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편
시녀와 공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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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웨나는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검은 군마들을 바라보았다. 군마는
곧 완전히 사라지고, 말발굽이 길을 두드려대는 소리도 이내 잦아
들었다. 그녀의 뒤에는 트래비스와 카밀턴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는
그들밖에 없다. 로웨나는 에닌이 무사할까요, 하고 물어보려다가
관두기로 했다. 지금 그녀의 뒤에 있는 트래비스도 카밀턴도 확답
할 수 없다. 방금 전에 코지마가 찾아와 걱정 말고 있으라고 위로
해 준 다음 돌아갔다. 그녀라면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묻지는 못했다. 괜찮아요, 라고 말해도 불안할 것이고 아니에요,
라고 말하면 더욱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래비스가 그런 로웨나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한잔 마셔둬, 그린 양. 이제부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진정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라고.”
“감사합니다.”
옆에서 달그락 철그락 챙그랑, 와장창,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또 깨
먹었다! 하고 카밀턴이 투덜댔다. 트래비스는 지긋이 카밀턴을 쏘
아보았다.
“지금 참는 건, 순전히 자네가 오늘 고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제발,
심각한 날에는 심각하게 좀 있으라고!”
“내가 심각해 진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래서 그냥 평소대로 하는 거
네.”
트래비스가 티스푼을 집어 던졌다.
“지금, 자네 전부인은 전쟁을 하러 나갔어! 걱정도 안 돼나!”
“아아, 프리델라는 이길 거야. 무적이거든.”
트레비스가 기가 막혀서 혀를 찼다.
“나 역시 프리델라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군.”
“무슨 의견?”
“자네는 팔시티 공작가의 치욕이야!”
“아아, 그건 나도 동의해.”
트래비스의 찻잔이 카밀턴을 향해 날아갔다. 얼마 전부터 카밀턴을
굉장한 제국의 영웅으로 존경하는 것은 걷어치워 가는 로웨나는 놀
라지도 않았다.
화제를 바꿔보고 싶었는지, 트래비스가 말했다.
“로웨나 양, 오늘 정말 수고했어. 정말 고맙네.”
“엉터리였는걸요.”
“아니, 결단코 아니야! 이곳 음악 감독인 사무엘 바버 씨가 그러던데,
아주 자질이 보인다고 하더라고.......내가 못 봐서, 너무 너무 아쉬워.”
“잘했다는 말은 결단코 아니군요.”
말은 그렇게 해도 칭찬을 바랬건만, 결국에는 아예 형편없는 건 아니
었다는 말 뿐이다. 잘했다는 말보다 많은 것이 수고했다, 였다. 실
망스럽다, 정말로.
“역시나 재능이 없는 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건, 역시나 위급한 상황이나 돌발 상황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배짱뿐일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로웨나는
더더욱 우울해졌다. 역시나 공주님은 에닌이고, 로웨나는 잠깐
에닌의 드레스를 빌려 입은 시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 에닌을 구해 오겠지요?”
묻지 않으려던 말을, 낙담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트래비스도 카밀턴도, 아는 것이 없는 듯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힘주어 동시에 외쳤다.
“그러엄!”
......정말 모르는가 보다. 그래도 전문가들이 나갔으니 알아서 잘 할
테지, 로웨나는 풀이 죽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렇게 우르르 몰려
가는 걸 보면 뭔가 알아내고 달려가는 걸 테고, 에닌도 당연히 구할
수 있을 테지. 에닌이 돌아오면 잠시 공주대역을 했던 시녀는 공주
님이 돌아오셨답니다, 기뻐하세요! 라고 외치며 제 자리로 돌아가
는 것이다. 공주대신 공주의 꿈을 꾼 것 뿐, 공주를 만나러 온 많은
기사와 왕자님은 시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시녀 따위는 금세
잊혀질 테지.
로웨나는 침울하게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손끝에 닿는 찻잔
의 감촉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먹은 병아리처럼 가늘게
떨렸다.
“응?”
로웨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린 양, 왜 그러는 거지?”
“아뇨, 뭔가 이상해서...‘
“이상해? 난 모르겠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보군. 아, 그래. 그린 양,
브란 카스톨로 돌아가면, 자네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하겠네. 자네
출연료의 열배로 지급하겠어!”
로웨나는 이상현상은 단번에 잊었다.
“와아,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한 걸 가지고 그러나. 그리고 나중에 나하고 저녁이나 함께 하
지. 그린 양에게는 말할게 아주 아주 많아.”
