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54화 (154/174)

제154편

황금의 콜로세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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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흑마법사였나.”

소년이 웃었다.

“네가 그렇듯이.”

유릭도 목을 짓누르던 손을 떼고,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소년을 후려

갈겼다. 빠각, 짧고도 호된 한방이었다. 나가 떨어져 바닥을 구른

소년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악에 밭친 듯 앙칼지게 외쳤다.

“내가 질 줄 알아!”

소년다운 호기-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캉- 탄환이 소년의 허벅지

를 맞췄다.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 허리도 이미

유릭의 탄환에 맞은 상태였다. 피가 쏟아지며 바닥을 적셨다. 소년

은 이를 악물어 비명과 신음을 삼키며, 피 흐르는 상처를 움켜쥐면

서도 유릭이 다가오자 고개를 들었다. 유릭은 라이플을 장전하여

소년의 이마를 겨누었다.

“쏴!”

소년이 고함을 질렀다.

“이대로 놔둬도 넌 죽어.”

“제길! 그럼 그냥 죽이지, 뭐 하러 이런 거냐!”

“우리 쪽으로 온다면, 특무부는 네 모든 신상을 넘겨받는 대가로 널

살려줄 것이다.”

“아하, 눈물나게 고맙군!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우리의 원칙. 전투불능상태의 흑마법사에 한하여 선택의 여지를 준

다. 싫다면 즉각 사살한다.”

“개자식! 그냥 죽여! 난 안 넘어가! 결단코! 너희 같은 놈은 안 될

거야!”

“그럼 눈 감어.”

“뭐?”

“이도 악물고.”

소년이 경악했다. 유릭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에 유릭과 소년 사

이로 누군가가 뛰어 들어 두 팔을 벌렸다. 소년이 흑, 하고 신음을

삼켰다.

“그만 둬. 총 치워.”

오페라 극장에서 칼을 맞대었던 그 여자가 앞에 서 있었다. 백금발

에,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눈동자를 가진 그 여자.

“자꾸 만나네요.”

“네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거든. 열심히 쫓아다니는 중이야.”

“이젠 연상과는 안 사귀기로 했답니다.”

여자가 웃었다.

“농담 따먹기는 그만하자. 저 꼬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죽겠지. 하

지만 이대로 죽게 놔 둘 수는 없어.”

“어째서입니까?”

“학살 때 내가 직접 구해준 아이다. 다시 살려주게 해 줘. 하라는 건

뭐든 하지.”

유릭의 총구가 여자의 이마를 향해 올라갔다. 소년이 질겁하며 외쳤

다.

“지크, 도망쳐요! 제길, 안된다니까!”

“닥쳐! 꼬맹이는 어른 말이나 들어. 어쨌건, 저 아이는 살려줘!”

“지금, 이 지역으로 소탕령이 내려졌습니다. 구역 안에서 발견되는 사

람은, 우리의 판단과 그들의 선택에 따라 사살합니다.”

지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키드몬!”

그리고 그녀의 그 짧은 외침과 함께, 바닥에 검은 마법진이 나타났

다. 유릭은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카앙! 푸른 섬광이 시커먼

진안에 박혔다. 엄청난 그림자가 솟구쳐 오르더니 유릭을 향해 내

리박혀왔다. 유릭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히게아!”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붉은 화염이 어둠을 휘감아 삼키며 치솟아 올

랐다. 검은 그림자가 뭉개지듯 사라졌다. 하늘에서, 그 검붉게 물든

하늘에서 그물처럼 마법진이 펼쳐졌다. 유릭은 라이플을 당겼지만,

그 마법진이 덮치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유릭은 콜로세움 쪽으

로 몸을 날리며 아무 방향이나 총을 쏘았다. 카앙, 무언가 부딪히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닥이 갑자기 푹 꺼진 듯 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이 옆에 있었던 듯, 그대로 몸이 굴러 떨어졌다. 이리저리 구

르고 나동그라지다가 정신을 차리니, 좁은 복도 위였다. 흙냄새와

풀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제 막 피어난 신선한 꽃향기도 난다.

유릭은 이마의 피를 대강 훔치고는 일어났다. 무시무시할 정도의 정

적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걸음을 떼었을 때,

온 복도가 놀란 듯 쩌르릉 울렸다. 유릭은 입구를 찾았다. 그러나

대체 어떻게 어디로 굴러 떨어진 건지 입구가 어디에도 눈에 뜨이

지 않았다.

“키케.”

빛이 떠오르며 주변을 부옇게 살폈다. 먼지 끼고 낡은 벽이 보인다.

유릭은 찬찬히 그 벽을 살펴보았다. 벽 위에 무언가가 그려져 있

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깊게 파서 하얗게 물감을 넣어 그려 놓은

그림이었다. 유릭은 손바닥으로 벽을 문질러보았다. 성좌를 그린

그림에, 그 주변에 낯선 문자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낯익었다. 이

건 유릭이 어린시절을 보낸 유형지의 성에서 자주 보던 그림과

글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림을 비추던 키케의 금빛이 갑자기 붉게 물

들었다. 유릭은 라이플을 장전했다.

벽에서 희뿌연 옷자락 같은 것이 나타났다.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카앙, 푸른 섬광이 작렬하며 벽을 후려쳤다. 그러자 벽에서 흰 새떼

같은 것이 엄청나게 솟구치며 폭풍처럼 비상했다. 순식간에 사방

을 뒤덮었다.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카앙-! 벽에 명중한 듯 바닥

이 쩌릉 울리더니, 벽 한쪽이 쿠르릉 무너졌다.

“암만!”

