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27화 (127/174)

제127편

타락한 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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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도, 로웨나와 그 친구들은 오페

라 단원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배의 승

객들과 노닥거리며 보냈다.

제시는 뱃멀미를 시작해 꼼짝도 못하게 되었고, 리리아는 젊고 잘생

긴 신사분이 없나 살피고 다니느라 바빴으며, 수잔나는 음식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잔뜩 시켰다가 결국에는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겼다.

“파난에 도착하면 네 허리둘레가 두 배로 불어나 있을 거야.”

“나는 배가 불러야 목소리가 더 잘나온다고!”

제법 귀여우며 멋 내기 좋아하는 리리아는 내일이나 내일 모레 파난

의 해군이 배를 호위하기 위해 탑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브란

카스톨로 돌아가기 전까지 멋진 해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말겠다

고 선언했다.

“멋지지 않니? 나는 장교 부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남편은 엄격하

고, 나는 조신하고 다정해. 오페라 가수 출신인 나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테지! 아이는 일곱 명쯤 낳고, 날씨 좋은 날에는 커

튼으로 만든 옷을 입혀서 벌판으로 데리고 다니며 기타 치며 노래 연

습을 시킨 다음 합창대회에 보낼 거야! ‘눈 위의 흰 꽃’ 같은 노래

를 부르면 아이들은 정말 천사 같을 테지!”

“아아, 그 이야기에는 전직 오페라 가수보다는 수녀 지망생인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열아홉 살에 삶의 계획이 지나치게 구체적인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로웨나가 시큰둥하게 투덜대자 리리아는 정색을 했다.

“너는 너무 단순하잖아. 멋지게 성공하겠다,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

다, 얘.”

그렇게 셋이서 재잘 재잘 떠들어대고 있는데 남자 오페라단원들이 만

찬장에 나타나 인사를 하고 너희들이 제일 신났다는 둥, 하며 수작

들을 걸어대고는 식사를 하러 각자의 테이블에 앉았다. 봄날 새처럼

예쁜 발레리나들이 나타나, 늘 그렇듯 새 모이 먹듯 야금야금 음

식을 쪼았다. 그들 중에는 식당 안에 상류층 젊은 남자들을 유혹해

보려고 단단히 벼르는 애들도 있었다. 굉장히 화사한 옷을 골라 입었

을 뿐만 아니라 화장들도 진했다. 그 방면으로 가장 유명한 발레리

나 도나가 젊은 신사들이 모인 테이블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추파를 던졌다.

그 모습에, 수잔나는 그 통통한 턱을 치켜들며 화를 냈다.

“하여간, 저 계집애들은 춤추러 온 건지 남자 꼬시러 들어 온 건지

모르겠다니까!”

“상관할 바 아니잖아. 그리고...... 도나가 굉장한 실력자인 것도 사실

이고.”

로웨나의 말에 리리아가 맞장구쳤다.

“맞아. 이 남자 저남자 양다리 삼다리 문어다리 걸치든 뭐하든 간에,

도나를 보러 오페라 극장에 오는 신사 분들도 많잖아! 다른 극장에서

도나 웨슨 양을 빼가기 위해 얼마나 발악하는 지, 너도 알잖아.”

“그 한량들은 안 와도 돼. 어차피 오페라 보러 오는 것도 아니니까!

흥!”

로웨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괜히 수틀리면 난동이나 부리고.”

“지난번에 그 소동은 잊을 수가 없어! 세상에나, 그 날은 너무 무서

웠다니까........!! 크란체스터 공작도 계신 자리에서 난동이라니.”

“그 한량 클럽 중에 크란체스터 공작의 큰아들이 있었다는 게 문제이

기도 했지.”

그런데 갑자기 수잔나가 먹던 고기조각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 인가

싶어서 다들 고개를 돌렸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막 만찬장으로 들

어오는 카스틸리아의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에닌이었다. 수잔나가

입술을 비죽였다.

“쟤는 왜 우리들이 있을 때 나타난 거니?”

“밥맛이 삭 가신다, 얘.”

“저녁 시간이니 저녁 먹으러 온 거잖아.”