로웨나는 네- 하고 답하려고 했지만, 손바닥 안에 있는 찻잔의 감촉
이 다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떨렸다. 카밀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로웨나 그린 양, 찻잔 버려.”
“네?”
“당장 버려!”
그러나 찻잔을 버릴 틈도 없었다. 손이 저릴 정도의 진동이 밀려왔
다. 놀라서 손을 내려다보는 순간에, 찻잔 안에서 시뻘건 두개의
점이 떠올랐다. 눈동자 같아 보였다.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눈동자.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순간에 찻잔의 차가 샘물처럼 맑아지며 그
너머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
로웨나는 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 지난 번 공연 때 에닌
을 향해 혹평을 퍼부어대던 바로 그 남자다.
카밀턴이 고함을 질렀다.
“로웨나 양, 어서!”
카밀턴이 달려와 로웨나를 잡으려 했지만, 어깨 근처까지 왔던 그의
손이 갑자기 멀어졌다. 그의 목소리도 멀어졌다. 찻잔에서 검은 그
림자가 솟구쳐 로웨나를 덮쳤다.
똑같다, 지난번 에닌이 납치당하던 그날 로웨나를 낚아채 내동댕이쳤
던 그 때와 똑같다.
“!”
눈을 감을 틈도 없었다. 사방이 휙휙 날아가듯 바뀌었고,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엄청난 속도로 몸이 날아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차고
습한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꺄악!”
로웨나는 몸을 웅크렸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구르고 쓸리고, 그러다
가 단단한 돌벽에 머리를 크게 부딪혔다.
“아흑..”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것으로 멈추었다는 것이다. 로웨나는 신음을
낑낑 흘리며 바닥을 짚었다. 바닥은 섬뜩할 정도로 찼다. 이게 어
찌된 일인지 싶어 고개를 드니,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멀리 희끄무레
한 램프가 하나 빛나고 있었다. 그 옆에 피아노 한대가 놓여 있었고,
수많은 악보들이 죽은 짐승처럼 주변에 뒹굴고 있다.
이게 어찌된 일이람? 로웨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밀턴도, 트래비
스도 없었다.
“안녕, 시녀 아가씨. 다시 보니 무지 반가워.”
로웨나는 벌떡 일어났다. 피아노 옆에 놓인 의자에 다리가 긴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술잔을 들고 있다가, 로웨나와 마주치자
흔들었다.
“어라, 아저씨-”
찻잔 너머로 본 얼굴인 동시에, 첫날 에닌에게 혹평을 퍼부었던 그
남자이기도 했다.
“내 이름은 이안 블로드. 무지 반가워, 로웨나 그린 양.”
“어라, 제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죠?”
“일단은, 아가씨 공연을 망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기사님으
로부터 들었고, 그 다음은......... 저기, 저 아가씨에게 들었지.”
그리고 이안은 술잔으로 방구석에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침대에 에닌이 누워 있었다.
“에니!”
로웨나는 달려가 에닌을 살폈다. 에닌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
었다. 얼굴도 창백하고, 손발은 너무도 찼다. 게다가 한손이 침대
맡에 묶여 있었다. 로웨나는 에닌을 흔들어 보았지만, 이리저리 흔
들리기만 할 뿐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에니, 정신 차려. 어서!”
“푹 잠들었어. 내가 깨우지 않는 한 일어나지 못한다네.”
로웨나는 고개를 팩 돌렸다.
“이상한 짓 한건 아니죠?”
“나는 신사야. 비열한 짓은 절대 절대, 결단코 안 해. 그러니 걱정 말
라고, 시녀 아가씨. 아가씨의 공주님은 요만큼도 건드리지 않았어.”
로웨나는 이안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에닌의 옷을 살폈다. 에닌은 납
치되었을 때의 옷 그대로였다. 단추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흐릿한
램프불로 안색도 살펴보았다. 창백했지만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눈물자국이 있기는 했지만 큰 상처는 없다. 로웨나는 그제야 안
도했으며, 동시에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신상에 대해 걱정해
야 할 때라는 것도 깨달았다.
“어이, 아저씨. 나는 왜 데리고 온 거에요?”
“공주님 좀 보살펴 달라고. 나를 굉장히 싫어해서 말이야....후우, 내
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아하, 시녀의 역할이라, 이거군요. 이거 완벽한 동화군요. 감옥에 갇
혀 마왕의 감시를 받는 가엾은 공주님, 그 공주님을 보살피기 위해
같이 잡혀온 시녀. 이봐요, 하지만 나는 에니의 고용인이 아니라
친구라고요!”
