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55화 (155/174)

제155편

황금의 콜로세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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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릭은 턱의 땀을 훔쳤다.

“후우-”

사방에 연기가 자욱했다. 여기저기, 깨어진 돌들이 뒹굴고 있었다. 돌

틈에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솟아오라즈 유릭은 그것을 쏘았다.

캉, 유리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박살나 사라졌다.

유릭은 다시 라이플을 장전하며 앞으로 나갔다. 이제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지붕이 사라지며, 뿌연 안개가

낀 하늘이 나타났다. 얼기 설키 엉킨 대들보의 잔해위로, 흐릿한

하늘은 굶주린 노파의 눈처럼 음산했다.

그리고....크르릉,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릭은 장전한 총을

들었다. 폐허의 맨바닥 위에, 검은 그림자들이 솟아 있었다. 유릭이

멈추자, 그것들이 일제히 솟구쳤다. 유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캉,

다시 당겼다. 캉, 다시 장전하고 당겼다. 캉! 끄르렁, 크헝, 하는

울부짖음이 터지며 검은 그림자들이 퍽퍽 떨어졌다. 유릭은 다시 라

이플을 휘둘러 장전하고는 앞을 겨냥했다.

이제 유릭이 있는 곳은 둥근 전당 같은 곳이었다. 여기저기 잡초가

나 있었다. 초여름의 작고 흰 꽃들이 눈부시게 무리지어 부옇게 빛

났다. 그곳에 작은 조상들이 부러지고 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유릭은 주변을 살폈다. 방금 전에 명중시킨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이걸로 끝인가?

“바닥을 조심해.”

겨울의 찬돌 같은 목소리가 툭 던져졌다.

유릭은 그 방향을 향해 총구를 돌렸으나, 그 순간 바닥이 시커멓게

변했다. 흰 꽃들이 어둡게 물들고 풀이 시들어 마른 지푸라기가 되

었다. 그리고 유릭을 중심으로, 그 시커멓게 변한 바닥위로 마법진

이 나타났다.

유릭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러나 총탄은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유릭은 팔을 물어뜯어 피를 냈다. 시뻘건 핏방울이

팔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유릭은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알반 이로네!”

핏방울이 순식간에 금빛으로 변했다.

“암만!”

암흑 위로 마법진이 나타났다.

“크리게아!”

그 위로 또 한번 마법진이 나타났다.

“이로네!”

돌풍이 일어났다. 머리카락이 휘말려 올라가고, 제복의 옷깃이 퍼덕

였다. 쿠르릉, 거리며 사방이 울렸다. 바닥이 들썩거렸다. 무언가가

몸을 들척이며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조심하라고 했어.”

다시, 그 차가운 목소리.

유릭은 눈을 크게 떴다. 바닥 위에서 시뻘건 두개의 눈동자가 나타나

고 있었다. 그 눈동자 사이에 문장이 박혀 있었다. 문장은 하얀 까

마귀의 문장. 날개를 위로 치켜세운 까마귀였다. 저거.... 하고 중얼

거리는 순간에, 바닥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파도처럼 솟구쳤다. 몸을

털듯이 그 그림자가 부풀어 오르며 펼쳐졌다. 으득거리며 바닥이

패이고 벽이 갈라지며 쓰러졌다.

유릭은 총구를 들었다. 크르렁!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그것이 유릭을

향해 돌진해왔다. 공기가 으스러지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암만!”

유릭은 피가 흐르는 팔목을 휘둘렀다. 피가 허공을 스치며, 그곳에

황금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회오리가 일어났다.

칼날을 휘두르는 듯한 파공음이 쌔액, 쌕 터졌다. 검은 그림자가 그

마법진에 부딪혔다. 검은 살점 같은 것이 퍽퍽 튀어 올랐다. 으드득,

부러지고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유릭의 마법진이

밀리기 시작했다. 바닥이 패이면서, 그것을 지탱하던 유릭의 몸도

같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유릭은 라이플을 쏘았다. 캉캉, 몇 번 굉음

이 터지며 검은 그림자의 몸체가 퍽퍽 패여 나갔다. 밀어붙이던

힘도 주춤거렸다.

유릭은 총구를 들어 그 그림자의 미간을 겨냥했다. 시커멓다. 뭉치고

뭉친 어둠의 바다가, 그 앞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유릭은 입술을

꾹 물었다 떼며 외쳤다.

“히게아-!”

검은 그림자를 밀어젖히던 마법진 바로 위에 또 다른 마법진이 펼쳐

졌다. 유릭은 총을 쏘았다. 타앙, 그리고 시뻘건 피가 쏟아지듯 불

꽃이 와르르 솟구쳤다. 불길이 어둠을 향해 휘감겨 올랐다. 유릭은

총구를 돌려 바닥을 쏘았다. 시커먼 바닥에서 푸른 섬광이 파창

튀었다. 그러며 두두둥 흔들린다. 지진이 나는 듯 했다.

