다 뽑은 다음 주

먹 한방 갈겨 주는 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에닌을 쫓아가야

했다.

“에니!”

“따라 오지 마, 로웨나 그린!”

“여긴 대체 어떻게 온 거야!”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거니? 너를 보내 놓고 미안하고 걱정 되서

온 거야! 그런데 맙소사,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맙소사! 너.....

그럼, 그럼 다 알고서....... 다 알고 있었던 거니? 그러면서... 어떻

게 그렇게 시치미 떼고 내 부탁을 들어 줄 수 있는 거야! 배신자!”

“에닌! 오해라니까!”

“정말 싫어, 다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바보였어! 내가

멍청했어!”

“에니--!”

에닌은 정신없이 달려, 성을 뛰쳐나갔다. 로웨나는 필사적으로 그녀

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에닌은 성 앞에 대기시켜

놓은 마차에 탔다. 로웨나는 간신히 그 마차 문을 잡고 늘어져 탈

수 있었다. 힘겹게 마차 문을 닫자마자, 에닌이 울음을 터뜨렸다.

로웨나는 물어봐야 할 것 때문에 머리가 덜렁거릴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클로디유가 에닌을 데리고 왔으며, 대체 어떻게 딱 그 순간에

소리 없이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 백작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면서도 로웨나가 실컷 떠들도록 일부러 모르는 척 하

고 있었던 것 같다! 마차가 정신없이 달렸다. 필사적으로 에닌을

달래던 로웨나는,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으로 마차가 마델로

저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

각했다. 이대로 집에 데리고 가서 달랜 다음, 진정이 되면 말해야겠다.

곧 마델로 저택, 캉디유 마델란에 도착했다. 로웨나는 직접 마차문을

열려 했지만, 마차가 멈추자 마자 에닌이 벌떡 일어나 직접 마차

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내렸다. 평소의 에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

이었다. 기겁한 로웨나는 그녀를 급히 따라갔다.

“에닌!”

에닌은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홀을 지나 응접실로 뛰어갔다.

로웨나는 간신히 에닌을 따라잡아 그 옷자락을 잡았다.

“진정해, 제발!”

“놔!”

에닌이 고함을 지르고는 응접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응접실 안

에 모인 귀부인들을 보게 되자, 로웨나는 일이 생각보다 더 꼬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응접실 안에 익숙한 얼굴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에닌의 어머니인

마델로 부인은 물론이요, 그녀의 지인들인 말 많은 부인들과, 난로

앞에, 맙소사! 아자렛 렌든 부인이 와 있었다. 그녀는 눈물범벅인

에닌이 기도회 모임이 있는 응접실로 뛰어 들어오자 아주 놀랐다.

“마델로 양, 대체....”

로웨나는 당장에 에닌을 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끄덩이를

잡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던 어떻게든 끌어내야 했다.

“아주머니, 그게...........”

로웨나가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에 에닌이 울부짖듯 외쳤다.

“위선자!”

아자렛이 당황했다.

“마델로 양?”

“예의바르게 말하지 말아요, 위선자! 그렇게 정숙한 얼굴을 하고서,

어떻게 그렇게 뻔뻔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죠?”

“에닌 마델로 양, 무슨 말이에요?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몰라서 그러는 건가요? 정말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척- 아닌 척-

정숙한 척-! 위선자에요! 어떻게.....”

“대체 무슨 일인 건지, 물어봐도 될까, 에니?”

자리에 앉아 있던 부인 하나가 그리 물었다. 에닌이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저 분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알렉산더 란슬로 백작님과 대체 어떤

사이인지 물어 봐 주시라고요--!”

아자렛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응접실 안에 모인 여자들 모두, 반은

놀라움과 반은 경멸에 찬 눈으로 아자렛을 보았다.

로웨나는 아득해졌다. 테이블 위에 있는 청동 여신상으로 후려갈겨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오랜 친구에게 그리 할 수는 없기에, 대신 그

뺨을 후려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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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백합꽃 만발한~~ (룰루 랄라)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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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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