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편
타락한 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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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군 산하 특무부 전투대원 유릭 크로반 하사와 그가 속한 ‘초토
화조’는 대기명령을 받게 되었다.
6월의 마지막 주, 파난은 남부는 작렬하는 햇살에 뜨끈하게 달아오르
고 언제 폭풍우가 바다를 휩쓸지 모르는 불안초조한 여름의 시작점
이었다.
대기명령과 함께, 초토화조는 딱 반나절의 황금 같은 휴가를 누리게
되었다. 특별 임무가 시작되면 그 임무가 끝날 때까지 일주일 연속
철야를 해도 할말 없는 특무부였으니, 대기명령 직전에는 반나절
정도는 휴식을 주었다. (안 하면 욕먹거나 탈영하거나, 둘 중 하나
다) 그러나 평소라면 다들 그러려니, 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특
무부대원들은 이번만큼은 분노를 표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프리
델라 독단으로 정해진 일이라, 더더욱 분노했다.
“......오페라 가수들이 다 미남 미녀인 건 아닙니다...... 그리고 남자
오페라 가수들은 정말 못생겼어요. 정말입니다........ 배도 나오고.....
죄송합니다.”
유릭은 전혀 효과 없는 구차한 변명을 하다가 마리아 대위가 휘두른
체스판에 얻어맞았다.
“프리델라 각하가 정하신 일이니, 항의하려면 각하께 하라고오. 알겠
어요, 상급 사제님? 상명하복. 그것이야 말로 군인의 본분.”
머리카락을 뭉텅 잘려 커트머리가 되는 재난을 당한 이후 이를 득득
갈며 서부 특무부대장 기습 공격을 계획하고 있던(물론 가능성 없다)
카바냐는, 샤워실에서 괜히 신경질을 내던 시스터 시에타에게 그
리 말했다. 상명하복을 매우 희귀한 인간관계로 취급하는 특무부이지
만, 상관이 아니라 최고 대마왕에 근접하는 프리델라에게 항의를
할 정도로 간 큰 부대원은 없다(반년 정도의 고통스러운 병가 휴가
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시에타는 어리디 어린 에바에게
화를 낼 정도로 체통 없지는 않아서 돌아가서 이만 득득 갈았다.
그리고 크리스펠로의 경우, 그에게 시비 걸 정도로 바보인 부대원은
없으니(뭐라 말하던 안 듣는다, 못 알아듣는다, 고로 입만 아프다),
늑대로 변해 여기 저기 어슬렁거리다가 낮잠을 자며 하루를 보냈다.
간혹 건드리면, 보름이 가까워지면 그의 일족이 늘 그러하듯
으르렁거리며 아주 신경질을 내곤 했다.
파난의 시곤 항, 그 대극장으로 브란 카스톨의 사립 극장 오페라단이
초청되었다는 건 그다지 대사건은 아니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
어도 없는 일은 아니었고, 그것은 파난 섬의 귀족과 시곤 항을 위
해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파의 지파중 하나인 흰
까마귀의 반란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라는 것이 중요했다. 처
음으로 파난의 고위직, 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암살이나
테러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이 더더욱
높으며 미수로 그치는 작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파급효과는 아주 크다.
“족칠 핑계만 찾는 족속이지. 혁명파 몇 놈 더 잡느냐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니. 하지만 전 반란군의 흑마법사들을 다 잡아와도- 물론
점쟁이들까지 포함해서- 용병들과 특무부에 속한 흑마법사 수의
반의반도 안 될 거다.”
프리델라는 피곤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실제적으로, 그 배를 호위, 감시하는 책임자는 파난 남부 해안 경비
대의 싱그마이어 대령이다. 그리고 남부군 소속 잉그램 소령도 끼어
있다...... 말 잘 듣도록.”
카바냐 중위님과 크리스펠로 대위님, 그리고 저와 시스터 에바를 세
트로 보내시며 그런 걸 기대하시면 곤란한데요, 하고 유릭은 생각
했지만 정말 그렇게 말하면 말 잘 듣겠다는 대답 나올 때까지 매우
맞으므로 잠자코 있기로 했다.