“이틀 동안 저 애와는 단 한번도 안 만났잖아!”

“우리가 노닥거리다가 늦게온 것 뿐이야.”

에닌 옆에는 에닌의 어머니 마델로 부인이 있었다. 사람들 모두- 특

히나 남자들-이 눈길을 돌리고, 인사를 했다. 마델로 부인은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딸과 함께 만찬장 안으로 들어섰다. 로웨나를 발

견하자 너도 이곳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했지만, 로웨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또 다른 남녀가 들어왔다. 에닌이 고

개를 돌리고 그를 맞이하듯 바라보는 것을 보니, 일행으로 같이 온 듯

했다. 그러나 그 남녀를 확인하자, 로웨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팩 돌렸다.

알렉산더와 클로디유였다!!!

수잔나와 리리아가 입을 딱 벌렸다.

“세, 세, 세상에! 저, 저, 저 애가 클로디유 데지레야?”

“나도 오늘 처음 봤어! 세상에나....... 사람 맞니? 인형 같아!”

“로이, 너도 돌아서 봐. 클로디유 데지레와 알렉산더 백작이야!”

“너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클로디유 데지레 양의 얼굴을 알아.”

그리고 가정교사도 했지. 단 한번도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아아, 생각

해 보니 마왕성 비슷한 니콜라스 추기경의 대저택도 다녀왔군. 최

근에 상당히 파란만장했다.

“어떻게 아는 거야?”

“맞아! 우리는 처음 보는 건데!”

수잔나와 리리아가 로웨나를 불타는 듯 바라보기 시작했다. 로웨나는

그 뜨끈한 시선이 싫어서, 디저트로 나온 케이크 위에 포크를 쿡

찍어서 낼름 집어 삼킨 다음 식당을 나섰다.

“먼저 간다.”

“야아아아~~ 이야기 해 달란 말이야!”

“싫어, 싫어, 싫어.”

수잔나와 리리아가 애처로운 눈길을 보냈지만, 쉬겠다고 말한 다음

나섰다. 그러나 나가는 길에 결국에는 클로디유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가 아주 따끈한 눈길을 보내고 있어,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눈

이 마주치자 클로디유는 잔을 들어 올리고는, 그 유리면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내가 이겼지롱~ 하고 말하는 듯한 재수 없는 표정이다.

로웨나는 혀를 내밀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여준 다음 돌아섰

다. 알렉산더가 웃는 소리가 등 뒤로 들린 듯도 했다. 다행히, 마델로

부인과 에닌은 웃으며 곱게곱게 이야기하느라 눈치조차채지 못했다.

반쯤 통쾌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서,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방으로 돌아가 뒹굴 거릴까 고민하다가 코지마 부인

의 초대를 생각해냈다.

갈까 말까, 지금 그곳에 있기는 할까-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찾아가서 나쁠 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로웨나의 단정한 차림새에, 승무원은 아무

런 의심도 없이 그곳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특실이 있는 곳 복도는 다른 객실이 있는 곳보다 훨씬 더 넓었고, 밝

고 호화로웠다. 로웨나는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 여기 저기 주섬주섬

살피며 특실 7호를 찾았다. 7호는 끝에 있었다. 로웨나는 벽을

더듬으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푹신한 카펫을 조심조

심 밟았다. 그리고 막, 7호의 문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왼쪽으로

난 컴컴한 복도에서 누군가의 거친 손이 솟구쳐 나와 로웨나의 팔

을 낚아챘다.

“누...”

순간 입이 틀어 막혔다. 그대로 구석으로, 컴컴한 곳으로 내동댕이쳐

졌다. 로웨나가 다시 뭐라 외치려 했지만, 다시 입이 틀어 막혔다.

“쉿, 조용히 해! 음탕한 계집!”

입이 막힌 것보다 그 말이 더 억울했다. 이, 이 자식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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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아아, 걱정 마세요. 로웨나는 유제니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

하면 그날로 범인의 직업을 왕실 소속 종신 서비스직으로 바꿔줄

위인이니까요.

이제 연휴입니다. 모두 설날 잘 보내세요. ^^ 다음편은 연휴 끝나고

올라옵니다. ;;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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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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