유릭은 그 구멍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몸을 던진 무너진 벽의 입

구를 가로막듯이 마법진이 펼쳐졌다.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섬광이 마법진을 통과하며, 그 복도가 이글

거리는 희고 거센 바람으로 가득찼다. 칼날을 무수히 휘두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캉캉, 카가강-

“.....산 넘어 산이군.”

유릭은 땀에 젖어 따끔거리는 눈을 닦았다.

이건 무슨 현상일까- 당연하다. 흑마법, 저 흰 나비들은 모두 마령의

유체들이다. 유릭은 라이플을 짚고 몸을 일으키면서 중얼 거렸다.

“이안, 이 자식-!”

“와아, 흔들린다.”

벽과 천장이 울리며 돌 부스러기가 와스스 떨어지자 로웨나가 말했

다. 이안이 투덜댔다.

“제발 끼아악, 어떻게 해! 등등의 반응을 좀 보여주면 안되냐.”

“아저씨가 해요. 본인이 보고 싶은 걸 남에게 강요하는 건 나쁜 버릇

이라고요.”

다시, 방이 쩌릉 울렸다. 방금 전보다 더욱 거센 울림이었다. 금방이

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안이 모자를 쓰고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흉탄의 마왕이 강림하려는 군. 느껴져.”

그리고 그는 잘 묶어두었던 가방을 어깨에 멨다. 로웨나가 물었다.

“어디 가요, 아저씨?”

“내 적이 나를 만나러 왔잖아. 자, 이제 나는 내 각본에 따라, 저 악

마의 역할을 배정해 줘야지. 난 갈 거야.”

그리고 이안은 로웨나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은 로웨나의

어깨를 지나, 그녀가 지키고 있던 에닌의 이마를 향했다. 손끝에서

빛이 츠캉, 일어나며 에닌의 몸이 덜컥 흔들렸다. 로웨나는 기겁하

며 에닌을 끌어안았다.

“무슨 짓 한 거에요!”

“공주님은 곧 일어날 거야. 자, 이제 용사가 기다리는 마왕이 강림했

으니, 아가씨들은 돌아가.”

“유리를 상대하러......혼자 가려고요?”

“물론. 하지만 내 걱정 할 필요는 없어. 나는 마왕을 퇴치하고 공주님

을 뵈러 올 테니까.”

“안돼요! 아저씨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

로웨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호라, 이안이 감탄하며 웃어젖혔다.

“벌써 나한테 정이라도 들었어? 그렇게 단호하다니.”

“제기랄, 이 바보 아저씨야, 누가 그 딴 거 걱정 한대! 나는 돌아가는

길 모른단 말이에욧!”

“.....응?”

“나는 여기 처음이라고요! 돌아가는 길을 알 턱이 없잖아요! 그런데

버려두고 갈 생각이었어요, 응? 이 파렴치한 같으니라고!”

다시, 쩌릉- 쿠릉- 하고 방이 울렸다.

망연하게 천장을 바라보던 이안이 말했다.

“정말 끝내주는 아가씨로군.”

로웨나는 이안의 멱살을 낚아챘다.

“어쨌든, 나는 아저씨 혼자서 못 보내요! 데려다 줘요!! 그 다음 죽던

말든 아저씨 마음대로 하고!”

“알았어! 알았으니 그만 좀 볶아대! 제길, 너는 내가 아는 최악의 가

수이고 최악의 여자야!”

“아저씨 작곡한 오페라에 등장할 일 없고, 아저씨 여자친구 될 것도

아니니 상관 말아욧!”

“제길, 벌써 등장했잖아!”

“내가 언제! 연습 도와준 것 때문에 등장했다고 헛소리 하는 건 아니

죠?”

“아니, 바티스타! 그거 내가 쓴 거란 말이다! 자그마치 주연이나 맡아

놓고선 어디서 시치미야, 너!!!!”

“네?”

로웨나가 다시 뭐라 버럭거리기도 전에, 이안이 으악스럽게 항의하기

도 전에, 침대에서 신음소리가 나며 에닌이 몸을 일으켰다. 둘 다

입을 합 다물고 침대를 보았다. 깨어난 에닌이 눈을 크게 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로, 로이? 어....로이! 그리고....꺄아아악, 저 사람! 저 사람!”

에닌이 새파랗게 질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성량에

이안이 고통스러워하며 귀를 막았다. 왜 재웠는지, 지나치게 이해가

잘 되는 상황이었다.

“에니! 진정해, 진정해! 내가 구하러 왔으니까 어서 가자!”

“하지만 저 사람.....끼아아악! 시, 싫어! 로이, 살려줘! 로이, 로이!!

저 사람 너무 싫어!”

“아저씨, 대체 무슨 짓 한 거야!”

“아무 짓도 안했어! 제길, 너 그 녀석 좀 잡고 있어봐, 어서!”

이안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움켜쥐었다. 파창, 하고 유리 금가

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에닌이 다시 쓰러졌다. 같이 귀를 막고 있던

로웨나는, 그것만큼은 이안에게 감사했다. 이안은 그녀의 몸을 번

쩍 들어 어깨에 메며 말했다.

“일단은 입구까지만 바래다줄게. 거기서부터는 너 알아서 해.”

“이봐요, 아저씨! 에닌이 무슨 짐짝이야? 좀 잘 들어요, 잘!”

“제발 좀 닥쳐라! 닥쳐!”

“윽박지르지 말아요! 아저씨가 제대로 하면 내가 왜 떠들어!”

“제기랄, 너는 세계를 정복할 마왕과 결혼할 거야!”

“그것참 좋네요. 마왕이라면 진짜 부자일 테니까.”

“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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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말 시키지 말라니까......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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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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