어쨌건 예정된 바로는 초청된 카스틸리아 극장 오페라단이 탑승한 쾌
속 증기선이 출항하는 것은 수요일 12시, 즉- 오늘 정오였다.
쾌속 증기선의 속도를 계산한다면, 유릭은 내일 아침에 출발하여 시
곤 항을 출발해야 중해역에서부터 배를 호위할 수 있게 된다. 말이
호위지, 실제로는 그 배 안에 혁명파가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
역할이 주가 될 것이다. 서부 특무부에서 고작 배 한척을 호위하기
위해 네 명이나 차출되는 것도 그 때문.
“발터와의 일은 시곤 항에 입항하기 전에 해결해 놓도록. 동부 녀석
들이 합류한 후에는 눈에 안 뜨이게 움직이기 힘들다.”
“철십자 기사단은 움직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행인지 뭔지는 모른다. 나는 그놈들
이 눈에 뜨이게 설치기를 바라니까.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던 힘껏
싸워라. 이길 거다. 너희들은 이 파난에서 악마 다음으로 강한
녀석들이니까.”
유릭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미 굉장한 악마들이랍니다.”
로웨나는 오전 10시 경에 울 듯한 얼굴의 미하일에게 작별인사를 나
눈 후(“잘 다녀와야 해!!” “나 없는 동안 굶어 죽지나 말라고, 이
바보야.”) 묵직한 가방을 끌고 항구로 향했다.
리자베따와 가게 아가씨들(?)은 의미심장살벌하게 웃으며 기념품을
요구한 다음 아르바이트를 빼 주었다. 로웨나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수첩에 적은 후에, 가격이 적당하면 사오겠다 약속하고 작별인사
를 했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오전 11시 경에 파난 행 쾌속 증기선
에 타게 되었다. 가방은 다른 상류층 손님들에 비하면 지극히 적으
니 화물칸에 실을 필요도 없이 그냥 들고 갔다.
막 배에 타려는데, 선착장에 세워진 흰 마차 한 대에서 꽤 많은 짐들
이 내려지고 있었다. 로웨나는 그 화려한 마차가 어느 집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델로 가의 마차였다. 로웨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
에 가방을 든 채 기다렸다. 역시나, 짐이 거의 내려지자 그 안에서
에닌이 나타났다.
따귀 사건 이후 일주일 간 말도 안하고 지냈다. 다른 단원들과 발레
리나들은 에닌이 대체 어떤 잘못을 했기래(그 누구도 로웨나가 무
언가 실수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니) 그리 된 건지 궁금해 했지만
로웨나는 함구했다. 에닌도 조용했다.
그런데 에닌이 로웨나를 발견하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웃으며 달
려왔다. 로웨나가 더 놀랐다.
“같이 올라갈래? 어머니 아버지하고는 벌써 인사 했거든.”
에닌은 로웨나를 끌고 탑승계단을 올라갔다. 로웨나는 어리둥절했지
만, 너 무슨 일이니? 어쩌고 물어 보지는 못했다.
“로이, 백작님이 내 공연을 보러 오셔!”
“응?”
“어제 편지를 받았어. 그 분이 내 공연을 볼 예정이래. 언제나 그랬듯
이 훌륭하길 바란다는 말도 하셨지. 너무 좋아! 이렇게 행복한 건,
그분과 처음 만난이래로 너무 오랜만이야.”
로웨나는 백작에게 감사했다. 그가 아자렛을 위해 그리 해 주는 것이
라 생각되었다. 로웨나에게 말 한대로 아자렛과 갈 때 까지 갈 생
각이었다면 이리 해 줄 리 없다. 말은 그리했어도, 아자렛을 생각해
준 것이다. 그래, 다행이다.
에닌이 말했다.
“로이, 그런데......... 아자렛 아주머니의 일말이야.”
로웨나는 웃으려고 했다. 그러나 영 어색하고 불편해서, 당장에 뒤돌
아 후딱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에닌이 말했다.