“사실 나도 오늘 무대에서 아가씨를 보기 전까지는 시녀인 줄 알았지
뭐야. 얼굴도 그렇게 그냥 그냥 예쁘장한 편이고, 목소리는 호랑이
라도 때려잡을 듯 억세고, 옷차림도 하나에서 열까지 고급, 라벨 붙
은 건 하나도 없고.”
“그야 에니는 부잣집 아가씨고, 나는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아가씨니
그렇죠! 어쨌건, 좋아요. 저는 공주님 보살피라고 불려온 시녀 역할
이니 그 역할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요.”
“아아, 우리를 놓아 주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공주님은 심약하신 분,
이런 곳에 오래 계실 수 없어요! 라는 대사를 할 차례이기도 하지.”
“그런 대사하면 놔 줄 건가요?”
“아니.”
“그럼 뭐 하러 해요? 목말라요. 물이나 줘요.”
참으로 당당한 태도에,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정말 물을 가져다주고
말았다. 로웨나는 물을 벌컥 벌컥 마신 다음 에닌이 누워있는 침대
맡에 앉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로웨나는 피곤한데 그냥 잘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도가 참으로 태연하자, 이안이 기가 막
혀서 물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리 태연해?”
“아저씨가 무슨 짓을 하려하면 제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글쎄. 못 막을 가능성이 높지.”
“그럼 뭐 하러 겁먹어요. 먹으나 안 먹으나 결과는 똑같은데. 아저씨
는 하던 일이나 마저 해요.”
“도무지 겁 없는 아가씨로군.”
“제 장기죠.”
이안은 푸르르 한숨을 내 쉬고는 피아노 앞으로 갔다. 그렇게 앉아
악보를 들여다보다가, 옆에서 본격적으로 빈둥거리려는 로웨나를 영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며 물었다.
“어이, 시녀. 피아노 칠 줄 알아?”
“조금요.”
“흠, 그럼 다행이군. 이것 좀 쳐줘봐.”
“골고루 시켜먹네요.”
“공주님은 자잖아. 시녀 추가수당은 줄 테니, 불평 말라고.”
“나는 현금만 받아요.”
“1카스티야.”
“10카스티야.”
“이봐, 숙식제공은 하는데 너무 비싼 거 아냐?”
“누가 해 달라고 했어요? 싫으면 저를 원래 있던 곳에 도로 가져다
놔요.”
“....”
잠깐 협박과 으름장이 오고간 뒤에 7카스티야로 합의를 보았다. 이안
은 으르렁대며 7카스티야를 넘긴 후에 악보를 주었다.
“여기. 이것 좀 쳐주면 되는 거다.”
로웨나는 이안이 내미는 악보를 낚아채 피아노 악보대에 얹었다.
처음 보는 곡이었다. 로웨나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본 다음에 피아노
를 치기 시작했다. 멍하니 듣던 이안이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가만, 가만!”
“치는 게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직접 치던가, 좀 더 상세히 악보를
주던가 하라고요. 이런 악보 뼈다귀 가지고는 제 마음대로 칠 수밖에
없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피아노....... 정식으로 배운 적 있어?”
“있죠. 어렸을 때.”
“지금은?”
“그만 뒀어요.”
“왜?”
“아아, 귀찮게 하네, 정말! 재미없어서 관 뒀어요.”
“아니 왜---!”
엄청난 포효였다. 로웨나는 으르렁대며 피아노를 뚱땅거리기 시작했다.
펜토네의 피아노 독주곡 제17번. 광란의 월광, 이었다. 이안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그거 칠 줄 아는 거야! 세상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그 곡을
연주하는 건 처음 봐!”
“오버하지 말아요. 이건 내가 열한 살 때 쓰던 연습곡이라고요.
즉, 엄청나게 쉬운 곡이라고요.”
“뭐? 이봐, 그럼 파반의 피아노 협주곡 5번. 칠 수 있어?”
로웨나는 첫머리를 쳤다.
“알르단의 발자국.”
그것은 중간 부분을 쳤다.
“폭풍의 왈츠.”
그것은 끝부분을 쳤다.
“저기, 그건 몇 살 때 쳤어?”
“열두 살.”
“대체 왜 그만 둔 거야! 제길, 아깝지도 않냐!”
“말 했잖아요. 재미없어서 관 뒀다고.”
“그러니까, 대체 왜.”
“피아노 치는 애들은 너무 많아서 돈 벌기 힘들단 말이에요!”
“그래서 가수가 된 거야?”
“그럼요. 출연료가 더 많거든요.”