“암만!”

다시, 바닥 위로 흰 마법진이 나타났다. 유릭은 총을 당기고, 피에 젖

은 팔을 그 위에 갖다 댔다. 마법진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변했다.

유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온 마법진이 전율하더니, 그 어둠이 검은

유리가 깨어지듯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카카카가강, 바닥위로

검은 유리조각이 튀듯 어둠조각이 흩날렸다. 휘몰아쳐 올랐다. 그

리고 유릭을 중심으로 어둠이 씻겨 나가기 시작했다. 무너진 포석

이 드러나고 시든 풀들이 드러났다. 나동그라진 돌덩어리들이 나타났

다. 위로 휘몰아쳤던 그림자가, 그 뿌리가 끊어지더니 하늘로 빨

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것을 가로막던 유릭의 마법진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지자 유릭은 손을 떼고 팔을 당겼다. 지독하게 아팠다.

“큿-”

유릭은 팔목을 누르며 바닥을 보았다. 풀들이 말라 죽은 바닥에는 거

대한 사자와 여신의 부조가 조각되어 있었다. 사자의 얼굴 절반이

뜯겨져 나가 있었다. 사자에게 기댄 여신은 여기저기 모독되어 있었다.

입술이 뜯겨나갔다. 코도 깨어져 있었다. 가슴도 일부러 깨뜨린

게 분명했다. 그녀의 이마에 새겨져 있었을 문장은 긁혀지듯 지

워져 있었다. 유릭은 그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주 흐릿하게 그 형상

이 남아 있기는 했다. 나비의 문장이었다. 꿈과 부활의 나비. 루스

카브의 실종과 함께 저문 옛 왕국의 상징.

그 때 옆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유릭은 총구를 들었다. 철컥, 장전

소리가 났으나 그 총구에 장갑을 낀 흰 손이 얹혔다.

“나야.”

알렉산더였다. 유릭이 총을 거두자, 그 역시 손을 당겨 가볍게 주머

니에 꽂아 넣었다. 그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야믹탈 바티스타.”

“네?”

알렉산더는 바닥을 가리켰다.

“여신의 이름이지. 승자에겐 영광을, 패자에겐 자비를- 성스러운 아

야믹탈 바티스타. 전사가 사랑하고 경배하는 우리의 여신. 위대한

피와 잔혹한 승리의 여왕, 바티스타.”

“바티스타- 요즘 참 많이 들어본 이름이군요.”

“군부가 무식한게 다행이지. 그 수많은 이교신의 이름을 다 알고 있

었다면, 아마도 그 작품은 걸리지도 못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알렉산더는 깨어지고 모독당한 여신의 상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응시하는 눈동자 안에 묘한 감정이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는 늙은 누이를 보는듯한 애잔함이 었다. 순

간 그 여신의 이마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런- 유릭은 신음

을 흘리며 팔을 당겼다. 지혈한다고 했지만, 결국 다시 피가 나오

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손수건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유릭은 대강

피를 닦아냈지만, 다시 후드득 떨어졌다. 알렉산더가 와서, 손수건으로

직접 그 상처를 매고 꽉 조였다. 지혈이 되며 피가 멎었다.

“코지마 부인은 어디 계십니까.”

“나는 어지간하면 그녀가 직접 나설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 특히나

이곳에서라면.......”

“어째서죠?”

“그녀는 이 신전을 파괴한 유일신의 전사. 그런 그녀가 이곳을 밟는

다면, 이곳의 신이 분노할 거야.”

그 때 쿠르릉- 바닥이 울렸다. 누구일까- 울림의 강도를 보면, 아무

래도 단테 같다.

유릭이 그러하듯, 다른 동료들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크리스펠로는

무사한지- 그가 제일 걱정이다. 그 성격에, 맞든 터지든 일단 물고

늘어지고 볼 것이다. 맞닥뜨린 상대는 분명 크리스펠로보다 강했고,

흥분하지도 않는 상대였다.

“뭔가 오는 군.”

알렉산더가 말했다. 유릭이 총구를 들었다. 귀를 기울이니, 발걸음 소

리가 들렸다. 몇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오는 소리다. 큰 걸음소리와

작고 빠른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여자와 남자일 지도 모른다.

유릭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둘러보다가, 입구 하나를 발견했다. 유

릭은 그곳을 겨냥했다. 알렉산더가 갑자기 유릭의 가슴에 손을 얹

더니 뒤로 밀었다.

“가만히. 쏘지 마. 방아쇠를 당기면 진심으로 후회할 자가 나오고 있

으니.”

입구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왔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유릭은 황급히

라이플을 당겨 뒤로 감추었다. 그 사람은 다다닥 달려와 멈추더니

고개를 들었다. 양쪽으로 땋아 내린 머리카락이 휘청거리다가 바닥으

로 늘어졌다.

“유리!”

로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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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뭔가.....뭔가.................야릇한 장면이 나온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음편은 3일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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