“너........... 아자렛 아주머니에게 사과 했니?”
너무나 황당한 말이라, 로웨나는 그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시
에 잊었다.
“사과라니, 무슨 말이야?”
“맙소사, 며칠 지났다고 벌써 잊으면 어떻게 하니. 네가 아주머니와
백작님 사이를 오해하는 바람에, 큰 일이 날 뻔 했잖아. 백작님이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파난으로 떠난다고 하지만 않으셨다면 일이 더
커졌을 뻔 했어. 너도 알잖니. 아자렛 아주머니의 사정을. 그런데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해서 백작님을 찾아가 실례를 범하다니.”
“에니?”
로웨나는 이 기집애가 낮술이라도 처먹었나, 하고 생각했다. 로웨나
의 표정에 에닌은 정색을 했다.
“사과 할 일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무리 네가 아자렛 아주머니
와 친하다 하더라도 그런 오해는 큰 잘못이었다고 봐. 카스톨로 돌
아오면 꼭 사과하도록 해. 그러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아주 실망할
거야.”
로웨나는 기가 막혔다, 진심으로. 에닌은 여전히 웃으며 로웨나를 보
고 있었지만, 로웨나는 분노할 가치조차 느낄 수 없었다. 로웨나는
쌀쌀맞게 돌아섰다. 에닌이 붙잡으려 했지만 싸늘하게 말했다.
“가방 놓고 와야 해. 저녁 먹을 때 보자.”
“로이, 화 내지 마. 잘못한 건 잘못한 거잖아. 그리고... 나는 너를 사
랑해. 네가 더 착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것뿐이야.”
로웨나는 웃었다. 아주 활짝. 그 얼굴에, 에닌 역시 기분이 좋은 듯
볼이 붉어졌다.
“고마워. 내 걱정 해 주는 건 너 뿐이야. 나중에 돌아오면 꼭 사과드
릴게.”
“역시 너는 착한 애야.”
로웨나는 돌아서서 미친 듯이 가방을 끌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벌
써 도착한 여행 룸메이트인 수잔나가 짐정리를 하다가 로웨나가 들
어오자 웃으며 반겼다. 그러나 로웨나는 딱딱한 얼굴로, 모자를 벗
어 걸고 가방을 침대위에 집어 던졌다. 수잔나가 어리둥절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을 나서 쿵쾅 쿵쾅 복도를 뛰어 갑판 위로 갔다.
갑판에는 쾌속 증기선이 떠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
다. 로웨나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숨을 고르고, 자신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너무 화가 나서,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증기선의
선미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카스톨의 항구에 바짝 붙은 난간 옆에,
검은 옷에 검은 보닛을 쓴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깡마르고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분명 알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로웨나는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갔다.
“저, 코지마 부인 아니세요?”
로웨나는 그녀 옆으로 가서 그리 큰 소리로 물었고, 그러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너무나 놀란 얼굴이었다. 역시 추기경 부인 코지마가
맞았다. 그녀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린 양? 세상에, 어떻게 저를 알아 본 거지요?”
“그야 뒷모습이 부인의 뒷모습이니까 알아본 거죠. 안녕하세요?”
코지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금빛머리는 햇살아래
에서 갓 빚은 황금처럼 눈부셨다.
“고마워요. 저를 찾아줘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제게 말을 걸어 주
는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머나, 부인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요.”
그 말에, 코지마는 아련한 눈빛으로 눈을 들어 선미 쪽을 보았다. 로
웨나도 그 쪽을 보았지만, 구름 낀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코지마가
말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그린 양.”
로웨나는 막 입을 열다가 다물었다. 평상시라면 에닌과 함께 있어야
할 테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코지마가 부드럽게 말했다.
“누군가와 싸웠나보군요, 그린 양.”
“어떻게 아셨어요?”
“아는 방법이 있답니다. 저런, 친구가 그린 양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
나 보군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사랑
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사랑하는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
면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될 테고, 언젠가는 임금님처럼 멋진 사람
이 그린 양을 사랑해 줄 거랍니다.”