“가수를 꿈꾸며 노력하는 수많은 지망생들을 향한 모독이군. 고작
돈 때문에 가수가 된 거라!”
“내 인생 내 기준대로 사는 게 뭐가 나빠요! 그러는 아저씨는 유괴범인 주제에!”
할 말이 없는 이안은 심드렁하게 으르렁거렸다. 로웨나가 그런 이안을
보며 샐쭉댔다. 이안이 로웨나를 살벌하게 노려보고는 험악하게 말했다.
“너 같은 게 감히 주연 대역이냐? 그런 돈에 환장한 정신 자세로
부르는 애가, 감히 주연!”
“무슨 헛소리에요?”
“오늘 대역 선 것 말이다!”
“바보 아냐. 부르는 거 듣고도 몰라요! 닥쳐서 별 수 없이 되는 대로 부른 거지,
내가 무슨 정해진 대역이야! 젠장,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아저씨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몇 인지 알기나 해요? 특히나 나, 나, 나! 내가 제일 고생했다고!”
“거짓말 마! 대역 정해 놓고 내 부하들과 날 기다렸잖아! 너 때문에
일이 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요, 이 멍청아! 그렇게 잘난 인간이 미리 연습한
대역인지 급조된 대역인지도 구분 못해!”
“네가 무대에서 어땠는지 알기나 해?”
“어땠는데요?”
이안이 손을 내밀었다.
“1카스티야. 공짜로는 말 못해.”
로웨나는 지페를 꺼내 반으로 북 찢어 건네주었다. 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건!”
“성실하게 평해주면 나머지 반쪽도 주죠.”
“그렇게 말하는 너도 반쪽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 소용없잖아.”
“아저씨도 소용없기는 매 한가지잖아요.”
이안은 끄흥, 하고 한숨을 내 쉬고는 말했다.
“끔찍하고도 끔찍한 엉터리였어.”
로웨나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체 왜요?”
“정말 제 멋대로 부르더라니까! 아주 그냥 제 멋대로! 작곡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아하, 정말 미안하지만 작곡자의 의무는 작곡하는 걸로 끝난다고 봐요.
어떻게 역을 해석해서 어떻게 보여주는 지는, 가수인 제 소관이라고요.
무대는 변하고 역동적인 곳이라고요! 언제나 작곡한 사람에 맞추어서,
시대가 변하고 무대가 변하는 데도 똑같이 할 수는 없는 거에요.”
“잘났다! 어쨌건 엉터리였어. 임기응변과 용기는 높이 사지만,
넌 엉터리야. 너무 화려하다고.”
“화려하다니요?”
“네 목소리, 네 목소리는 너무 화려해! 에닌 마델로처럼 심심한
목소리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너처럼 화려한 목소리는 더
질색이라니까! 그러니 엉터리라고!”
로웨나는 입술을 꾹 물었다 떼고는 험악하게 말했다.
“아저씨도 엉터리에요.”
“내가 뭘?”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지! 자기 세계에 꽁하니 틀어박혀서,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모조리 엉터리라고 평가절하하지!
으악, 진짜 진짜 엉터리!”
“너는 엉터리 맞아, 이 고집쟁이야!”
“엉터리 눈에는 엉터리만 보이는 거지, 이 바보 아저씨!”
“내가 왜 엉터린데!”
“그러는 나는 왜 엉터린데요?”
“그, 그야........그...... 제길, 멋대로라서 멋대로라고 하는 거야!”
“그럼 제 노래가 무대에서 엄청나게 둥둥 뜨고 엄청나게 어울리지 않았나요?
저 혼자서 찢어지고 갈라져서 무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나요?”
“아니.”
“그럼, 그 상황에서, 악보에 적힌 대로 으르렁대며 ‘찢고 뭉개라, 속이고 죽여라!’
라고 했으면, 그게 어울렸을 거라고 봐요? 하나도 안 맞는다고, 하나도!
나 혼자 잘났다고 작곡자의 의도인지 뭔지 하는 대로 가면, 다른 배우들은
뭐가 되죠? 그게 진짜 엉터리라고요. 이건 가창경연대회가 아니라 무대니까,
나 혼자 서서 하는 게 아니라 단원들이 모두 함께 하는 거니까, 그게
무대라는 거니까, 알겠어, 이 바보 아저씨야! 그리고 나 목말라. 물 한 컵 더 줘요!”
이번에도 이안은 아주 자연스럽게 물을 가져다 바쳤으며,
그대로 자괴감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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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어딜가나 여왕님. --
다음편은 5일 뒤!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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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제39장 황금의 콜로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