로웨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흐드러지게 장미가 피어있는 정원의 향기
를 맡은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향기였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에요, 그런 말
따위 믿지 않게 된지 이미 오래전이었지만 그래도 코지마 부인의
말은 기분이 좋았다.
곧 쾌속 증기선이 출항했다. 뚜우- 길고 나른한 한숨 같은 고동소리
를 울리며, 검은 연기가 하늘 가득 뿜어져 올라오며 배가 출발하고
있었다. 지친 한숨처럼 뜨거운 여름바람이 갑판을 훑고 지나갔다.
로웨나는 오늘만큼은 떠나는 사람이 되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항구를 바라보았다. 배는 빠르게 항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
다. 놀란 갈매기들은 허공을 가르고, 배는 탁하고 깊은 강물을 힘
겹게 가르며 나아갔다. 바람이 더욱 거세어졌다. 로웨나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꽉 눌렀다. 코지마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요하고 온화한 눈길로 항구를 바라보았다.
“여행의 시작은..... 어디로 향하는 것이든 두근거리는 군요.”
“저, 그런데 무슨 일로 배에 타신 거죠? 파난으로 여행이라도 가시는
건가요?”
“클로디유가 이 배에 있답니다.”
“네에!?”
로웨나는 입을 딱 벌릴 뻔 했다. 지난번에 그녀가 저질렀던 천박한
장난을, 그녀는 잊을 수도 잊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코지마가 말
했다.
“시간 나면, 제 객실로 놀러 오겠나요? 아주 좋은 방이랍니다. 특실
7호에요. 그린 양이 올 때는,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에요. 잠시나마
즐겁게 지내고 싶군요.”
로웨나는 어리둥절했다. 이런 친절을 받을 정도로, 그녀와 잘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감사해하기 이전에, 뭔가 이상하다고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이 배 안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지금 당장 오라는 건 아니에요. 오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언제라도 오
세요.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코지마는 웃는 얼굴로 자리를 떴다. 검고 마른 그녀의 몸은 갑판 아래로
사라졌고, 멍하니 있을 틈도 없이 오페라 단원들이 갑판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친구들인 수잔나, 리리아, 제시였다. 로웨나가 걱정되어 따라
나왔던 그들은, 로웨나의 표정이 생각보다 밝자, 안심하며 그녀를 끌고
뱃전으로 갔다. 밝은 머리색과 풋풋한 얼굴의 소녀들은 재잘재잘 대며
멀어지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다들 브란 카스톨을 떠나 바다를 가로질
러 파난으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항구는 멀어지고, 도시의 작고 아담
한 건물들도 사라졌다. 시계탑, 콘티스타 대여왕도 수평선 너머로 사라
지고, 뱃전 옆으로는 푸르고 싱그러운 여름의 벌판과 언덕 사면을 덮은
포도밭이 펼쳐졌다. 소녀들이 각자 떠들어 댔다.
“이제키 포도원이다!”
“캉사블로 수도원도 보이는데! 거기 포도주는 정말 비싸다지.”
다들 까르르 웃어젖혔다. 그러나 그렇게 떠들어 대는 중에도 로웨나는
코지마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놀러 오세요, 저는 반드시 있을 거랍니다.........
수잔나가 말했다.
“키칠라 언니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 배에, 세상에......!
너도 알지? 그 백작님 말이야. 에닌이 좋아하는 그 백작님이 타셨대.”
리리아가 킬킬댔다.
“아아, 우리의 노래의 천사, 눈부시게 아름답고 유리처럼 순수한 마음의
에닌이 좋아하면 뭐하니. 이제 그 분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 같은데.”
“그것도 에닌보다 몇 배로 어여쁘고 집안도 훌륭한 ‘귀족’과 말이야.
아무리 에닌의 집이 부자라지만 귀족은 아니잖아.”
“맞아. 게다가 백작님도 부자인데 돈 때문에 에닌과 결혼할 리도 없고.
그러니 백작님은 그 아가씨와 결혼하게 될 거라고! 로이, 너도 들었지?”
로웨나는 당황했다. 정보공급의 최전방에 있던 그녀가 아무 것도 모른
다는 사실에, 친구들 모두 서로 가르쳐 주려고 나서다가 먼저 승리한
수잔나가 나섰다.
“누구냐 하면 추기경의 조카인 클로디유 데지레 양! 홀라그로 성의 성
주께서는 그 아가씨와 사귀신단다. 이건 정말 정확한 거라고. 내가 아
는 언니의 친구네의 가정부의 동생이 홀라그로 성의 하녀잖아. 요즘 그
아가씨가 그 성에 거의 매일 매일 들락날락거리고, 세상에나! 백작님이
그 아가씨와 교외로 몇 번 가기도 했다더라고.”
“그래?”
로웨나가 시큰둥해하자, 다들 그녀가 에닌을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
판단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다들 에닌이 걷어차인데
좋아하고 있었다.
이제, 로웨나는 도대체 왜 클로디유가 아자렛과 백작 사이를 훼방
놓았는지 대강 짐작이 되었다. 시큰둥해진 건 여태까지 골머리 앓아왔던
일의 내막이 생각보다 훨씬 더 천박하고 시시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클로디유 데지레가 노리고 있었던 건, 쓸데없는 소문내서 즐겁게 수다
떠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더 란슬로 백작이었던 것이다. 노리는 이유를
짐작 못하면 바보다. 젊고, 잘생기고, 지적이고, 권력의 핵심중추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엄청난 거부다. 브란 카스톨의 상류층 남자를 다
합쳐놓아도, 신분이 불확실하고 과거 역시 비밀이라는 것만 제한다면
알렉산더만한 남자도 없다.
역시나 못된 계집애로군. 로웨나는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가 수작 걸던 아자렛은 에닌을 이용해 치워버리고, 알렉산더의
마음이 진심에 가까울 것에 대비하여 로웨나도 이용한 것이다. 소문을
퍼뜨리면 로웨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아마도 지난 무도회 때
짐작했을 테니. 아자렛의 입장을 생각해서 더 이상의 접근을 삼가 달라고
말할 사람은, 아자렛 주변에는 로웨나밖에 없었다.
결국 신나게 이용당한 것이다. 로웨나도, 에닌도.
로웨나는 정말 기분이 나빠졌다. 결과적으로는 아자렛은 지킬 수 있었고,
에닌은 어차피 젊고 예쁘니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테니 손해 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얄밉도록 예쁜 계집애에게 속 부글부글 썩히며
몇 주간 이용당한 것을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이 배에
문제의 당사자인 클로디유와 백작이 모두 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식사할 때 만날 일만 없기를 바라야 할 것 같다.
“하여간, 귀족들이란!”
자신도 알고 보면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로웨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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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이제 곧 설. 집을 비우게 되어서 자룡이를 다른 집에 맡기고 왔
답니다. 그 집에도 귀여운 샴 냥이가 있더군요. 이름하야 바샤 니진스키!
(이분 댁에 암냥이가 들어온다면 파블로바;; 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바샤 군은 동물병원 가 있어서 보지 못했답니다. -_-;; 드디어 어린 샴냥이를
보게 된다고 두근 두근 해 있었는데......데리러 갈 때 보게 될 테지요;;
혼자 남겨 놓기 뭐해서 맡기기는 했는데요.........................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룡군 놈이 발정난 암냥이를 봐도 겁부터 집어 먹어
서요. 튼실한 소년냥이와 대면하게 되면, 이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참으로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그렇잖아도 화장실 가르쳐 준다고 데리고 갔드니만
애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며 캬라라라랑 캬라라라랑 울부짖더군요;; 말 그대로
'여기 딴 놈이 있어!!! 어느 놈이야!' 라고 성질 바락 바락 내는 폼. -ㅅ-;;
에그, 이 도련님!!!
덧. 오타 수정했습니다. 7호실 입니다;;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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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